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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혁명과 애국의 길에서 ㅣ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61
다니엘 에므리 지음, 성기완 옮김 / 시공사 / 1998년 1월
평점 :
품절
작년에 <베트남 전쟁사>를 읽고 호치민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해서 사두었던 책이다. 이번 주에 출발하는 호치민행 항공권을 사놓고 작정하고 읽었다. 여름에는 서울에 영락없이 눌러앉아 있어야 하므로 미리 떠나는 여행지를 물색하다 호치민이 걸렸다. 왜 호치민인가? 하노이도 있는데. 이 책을 미리 읽어보고 정할걸 그랬는걸, 하나마나한 후회가 살짝. 호치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읽으면서 호치민의 묘가 있는 하노이가 궁금해졌다.
애정과 목적을 갖고 책을 읽을 때와 단지 지식을 넓히기 위해 책을 읽을 때, 책을 보는 관점은 많이 다르다. 베트남, 나아가 인도차이나에 관한 영화 몇 편을 본 적이 있다. <시클로>, <그린 파파야 향기>는 트란 안 홍이 만든 것이고 <연인>과 <인도차이나>는 그들을 지배했던 프랑스가 만든 영화이다. 이 영화들 모두 공통점이 있다. 비오는 날 창문에 서린 뿌연 안개처럼 우수가 지배하는 영화라는 것. 이런 막연한 느낌으로 베트남을 떠올렸고, <지옥의 묵시록>, <디어 헌터> 등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는 습하고 축축하면서도 폭폭풍 전야처럼 뜨거운 공기가 감도는 곳으로 베트남은 내게 다가온다.
막연한 이런 주관적 느낌이 여행지를 선택하는 내 기준이 되곤 한다. 조금씩 베트남 정보를 모으면서 일주일로 베트남을 볼 수 없을만큼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라는 것. 헐레벌떡 도시만 다녀오는 식의 여행보다는 메콩강 삼각주를 선택했다. 이 책이 메콩강에 대한 어떤 실마리를 주기를 바랐지만 호치민의 간략한 평전이란 걸 난 잊었다.
호치민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지극히 평범한 감상 -.- 그의 원래 이름은 응웬 땃 탕이다. 파리로 건너가 공산주의 모임에 참가하고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를 공부하면서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하고, 이름도 응웬 아이 꾸옥(애국이란 뜻)으로 바꾼다. 나중에 월맹을 이끌면서 호치민(큰아버지란 뜻)으로 다시 한번 이름을 바꾼다. 그의 개명 과정에서 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가 신념대로 산 사람이라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가 베트남의 운명에 끼친 영향이라는 뭐 이런 거시적 관점보다는 한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연소할 수 있는 끈기와 용기에 고개를 숙인다.
나는 무엇을 위해 호치민의 자취를 잡으러 떠나려하는걸까.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언제나 그렇듯,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떨림. 항공권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한 바 없고 호텔도 예약안한 상태. 영어가 통할지 어떨지도 모르는 막연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스릴. 바로 이런 것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낯선 곳으로 걸어들어가 시한부로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보는 느낌. 처음에는 다소 거청한 이유로 호치민을 선택했지만 결국 사소한 내 감정적 자극을 위해 떠난다.
p.s. 책의 규모에 비해서 통사고 내용도 허술하진 않다. 그러나 편집이 가독성 절대 고려하지 않은 산만 그 자체. 뒷부분은 완전 스크랩북. 맥락없이 아무거나 마구 배치. 그러나 호치민 묘에 직접 가도 이렇게 자세히 알지 못할 것이다. 별 5개 주고 싶지만 산만함에 별 하나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