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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의 앵무새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읽고 난 후 대체로 두 가지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한 가지는, 하고 싶은 말이 머리 속에 가득차지만 실제로 마음은 흥분해서 그 말을 제대로 끄집어 낼 수 없다. 또 하나는 문장 속에 숨어있는 작가의 울림에 경건해져서 선뜻 느낀 점을 말할 수가 없다. 두 가지 경우의 공통점은 말문을 막는 다는 것. 이 책은 전자에 해당한다. 읽고 난후 흥분으로 가득차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시 1장을 천천히 읽었다.
이웃 블로그에서 보기 전까지는 플로베르와는 관련없는 소설인줄로만 알았다. 이웃의 포스트를 읽고는 플로베르의 평전인줄 알았다. 읽고 난 지금, 이 책은 소설도 평전도 아닌 삶과 예술의 관계를 고찰하는 유머있고, 발랄할 에세이라고 말하고 싶다. 플로베르의 <순박한 마음>의 마지막 장면으로 시작해서 곳곳에서 플로베르의 작품들을 인용하지만 플로베르의 작품을 모른다고 해도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일 것 같다.
화자 내지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예술과 삶의 태도에 대해, 그리고 비평가들의 멀미나는 발언들에 대해, 독자는 왜 책을 읽는지에 대해,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가치 있는지에 관해. 가령, "책이란 아무리 우리가 그것이 곧 삶이기를 바란다하더라도 삶 그 자체는 아니다....삶의 연관 정도는 작가가 선택한다. 작가는 바다에 걸어 들어가듯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물이 배꼽에 다다르는 데까지만 들어가야 한다....만약 작가가 독자와 좀 더 비슷하다면 그는 작가가 아니고 독자가 되었을 것이다."
또 이렇게도 말한다. "삶은 사람이 한 행동만 말한다. 책은 일어난 일을 설명해주는 곳이고, 삶은 설명이 없는 곳이다. 삶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에 대해 나는 놀라지 않는다. 책은 삶을 의미있게 한다. 유일한 문제는 책이 의미를 부여하는 삶은 당신 자신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이라는 점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두 주먹 불끈(!)쥐고 삶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앵무새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화자는 <순박한 마음>에서 플로베르가 묘사한 앵무새를 찾아나선다. 마지막 장에서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세 마리가 되버린다. 어느 것이 플로베르가 순박한 마음을 창착할 때 썼던 진짜 앵무새인지 알 수 없다. 진짜 앵무새는 보는 사람의 마음과 해석에 달려있다고 암시하는 것같다. 삶에 정답이 있을 수 없듯이 말이다. 실현되지 멋한 것 또한 삶이나니 가장 확실한 쾌락은 성취가 아니라 기대의 쾌락이라고 반스는 플로베르의 기질을 해석한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기대의 쾌락으로 영원히 남겨져야 한다고. 나의 기대의 쾌락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