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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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몰두하려면 이렇게, 하는 교본같다. 작가는 청각에 유난히 예민한 사람같다. 쌔근한 이미지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잃어버린 청각을 사용하라는 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메이비와 여름의 삼각주"어쩌구 하는 <무용지물 박물관>이란 제목의 단편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소재는 일상적이지만 이 소설들은 현실과 닮은 척하기 보다는 소설적 허구를 대놓고 드러낸다.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상세한 묘사는, 현실과 닮았으면서도 묘하게 환상적이다. 인물들은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기계 접촉으로 상상과 사고의 비약을 한다. 라디오는 역시 그 한 매체 중 하나다.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매체지만 일방적인 면에서 기계다. 난 라디오 광이 아니라 라디오와 교감하는 게 가당키나 하나, 하는 사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집은 살짝 변태스럽기도 하다. 음지에 버려진 유기체가 곰팡이 꽃을 피우는 과정을 그리는 것도 같다. 그 과정이 비현실적인데 심장 한 켠을 콕콕 쑤시는 면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변태란 뭔가. 일반화에 성공하지 못해 쭈그러지거나 비대해진 일반화의 변종으로 객관화된 기준에 미달한 루저가 아닌가. 인물들이 변태스러운 건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만의 시각이고 비주류를 말하는 방식이다. 기술의 진화는 인간의 도태를 생산하고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의 덜떨어짐을 의식하는 사람이 비주류가 되는 뭐 그런 연쇄고리..  

 하루키는 작품 속에 대중문화 기호들을 무수히 차용했다. 가령, "클로드 를루슈의 영화에서 자주 내리는 비", "발자크 소설에 나오는 수달"등.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대중문화의 기호를 차용해서 작품의 풍경으로 사용한다고 가라타니 고진이 말했다. 김중혁의 소설에도 많은 대중문화 기호들이 풍경으로 등장한다. 여친의 집으로 걸어가는 시간을 "벨벳 언더그라운드 쿨 잇 다운을 딱 열 번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라는 식으로 묘사한다. 지극히 개인적 비유지만 이런 개인적 비유에서 어떤 공감을 느끼기 때문에 문장을 읽어나가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오랜만에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알게 되었고, 반가워서 다른 소설집도 주문해서 오늘 저녁 집에 들어가면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있다 보자 악기들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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