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 - Show me the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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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주제로 열 편의 단편 모음인데 대체로 유쾌하다. 그 중 인상적인 작품만. 

<시트콤>은 <은하해방전선>을 만든 감독작인데 봐야겠다. 연극적 공간과 인물로 유머를 만들어낸다. 오늘은 먹고 죽자는 말을, 우리는 가끔 사용하지만 실천을 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정말 먹고 죽으려하는 청년들이다. 나이트 클럽에서 술 값 없이 진탕 놀아보고 세상을 하직하려하는데 일이 뭐 뜻대로 안 된다. 계획과 예상을 뒤엎고 벌어지는 에피소드인데 지하세계의 속물들을 비웃는 거 같다.

<신자유청년>-임원희가 등장하는 데 난 이 배우만 보면 웃음이 배실배실 난다. 로또 52주 연속당첨자 이야기다. 다큐기법을 차용해, 플래쉬백과 인터뷰로-진중권 씨도 나온다ㅎ-욕망의 기승전결을 잘 담고 있다. 독서실 총무로 데이트할 비용도 없던 사람이 연속 로또 당첨으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중권 씨는, 로또 열풍을 진단한다. 당첨자에 대한 부러움과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착각이다.  

<페니 러버>-나이들어가는 것을 추하다고 생각하는 연하 남친과 달리 하룻밤 함께 잔 고딩은 멋있으면 되지,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 이 말에 위로를 받았는지 그가 준 십원 짜리 동전은 지갑에서 늘 보여 그를 떠올린다. 십대란 사물과 현상에 대한 개념을 설정 전이고, 또 흘러가기 마련이다. 대학생이 된 그는, 또래의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다. 이제 개념없는 고딩이 아니라 고정관념을 쌓아갈 나이가 되고 여자는 십원 동전을 써버리고 피부에 콜라겐도 점점 빠져나갈 것이다. 슬프다. 조원선이 그녀이다.

<톱>-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를 보여주는 단편이다. 닫힌 공간에서 두 남녀가 일으킬 수 있는, 좀 공포스런 가능성을 무한히 선사한다. 머릿속 생각을 카메라로 담는 기술에 대한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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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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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몰두하려면 이렇게, 하는 교본같다. 작가는 청각에 유난히 예민한 사람같다. 쌔근한 이미지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잃어버린 청각을 사용하라는 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메이비와 여름의 삼각주"어쩌구 하는 <무용지물 박물관>이란 제목의 단편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소재는 일상적이지만 이 소설들은 현실과 닮은 척하기 보다는 소설적 허구를 대놓고 드러낸다.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상세한 묘사는, 현실과 닮았으면서도 묘하게 환상적이다. 인물들은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기계 접촉으로 상상과 사고의 비약을 한다. 라디오는 역시 그 한 매체 중 하나다.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매체지만 일방적인 면에서 기계다. 난 라디오 광이 아니라 라디오와 교감하는 게 가당키나 하나, 하는 사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집은 살짝 변태스럽기도 하다. 음지에 버려진 유기체가 곰팡이 꽃을 피우는 과정을 그리는 것도 같다. 그 과정이 비현실적인데 심장 한 켠을 콕콕 쑤시는 면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변태란 뭔가. 일반화에 성공하지 못해 쭈그러지거나 비대해진 일반화의 변종으로 객관화된 기준에 미달한 루저가 아닌가. 인물들이 변태스러운 건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만의 시각이고 비주류를 말하는 방식이다. 기술의 진화는 인간의 도태를 생산하고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의 덜떨어짐을 의식하는 사람이 비주류가 되는 뭐 그런 연쇄고리..  

 하루키는 작품 속에 대중문화 기호들을 무수히 차용했다. 가령, "클로드 를루슈의 영화에서 자주 내리는 비", "발자크 소설에 나오는 수달"등.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대중문화의 기호를 차용해서 작품의 풍경으로 사용한다고 가라타니 고진이 말했다. 김중혁의 소설에도 많은 대중문화 기호들이 풍경으로 등장한다. 여친의 집으로 걸어가는 시간을 "벨벳 언더그라운드 쿨 잇 다운을 딱 열 번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라는 식으로 묘사한다. 지극히 개인적 비유지만 이런 개인적 비유에서 어떤 공감을 느끼기 때문에 문장을 읽어나가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오랜만에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알게 되었고, 반가워서 다른 소설집도 주문해서 오늘 저녁 집에 들어가면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있다 보자 악기들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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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ilda (Paperback, 미국판) - 뮤지컬 <마틸다> 원서 Roald Dahl 대표작시리즈 4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 Puffin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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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서점에서 만원 넘게 주고 샀는데 알라딘에서 오천원 밖에 안 한다. 아흑. 외국어 실력이라는 게 안 그래도 중학생 정도 밖에 안 돼는데 그나마 사용하지 않으니 급속도로 퇴화되고 있다. 언어를 학습을 하는 데 독서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같은 단어도 문장 안에서의 미묘한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큰 소리로 읽으면 더욱 좋다. 우리도 우리말 배울 때 큰 소리로 읽고 받아쓰기하고 그러지 않는가. 주의할 점은, 사전을 찾지 않고도 책장을 넘길 수 있어야한다. 너무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책은 읽지 않게 된다. 또 재밌어야한다. 로알드 달의 마틸다는 두 가지 조건 을 모두 만족시키는 책이다.  

그의 명성이 괜한 게 아니다. 처음에 소리내어 읽다가 읽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눈으로만 읽어야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사소한 에피소드를 긴장감있게 묘사하는 데 눈 앞에 선명하게 장면이 그려진다. 아, 부러워라. 쉽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이 책은 굉장히 폭력적이이어 사실 깜짝 놀랐다. 교장Trunchbull(경찰봉을 휘두르는 고집쟁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과 마틸다의 부모는 폭력적 세계의 대표적 인물이다.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의지는 전혀 없고 자신의 세계관을 모두에게 강요하는 탐욕적인 실체다.  마틸다의 엄마는 책을 이렇게 말한다. "Filth, if it's by an American it's certain to be filth." 흥미로운 건 미국에 대한 로알드 달의 태도다. 아이들이나 약자에게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이런 식으로 단정지으며 폭력을 행사한다. 아이들이 혹은 약자가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이유를 마틸다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Your story would sound too ridiculous to be believed. And that is the Trunchbull's great secret."  

아이들/약자의 말을 믿지 않는 건 일종의 어른/권력의 공모다. 동화지만 현실을 알레고리화한다. 대화가 양방향이 아닌 일방향이 될 때 소통이 아니라 그건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폭력이 된다.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공포심으로 가득 차 저항할 힘조차 없게 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마틸다를 포함한 어린이들과 선생님 허니Honey는 약자를 대표한다. 교장 트런치불이 아이들을 벌주고 교육시키는 독재적 방법에 무력하기만 하다. 이 무력감을 마틸다의 초능력으로 극복하는 게 동화의 한계이다. 폭력에 맞서 싸우는 방식이 초현실적 힘이라는 게 현실의 무력감을 에둘러말한다. 제도나 법이 그들을 바로 잡을 수 없다고 어린 아이에게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론 아이들이 이 초능력 이야기를 읽으면서 흥분과 상상력을 갖겠지만 초현실적 힘을 그닥 믿지 않는 어른 눈에는, 마법같은 초능력이 무기력함으로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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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삶 - Living in Oblivi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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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구 돌출, 뻐드렁니, 이마에 겹겹이 새겨진 깊은 주름의 소유자, 스티브 부세미.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빼고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휘청한 몸에 구부정한 등까지, 꽃미남이란 말과는 극지점에 서 있는 배우다. 그런데도 볼수록 매력적인 배우다.  

처음 스티브 부세미에게 반한 건 <판타스틱 소녀백서>에서 였다. 고스트 월드라는 만화를 영화화했다. 전형적인 루저의 이미지로 보이지만 영혼은 고결해서 이 세상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단계에 올라있는데 그 영혼의 깊이를 알아본 깜찍한 십대 소녀들의 이야기다. 워낙 다작 출연(무려 90편쯤) 배우라 조연으로 많이 출연했지만 <판타스틱 소녀백서> 이전에는 내 눈에 잘 안 보였던 배우다.  젊을 때 빛나는 건 쉬운 일이다. 젊음 그 자체가 발광성이 아닌가. 나이들어 깊이가 있어 오히려 빛나는 사람이 되는 건 쉽지 않다. 그런 배우다.  

영화를 만드는 작업 공간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스트레스에 관한 영화다. 영화 만들기에 관한 제한적 소재지만 동상이몽에 관한 우화를 바탕으로 보편성을 끌어낸다. 같은 씬을 무려 7번씩 반복촬영을 하는 장면에서는 배우나 스태프만 짜증이 나는 게 아니라 관객도 그들과 함께 구토를 하게 된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모호한 경계로 처리되면서 안도와 초조의 변주가 반복된다.  

마지막 30초간 침묵의 시간은, 동상이몽의 절정이다. 육체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표로 행동하지만 정신은 각자 원하는 곳을 바라보며 떠돈다. 우리는 꿈을 꾸면 이루도록 강요하는 사회가 현실이라면 꿈은 꾸는 것 자체만으로 위안이 되는 게 영화가 아닌가, 싶다. 꿈을 꼭 이루어야 하나, 공상이 30초만이라도 다른 곳으로 이끌면 그만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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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수북
한소공 지음, 김윤진 옮김 / 이레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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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스케치 쯤 되는 수필집이다. 엎드려서 읽다가 앉아서 펜을 찾아 들고 밑줄을 긋게하는 책이다. 진리가 가득담겨 있어서 장점이어서 한계효용을 급격히 떨어뜨리기도 한다. 결국 반만 읽었다는 얘기다. -.-;; 시골에서 바라 본 도시를 이렇게 적고 있다. 

"도시의 생활이 매혹적으로 비쳐지는 까닭은 은자처럼 지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동료의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혹은 이웃의 대문 안에서 어떤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지 도시인은 알 길이 없다. 손님, 승객, 행인, 판매원, 송수관 수리공, 우체부, 보험 모집인 등등 도시는 매일 사람들로 붐비지만 너무 밀집되어 있다 보니 도시인들의 관심 밖이거나 한 번 보고 그만 잊어버리는 대상이다. 이들은 그림자의 움직일 뿐이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배경이나 세트 그리고 가면처럼 이름도 가짜요, 하는 이야기는 대사요, 옷은 분장에 불과하다....우리의 진정한 동료와 이웃은 영화에 나오는 유명 배우나 신문의 지면을 장식하는 인물이거나 인터넷 채팅실에서 만난 익명의 인터넷 친구다....익명성에 대한 사랑!

도시인은 기능인이다. 노동을 제공하는 생산자이면서 물건과 서비스를 다시 사는 소비자란 촘촘한 그물 속에 갇혀있다. 마음이 허할 때, 친구를 찾기 보다는 피엠피나 엠피쓰리 플레이어서 송출되는 영상과 음악 속으로 들어간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승객은, 이어폰을 통해 철저히 그 공간에서 일탈해 자신이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으로 침잠한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트위터, 그리고 트위터와 비슷한 네이버 서비스 미투데이를 보면서-난 사용자는 아니고 사용자의 후기를 읽었다. 시사인 기자인가가 쓴-씁쓸하다. 주로 컴을 이용하는 업무를 가지고 있는 직딩들, 혹은 아무래도 인터넷 접속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주사용자일텐데 한줄의 마력을 주장한다. 난 여기서 소통에 대한 갈증을 엿본다. 진짜 소통의 갈증이 해소되는 지 알 수 없지만 난 회의적이다. 한 줄 생각에 대한 댓글 놀이가 그 매력인가 본데 같은 업무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 단절을 에둘러 말하는 것 같다. 잠깐 짬나는 시간에 유저들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나 좀 봐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진짜 사람과 소통해야 할 시간에 모니터 뒤에 모르는 이와 나누는 댓글 놀이가 더 소통 친화적이라는 착각은, 깊은 소통의 부재를 암시한다, 고 생각지는 않는지... 도시인으로 살아가는 건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다. 트위터도 블로그도 지름신교도 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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