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 크리스마티 파티... 내 아이 왼쪽에 앉은 알렉사,내 아이의 단짝이다. 집에 오면 항상 알렉사 얘기뿐이었는데 직접 만나니 참 똘똘해 보였다. 둘은 선생님의 지시에 가장 날렵하게 반응하고, 수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작은 아이가 새삼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서 아이와 집밖에서 아이는 어마어마하게 달랐다. 놀랍다. 아이를 향한 내 시각도 어마어마하게 확장되었다. 귀찮은 맘으로 파티에 가기는 했지만 잘 다녀 온 것 같다


 

한 학급당 20여명 내외의 학생,교실안은 5개의 테이블이 놓여져 있고 각 테이블 당 4명에서 5명의 아이들이 앉는다. 3과목 정도는 이동 수업을 받는다. 현재 작은 아이는 킨더에 속한다. 1학년 전 단계 학년이다. 이 학교 전체 학생중 동양 아이는 우리집 큰 아이와 작은 아이,외 약2명 정도. 

그날 저녁 우연히 베트남 레스토랑에서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여자 교장선생님은 오늘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해 즐거웠냐고 작은 아이에게 물었고, 큰아이의 이름도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부모들이 학교에 찾아 가면 학교 내 출입을 위해 출입증을 받아야 하는데, 오피스 직원 또한 나의 이름을 알고 있다. 나 어릴적 교장선생님은 내 존재도 몰랐는데...모든 학생은 물론 학부모까지 파악하고 있다니. 고맙다. 동양인,한국의 샘플이 될터이니 매사 조심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난 어리버리한 동양인에 불과하겠지.란 생각을 하니 부끄럽다. 
 

모든 파티는 학부모의 기부형태로, 각자 음식들과 파티에 필요한 물품들을 자율적으로 가져 온다. 물론 조율하는 룸마더가 있다. 연말에는 10월 말 할로윈 파티,11월 말  땡스기빙 파티, 12월 말 크리스마스 파티가 줄줄이 따라 온다. 연초에는 발렌타인 데이 파티가 있을 것이고 5월에는 선생님을 위한 주간도 있다. 우리나라의 스승의 날처럼. 

여기선 선생님의 생신도 학급차원에서 꼭 파티가 마련된다. 각자 작은 선물들을 하는데, 강제적이지는 않지만,선생님이 원하는 상품권의 스토어 리스트가 주간 폴더에 붙여져 전달된다. 직접적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선물 고민할 필요 없으니 편리하단 생각이 든다. 대부분 20불 내외의 상품권을 준비하는데 지역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각 학생들의 생일 파티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생일 해당 학생은 작은 컵케익이나 음료등 먹거리를 반학생들과 나눈다. 학교에서 이런 형태로 기본적인 파티도 하지만 따로 학교 밖에서 개인적으로 생일 파티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초대장을 학교에서 돌리는 것이 금지된 학교도 있다. 초대를 받지 못할 아이들을 위한 배려란다. 그래서 대개 우편으로 초대장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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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아이들 학사 일정 캘리더나 들여다 봐야 요일, 달의 변화를 깨달을 정도로 최근 전 시간의 흐름에 참 둔감해요. 오늘 산 것처럼 내일도 사는 타성만 남았죠. 최근의 변화라면 추워져서 운동 시간이 오전에서 오후로 바뀐 것뿐, 일상 '이상 무' 게으른 스케줄로 주욱 가고 있습니다.

마치 제 시간들은 필름없는 카메라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나 방만하고 나태하게 시간을 운용하는 만행을 아무 죄책감 없이 저지르며 스스로를 소비하는.... 제 시간들이 부끄럽습니다.그나마 햇빛 받으며,내가 뛰는 것을 잊은 채, 뛰는 일에만 완벽하게 열중하는 그 순간만이 맹렬하게 내 존재를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죠. 결핍된 자존감을 충전하는 나름 희미한 노력입니다. 그리하야 살갗을 에는 바람을 안고 37도(영상 3도)에도 뛰는 무모한 오기를 뿜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이 넌덜머리나고 지겹지만, 어제처럼 작은 아이 크리스마스 파티등으로 학교에 가야 하는 외부 일정이라도 있는 날이면 그 변화는 어이없게도 일상을 부숴뜨리는 스트레스가 되네요. 무의미한 일상일망정 나름 규칙이 존재하는가 봅니다. 누군가 노크하지 않으면 전 바다속 같은 집 안에서 언제까지건 머물 수 있을 거에요. 이해하기 힘들죠?  저를 향한 외부의 오해들이 합당함을 알아요.

@@엄마는 최근 가장 큰 즐거움이 뭐에요? 

@@엄마라는 호칭 쓸 때마다 입안이 까끌까끌해요. 뭐 다른 말이 없을까 고민은 하는데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요. 우리 둘 사이 관계의 범위가 아직은 제한적이고 선명하지 못해서 일까요?

폭스바겐을 볼 때마다 생각나요. 누군가 저 차를 좋아한다고 했어지 하고. 빌레로이에 갈 때마다 생각나요. 누군가 나를 여기서 친구라고 칭했었지 하고. 아무것도 아닌 시간의 마디들이 콕 박혀 오래 남으니 참 신기합니다. 이제 거진 알맹이는 발효되고 추상으로만 남은 기억들 고마움,부러움,동질감,호응,격려,통찰.....비난...

2009년은 절 향해 함부로 꽂혔던 변화도 많았고 가장 오롯하기도 했던 한 해였어요. 내년엔 전 뭘 만들어갈 까요. 외부적인 변수가 많겠죠. 전 저항하게 될까요 수긍할 수 있을까요? 

제 즐거움은요,한 두어 달 전부터 자기 전에 식구 3인이 모두 잠들면 인터넷 보며 드는 와인 한 잔이에요. 와인으로 시간이 뭉텅 뭉텅 날 빠져 나가는 것 같은 순간에 도달하면 잠을 청하죠. 그래서 간혹 두 잔이 될 때도 있어요. 

2009년 잘 마감하시고 2010년 건강하고 즐거우셨으면 좋겠어요. GOOD LUCK!
메일 쓸 상대가 있으니 전 운이 좋아요.

 
                                                                                               2009년 12월 17일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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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하면 반역이 되지만, 대가를 치르는 일로 부터 완벽하게 보호받는 그로선 대단치 않은 일상에 불과한 일. 돌발 순간들 앞에 그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기꺼이 외면할 뿐더러,그 외면에 관해 서운한 감정을 호소한들 '팔은 안으로 굽는다'며 다시 한번 상대의 가슴을 할퀸다.  나는, 그가 아직도 자신의 경계 안으로 들여 놓지 않은 타인에 불과하다는 매몰찬 메시지에 기가 차고 허탈할 뿐. 함께 쓴 시간의 켜를 가름해 보면 이젠 내 입장이란 걸 읽을만도 하건만. 지나가는 낯선 이에게도 갖출수 있는 상식선의 배려조차 없어 보인다. -그녀와의 통화후 그녀의 남편을 생각하며 떠오른 말-

* 나 대신 설거지를 한다. 청소기를 돌린다. 다림질을 한다. 다시 내 손의 보안이 필요한 집안일 대신하기가 그의 미안함 표현의 최선인가 보다. 내 의도를 모르는 것에 더 분이 난다. 내가 원하는 건 내 일을 대신 하라는 것이 아니라,당신의 일을 제대로 처리해 주기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표현을 무시할만큼 단단하지 못한 난 또 다시 일단 덮는다. 하지만 가슴에 불쏘시개는 여전하고,그런 어처구니 없는 장면을 만나면 다시 파르르 살아난다.  

** 단순히 정보 제공의 멘트였는데 시기 적절치 못한 탓에 상대의 맘을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 망발 두번째,상대가 진심을 담아 즐겁게 하는 일을 두고,뭐든 귀찮아 하는 내 위주의 해석으로 상대의 맘을 분명 건들였다.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즐거운 자리를 만들어준 상대에게 더블 스트레이트를 날리다니..참으로 아찔하건만 바로 그 자리에서 수습할 만큼의 순발력이 당연 없는 난 그냥 내 속에서만 보글보글 끓이고 있다. 내가 말에 뼈를 심어 상대를 겨냥하는 인간은 아니라고 변명해야하는 얕은 관계를 지녔기에 최근 무진장 심기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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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수 년 전에 읽었었는데 그때 내게 남은 것이라곤 무척 난해하다는 것 뿐이었다. 오늘 다시 읽은 이 책은 난해의 기억을 한 수 깔고 들어 간 덕분에 진정 새로웠다.  

2,3년의 시간이 내 내공에 현격한 수준 변화를 가져왔을 확률은 0%임을 감안한다면 동일한 책에 대한 평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순전히 책을 맞아 들이는 내 관점의 차이인듯 하다. 처음엔 사랑에 관한 소설이란 초점으로 책을 대했기에 스토리의 그 빈약함에 대단히 실망했었다. 또한 모든 사랑의 마디마디를 인식론적으로 정리하려고 덤벼들면서 제시되는 수많은 문헌 자료들이 그의 주장에 신뢰를 주기 보다는 스토리 진행을 방해하는 돌부리 정도로 여겨져 불편했다.  

다시 만난 이 책은 이미 사랑을 통과한 경험 뒤에서도 내가 얼마나 완벽하게 비어있던 깡통이었는지 지나치게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내가 내 사랑을 하는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들을 그는 그 나름의 시점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내가 미처 의식하지도 못했던 심리들을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그것이 누구라도 어떤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확인하는 것에서 오는 환희를 알고 있었다."(p23) 라며 새로운 사랑을 대면할게 되는 순간의 감성을 설명하는가 하면, "그녀는 당장 처리해야 하는 긴급한 일처럼 계속 내 의식을 뚫고 들어왔다 "(p28) 고 사랑의 시작을 인식한다.  

"너 또 길 잃은 고아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전에는 아무도 내 표정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지만 클로이가 말 하는 순간 갑자기 그 말이 그때까지 내가 느끼던 혼란스러운 슬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되면서,내 우울도 조금은 덜어지는 듯 했다. 나는 그 말 때문에, 내 스스로 정리할 수 없었던 느낌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녀가 기꺼이 내 세계로 들어와 나 대신 그것을 객관화해주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강렬한 사랑을 느꼈다."(p160)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하여 얻은 행복, 이성적으로 노력을 해서 어떤 일들을 성취한 뒤에 찾아오는 행복은 받아 들이기 쉽다. 그러나 클로이와 내가 함께 얻은 행복은 깊은 철학적 숙고 뒤에 나온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성취의 결과도 아니었다. 단지 신의 기적적인 개입에 의해서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귀한 사람을 찾아 냄으로써 생긴 결과였다. 그런 행복은 위험했다. 자족적인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클로이와 나의 관계는 마치 신들이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신의 보복에 대한 원시적인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p203)  

사전지식이라는 것,사고의 관점이라는 것이 눈을 가리기도 하고 확대경을 주기도 한다. 한 권의 책을 읽었지만 두 번 읽게 되면서,난 두 권의 책을 읽은 느낌이다.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 볼 수 있고,길어 올리게 되는 것 같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완벽하게 적용될 깨달음이다. 특히 지금도 성장을 지속하고 있을 아이들의 잠재력면에서는. 내가 발견하지 못하고 당연한 시각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내 아이의 일상을 샅샅이 훑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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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있는 공간.시간이 어색하다는 불편한 느낌. 뭘까. 처음 만나 방금 인사 나눈 이들이 단 둘만 남겨진 후 억세게 비집고 들어오는 말없음의 그 어색함. 스치는 차가운 위기감.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은 언제 증발되었는지 그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럽고 껄끄러워진다. 넷인데도 셋인 가족. 

주중과 주말의 차이가 사라진다. 주말이라 해서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의 질적 공간적 변화가 없다. 반복되다 보니 가끔 그가 출석한 주말임에도 불구 그는 여전히 부재한다.    

골프가 문제일까. 내가 다루기엔 벅찬 시간이 갑자기 들이닥쳐 부리는 생트집인가. 작은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나의 자유시간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다른 이들처럼 영어를 배우러 다닌다거나 하진 않는다. 주로 집에서 시간을 쓴다. 고정적인 외부 스케줄이 있어 물리적으로라도 밖에 나간다면 시간의 마디라도 생길테지만, 그렇지도 못해 하루는 점차 갈림길 없는 골로 빠져들어 시간을 마구 허비하는 만행을 종종 저지르기도 한다.  내 존재를 증명할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자 자책이 슬금슬금 우울감을 덧칠한다.   

골프가 약탈하는 아빠와 남편의 자리에 대한 분노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다른 집 여인들처럼 묵인하지 못하는 내 옹졸함이 부끄럽기도 하고, 아직도 아빠의 자리를 반 만이라도 채워 주길 바라는 요구가 그리 터무니 없는 걸까 의구심도 가져 보지만, 골프로 인해 가정의 경제와 화목이 함몰 당하는 것을 묵인하자니 내 가정이 그 만큼은 건강하지 못하다. 내 자신이 갈피를 못잡고 순전히 감정 컨디션에 따라 진동한다. 아마 나를 바라 보는 그도 조마조마 하리라. 단념하는 것이 아름답겠지. 그러나  한 사람의 단념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아이들이 있다는 점. 우린 가족이라는 점. 바로 그 점이 내 불안의 이성적인 근거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원점 다시 원점.

가끔 작은 아이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학교에 나가 한 두 시간 학급일을 돕는다. 이왕 나온 김에 근처 쇼핑이라도 하고 들어 오면 더욱 마음이 무거워진다. 밖에서 시간을 쓰는 것 또한 내 적성은 아닌듯 하다.

무거운 기운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느라 분주하여 남편의 부재에 대한 불만을 차곡차곡 쌓는다. 하지만 순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화살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다. 타인을 분석하는 것만큼 나 자신을 분석하면 답은 가까운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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