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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모두 세 권으로 구성되었지만 낱 권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어떤 이는 3권이 제일 좋다고 하던데 3권을 제일 먼저 읽었으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1권이 제일 인상적이다.
각 권에 대한 단상을 조금 끼적여보면,
제1권-자세한 배경은 안 모르지만 전쟁 중이고 극심한 혼란 상태다. 자세한 배경을 생략하지 않았더라면 지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략은 구 소련이 집권했던 동구권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혼란과 슬픔으로 누구라도 이해할 수있는 보편성에 방점을 두어 감동으로 승화된다. 짐작컨대, 대여섯 살된 어린 쌍둥이가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랑 지내면서 온갖 악을 보고 실제로 체현한다. 선과 악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학습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쌍둥이들이 악을 체현하는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정부나 기성세대가 무능할 때 생존을 위해 악이라도 행할 수 없 밖에 없다. 주머니에 항상 면도칼을 지니고 다니는 꼬마들을 사람들은 개자식이라고부른다. 이런 일련의 비극적 과정이 무심할정도로 경쾌하고 객관적 문체로 쓰여진다. 게다가 유머스럽기까지 하다.
제2권-쌍둥이,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헤어져서 각기 다른 삶을 산다. 2권은 루카스의 시선이다. "개자식" 루카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인데 분신과 같은 형제와 헤어져 사는 일은 늘 마음에 무거운 돌을 달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마을 사람들 모두 각자만의 돌덩이를 가슴에 매달고 있다. 이따금씩 돌덩이를 내려놓을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불면증이 있는 이의 유일한 위안은 공원 벤치고 친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은 소녀와 불구인 그녀의 아들.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두 사람의 위안이 돼간다.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은 곳에서 나이들어가는 신부, 친구가 거의 없는 당 서기, 정치적 혼돈 때문에 남편을 잃은 도서관 사서. 그리고 그녀를 좋아하는 루카스, 글을 쓰고 싶었지만 결국 자살하는 알콜중독자 서점 주인. 인물들의 인생살이를 들여다보면 이들한테 신은 행복이란 단어를 사용하길 금지한 것 같다. 1권처럼 간결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표현은 전혀 없다. 오히려 행복이란 단어 사용이 금지당해도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란듯이 보여준다.
제3권-루카스의 형제, 클라우스가 루카스가 사는 마을에 도착하면서 1,2권의 이야기의 관점이 모두 뒤집힌다. 처음에 혼동스럽지만 작가가 왜 3권을 썼는지 점점 알 수 있다. 클라우스와 루카스가 진짜 있는지 두 사람이 진짜 형제인지 이런 이야기로 풀어나가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클라우스든 루카스든 희망없는 현실을 살아가려면 현실에서 도망갈 필요가 있다. 그게 거짓말 같은 글쓰기다. 글은 사실에 바탕을 두긴 하지만 꼭 사실만 쓸 수는 없다. 작가가 글을 쓰는 과정에 대한 은유가 많이 나온다. "쓰면 쓸수록 병은 더 깊어진다. 쓴다는 것은 자살적 행위이다. 나는 쓰는 것 이외에는 흥미가 없다. 나는 작품이 출판되지 못하더라도 계속 쓸 것이다. 쓰지 않으면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쓰지 않으면 따분하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꼭 맞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발명품이나 창조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연이라는 말이 있다. 작가는 정치적 혼돈 속에서 계속 썼고 그 글은, 그 시대와 공간에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존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