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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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에 이은 그의 이번 작품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지나치게 쉽게 빨리 읽힌 다는 건 장점일까  단점일까.  서사에만 완벽하게 기대어 결말을 쫓아 장편소설을 수 시간안에 읽게 만든다는 것도 작가의 역량이겠다. 하지만 문학으로부터 압축이나 상징을 기대하는 나와같은 독자들에겐 다소 심심한,어쩌면 실망을 안길 수도 있는 글읽기였다. 고래에 비해

이 작품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적인 문장들은 분명 긴장을 떨어뜨린다. '상춘객이 마시고 갔는지 여기저기 소주병이까지' 읽으면 그 다음 말은 '나뒹굴고 있었다'의 식으로 완벽하게 짐작되는 문장들은 매일 만나는 옆집 아줌마들과의 수다마냥 너무 뻔하여 지루하다. 

막장 드라마쯤 될듯한 환경속 등장인물들을 무거운 궁상이나 찐든한 굴레보다 조소나 해학쪽으로 조명했으나 노골적으로 극단적인 상황들은 현실감이 떨어졌다. 또한 뭔가 설명이 빠진듯한 행복한 결말은 좀 급한 마무리는 아니었나 싶다. 전체적으로 고래의 느낌보다 많이 헐거워지고 부족해 보여 너무나 아쉽다.

잠깐씩 스치는 헤밍웨이에대한 개인적인 내력은 새롭게 기억될 듯하다.   

헤밍웨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손이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위태로운 눈빛과 만지면 손이 찔릴 것처럼 억세 보이는 그 유명한 턱수염도 분명 인상적이지만,엽총을 든 채 방금 전 자신이 죽인 레오파드의 털을 쓰다듬고 있는 그의 유명한 손은 항시 그의 얼굴에 앞서 떠오르는 것이다. 물오리와 영양,담비와 사자 등 수많은 짐승들을 사냥했고,나무 책상에 앉아 노트에 뭔가를 끊임없이 적어 넣었으며,쿠바에서 카스트로와 악수를 나우었던 바로 그 손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머리를 향해 엽총의 방아쇠를 당겼던 그 손.....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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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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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멋스런 경험이었다. 낯선 말들이어서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해도 한층 문장이 풍요로워지는 굉장한 우리말들이 넘치고 넘친다. 저녁을 향해 어섯 눈뜨기 시작한다, 버거스렁이를 몰고 온 땅거미의 세계로,끄느름한 거실에,빛이 설핏했다,고자누룩해지기를 바라며,아령칙했고,더덜뭇한 목소리,푸접스럽게 등등 최근 잘 못보았던 반짝이는 말들을 발견하며 작가의 노고도 함께 떠올렸다.  

9개의 단편 중 현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2편 갸량으로 각각의 다른 시대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개화기적 문체,한시 등등 각 시대에 맞는 어휘나 시문들을 엄청나게 끌어와 글을 한층 풍성하게 한 이 책은 작은 시대물 백과사전같다. 춘향전의 이야기를 재미있고 솔깃하게 비틀기도 했는데 읽는 내내 마냥 즐거웠다. 단편들 대부분이 비극적인 결말을 갖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작품의 결말들과 상관없이 재미있고 해학적이었다.

북두칠성 일곱 별빛에 두고 비춰봐도 바래지 않고 지리산에서 흘러내려온 요천 푸른 물에 아흔 아홉날을 담가둔다고 한들 지워질 수 없는 그런 사랑이 찾아 온다.  p159

윗 문장처럼 멋스런 표현들이 빼곡하다. 손빠른 중 비질하듯 덧없이 세월이 흐르고...등등 오랜 만에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김연수님의 글 중 사랑이라니 선영아 를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있다. 그당시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 않았는데,이번 책은 작가의 역량에 대해 재고하는 기회가 되었다. 작가도 말했듯이 방대한 자료수집에 따른 그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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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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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에서 빌린 돈을 B사에서 빌려 막고,또 C사 D사. 결국엔 범죄로까지 연결된다. 원금보다 수십배 늘어난 채무액의 무게에 결국은 겁먹고 야반도주하게 만들고,그래도 빚은 악질적으로 들러붙어 가정을 산산히 찢어 놓고,개인파산에까지 이르게 하는 신용카드의 결말. 단순히,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라 말하는 파산자들에게 신용카드의 이면은 철저히 은폐되어 있었다. 결국 쫓기다못해 죽을지경이 되어 자신보다 더 약한 이를 잡아 먹게 만드는 거대한 괴물. 생존의 위협을 느껴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괴물로 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그들의 몸무림에 도덕성 운운할 수 있는가. 그만큼 우리 사회는 떳떳한가. 덫은 숨겨 놓고 먹이만 화려하게 채색한 신용카드의 이중성. 오늘도 내가 수차례 지갑에서 꺼냈던 신용카드의 그림자다.  

자살하기 전에,사람을 죽이기 전에,도망가기 전에 파산이라는 수단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P340

오히려 부지런하고 마음 약한 사람들은 도망가다거나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요.어떻게 해서든지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겁니다....성실한 사람일수록 발목이 잡혀 꼼짝도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가장 나쁜 형태로 끝을 보지요. 범죄를 저지르는 거죠.... 다중채무자라는 이름으로 결박되어 두 번 다시 떠오를 수 없도록 가라 앉는 겁니다.p136

단순 구조로 수평선처럼 반전이나 재구성없이 일직선상에서 졸졸 흘러가는 싱거운 라인을 유지한다. 허나 후반까지 긴장이 유지되는 흡입력이 있으니 이런 것이 바로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사건의 해결까지 차근 차근 안내하는 친절한 메뉴얼의 느낌을 안고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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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9-11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은 비열하고 살짝 구려주시는것도 인생사에서 결정적순간에는 도움이 되더라구요~
극단적인 선택을 막아주는!

AppleGreen 2010-09-12 08:06   좋아요 0 | URL
이번 기회에 악의적인 파산만 아니라면,재기의 의지만 확실하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제도라는 걸 알았어요.
 

 

만나게 될 모든 이들을 생각하면 설레이고,겁도 난다
아니나 다를까,귀국 첫날부터 갈등과 선택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  

한국 귀국을 준비하는 짧은 과정이, 지난 3년여를 순식간에 밀어 낸다.
잠깐 접었다 편 종이쪽마냥 지난 3년이, 3차원의 다른 시공이었나 싶게 비현실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기에 즐겁다던가.
당분간 여행은 그만하고 싶다. 하지만, 와이키키는 싫증날 때까지 쉬러 다시 오고 싶긴 하다. 하루 네 시간 이상씩 해변에서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만족시키진 못했다.

우리 가족은 마지막 과제였던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를 찍고 드디어 제 자리로 돌아간다.
한 달 넘는 집 밖 생활이 남긴 것. 일상에대한 그리움.
 

 *** *** *** ***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전제품들과 가구를 하나씩 들이고 있다.
일상이었다면 판단과 결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큼직한 일들이 단시간에 휘몰아치듯이 지나간다. 그래서인지 사소한 문제들이 따랐다. 허나 무난하게 잘 해결된다. 좋은 징조로 받아들이고 싶다.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을,귀국해서 고스란히 한국으로부터 되돌려 받고 있다.그로인해 생기는 이질감들이 꽤 껄끄럽고 생소하다. 그러나 곧 내 민족의 거친 태도들은 나 자신임을 상기했다. 그래도 미국서 익힌 미소는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직은 습관처럼 인사와 미소가 나로부터 넘친다.  

 
s엄마하고는 늦은 저녁에 놀이터에서 종종 데이트 한다.
저녁 먹고 선선한 바람 불거나 느즈막히, 문자 따닥 찍어 슬러퍼 살살 끌고 나가 만날 수 있는 지인이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 오래 전부터 꿈꾸던 로망중 하나였다. 번거로운 약속없이 언제든 맘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지척에 살았으면 하는 바람... 워낙 다채로운 스케줄을 갖고 있는 s엄마는 선뜻 응해준다. 난 해해거리며 튀~ 나간다.
최근,내 소중한 모퉁이에 누가 있는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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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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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들 속 짧막한 몇 문장들로 부터 시작된 작가의 상상력. 그 방향은 주로 성을 향하고 있었다.  

처녀보다 곱고 젊은 화랑들이 산천에서 수련하고 동숙하매 그사이에 정분이 깃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천하의 이치라,뉘라서 흉보고 욕하리까....하지만 개중에는 나이가 들아사더 음양의 이치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어린 사내의 미태에만 혹하는 경우가 있으니 안타깝게도 영랑의 예가 그러하다.p93 

현재 우린 화랑하면 용맹으로 기억하건만,화랑의 첫 덕목은 무예가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꼽고,화랑간의 동숙을 각각의 배우자들조차 묵인하는 사회로 그려진다.

하늘이 신의 나라를 특별히 아끼신다는 뜻으로,그리고 그 뜻을 받드는 성스러운 골품의 고귀한 징표로서,신라의 황실에는 거인들이 많았다. p17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았던 것으로 그려지는 춘추. 그가 왕위에 올라 선대 왕들처럼 거인이 되고자 저질렀던 참담함.

외숙 유신공의 조력으로 천신만고 끝에 춘추공은 황제가 되었다. 신의 풍모라 일컬을 만큼 아름답고 용맹한 황제였다. 그러나 그는 수백 년 물려온 황제의 왕관과 용포를 물려받을 수 없었다. 왕관은 어깨에 내려 앉았고 용포은 배냇저고리처럼 몸을 휘감았다. 그의 몸에 맞도록 다시 만들어진 왕관과 용포은 그 자체로 굴욕이었다. p146

왕과 태후가 여러 신하와 백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성대한 교합제를 치루는데,

이날 천제에서 지증제와 연후황후는 그들의 몸을 받친 뱀모양 제단을 와지끈 무너뜨리고도 교합을 멈추지 않았다. 그 먼지 오르는 잔해 속에서도 한 식경이나 합환을 계속했으니 그들의 땀과 애액이 제단 아래로까지 흘러내려 태자 법흥의 비단옷을 적셨고 그 벽력같은 교성에 동해 바다의 용까지 잠에서 깨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합환례가 끝나면 황제와 황후는 서로 노고를 치하하며 특별한 수라상을 받으시었는데 각각 검은 돼지와 흰 돼지를 한 마리씩 드시었다. p20  

허무.맹랑.하기도 하고,그려진 창조의 방향이 그저 재미있다. 내 기억 속엔 나의 아름다운 정원,달의 제단등 친근하고 푸근하게 감기는 문장들로 남아 있던 심윤경 작가,그로부터 받은 이번 글은 그저 쉽게 술술 읽혔던, 다소 엽기적이기도 한 잡지같다. 그의 말대로 서라벌판 썬데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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