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혁명 - 약과 병원에 의존하던 건강 주권을 회복하라
조한경 지음 / 에디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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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당뇨 환자들이 당뇨병을 고친다. 다만 약으로 고친 환자는 없다. 

당뇨의 원인은 인슐린 저항이다. 인슐린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인슐린은 있지만 인슐린이 포도당을 간으로 실어 나르는 임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나타나는 증상이 고혈당이다. 그렇다면 원인과 증상 중 무엇이 치료 목표가 되어야 하겠는가. 질문 자체가 어리석지만 현재 병원에선 당뇨 치료를 혈당을 낮추는 데만 집중해 인슐린만 처방하고 있다. 이는 폐렴의 원인이 감염이고, 증상이 열이므로 필요한 건 항생제인데 해열제로 열만 내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만약 인슐린이 당뇨병 치유의 진짜 해법이라면 약 복용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질병이 호전되어 약을 중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뇨약도 고혈압 약도 절대 중단이라는 것은 없다. 이는 이 약들이 질병의 원인을 제거해 건강을 회복하는 의미의 진짜 치유가 아님을 증명한다. 

약을 착실하게 받아 먹으며 모니터 속의 숫자를 지키는 것으로 건강이 유지된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제 자본의 논리를 간파해야 한다. 싱크대의 물이 넘치면 흘러 넘치는 물을 닦아 내기에 앞서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 현대 의학은 넘치는 물만 죽을 때까지 닦으라는 처방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제약업계는 불황이라는 것이 없다. 만성질환자인 소비자들은 절대 약을 끊을 리 없고, 과당 범벅의 먹거리와 육식위주 식습관이 갈수록 각광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혈압은 피 상태나 혈관이 좋지 않기에 어떻게든 온 몸 구석으로 피를 보내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겠다는 몸부림이다. 

심장 근육을 못뛰게 하는 방식이 고혈압약의 대표적인 작용인데, 이는 심장에 무리를 주고 심장을 죽이는 행위다. 노인들의 경우 노화로 인해 혈관의 탄력이 떨어지므로 혈압이 160은 되어야 정상적인 혈액 순환이 가능한데, 혈압을 억지로 낮춰 놓은 결과 뇌에서 산소와 영양 공급이 부족해 치매만 늘었다.


콜레스테롤은 모든 세포를 감싸고 있는 세포막을 구성하는 등 하는 일이 너무 많고 중요하다 보니 간에서 직접 만든다.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스타틴 계열의 약물은 간이 콜레스테롤을 합성하지 못하도록 막아 손발 저림과 신경통,치매,멍한 느낌, 건망증, 알치하이머, 파킨슨 등의 위험도를 증가 시킨다. 상처가 많을 수록 많은 콜레스테롤이 필요하기에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는 것이고  콜레스테롤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간다.  제약회사의 탁월한 능력으로 슬금슬금 내려가는 정상이라는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비타민 처방 받듯 콜레스테롤 저하제 처방이 기계적으로 내려진다. 개인의 식습관이나 스트레스 상황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치유와 거리가 멀 뿐더러 몸에 무리를 주는 약물을 먼저 찾을 것이 아니라 염증과 스트레스 등 일상을 먼저 점거해 볼 일이다. 


엄청난 착각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심장마비 환자를 부검했는데 심장 감싸고 있는 관상동맥에서 콜레스테롤이 잔뜩 나와 콜레스테롤이 심장 마비원인으로 추론되는 것이다. 이는 화재 현장에 소방차가 보이니까 소방차가 화재 원인이라 지목하는 것과 같다. ( p178 )


일본에서 뇌장애 부작용 사고가 잇따르자 후생성에서 자궁경부암 백신 권장을 취소했고 그 결과 자궁 경부암 백신 접종률이 65%에서 4%로 급감했다. 한국도 그 여파로 접종률이 반 토막 나고 매출도 65%나 급감했다. 한 마디로 아시아 시장이 다 망하게 생긴 것이다. 제약회사들은 일본 내 매출이 떨어지니까 상대적으로 도덕성이 결여된 한국 정부에 리베이트를 약속하고 세금으로 무료 접종을 실시하고자 제안했을 것이다. 백신 제조사인 머크와 GSK야 늘 해오던 일이었으니까. 이 두 제약회사는 몇 년에 한 번씩 뇌물과 사기죄로 수조 원대의 벌금형을 받고 있는 기업이다. 생리대 1 만원도 지원 않는 정부의 수 십 만원 짜리 통 큰 백신이 어색하고 무섭다... 자궁 경부암 백신 가다실. 다른 백신들에 비해 부작용 확률이 현저히 높다. 또 유전자 조작 단백질을 사용한 최초의 GMO백신이라는 점. 지금 시판되고 있는 백신 중 알루미늄 함량이 가장 높은 백신이기도 했다. 알루미늄은 신경 독소다. 가다실 백신 부작용의 대부분은 신경학적 질환이다.( p324 )


치유는 상처에서 촉발된다.

약물이 치유하는 것 같지만, 약물은 단지 통증을 가려 시간을 버는 것이고, 

결국 치유는 우리 몸에서 이루어진다. 몸이 치유에 전념하도록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훼방 놓지만 않는다면 

우리 몸은 늘 균형을 잡기를 시도할 것이며 생각보다 짧은 기간 안에 기적을 보여준다. 

이런 인체의 경이로움을 의학 산업은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응급의학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접한 대중들은 수술과 약물을 맹신하곤 하지만 

응급의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정도다.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들을 통해 신체 주권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주류가 된 세계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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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
플로리안 데이비드 피츠 감독, 마치아스슈와바이어퍼 출연 / 인조인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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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부족 문제로 상담원과 통화 시도를 하는데 예상 대기 시간은 가뿐하게 25분. 
그러나 대기 시간은 찔끔찔끔 자가 증식을 하더니, 하필 화장실 간 사이에 연결된 상담원 전화.
그 대가로, 대기 시간은 사뿐히 104분. 그 허탈감. 전화기 잡고 기계 음성과 4시간 동안 씨름한 폴은, 이런 속수무책 일방통행 앞에 세상 의욕 다 잃고 아래층 토니의 집 벨을 누르고 문 앞에 주저 앉아 하소연 한다. 

" 중간 지대에 갇혀서 나갈 수가 없어. 
  돈을 못내서 인터넷을 못하고, 인터넷을 못해서 돈을 못내고 있어 "


대부분 이런 불통의 무력감, 연결 자체의 안도를 경험해봤을 것이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내장을 지닌 제품을 다룰 때의 저항감, 전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시스템이 갖는불완전성에 대한 불안, 온라인 네트워킹만으로 지탱되는 사회에 잠재된 불신은 무엇에 의해 소거 되는 걸까. 그 절대무한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진걸까.

폴처럼 중간지대에 갇히기도, 불시에 전력스위치가 내려질 수도 있는데, 무엇이 이 세계의 완전무결을 장담하고 불안을 말소시키는가, 21세기 인류의 DNA에 박힌 초인류적 적응력인가.

폴과 토니가 어릴 적 듣고 자란  <고슴도치와 토끼>라는 동화가 있는데,
찾아 보니 올바른 경쟁의 기준과 결과의 정당성이란 주제로 서울대 논술시험에도 나왔던 동화였다.
고슴도치와 토끼가 우연히 경주를 하게 되는데, 부부인 고슴도치 두 마리는 꾀를 내어 결승점과 출발점에 
각각 숨어 있다 나타나기로 약속해서 결국, 토끼를 이긴다는 내용이다.
어린시절부터 함께 성장한 두 사람.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폴과, 이성적인 미남 똘똘이 토니.
폴은 자신이 고슴도치라고, 토니는 자신이 토끼라고 여기고,
폴은 강하고 뛰어난 능력 가진 토니를 의식하고, 토니는 무조건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는 폴을 부러워한다.
둘은 각자 가진 것의 가치는 접어두고, 오로지 비교를 통한 결핍에만 집착해 불필요한 상실감에 빠지곤 하는데, 사실 우리들 대부분이 이런 불행감을 자초하며 산다. 나의 아담하고 예쁜 집이, 옆 공터에 큰 저택이 지어지는 순간 헛간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경쟁과 자본 중심 사회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겐 태생적 결함이라 할 만큼 상대적인 박탈감으로부터 자유롭기는 불가능할 뿐더러 남들 기웃거리느라 자신을 들려다 볼 시간도 없다. 
사실, 우린 나름의 기준으로 모두 승자일 수 있지만, 우리의 기준은  한 가지 뿐이다. 




영화의 첫 자막


'증조부 세대는 57개, 조부모 세대는 100개, 부모님 세대는 650 개, 우리 세대는 평균적으로 1만개의 물건으로 생활한다. 풍족하고 자유로운 우리들에겐 이제 뭐가 남았냐'로시작하며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소유 당하는 우리에대한 이야기를 풀어 간다.
음성AI 나나의 권유로 9개월 간 자신이 151개나 되는 물건을 주문한 것을 퍼뜩 알게 된 폴.
스스로도 놀랍다. 심지어 중복되는 물건은 24개. 
그후, 왜,왜, 폴은 자신이 그렇게나 많은 물건을 사들였는지 알고 싶어 한다.

우연히, 이미 소비 중독에 빠진 루시와, 물건을 사면 행복해지지만, 우리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고, 행복하지 않아서 또 물건을 사는 소비의 굴레에 대해 폴은 이야기 나누는데, 그 틈새로 토니가 판결을 내린다. 결국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지만 그게 소비자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니들은 그것도 몰랐냐고 우쭐한 듯.'하나를 원하고 또 다른 걸 찾아. 행복같은 건 없어. 본능과 규율이 있고 그걸 아는 자가 승리해 ' 라는 토니의 말은 자본이 무한으로 설정해둔 인위적인 결핍상황을 간파한 듯 보였다. 폴은 고민하고, 토니는 그 통찰을 이용한다.


 오래 전 사진을 발견한 폴이 사진 속 할머니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다.할머니는  "우린 젊었고 살아 남았으니까. 그거면 됐었어."
폴은  "우리에겐 총을 겨누지도 않고 감금하지도 않아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할머니 세대는 전쟁까지 겪었는데 왜 우리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을까요"  말한다.

왜 행복하지 않은걸까... 옛날엔 모든 게 쉬웠는데, 가진 게 없어도 행복했는데.
언제부터 우리가 행복을 미래형으로 설정하고 현재를 연소시키며 ,'행복해서' 보다 '행복하기 위해서' 현재를 합의하게 됐는지 생각해 봤다. 이 무의식의 근원에 대해.



효율과 편리의 논리로 쉴 틈 없이 구식으로 만들어, 내다 버리도록 부추기는 쓰레기 문명, 소비지향적 획일성 문화에 대한 경각심과 행복에 대한 철학,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스며든 자본의 중독을 건들인다.  기후 위기의 적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소비주의라는 관점에서, 매일 매일 우리가 클릭하는 물건에 대한 책임 있는 선택만이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끌어다 쓰고 개발하는 성장 방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이란 걸 안내하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외국문화의  이질성이 직설적인 대사를 통해 위트 있게 전달되어 내내 명랑했고, 모든 컷이 선명하고 아름다웠다.수묵화로 허공에 달을 그릴 때, 여백에 어둠을 더해 달을 밝혀내는 그 기법이 떠오르기도 했다.
밤과 어둠과 빛을 이용해 사물의 윤곽을 강렬하게 돋우기도 경계를 지우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장면들에서 르네상스의 명화 분위기가 느껴졌다. 놀이터 같은 그들 사무실의 자유로운 인테리어, 원색의 정면 대결, 직선적인 구도, 검정으로 아웃라인 된 유화같은 무게, 소품 하나, 에피소드 하나, 낭비 없이 활용된 성실매력의 영화였다. 당연히 재미가 너무 있었다. 

독일 박스 오피스 7주 연속 TOP 10을 기록한 장르가, 무려 코미디인 영화다.

독일 억양의 특이성 때문인지 자막 따라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덕분에 영화 끝나자마자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거듭할 수록 매번 다른 발견을 하게 되었다. 외국어 영화에 대해 연기력을 평가할 내공이 없는 내게 토니는그의 표정과 행동만으로 그 상황을 이미 80퍼센트 넘게 전달해 몰입도를 높이고, 영화의 서사를 거의 이끌고, 입체감과 에너지를 부여하는 캐릭터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배우의 익살과 미소, 순발력, 고민을 담은 눈빛과 표정이 깊게 남았다. 오래된 미래로의 회귀를 택한 폴의 새로운 인생 설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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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10만 부 판매 기념 특별 한정판, 양장)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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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아이들은 혼자임을 두려워한다. 

혼자인 건 불편하지 않지만 혼자인 나를 누군가가 바라보는 건 공포다. 

홀로인 아이를 응시하는 법을 단련받기라도 하는지 초등 고학년부터 노골성을 띄기 시작하여 

중등에 이르러 절정으로 치닫는 교실 안의 가학적 배타성을 딸 아이를 키우면서 속수무책으로 목격했다. 
수감자가 출소일을 기다리듯 학년이 바뀌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그 막막함이 책을 읽으면서 되살아났다. 
소속에대한 강박은 대개의 경우 학년이 바뀌어 아이들이 재조합되면 해소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이들의 성숙이 교실 안의 배타적인 무리나 노골적인 언행을 쉬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 순화되었던 것 같다. 그저 딛고 넘어야할 과정으로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견딜 수 밖에 없었기에 지금도 그 견딤을  견디고 있을 교실 안의 아이들이 떠올라 새로이 아프다.
작가가 그려낸 교실 속 아이 역시, 음악 취향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그 무리가 끔찍하지만 
떨어져 나와 혼자가 될 경우 감당해야 할 압박보다는 어떻게든 속해 있는 편이 견딜만하다는 교실 생리를 학교생활 내내 착실하게 학습했기에 등을 보이지 못한다. 읽는 내내 딸아이가 힘들어 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주인공과 함께 절망감을 맛보았고 그 대책없음에 답답했다. 
그 또래 아이들에게  친구란 갑갑해도 반이 바뀌기 전까지는 입고 있어야하는 갑옷 정도로 보인다. 
또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란 혼자가 되는 것으로부터 날 보호해 주리라는 맹신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굴레 같다. 혼자만 아니면 되니까, 혼자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서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서늘한 직감에도, 부탁들에 복종해가며, 선물을 줘가며 그 무리 속에 발을 대고 있어야 하는 관계들...
주인공은 영화관람 약속에 나가지 않음으로써, 어차피 자신의 좌석은 없었을 것이라고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 후 그 굴레를 벗는다. 그러나 혼자가 되는 것은 텅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나로 채울 수 있는 기회였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취향과 내면을 드러내고 자신에게 집중하자 그런 자신을 좋아하는 이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토록 맞추고자 자신을 감추고 노력해도 겉돌기만했던 과거 그 무리에선 얻을 수 없었던 공감과 유대를 이제 진짜, 친구들과 형성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장을 위해 껍질을 벗고 새로운 껍질을 만들고 또 벗는 체리새우처럼 
나도 나 자신의 한계를 하나씩 극복해 가며 성장하고 싶다. 
나이탓을 해가며 성급히 한계를 규정해 내 가능성을 할인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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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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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 현대의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자유, 즐거움, 해방 대신 노동과 수고, 고통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떠남과 되돌아옴에 대한 내 심정이 고대 프랑스 여행자들의 그것과 맞닿아 있었다니 이제껏 소외 당하던 내 취향이 지지받는 듯했다. 시간을 좀 뛰어 넘었다한들 어떠랴. 

 

 나는 반복되는 일상, 그 예측 가능함이 주는 안정감이 좋다. 새로운 것이 때론 좋기도 하지만 거지반 짧게 반짝이며 타자로 스칠 뿐, 단순 체험을 뛰넘은 감흥이 드물었기에  난 그저 익숙함이 주는 그 편안함에 머물고 싶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의 자기방어 기제인 듯도 한데 사실 좀 더 그럴듯한 이유는 게으름같다.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그저 그런 풍경들에 오히려 심쿵하고 그 안도감이 내겐 여행의 가장 짜릿하고 궁극적인 기쁨이라고 할 만큼 내 여행의 목적은 일상으로 되돌아 오기 위한 출발같다.

 

 작가는 신화나 영화 속에 등장한 여행들을 소개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깨달음을 주는 여행들이었다. 죽지 않는 비결을 찾아 떠나지만,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거나, 원래 찾으려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얻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잘 짜여지고 편안하고 쾌적한 여행을 선호하는 우리의 여행에선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정작 여행은 목적지 자체보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동안의 경험이 목적지를 부각시킬 수 있음에도, 대개 목적지에만 강렬한 초점을 맞추는 우리 여행의 관행은 천편일률적인 확인만으로 끝난다. 여행이라기보다 관광이라는 이름이 마땅해 보일만큼 수동성만 남은 우리의 여행이 초라해지는 지점이다.

 

 작가에게 여행은 낯선 곳에서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으로 인해 자신의 현재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게도 생각지도 못했던 지금의 습관과 원칙을 만들어준 여행이 있었다. 10여 년 전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3년 반 동안 머무르게 되었는데, 수 년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떠날 곳이라는 제약은 그곳에서의 시간과 공간에 안심하고 뿌리내리기 힘든 불안 요소였다. 늘 되돌아감을 염두하고 고만고만한 짐을 꾸리며 생활했는데, 그곳 생활 1년여 되던 해,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등교하게 되면서 내게 뜻밖의 자유가 불쑥 등장했다. 난 그 생소한 시간을 산책으로 그냥저냥 썼다. 산책 중 몸집 큰 외국 아주머니들이 달리기를 하는 걸 보면서 '나도 해볼까 ~?' 하고 종종종 달려봤는데, 걷는건지 뛰는건지 당사자만 판단할 수 있는 그것이 올해 11년 차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달리기 습관은 현재 내 정체성에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축이 되었으니 굉장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그곳에선 한국에 있었다면 모르고 살았을 유명 브랜드 제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당시 난 필요가 아니라 한국에선 절대 이 가격에 살 수 없다는 논리로 물건을 사 모았다. 정작 한국에 있었다면 살 생각조차 안했을 물건이었는데 말이다. 허허~ . 그런데 문제는 달러 가격텍이 빛 바랜 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옷장에서 종종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 물건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민망하다. 하지만 깔끔한 깨달음도 준다. 종종 등장하는 부끄런 증거물들은 쇼핑시 싸다고 한 개 더 챙길까 고민하는 순간 영락없이 내 눈앞에 두둥 떠올라 그 갈등을 말끔하게 정리해 주니 이보다 편리할 수 없다. 이처럼 셋방살이 같았던 낯선 곳에서의 몇 년은 지금 내 삶의 미묘한 균열을 내기도, 중심을 세우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이다. 습관적으로 보고 제약없이 머물기에 무뎌딘 시선에 다시 날을 세우고자 우린 우리가 속한 공간과 잠시 거리를 두고 싶은지도 모른다. 세상을 사물을 난생 처음 바라보았던 그 경이로운 기억을 소환하고자.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주로 여행지 사진, 음식 사진, 숙소 사진 등 행복을 극적으로 시각화한 인증사진을 노출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인증하고자 하는 건 행복보다 행복해 보이는 것. 그것 같다. 남다른 발견과 깨달음의 서사 대신 찬라의 연출만 담은 그 인증 사진을 따라 떠나고 떠나고 또 다시 환상을 재생산한다. 내가 내 인증사진에 입힌 극적인 효과만큼, 타인의 인증사진을 받아 들일 때도 할인된 시각이 필요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현대의 여행은 명품 열풍처럼 그저 과시용으로 마구 소비되는 건 아닐까. 떠나고 싶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있으니까 떠나는 여행으로. 인류가 과학의 발전을 등에 업고 지구와 생명에 휘두른 가치관이 그대로 개인의 여행관에 투영되고 있는 것 같다. 목적과 탐색없이 남의 여행 리뷰만을 쫓아 나선 여행은, 유리창으로 가로막혀 현장에서도 그곳과의 접속을 방해한다. 남을 시켜 좋은 구경을 하고 오게 하고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유럽 귀족이나 조선의 양반들처럼 우리도 겉도는 인증만 남발하고 있는 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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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 질문하고 토론하고 연대하는 ‘프랑스 아이’의 성장비결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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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중요한 가치가 평등이라고 생각하고, 어릴 적부터 부당함에 저항하기 위한 연대를 일상적으로 목격하고 실행하며 변화를 이끌어 내는 아이들. 그리고 모든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복종을 훈련받으며 정해진 것만 배우고 사소한 영역까지 서열화해 경쟁을 일상화시켜 연대를 통한 저항의 힘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 

 세기적인 차이가 있을 법하지만 모두 21세기의 아이들이다. 그 간극에 현기증이 난다.

 

 저자가 프랑스 유학시절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어린 아이에게 몇 살이냐고 말을 걸었는데 

  " 응, 난 네 살이야, 너는 몇 살이니? "  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 응.... 난 스물아홉 살 "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를 이미 완전한 인격체로 인정하기에 어른과 대등한 존재로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한 프랑스의 4살. 그 되물음. 참으로 생경하다. 이들처럼 평등이 체화되어 있는 문화권의 이들의 시점에서 본다면, 

우리 말 속에 스며들어 있는 반평등성이 거북할 지도 모를 일이다. 단순히, 우리는 존댓말을 사용하는 우수한 민족이야라고 우쭐할 수만은 없겠다 싶다. 그 언어형식으로인한 의식의 단절과 소통의 장벽을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프랑스는 육아가 철저히 공적인 일로 처리되어 아이를 낳기만 하면 사회 시스템이 키워 낸다. 

사회가 빈틈없이 커버하므로 아이를 낳고도 부모 모두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이는 육아가 부모에게 짐이 아닌 창조적인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프랑스 초등학교는 학교에 늦지 않고 오는지, 책상에 앉아 수업 참여 준비를 잘 하는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는지, 학교에서 전하는 내용을 부모님께 잘 전하는지 등등의 수업태도가 주요 평가항목이고, 중고등에서도 서열적 평가는 없으며 아이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탐색 할 수 있도록 폭넓은 분야와의 접촉을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제공한다. 대학 등록금이 연간 30만원도 안되고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지만 그들의 낮은 대학 진학률은 대학이 대학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아이를 위해 부모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 그래서 아이와 어른이 대등한 각각의 구성원으로서 존중하며 수평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가 칼리가 다니는 프랑스 학교이야기였다.

 

 ' 부부간의 끈끈한 애정이 가정을 지탱하는 중심이며 다소 자녀들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두 사람의 애정을 지키는데 우선순위를 두라 ' 는 작은 도시 시장의 주례사. 여기서 드러나는 프랑스인들의 인생관이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다. 치열한 자기 부정을 치르고 있는 나 개인의 상황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아이와 나는, 단 한 번의 사교육 없이 수 년 간 혼연일체가 되어 성취감을 공유하며 마침내 희망하는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환희는 잠시, 대학에 입학한 아이는 무책임한 선택과 도를 넘는 일탈로 내게 인간적인 실망을 안겼다. 중고등 시절, 시공간의 제약 속에선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아이의 면모는, 기대에대한 배반이 아닌 객관적 입장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자율의 힘도 단단한 틀도 없이 자유의 파도에 휩쓸린 아이가 쏟아내는 뒷설거지로, 난 일 년 동안 혼란스러웠으며, 이는 내 인생관의 재구축을 절실하게 요했다. 최근 상황이 차츰 정돈 되어가는 지점에서 만난 이 책은 그 원인이 아이에게 치우쳤던 내 삶의 태도였다고 쐐기를 박고 있었던 것이다. 내 삶의 중심이 내 안에 없었다고. 


 가장 인기있는 생일 선물, 책. 생일 선물용 책 코너가 따로 있다는 프랑스 서점. 어떤 곳일까

 평등이 DNA에 새겨져 있을 것 같은 이들과, 이들이 거느렸던 식민지들은 또한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일까

 이 질문없이 현재의 프랑스를 떠올리는 게 아직은 힘들다.

 

*** 서민 교수님을  통해 이 책과 닿았는데, 2년 여만에 책리뷰 열망을 이끌어냈다. 무척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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