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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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은 무모한 것이라는 끔찍한 깨달음을 얻은 나약한 어린시절. 더 끔찍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에 불러 들였던 살들. 거구의 몸뚱에서 강제 추방당한 살덩이들은 완전 연소되지 않고 자신의 숙주에게 회귀하고자 집요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살과 함께 괴멸할 것 같은 L.  

모든 외적 조건을 완벽하게 설계하는 E. 그녀가 의도된 쥔 주먹 속에 숨기고자한 결백한 원죄. 아름다움으로 방어하지만 견고한 껍데기 속에서 진짜 자아의 소멸을 자각하기에 흔들리고 불안정한 그녀 E. 

H...열띤 신체적 몰입을 필요로 하는 그 예민한 작업을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내가 빚어내는 삼차원의 견고하고 육체적인 형태들을 통해서만 간신히 이 세상과 연결되어 나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어쩌면 나에게 조각이란 해독할 수 없는 생의 비밀들을 두 손으로 빚어 냄으로써 마치 그것들을 체득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일종의 최면요법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p88 

H의 통찰과 몰입은 L과 E의 어느 지점이었을까... 

세 주인공들의 아픔과 상처가 그간 산만했던 나의 머릿속을 싹 비워 주었다. 이번 글을 통해 예민하고 긴장된 일상에서 한발짝 놓여날 수 있었으며, 긴장을 완화하고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발견한 것 같아 무척 반가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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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보드를 타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은 아이의 하교길 마중을 나간다. 손끝과 얼굴에 닿는 포근한 공기가 내게 강한 에너지를 일순간 주입 시킨다. 날카로움이 사라진 3월의 공기는 나를 강하게 뒤흔든다. 봄의 충동 에너지.뛰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손으로 끌어 내리고 싶었다. 오늘의 주가는. 어제 잡으려다가 살짝 놓친 주식이 오늘 날개를 달았다. 소유하지도 않았으면서 느껴지는 상실감. 그 욕심의 후유증으로 어수선하고 예민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뛰어 나갔다. 느즈막한 시간이었고 바람도 내 가슴팍을 밀어댔지만 가쁜 호흡은 내 몸뚱아리보다 내 머리속을 말끔하게 비워주었다. 운동은 신체보다 정신을 치료해주는 것 같다. 

***  

지구별 여행자     

시련.고비.걸림돌.문제가 없는 시간들은 정말이지 수상한 인생이다. 균형이 깨지는 순간 그 무언가가 다가온다. 받아들이자. 애달퍼하는 시간은 속성으로 끝내고 그 상실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퍼뜩 깨닫자. 상실보다는,그것을 통해 배운 것에 촛점을 맞추고 다음의 기회에 그것을 영리하게 이용해 볼 일이다. 

행복의 조건은 내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매순간 기억하는 것이란다. 별탈 없는 일상을 그저 심심하다 여겼는데 불행없는 지금이,사건 사고 없는 심심한 오늘이, 바로 행복이라는. 신이 창조한 날은 단지 오늘 뿐이다. 어제와 내일을 만드는 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도 기억이 남는다. 별다른 노력없이도 책을 읽는 행위자체로만으로 마음이 다소곳해지고 정돈되는 글들이 가득 담겨 있는 좋은 책이었다. 덕분에 심그렁했던 나의 일상이,박완서 선생님의 글 이후 다시 윤기를 찾아 반짝이게 된 것 같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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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즈음 날이 풀렸었다. 영상으로 올라간 기온은 휘트니스의 혹사로부터 날 놓여나게 해 주었다. 영상이라고는 하지만 5k지점은 통과해야 장갑을 벗을 수 있는 기온이었다. 입 안으로 가쁘게 들이닥치는 공기는 만만치 않게 날카로웠다. 불구하고 연4일 간을 뛰었는데 날이 지날 수록 목이 깔깔해지기 시작하더니 일 주일만에 난 바튼 기침을 수시로 뱉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일 주일간 푹 쉬어야 했다.  

운동을 끊임없이 할 때는 낮에 꼭 휴식이 필요했었는데,운동을 하면 다 그런 것이려니 했다. 이번에 운동을 안했던 초반 이틀은 굉장한 잠이 쏟아졌다. 낮이고 밤이고 참 잘 잤다. 침대에 누우면 내 몸이 바닥으로 얇게 펴져 지면으로 흡수되는 듯 압착의 힘을 느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자 휴식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덕분에 그 동안 나의 운동 패턴이 내 몸을 넘어서는 강도였음을 의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운동 재개 첫 날. 오래 쉬어서 더 힘들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정말 놀랍게도 몸은 너무나 가벼웠고 뛰는 발걸음마다 강한 탄력이 느껴졌다. 보폭은 적어도 10cm이상 넓어지고 지면에서 2cm는 높은 곳에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발 뒤꿈치에서 통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시간도 3분이상 단축되었다. 쉬면서 나의 운동 주기가 몸에 무리를 주고 있었음을 확실히 깨달았고 휴식의 필요 또한 깨닫는 순간이었다.  

***주말엔 남편과 함께 뛴다. 처음엔 목표 코스 2/3지점에서 그는 하차했었는데,어젠 마지막까지 함께 뛰었다. 의외로 잘 뛰어준 남편에게 무리한 것 아닌가 물었더니,남편은 뛸 수는 있지만 뛰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기 때문에 그날의 일정은 거기서 즉각 끝난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힘들어도 최선을 다한 그를 위해 걸어가기로 한 점심 일정을 약간 변경하여 차로 이동했다. 함께 차 오르는 거친숨을 몰아 쉬어준 그와 함께 맛있는 곳에가서 즐거운 점심 데이트를 즐겼다. 아이들은 DVD에게 떠 넘기고.

                                                                                                                   20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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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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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이삼십 키로그램의 배낭을 메고 지리산을 올랐던 경험이 에팔레치아를 트래킹하는 작가의 고군분투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벽돌이 되어가는 단단한 배낭을 지고 끝도 없이 올라 갔던, 45도는 거뜬해 보이던 돌계단에서의 후들후들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까지 난 그날의 배낭보다 무거운 뭔가를 만나지 못했다.   

미국 애팔래치아 3360킬로미터에 달하는 트래킹. 그 안에서 시간의 의미는 멈추었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난다. 그 중간은 그냥 중간일 뿐이다.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걸으려는 의지뿐이다....서두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또 아주아주 멀리 걸었어도 당신은 항상 같은 시간과 장소에 놓은 존재일 뿐이다. 숲이다! 어제도 거기에 있었고,내일도 거기에 있다. 그야말로 광대무변한 하나의 단일성!  p118

국립공원 관리국의 실정에 대한 비판도 반복해서 지적하고 개탄하고 있다. 자연을 복원하기 보다는 주차장이나 캠핑카의 야영지를 만드는 등 자연에 문명을 덧칠하는 데 예산을 쓰고 있는 정책과 그동안 자연에 불필요하게 개입해 자연을 망쳐놓더니 이제 개입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더이상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는 그들의 태도에 작가는 그들을 경이로운 존재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하고 세밀한 지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데,

뉴욕 뉴저지 트레일 곤퍼런스가 제작한 이 지도는 숲은 녹색,물은 파란색,트레일은 붉은색,표기는 검은색의 4도 인쇄가 되어 있었고,분류도 이해하기 쉬웠을 뿐 아니라 척도에 따라 제작되었으며,연결되는 길과 보조 트레일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다. 지도만 보면 항상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걸 즐겨 보라는 뜻으로 제작한 것 같았다......그동안 주위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무신경했던 원인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는 데서 기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이제 드디어 내 위치를 알고 내 미래를 알 수 있으며 변화무쌍하지만,그래도 항상 파악이 가능한 지형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p300   

이 문장을 읽으면서, 이탈했걸랑 비교적 즉각 귀환할 수 있는 지도 한 장 나도 있었으면 좋겠네하고 히죽 웃었다. 내가 걷는 길과 나의 위치를 바로 파악하고 싶은 욕심이다. 가끔 지도의 마지막까지 걸었던 미래의 나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상상을 해 본다. 그녀는 내게 충고할 것 같다. 걸어 온 길보다 남아 있는 길이 짧음을 매순간 상기하고 오늘을 씩씩하게 살아야 하는 게 살아 있는 이들의 사명이라고. 

2011년 2월 중반이다.  

가화만사형통이 금년의 나의 글귀인데, 잔소리 접기 실천만으로 내 남자의 부가가치가 극대화되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핸드폰 머리에 쓰인 전화위복은 작은 변화에  요동치지 않도록 날 늘 보호해 준다. 허나 아이들에게만은 좀 더 긍정적인 반사대상이 되도록 오백 만 메가바이트 정도의 인내심은 기본으로 깔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매일 아이를 통해 되새김 받는다. 오늘 아침엔 봄방학이라 늦게 일어나고 싶은 큰아이가 샤워 부스 안에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을 목격했다. 기겁을 했다. 변기에 소변을 보면 소리가 나서 자신이 깨어난 것을 엄마가 알 것이고 그러면 더이상 늦잠을 자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 정말 믿을 수 없다. 소리가 나는 걸 피하려고 했으니 샤워부스에 남아 있는 소변은 재수 없는 누군가가 무심코 밟게 된다는 얘긴데 그 재수 없는 누군가는 내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 더 뜨악한 것은 오늘의 사건이 재범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 나는 매일 매일 내 용량이 턱없이 달린다는 위태로운 내 위치를 파악하며 위기감을 느낀다. 아으~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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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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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달과 하키 선수의 기량 사이에 상관관계가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의 몇 달은 신체적인 차이 뿐 아니라 사고능력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단순히 성적에만 편차가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고. 초등학교 초반에 학업에 잘 적응하고 선생님께 긍정적인 반응을 받은 아이들과 학업에 부딪히며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아이들의 자존감. 그 질적 차이가 아이 전생애에 걸친 자존감의 수준을 결정할지도 모를 일이다. 성취의 기회를 박탈당한는 다는 것. 비난이 뒤따르고 부정적인 자아개념이 생긴다는 것. 다음 달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작은 아이때문에 1월생 하키선수들의 예는 내게 날카롭게 다가 온 통계였다. 작은 아이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다. 분발해야 겠다. 

1만 시간은 대략 하루 세 시간,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 간 연습하면 도달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천재로 알고 있는 모짜르트도 초기 작품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재배열한 정도의 수준이었고 현재 걸작으로 평가받는 협주곡9번은 스물 한 살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협주곡을 만들기 시작한 지 10년이 흐른 시점이다. 빌 게이츠도 어린 시절부터 밤을 새서 프로그래밍을 했으며,혜성처럼 등장한 것 같았던 비틀즈도 그들이 처음으로 성공한 1964년 까지 모두 1200시간을 공연했다고 한다. 성공한 이들에겐 열정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기꺼이 노고를 축적했다.  

이후에 나오는 위기에 빠진 천재들,랭건과 오펜하미머의 결정적 차이,조셈 플롬에게 배우는 세가지 교훈은 모두 환경적인 요인에 지배된다는 이미 일반화된 아이템들이었다. 켄터키주 할란의 미스터리,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등은 문화적인 차이를 언급했는데 이 문화적 차이 역시 큰 의미에선 환경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마리타에게 찾아온 놀라운 기회는 본인의 노력이 부각되는 내용이었다. 

성공을 위해선 타고난 재력,가정 환경,결정적인 순간마다 찾아와 주는 운, 시대적 조건이 딱 떨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위해 다양한 근거와 통계를 불러 왔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내겐 다소 운명론적으로 읽혔다.  이 글이 성공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동기부여나 격려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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