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이 책에 대해 화두가 되고 있는 진정성 내지 실재성으로 꼬투리를 잡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김훈의 소설이란 것이 역사성과는 별개로 시학 또는 시인으로서의 역할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호라티우스의 <시학>을 각각 다시 살펴보았다. 먼저 김훈 문장의 광팬으로서 옹호할 말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말을 했다. "역사가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시인이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한다. 따라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김훈의 소설은 역사적 관점이 아니라 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모든 소설이 다 역사소설은 아니다. 또 모든 역사소재소설이 역사적일 필요는 없다. 역사소재소설을 읽는 이들이 다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내가 이 소설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것은 이런 역사적 진성성의 유무도 아니었고 소설이란 완벽한 틀을 갖춘 서사구조도 아니었다. 내가 유일하게 책장을 펼치며 기대했던 건 <칼의 노래>에서 맛보았던 정서적 호소였다. 물론 문장은 단정하면서도 날카롭고 비장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남한산성의 정경을 그림 그리듯이 문장으로 묘사한다. 처참함, 곤궁함, 말의 누린내를 간혹 맡기는 했지만 문장 간에 숨겨진 마음을 읽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서도 객관적일 수 있다는 건 작가가 마음을 담아 쓰지 않고 거리를 두고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의 고독을 그토록 가슴저미게 다가오는 것은 김훈의 고독이 녹아있는 탓이다.

역사서가 아닌 감정에 기대야할 이런 장르의 소설에 감정이 빠져 있다면 다음 소설에 대한 기대치는 현저하게 낮아질 것이다. 나란 독자란, 작가의 마음이 쓰여진대로 읽을 수 있도록 길들여진 독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독자가 아름다운 문체에만 감탄하기에는 공허하다. 문체란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는 것인데 김훈이 정말 중요한 마음을 문체에 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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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3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넙치님, 동감입니다...
읽고나서, 읽으면서 상당히 공허했어요. 바로 그런 이유겠지요..

넙치 2007-07-0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가 서재 열고 첫 댓글입니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