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수 년 전에 읽었었는데 그때 내게 남은 것이라곤 무척 난해하다는 것 뿐이었다. 오늘 다시 읽은 이 책은 난해의 기억을 한 수 깔고 들어 간 덕분에 진정 새로웠다.  

2,3년의 시간이 내 내공에 현격한 수준 변화를 가져왔을 확률은 0%임을 감안한다면 동일한 책에 대한 평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순전히 책을 맞아 들이는 내 관점의 차이인듯 하다. 처음엔 사랑에 관한 소설이란 초점으로 책을 대했기에 스토리의 그 빈약함에 대단히 실망했었다. 또한 모든 사랑의 마디마디를 인식론적으로 정리하려고 덤벼들면서 제시되는 수많은 문헌 자료들이 그의 주장에 신뢰를 주기 보다는 스토리 진행을 방해하는 돌부리 정도로 여겨져 불편했다.  

다시 만난 이 책은 이미 사랑을 통과한 경험 뒤에서도 내가 얼마나 완벽하게 비어있던 깡통이었는지 지나치게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내가 내 사랑을 하는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들을 그는 그 나름의 시점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내가 미처 의식하지도 못했던 심리들을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그것이 누구라도 어떤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확인하는 것에서 오는 환희를 알고 있었다."(p23) 라며 새로운 사랑을 대면할게 되는 순간의 감성을 설명하는가 하면, "그녀는 당장 처리해야 하는 긴급한 일처럼 계속 내 의식을 뚫고 들어왔다 "(p28) 고 사랑의 시작을 인식한다.  

"너 또 길 잃은 고아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전에는 아무도 내 표정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지만 클로이가 말 하는 순간 갑자기 그 말이 그때까지 내가 느끼던 혼란스러운 슬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되면서,내 우울도 조금은 덜어지는 듯 했다. 나는 그 말 때문에, 내 스스로 정리할 수 없었던 느낌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녀가 기꺼이 내 세계로 들어와 나 대신 그것을 객관화해주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강렬한 사랑을 느꼈다."(p160)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하여 얻은 행복, 이성적으로 노력을 해서 어떤 일들을 성취한 뒤에 찾아오는 행복은 받아 들이기 쉽다. 그러나 클로이와 내가 함께 얻은 행복은 깊은 철학적 숙고 뒤에 나온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성취의 결과도 아니었다. 단지 신의 기적적인 개입에 의해서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귀한 사람을 찾아 냄으로써 생긴 결과였다. 그런 행복은 위험했다. 자족적인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클로이와 나의 관계는 마치 신들이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신의 보복에 대한 원시적인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p203)  

사전지식이라는 것,사고의 관점이라는 것이 눈을 가리기도 하고 확대경을 주기도 한다. 한 권의 책을 읽었지만 두 번 읽게 되면서,난 두 권의 책을 읽은 느낌이다.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 볼 수 있고,길어 올리게 되는 것 같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완벽하게 적용될 깨달음이다. 특히 지금도 성장을 지속하고 있을 아이들의 잠재력면에서는. 내가 발견하지 못하고 당연한 시각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내 아이의 일상을 샅샅이 훑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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