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개학을 했다. 6월 초 아이들의 방학과 더불어 시작 되었던 아침 걷기가 이제 달리기로 진화했다. 우하하하... 쉽게 종아리가 부어서 내가 뛸 수 있을 거라고는 절대 생각 못했는데 지금은 8km 정도를 아침마다 뛴다. 절대라는 건 정말 없나 보다.  

어느날 아침 걷는 도중 옆집 아줌마가 뛰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후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오기 비슷한 것으로 뛰기 시작했다. 내적 동기 유발이라는 것이 참으로 의외의 상황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사건이다. 옆집 형이 공부 잘해서 받은 금메달이 너무 너무 갖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서울대 수재의 경우처럼.  큰 아이가 점차 자라고 있기에, 내가 끌고 가는 학습 패턴의 유효기간은 곧 끝날 것이다. 아이가 우연으로라도 스스로 내적 동기를 찾아 공부의 길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걸었으면 한다. 더불어 본인의 의지가 반영된 목표를 갖는다면, 그 길에 듬직한 벗이 되어 주겠지.

멈출 듯 멈출 듯, 보는 이는 왠간히 불안하리라.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한 볼품없는 자세.  걷기와 구별 안되는 속도이지만, 한 시간 정도 햇살과 함께 시간을 밖에서 쓰고 들어온 아침과 침대에서 일어나 버티칼만 간신히 걷고 인터넷을 하고 있는 아침은 흡사 생명과 죽음의 거리만큼 다른 차원의 시간들이다.  이제까지의 내 생활이 그만큼 칩거에 가까웠다는 얘기.  

뛰고 있으면서 뛰고 있는 상황을 잊는다. 머리 속은 오늘은 아이에게 어제보다 다정할 것과  내 시간을 좀 더 계획적으로 아이들에게 분배해야 겠다는 최면으로 가득하다. 손아귀 힘이 좋은 이가 쥐어 짜면 몇방울 땀이 똑 떨어질 만큼 땀으로 옷을 적신다는 것. 내부 동력만으로 땀을 낸다는 것이 주는 쾌감을 체험한 이상, 아침 풍경의 민폐를 무릅쓸 밖에.

방학 동안,아침 6시 30분 출발. 이른 시간이고 어둑신하기까지 한데 수영장엔 어김없이 천천한 자세로 물결을 만드는 이가 있다. 내가 도착할 한 시간동안 여전한 모습으로. 여인이다. 물 밖에 있는 걸 아직은 못 봤다. 금발이다. .... 내가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햇살이 차츰 날카로워질 무렵 수영장 옆 테이블 벤치에서 책을 보며 아침을 들고 있는 사람. 역시 여인이다. 그녀를 볼때마다 향좋은 커피 그리고 햇살과 함께 아침을 저곳에서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실루엣만으로 만나는 그들의 아침들. 스타벅스 앞을 지날 때 달큰하고 부드러운 캬라멜 향, 금방 베어낸 잔디의 풀 향, 마주치는 모든 이들과의 Good morning! 돌오는 방글 방글 Good morning. 반복되고 있으나 반복의 지루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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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슬고슬한 백설기를 반듯하게 잘라놓은 듯한 단면을 가진 잔디. 잔디가 내 준 사이로  양 팔 거리 만큼의 회색 시멘트가 길 줄기를 낸다. 오래 전 먼저 자리 잡은 나무를 둘레 둘레 비켜서, 커다랗게 타원을 그리며 사라지기도 하는 회색 오솔길. 정돈된 자연. 그 단정함이 이렇듯 자연스러울 수도 있구나.

아이들의 방학과 더불어 두 아이를 여름 캠프에 보냈다. 미국살이 이후 홀로 맞게 되는 첫 아침나절. 시간이 경계를 트니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날 비집고 들어왔다. 어느덧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에너지원이 되어준 아침 걷기. 이제 4주차 마무리 중이다. 처음엔 건강을 위해서,다이어트를 위해서 등 뻔한 이유의 출발이었으나,차차 천혜의 환경을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지난 2년여가 안타까운 마음만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로 남았다. 귀국전까지 꾸준히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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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 The Read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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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타협의 여지 없이 자신의 남은 생을 넘겨줄 만큼 그녀가 감추고 싶었던 것. 그건 부끄러움을 넘는 공포 자체였을까. 그런 공포를 극복하고 스스로 가두었던 자신의 세계에서 그녀는 당당히 걸어나왔건만.      

한나의 손 끝에서 빠져나가는 상대의 손 끝은 한나가 지금까지 버틴 20여년의 수감생활을 아무 망설임 없이 마무리짓게 했다. 대상 없이 자생된 모멸감은 그녀를 차라리 쉬이 자유롭게 했는가. 그에게서 받았다고 느낀 냉소는 그녀를 주저앉힐만 했다. 그녀에게 공감한다. 너무나도 흠뻑.

서정적인 속도로 30여년 긴 순간을 낭비없는 그림으로 연결했으며 압축된 감정을 대신한 행동들은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케이트 윈슬렛 최고의 영화라는 평에 동감한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랄프 파인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데 이 영화에선 비중이 적지만 오래간만에 그를 만났다. 최근 알았는데 해리포터의 볼트모트가 랄프 파인즈 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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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날의 시작 박완서 소설전집 4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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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네가 아무리 잘나고 공부 많이 했어도 여자는 여자니라하는 시어머니의 준엄한 선고가 그 여자의 온몸을 칭칭 감고 있다. 그런 시어머니에의해 출생시부터 용의주도하게 길들여져 착실하게 그녀의 관념을 세습받은 시어머니의 아들. 그와 살아야 하는 여자는 남자보다 결코 빛나서는 안되었기에 여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비하시켜야 했으며,분출되는 자신의 재능을 모질게 모른척 해야만 했다. 능력있는 모든 여자는 날치는 것으로 얕잡고, 여자란 그저 남자의 그림자처럼 남자를 보필해야 한다는 유구한 고정관념으로 아내를 짓누르는 남편. 20여 년의 세월 어느새 육화되어버린 부덕(婦德)을 벗고자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던 아내의 시든 꽃잎같은 입술은 열렸다.    

그는 홍박사와의 대결로 어쩔 수 없이 의식하게 된 사회적인 열등감을 아내를 잘못 얻었다는 개인적인 불행으로 변명하려고 했다. 전적으로 자기 책임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긴 싫었다. 열등감조차 책임지기 싫어서 더욱 쩨쩨해지고 있다는 데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열등감에 과민할 뿐더러 허약했다. 차라리 불행감을 견디는 쪽이 수월했다. 불행은 다분히 운명적인 거니까. p152

세상의 목소리는 남들이 다 용서할 수 있는 잘못을 용서 못하는 죄를 뒤집어 씌워 너무나 간단하게도 피해자인 그녀를 명백한 죄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허나 아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어렵사리 털어놓았으나 아버지의 입장을 대변하는 아들을 대하는 순간보다 참담하지는 않았으리라. 아들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그녀는 얼마나 섬찟하고 또 고독했을까. 기세등등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각을 촉구하는 뻔뻔함, 그 아이러니한 늪에 빠져드는 그녀 못지 않게 나도 옴싹달싹 못할 듯 숨막혔으며 분개했다.

아무리 옳지 못한 것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을 때는 그걸 안하는 게 오히려 옳지 못한 짓이라는 착란에 그 여자는 자주 빠지곤 했다 .그리고 옳지 못한 짓을 안 할 자유조차 없는 것처럼 느꼈다....명백한 잘못은 걷잡을 수 없이 큰 힘이 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거기 동조 안하는 쪽을 오히려 부당하게 만들고 있었다. p129 

용납하기 싫은 상황들과 의사 표현만으로 반역이 되는,오로지 참여만을 강요당하는 무리에 속한 채 만난 윗 문장은 그대로 내가 된 듯했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는 내내 난 일상을 밝게 운영하지 못할 만큼 무거웠다. 문청희. 그녀가 어떤 길을 걷게 될런지 알 것 같아 책을 덮은 후에도 무겁다. 20년 전이나 앞으로 20년 후나 아내란 자리,며느리란 자리는 그렇게 고색창연할 것 같은 아픈 생각에 난 며칠을 견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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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틈틈히 묶어 놓은 이사 박스를 옮겨 간다. 우리집이 아니라 그녀의 집.  이달 10일엔 출국할 것이고.  어제 비가 많이 왔고,오늘도 날이 어둑신하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7시 40분 경에 전화를 넣었다. 헌데 내 전화에 비로소 잠이 깼나 보다.  아이들 학교도 안보내고 내내 잤던 것. 저런... 짐 잘 보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정리할 짐이 끈질기게 나와 밤 늦게 잠들었나 보다. 나도 미리 미리 버릴 것은 버려야하는데. 버린 후엔 그런 것이 있었던가 기억조차 못하는 짐들을 왜 난 후딱 버리지 못하고 성가시게 끌고 다니는 걸까. 언젠간 소용 있을지 모른다는 희박한 미련때문일까? 궁상떨지 말라고 엄마가 말풍선 안에서 동동 떠 있다.

미국 생활 2년차 즈음에 깜짝 입장한 그녀. 항상 덤벙대고 어성버성한 날 떨구지 않고 요리조리 잘 매만지던 맘 넉넉한 친구다. 친구? 남편 회사동료의 아내이니 친구란 말이 좀 어색하지만 친구란 말로 묶였으면 하는 내 욕심정도.

한국 귀국 후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게 될 인연이 있었다. 당시엔 그저 비슷한 지역에 분양 받은 우연이겠거니 했다. 허나 지금은 우연이란 말보단 좀 더 절대적 연관성을 들먹일 만한 끈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2년여의 미국 생활이 만들어 준 연결 고리의 연장으로 말이다. 물론 미국과는 다른 소통 환경인 한국을 염두한다면 귀국후 한국에서 가까이 거주한다는 것만으로 지금의 이런 밀착감이 지속되리라는 장담은 못하겠다. 워낙 그녀는 많은 인간 관계의 통로를 갖고 있는 데다가 지금의 우리 관계는 미국이라는 단절된 환경이었기에 가능했던 유대라 생각하니까. 적어도 나는.

** 내 기질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싶다. 우열 아닌 차이로 순순히 인정했음 좋겠다. 최근 나의 정체성을 심문중이다.  질풍노도를 통과 하는 시기도 아니요, 그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문제가 왜 지금에서야 문제로 떠오르는가....묻고 싶다.  방방 떠있기도 하고, 바닥 모르는 심연으로 가라앉기도 하고...전화 과 밖의 나...남들과 섞여 있을 때의 와 혼자일 때의 나... 뭐가 내 진짜인지 정말 모르겠다. 섞여 있을 때가 너~무 좋기도 하고, 죽어~도 섞이고 싶지 않을 때도 많다.  타인에게 자연스레 스며드는 투명한 이들이 부럽지만 그것을 흉내 내고자 내 패턴을 담보 잡히자니 속 털린 싸구려가 될 것 같고 - 나완 맞지 않는 방식을 쫓다가 그나마 갖고 있던 내 색깔마저 빠질까 하는 우려이지 그들이 싸구려라는 의미는 아니다 - 하여튼 사교적인지,고립적인 인간인지  내가 나를 헷갈려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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