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삶 - Living in Obliv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안구 돌출, 뻐드렁니, 이마에 겹겹이 새겨진 깊은 주름의 소유자, 스티브 부세미.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빼고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휘청한 몸에 구부정한 등까지, 꽃미남이란 말과는 극지점에 서 있는 배우다. 그런데도 볼수록 매력적인 배우다.  

처음 스티브 부세미에게 반한 건 <판타스틱 소녀백서>에서 였다. 고스트 월드라는 만화를 영화화했다. 전형적인 루저의 이미지로 보이지만 영혼은 고결해서 이 세상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단계에 올라있는데 그 영혼의 깊이를 알아본 깜찍한 십대 소녀들의 이야기다. 워낙 다작 출연(무려 90편쯤) 배우라 조연으로 많이 출연했지만 <판타스틱 소녀백서> 이전에는 내 눈에 잘 안 보였던 배우다.  젊을 때 빛나는 건 쉬운 일이다. 젊음 그 자체가 발광성이 아닌가. 나이들어 깊이가 있어 오히려 빛나는 사람이 되는 건 쉽지 않다. 그런 배우다.  

영화를 만드는 작업 공간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스트레스에 관한 영화다. 영화 만들기에 관한 제한적 소재지만 동상이몽에 관한 우화를 바탕으로 보편성을 끌어낸다. 같은 씬을 무려 7번씩 반복촬영을 하는 장면에서는 배우나 스태프만 짜증이 나는 게 아니라 관객도 그들과 함께 구토를 하게 된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모호한 경계로 처리되면서 안도와 초조의 변주가 반복된다.  

마지막 30초간 침묵의 시간은, 동상이몽의 절정이다. 육체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표로 행동하지만 정신은 각자 원하는 곳을 바라보며 떠돈다. 우리는 꿈을 꾸면 이루도록 강요하는 사회가 현실이라면 꿈은 꾸는 것 자체만으로 위안이 되는 게 영화가 아닌가, 싶다. 꿈을 꼭 이루어야 하나, 공상이 30초만이라도 다른 곳으로 이끌면 그만인 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