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 Re-enco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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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체는 잘 만들었다. 미성년 연인이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잃고 성인이 되었다. 기성세대의 눈에나 판단력이 없어보이지만 진짜 그럴까? 기성세대는 두 사람이 아이 때문에 앞으로 날개를 펼치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기성세대는 두 사람을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보호대상자로 설정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이 가이드라인이 과연 두 사람에게 옳은가, 라는 주제로 풀어나가는 영화다.  

두 사람 모두 깊은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 한수는 그 나이 또래에 해야할 일을 거부했고 혜화는 잃어버린 아이 대신 유기견들한테 애정을 쏟는다. 상처는 덮으면 곪고 곪으면 터진다. 터지는 과정은 치유를 위한 과정이고 한수와 혜화는 6년 후 상처를 터트리고 각자의 방법으로 치유한다.  

난 말이 말은 영화는 대체로 싫다. 영화란 뭐니뭐니해도 이미지로 말하는 장르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는 아주 훌륭하다. 자질구레한 설명보다는 인물들의 사소한 행동이나 장면으로 처리한다. 구태의연한 장면도 별로 없다. 그러나 신선한 장면도 별로 없다. 교과적이고 생각을 많이한 영화로 너무 무겁다.  

독립영화들은 보고나면 가끔 가슴이 답답하다. 앞이 안 보고이고 유머가 없다. 물론 이건 내 취향이긴하지만 왜 독립영화는 진지하고 무거워야하나. 단조로운 현실을 피해 극장에 가는데 현실과 닮은 진지한 영화를 보면 이제 진이 빠진다. 잘 만든 영화와 설렘을 주는 영화가 꼭 일치하는진 않는다. 내게 설렘을 주지 않는 영화는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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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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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두 세 권으로 구성되었지만 낱 권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어떤 이는 3권이 제일 좋다고 하던데 3권을 제일 먼저 읽었으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1권이 제일 인상적이다.  

각 권에 대한 단상을 조금 끼적여보면, 

제1권-자세한 배경은 안 모르지만 전쟁 중이고 극심한 혼란 상태다. 자세한 배경을 생략하지 않았더라면 지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략은 구 소련이 집권했던 동구권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혼란과 슬픔으로 누구라도 이해할 수있는 보편성에 방점을 두어 감동으로 승화된다. 짐작컨대, 대여섯 살된 어린 쌍둥이가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랑 지내면서 온갖 악을 보고 실제로 체현한다. 선과 악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학습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쌍둥이들이 악을 체현하는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정부나 기성세대가 무능할 때 생존을 위해 악이라도 행할 수 없 밖에 없다. 주머니에 항상 면도칼을 지니고 다니는 꼬마들을 사람들은 개자식이라고부른다. 이런 일련의 비극적 과정이 무심할정도로 경쾌하고 객관적 문체로 쓰여진다. 게다가 유머스럽기까지 하다.   

제2권-쌍둥이,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헤어져서 각기 다른 삶을 산다. 2권은 루카스의 시선이다. "개자식" 루카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인데 분신과 같은 형제와 헤어져 사는 일은 늘 마음에 무거운 돌을 달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마을 사람들 모두 각자만의 돌덩이를 가슴에 매달고 있다. 이따금씩 돌덩이를 내려놓을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불면증이 있는 이의 유일한 위안은 공원 벤치고 친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은 소녀와 불구인 그녀의 아들.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두 사람의 위안이 돼간다.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은 곳에서 나이들어가는 신부, 친구가 거의 없는 당 서기, 정치적 혼돈 때문에 남편을 잃은 도서관 사서. 그리고 그녀를 좋아하는 루카스, 글을 쓰고 싶었지만 결국 자살하는 알콜중독자 서점 주인. 인물들의 인생살이를 들여다보면 이들한테 신은 행복이란 단어를 사용하길 금지한 것 같다. 1권처럼 간결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표현은 전혀 없다. 오히려 행복이란 단어 사용이 금지당해도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란듯이 보여준다.  

제3권-루카스의 형제, 클라우스가 루카스가 사는 마을에 도착하면서 1,2권의 이야기의 관점이 모두 뒤집힌다. 처음에 혼동스럽지만 작가가 왜 3권을 썼는지 점점 알 수 있다. 클라우스와 루카스가 진짜 있는지 두 사람이 진짜 형제인지 이런 이야기로 풀어나가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클라우스든 루카스든 희망없는 현실을 살아가려면 현실에서 도망갈 필요가 있다. 그게 거짓말 같은 글쓰기다. 글은 사실에 바탕을 두긴 하지만 꼭 사실만 쓸 수는 없다. 작가가 글을 쓰는 과정에 대한 은유가 많이 나온다. "쓰면 쓸수록 병은 더 깊어진다. 쓴다는 것은 자살적 행위이다. 나는 쓰는 것 이외에는 흥미가 없다. 나는 작품이 출판되지 못하더라도 계속 쓸 것이다. 쓰지 않으면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쓰지 않으면 따분하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꼭 맞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발명품이나 창조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연이라는 말이 있다. 작가는 정치적 혼돈 속에서 계속 썼고 그 글은, 그 시대와 공간에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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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2-1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제 집에 들어온지는 수년을 넘겼는데 아직도 못읽고 아니 안읽고 있는 책이라는 걸 일깨워 주는 리뷰에요.

넙치 2011-02-17 00:22   좋아요 0 | URL
책에도 인연이 있어 손에 들어오는 시기와 읽게 되는 시기가 불일치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거 같아요. 언제든 1권을 펼치면 내친 김에 3권까지 질주하게 만드는 책이에요. 저도 지난 토요일 오전에 가볍게 펼쳤다가 가뿐하게 하루만에 끝낸 소설입니다.권수는 3권이지만 분량도 안 많고.^^
 
오슬로의 이상한 밤 - O' Horte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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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온갖 잡생각으로 이끈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미안하지만 하품이 난다. 그래서 다음 약속을 잡을 때 주저하게 된다. 엄마이자 아내가 된 친구들은 아이와 남편의 삶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이자 아내 역할을 하기 전에는 많은 부분을 서로 주고 받은 적이 과연 있나 싶게 낯설다. 엄마이면서 아내 역할을 하는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감정은 상대적이므로 모든 게 나는 자기 중심적이고 철 없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를 얻는 게 아니라 친구를 잃는 느낌이란 바로 다른 역할 탓인 듯 보이기도 한다. 타인의 삶이 미칠듯이 궁금하면서도 타인의 삶에 결코 관심을 두지 않게 돼버린 것 같다. 실제 타인의 삶보다는 그럴듯한 타인의 삶을 그린, 영화나 소설을 읽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이런 잡생각이 들었다. 40년동안 오슬로와 베르겐을 오가는 기차 기관사로 일했던 사람이 정년 퇴직을 한다. 기관사가 되기 전 삶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기관사로 일하는 동안 주인공은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정년 퇴직을 한 후 주인공 오드 호르텐은 그동안 알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졌다. 그들은 죽거나 그와는 다른 세계에 있었다. 기차를 타지 않는 사람들이 겨울 저녁을 보내는 방법을 들여다보려고 과거에 알았던 사람들 집을 찾아나서지만 쉽지않다. 결국 집에 돌아오면 혼자다. 아니, 정확히는 새 한쌍이 그와 동거를 하고 있다. 온통 눈으로 쌓은 길을 걷기도 하고 카페에 앉아 우두커니 앉아 맥주를 마시며 사람들을 본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아주 어릴 때이거나 아님 이 영화에서 처럼 아주 나이가 들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신문에서 꽤 괜찮다는 평을 읽고 기대하면서 봤는데 벤트 해머의 정서는, 나한테는 좀 부족한 그 무언가가 있다. 1월에 벤트 해머가 감독한 <삶의 가장자리>란 영화를 봤는데 사람 심리를 묘사하는 깊이가 부족하다. 한 때 청춘의 상징이었던 맷 딜런의 망가진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였는데 맷 딜런의 연기는 좋았지만 알콜 중독자로서 맷 딜런이 추구하는 삶의 모토를 전달하는데는 겉도는 인상을 받았다. 감독은 군중 속의 고독 혹은 외롭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하는데 거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랑 자꾸 비교가 된다. 두 영화 모두 거스 반 산트 감독이 만들었다면 아주 근사한 영화가 됐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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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안에서 - 1%의 차이가 만드는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 프레임 안에서 1
데이비드 두쉬민 지음, 정지인 옮김 / 정보문화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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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들렀다 글보다는 사진이 너무 좋아서 주문했다. 사진 찍을 때 피사체한테 가져야할 태도를 말한다. 내게는 기술적인 책은 무용지물이다. 주로 여행갈 때만 사진을 찍는데다 무엇보다도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취미삼아 지니고 다니기에 나는 심한 저질체력인데다 의지도 없다. 내게는 기동력있는(?) 작고 가벼워서 들고다니느라 수고스럽지 않는 똑딱이가 최고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망원렌즈를 써서 찍은 사진들이 부러울 때도 있고 내 똑딱이가 할 수 없는 단점이 클 때도있다. 나름 수동기능이 있는 똑딱이지만 다른 사용자들이 칭찬하는 수동 기능보다는 주로 자동 프로그래밍을 사용한다. 프로그래밍된 기능은 나보다 초점도 잘 맞추고 알아서 감도도 조절한다. 나는 그저 프레임 안만 채우면 된다.  

이 책은 피사체에 접근하는 법부터 피사체에 부족한 노출을 보정하기 위해 장비뿐 아니라 주변 환경을 이용하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카메라광과 사진에 열정이 있는 사람을 살짝 구별한다. 사진에 열정이 있다보면 카메라광이 되는 과정으로 이르겠지만 나만의 여행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광이 될 필요는 없다. 여행사진은 먼저 자료조사에 있다. 그 도시에 대한 인상을 빨리 포착하기 위한 자료한 도시의 색채, 도시의 아이콘, 그리고 아이콘을 찍은 기존의 사진들을 봐 두고 그 아이콘을 직접 봤을 때 기존의 사진들이 담지 않은 부분을 담아보는 게 자신만의 여행사진을 갖는 방법이다. 인물은 대체로 망원이 좋다는 건 통념이고 광각으로 인물과 배경의 유기적 관계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나, 이 책을 일독한 후 최대의 수확이다.   

나는 대체로 도시에서 아이콘들보다는 벽에 미친듯이 반응을 한다. 갈라진 벽, 페인트 칠이 벗겨진 벽...여행 후 모니터에서 보면 나는 왜 이렇게 벽을 찍어대나..엄마는 내 사진을 보다 지루해서 다 못 본다. 벽만 있다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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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러브 - I am lov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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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여름 방학 때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를 읽은 후, 나는 6펜스가 아니라 달을 좇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었다. -_-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함께 일했던 사람과 <달과 6펜스>에 대해 말하다 깜짝 놀랐다. 그는, 한 가장이 어떻게 무책임하게 가정을 버리고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난 한 번도 뒤에 남겨진 가족을 걱정한 적이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친구가 막장 드라마같다고 말했다. 갑자기 <달과 6펜스>에 대해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막장 드라마같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줄거리만 따라가보면 친구의 말도 일리있다. 중년 여인이 아들의 친구한테 첫 눈에 반해 본의아니게 아들도 죽음으로 이끈다. 보통 한국 드라마라면 죄책감에 흐느끼는 여인이어야한다. 그러나 이 여인은 아들의 장례식날 남편한테 아들의 친구를 사랑한다고 폭탄발언을 한다. 친구는 이 부분에서 분개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줄거리가 아니라 여인의 감정선에 맞추고 따라가면 사랑이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이다. 이 영화가 막장 드라마가 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다. 영화는 저녁 만찬 장면으로 시작한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도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극도로 절제되어 있어서 살짝 긴장감이 감돈다.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엠마는 실제로 자신의 진짜 이름이 뭐였느지도 기억 못 할 정도로 모든 게 남편이나 가족 위주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모든 혈관을 팽창시키는 사랑의 폭풍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다. 엠마와 운명의 사랑, 안토니오의 감정을 묘사하는 방법은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촉각과 미각을 통해 두 인물 간에 교감을 스크린에서 구현하면 관객은 시각과 청각으로 받아들인다.   

영화는 최소한의 대사를 사용하면서 장면과 장면의 생략을 통해 비약하는 방법으로 극의 흐름을 긴장되게 유지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식구들이 엠마의 폭탄 발언 사실을 아는데 음악은 고조되고 엠마는 현관에 서 있고 다른 식구들은 집 안에 서 있다. 카메라는 다른 식구들의 놀라운 시선을 잡고 잠깐 카메라와 함께 눈을 돌리고 다시 카메라가 엠마가 있던 쪽을 비추면 엠마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 그야말로 폭풍이 한 바탕 지나간 느낌이다.  

레즈비언인 딸이 쓴 엽서에 이런 말이 있었다. "인연을 만나는 건 고독만큼 근사한 일이다." 폭풍 후 엠마는 근사한 시간을 선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고독도 인연을 만나는 일만큼 근사하다는 말을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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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2-1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엠마에게 부족했던 한 가지는 사랑뿐이었군..저 여자는 끝내 그것마저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마는군..하면서 부러워했던 영화였어요.

넙치 2011-02-13 23:59   좋아요 0 | URL
하하. 엠마는 아들을 잃고 애인을 얻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