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읽다가도 하하, 하고 혼자서 크게 웃게 만드는 필력이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이야기이고 아주 친숙한 이야기다. 소설 속 화자가 십대일 때 나도 십대였고, 소설 속 화자가 이십대 때 나도 이십대였다. 같은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이 느끼는 동지애라는 게 샘 솟는다. ㅋ 

프로 야구 원년을, 나 역시 명확히 기억한다. 론칭 행사로 리틀 회원 가입 붐이었고, 나 말고 남동생이 두산 베어스 리틀 회원으로 가입했다. 아빠와 동생은 가끔씩 야구장에 갔다가 늦게 오곤했다. 물론 야구모자와 야구잠바를 입고 폼 나는 회원증까지 지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짜로 나눠주는 것도 아니고 회원이란 타이틀을 부여하고는 유료 팬 확보를 위한 마케팅 전략이었지만 그 때는 유니폼만 입으면 진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십대들은 생각했다. 스포츠 마케팅이라고 알리 없는 순진한 십대들은, 원래의 의도대로 설레면서 잘 따라갔다. 야구에 관심이 없던 나도 승률을 읊을 줄 알게 되었다. 마케팅의 힘은 대단했다.  

박민규의 시선은, 여기서 부터 시작한다. 최하위 삼미팀에 울고 웃었던 기억을 복원해낸다. 스무살을 거쳐 서른이 되서 자신이, 친구가 루저가 되었을 때 삼미는 또 한 번 부활한다. 승자의 미학은 진짜 프로는 못 되도 유사 프로는 되야한다는 분위기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다. 승자의 수는 패자의 수 보다 적게 배정되어 있다. 다수 속에서 누구나 소수를 위해 할당된 자리에 누구나 노력만한다면 차지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듣는다. 그 '누구나'에 속하지 못하면 자책을 한다. 노력이 부족했다고, 인정하는 게 미덕인 것처럼 믿어져왔다. 왜 패자는 그냥 패자 자리에 있으면 안 되나, 삼미 슈퍼스타즈처럼.  

삼미 슈퍼스타즈가 패자의 미학을 보여주는 지점이 여기다. 모두 우승을 위해 노력하는데 패자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는 것. 영원한 리틀 슈퍼스타즈인, 화자와 화자의 친구 조성훈이 최소 생계를 위해서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으로 온전히 소유하는 것을 실천해 패자의 미학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시간이 있는 사람은 뭔가 빙충이 같아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바쁘다'라는 말을 애용한다. '바쁘다'란 말은, 참 편하다. '식사하셨어요?'란 말에 굳이 밥 먹었는지 대답할 필요없듯이, 왜 바쁜지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 이해하는 분위기다. '한가해요'라는 말을 할 때, 사람들은 오히려 당황한다.  바쁘다란 말이 능력 부족이고 한가하단 말이 대접받는 분위기가 오면 좋겠다. 타자가 친공을 잡으려 달려가던 외야수가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공 대신 구름을 잡는 걸 너그러이 이해하는 사회, 생각만해도 실실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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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1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1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08-12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정말 재미있죠? 저도 가끔 우울할때 펼쳐보는 책이에요. 저는 야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뭐는 알겠냐만서도) 선수들의 이름이야기 나올 때 소파위를 뒹굴며 웃었어요.

넙치 2010-08-12 20:46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재밌는 소설이었어요.
이름이 웃기다고 생각 한 적 없었는데 쫙 모아놓고 주를 달아놓으니, 안 웃고는 못 배기겠더라구요.^^
저는 아버지를 속이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