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있는 공간.시간이 어색하다는 불편한 느낌. 뭘까. 처음 만나 방금 인사 나눈 이들이 단 둘만 남겨진 후 억세게 비집고 들어오는 말없음의 그 어색함. 스치는 차가운 위기감.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은 언제 증발되었는지 그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럽고 껄끄러워진다. 넷인데도 셋인 가족.
주중과 주말의 차이가 사라진다. 주말이라 해서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의 질적 공간적 변화가 없다. 반복되다 보니 가끔 그가 출석한 주말임에도 불구 그는 여전히 부재한다.
골프가 문제일까. 내가 다루기엔 벅찬 시간이 갑자기 들이닥쳐 부리는 생트집인가. 작은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나의 자유시간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다른 이들처럼 영어를 배우러 다닌다거나 하진 않는다. 주로 집에서 시간을 쓴다. 고정적인 외부 스케줄이 있어 물리적으로라도 밖에 나간다면 시간의 마디라도 생길테지만, 그렇지도 못해 하루는 점차 갈림길 없는 골로 빠져들어 시간을 마구 허비하는 만행을 종종 저지르기도 한다. 내 존재를 증명할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자 자책이 슬금슬금 우울감을 덧칠한다.
골프가 약탈하는 아빠와 남편의 자리에 대한 분노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다른 집 여인들처럼 묵인하지 못하는 내 옹졸함이 부끄럽기도 하고, 아직도 아빠의 자리를 반 만이라도 채워 주길 바라는 요구가 그리 터무니 없는 걸까 의구심도 가져 보지만, 골프로 인해 가정의 경제와 화목이 함몰 당하는 것을 묵인하자니 내 가정이 그 만큼은 건강하지 못하다. 내 자신이 갈피를 못잡고 순전히 감정 컨디션에 따라 진동한다. 아마 나를 바라 보는 그도 조마조마 하리라. 단념하는 것이 아름답겠지. 그러나 한 사람의 단념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아이들이 있다는 점. 우린 가족이라는 점. 바로 그 점이 내 불안의 이성적인 근거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원점 다시 원점.
가끔 작은 아이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학교에 나가 한 두 시간 학급일을 돕는다. 이왕 나온 김에 근처 쇼핑이라도 하고 들어 오면 더욱 마음이 무거워진다. 밖에서 시간을 쓰는 것 또한 내 적성은 아닌듯 하다.
무거운 기운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느라 분주하여 남편의 부재에 대한 불만을 차곡차곡 쌓는다. 하지만 순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화살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다. 타인을 분석하는 것만큼 나 자신을 분석하면 답은 가까운 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