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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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산 책을 올해 주워들었다. ^^

산문이라고 하기에 아주 짧은 글들 모음이지만 시류를 담고 있고, 고민한 흔적들이 날카롭게 전개된다. 마치 김훈 씨의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느꼈던 상쾌함이 있다. 구체적 배경을 다 알수 있는 건 아니지만 추천의 글에 리영희 선생의 말대로, "루쉰의 글 속에서 오늘날의 우리와 나를 본다."

20세기 초에 진보적 생각을 품은 이가 루쉰 혼자는 아니지만 글 속에 녹아있는 날카로움은 루쉰만의 색채일 것이다. 놀라운 점은 상당히 공격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루쉰의 글을 내가 읽고 있겠지만.  지식인의 고뇌와 고민이 수동적이고 체념적 어조이기 쉬운데 루쉰은 약간 투쟁적이다.

글을 쓰고 이렇게 절규한다. " .....이상은 모두 빈말이다. 붓으로 쓴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말인가. 총에 맞아 청년의 피가 쏟아졌다. 피는 먹으로 쓴 거짓으로는 가릴 수 없으며, 먹으로 쓴 만가輓歌로도 취하게 할 수 없다. 그 어떠한 위력으로도 짓누를 수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정신을 개혁할 수 있는 것은 문학과 예술 뿐이며 한 사람이라고 깨어나게 할 수 있다면 글을 쓰겠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글을 썼다. 그는 희망에서 절망을 보지만 그의 절망 속에서 후대는, 희망을 보았다. 20세기 초반의 인물의 글이 한 세기를 넘는 21세기에도 읽혀지는 이유이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으나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아직 갈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제일 중요한 것은 그를 꿈에서 깨우지 않는 것입니다." 루쉰이 말하는 꿈이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꿈이다. 미래는 잊고 현재를 위해 꽃을 피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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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인간 - 가면과 현기증 (Le masque et vertige)
로제 카이와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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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서적을 읽으면서 고민하게 되는 점은,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것인가, 이다 . 놀이하는 인간이란 개념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도 아니고 유행의 꼭지점에서 내려오고 있는 중인 것 처럼 보인다. 옷이나 액세서리만 유행이 있는게 아니라 학문에도 유행이 있기 때문이다. 호이징가의 <호모 루덴스>를 읽지 않아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일단 로제 카이와가 정의하는 놀이 개념이란 다음과 같다.

아곤(경쟁), 알레아(운), 미미크리(모의), 일링크스(현기증). 각각 대응하는 놀이와 타락했을 때의 효과를 주장한다. 이런 개념 용어를 접할 때마다 내 머리는 단단한 화석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긍정할 수 있는 보편성에서 독특한 개념 용어를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만들지 못하며 유연한 두뇌를 가진 훌륭한 이들의 개념을 읽으며 감탄하는 운명으로 생을 마칠 것이다. -.- 이렇게 운명 운운하는 걸 보면, 나는 어느 정도 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어두운(?) 미래를 맞아 마음이라도 편하게 준비하기 위함이다. 카이와에 따르면! "운명에 몸을 맡기는 자는 그 판결을 미리 알거나 그 은혜를 받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라고 했다.

또 한편으로는 종교가 없는 내게 종교 교리로 삼을 만한 말도 들어있다. 자유롭고, 분리되며, 확정되어 있지 않고, 비생산적이며, 규칙이 있고(일상의 법규를 정지시키고 일시적으로 새로운 법규를 확립), 허구적 활동이 놀이의 특징이다. 어떤 면에서 나는 완벽한 놀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세워 놓은 미래상을 위해 한걸음씩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긴 하다.

작업실에 나가기 시작한 지 이제 한달이 넘었다. 바삭거리는 햇살을 쬐며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는 5분 남짓한 시간에 나는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다. 어떤 날은 바깥 날씨와는 상관없는 어두운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고 걷는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서 심호흡을 하고 진정한 놀이를 하고 있다고 토닥인다. 때로 이 토닥임은 유효하기도 하다. 난 경제적 인간 보다 한 수 위인 호모 루덴스야, 하고 거울을 보며 마음으로 말한다. 그리고 미소 짓는 것처럼 입가를 올려보며 일주일의 첫날을 시작한다. 놀이의 특성상 불확실한 활동으로 결말에 대한 의문이 지나치게 넘쳐서 내 목을 조이지 않는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놀이하는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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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영혼의 거울 다빈치 art 18
프란시스코 데 고야 지음, 이은희 옮김 / 다빈치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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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에서 출판되는 미술서들은 편집이 엉망이다. 가독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지면 배치는 용서할 수 없다. (용서 안한들 뭐 어쩌겠는가!) 도판들이 있다는 걸 감안해도 기본적으로 글이 있는 책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용은..음..지은이가 고야로 되어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고야의 생애와 예술로 마가레타 아부르체세가 쓴 글. 지극히 일반론적 연대기로 어떠한 심층 정보도 얻을 수 없다. 게다가 조악한 편집까지.

2부. 슬픔의 끝을 보여주리라-고야의 후기작이란 제목이 붙은 올더스 헉슬리가 쓴 평론이다. 고야는 예순을 넘겨 4권의 판화집을 냈다. 판화집에 대한 간략한 평론집으로 4부 중 가장 영양가 있다.

3부.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는 제목으로 그의 4권의 판화집(<카프리초스>, <전쟁의 참화>, <투우>, <어리석음>혹은 <속담>) 중 <카프리초스> 판화집 화보이다.

4부. 고야가 친구 마르틴 사파테르에게 보낸 편지문이다. 나는 작가가 직접 쓴 일기나 편지문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 책의 구성상 고야에 대한 어떤 심층 정보 없이 편지글을 읽으니 편지글의 가치를 느낄 수 없는 지경. -.-

고야의 책을 주문한 계기는 카를로스 사우라스의 영화 <보르도의 고야>를 보고 나서 였다. 영화는 아주 매력적으로 고야의 그림들을 재현했고, 고야의 정신세계가 궁금했다. 이 책은 고야의 정신세계를 엿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그림들만은 다시 볼 수 있다. 고야가 있는 프라도에는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으려나.

 p.s. 게다가 1천원 할인 쿠폰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아까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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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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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살 때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열살이 채 안됐을 때일거다. 이 소설에 나올만한 '심토머'에 관한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아기를 가진 한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어느날 약수물을 마신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약수물에는 도마뱀 알이 있었다. 마침내 출산일이 다가왔고, 여인의 배에서는 아기가 아니라 도마뱀들이 자라고 있었고 여인을 도마뱀을 출산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다. 나는 평소에는 상상력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무서운 이야기를 듣거나 보면 부족하던 상상력은 갑자기 샘 솟기 시작해서 머리 속에 영화처럼 영상이 쭈욱 펼쳐져 고문을 당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이런 초현실적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여러 심사위원들도 언급을 했듯이 결점이 있는 소설이지만 장점이 더 커서 결점을 덮을 수 있는 기발한 소설이다.  "곰탕 그릇에 담긴 냉면은 더 이상 냉면이 아니라 잘못 만들어진 곰탕이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과 묘하게 일치하는 지점이다. 소설이란 그릇 안에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서 유사 소설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일 수도 있고, 날마다 기록한 포스트들을 잘 엮은 것 같기도하다. 곰탕 그릇에 초점을 맞출지 또는 내용물인 냉면에 초점을 맞출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나는 냉면의 맛에 반했다고나 할까.

심토머란 인물들을 통해서 유쾌하고, 무엇보다고 그럴듯하게  '구라'를 풀어내고 있는 필력의 내공이란! 서사 속에 촘촘하게 엮인 현대인의 우울, 망상, 고통, 허무 등의 심리를 느낄 수 있는 유머에 빈 방에서 혼자 깔깔 웃곤했다. 작가는 읽은 후, 책 값이 아까운 독자들 질타 당해 마땅하다고 말하지만 이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 선사받은 웃음의 댓가로 책값은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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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
자크 아탈리 지음, 김용채 옮김 / 뷰스(Views)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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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랑 평전이라고 해서 일말의 기대심을 갖고 읽었다. 어떤 실마리나 조그만 단서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프랑스인들의 글쓰기가 그렇듯 이런 내 기대감은 여지없이 배반을 당한다. 저널리즘 글쓰기를 주로 하는 프랑스 저자들이 쓴 책은 읽지 않기로 결심하지만 이 결심이 지켜질지는 잘 모르겠다.

먼저 투덜거려보면, 평전이란 한국식 표현이다. 원제는 <미테랑은 이랬었다C'etait Francois Mitterrand>이다. 그러니까 어떤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한 책이 아니라 자크 아탈리가 60년대 미테랑을 만난 시점부터 미테랑이 죽을 때까지 지켜본 모습을 쓴 에세이이다. 감탄부호를 사용하는 문장을 만날 때마다 낯설어서 대체 내가 뭘 읽고 있는거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미테랑이 실행한 국내 정책이나 외교 정책에 있어서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는 근거를 주기보다는 저자의 관점이 부각되고, 아탈리의 행보를 읽는 듯한 착각도 든다.

 <미테랑의 말년>이란 영화를 통해 보았던 미테랑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연상되기도 한다. 사실, 미테랑에 대한 애정보다는(당연하지 않는가, 한국인인 내가 미테랑에게 무슨 애정이 있겠는가) 미테랑 재임기간에 일어났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며 독서를 했지만 아탈리 특유의 초점을 흐리는 문체 때문에 필요한 부분을 뽑아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탈리의 글은 매우 유려하지만 요점을 파악하는데 좋은 글은 아니다. 강유원 씨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인문학적 글에서 지나친 형용사의 남발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진 소득이란, 재임기간 동안 일어났던 정치적 스캔들.  정리해보면,

88년 11월 페시네 사건: 미테랑의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인 로제 파트리스 펄라가 두 회사의 합병을 누설해서 증권 시장에서 돈을 벌었다.

89년 정당의 자금 조달 스캔들

또 41년과 43년 사이에 문제가 ‰榮?비시 정권에서 대독협력에 대한 미테랑과 나눈 대화는  흥미롭다. 국가 지도자와 보좌관의 입장차이가 분명히 나타난다. 아탈리는 미테랑을 비난할 의사는 없어 보이고 이미 미테랑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입장이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불명예스러운 것은 아무 것도 저지르지 않았다. 스스로의 자화상을 무너뜨리면서 나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었음에도 그는 나로 하여금 아무리 위대한 인물일지라도 한 인간의 삶은 약점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도와주었다."

이 글 속에 담긴 아탈리의 입장은 이 책 전반에 걸친 입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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