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난 학교로부터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물론 맘 아픈 통화였다.
작은 아이는 한국에서 유치원 한 학기를 다니고 올 초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가기 싫다는 말은 종종 했었다. 유치원에선 공부만 하기 때문이고,자신은 친구들만큼 글자도 모르고 셈도 잘 못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남들보다 못하는게 있다는 것이 괴로웠나 보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별 문제는 없었다. 5월경 선생님과 말씀을 나눌 당시에 '모든 아이들이 **처럼만 하면 좋지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작은 아이가 위태롭다고 보았지만,남들은 야무지고 똘똘하다고 보았다.
첫 번째 전화. 작은 아이가 다른 친구의 스티커를 떼어서 자신의 스티커 판에다 붙였다. 부끄러웠다. 아이들이 스티커를 많이 붙이고 싶어하는 맘은 이해하지만 이런 행동은 당연 문제 삼을 수 있었다. 아이를 혼냈다. 매를 들지는 않았다. 몰래 하는 행동은 좋지 않다고,맘이 두근 거리고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행동은 하면 안되는 거라고 분명히 거듭 일렀다.
두 번째 전화. 작은 아이가 급식 시간에 김치를 바닥에 버렸다. 순간,지난 달 급식왕은19번을 다 먹은 A이고,내 아이이는 17번을 다 먹었다는 메모가 떠올랐다. 그 메모에는 이번달 발표왕은 20번을 발표한 B이고 내 아이는 8번을 발표했다는 내용이 한 줄 더 있었다. 무섭다.
두 번의 문제 행동 원인은 스티커였고, 두 번 다 몰래 한 짓이었다. 이번에는 매를 들었다. 아이를 체벌하면 아이는 스스로의 죄값을 치렀다고 여기기 때문에 죄를 뉘우치지 않을 수 있다는 조언을 받아들여 체벌을 안했는데 내 아이에겐 아직 일렀나 싶다. 내가 먼저 나를 때리고,아이도 때렸다. 우리 둘은 많이 울었다.
그날 아이의 일기장에는 "엄마가 무섭다.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고 어른이 아이들을 돌보는 곳(고아원을 설명하는 말인 듯)에 가서 살고 싶다. 내 마음을 너무 슬프다. 너무 속상하다. 너무 속상해서 울고 있다. 계속 계속 울고 있다. 아빠가 올 때까지 울거 같다. 어린이집에 가면 엄마 아빠 언니 고슴도치를 못 볼 거다. 너무 속상해!" 라고 써 있었다.
스티커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결과물,성과,태도등에 적용되며 지급된다. 다수의 인원을 한 방향으로 이끌기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잘한다고 해서 항상 스티커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한 아이에게 집중되면 안되기때문에 골고루 나눠주는 개념으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이는 혼란스러웠을까? 어떤 상황이 스티커를 가져오는지 그 기준을 파악하지 못해서?
스티커를 간절히 원하지만 '골고루'라는 기준으로 배분되는 시스템에서 아이는 자신의 노력이 무력해지는 상황과 자주 마주했으며 그 지점에서 '상'이 주는 성취보다 상실을 먼저 감지했고,경쟁을 알고,불필요한 패배도 경험했나 보다.
미국의 자유로운 교육환경에서 너무 갑작스레 경쟁을 유도하는 무리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반응일까? 아이는 기질적으로 뭐든 잘해내고픈 욕구로 팽창되어 있었다. 하지만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스티커.그것을 갖기 위해 도덕이 결여된 편법을 선택했다. 아이의 세상은 스티커에 매몰되어 있었다.
두 번의 전화 후.다음날. 그림일기에 남기신 선생님의 메모. 스티커 받기 위해 열심히 하기보다는 즐겁게 하라는 내용. 메모 끝에,나는 발견하지 못한 하트 속 일기왕이란 글자. 아이가 보더니 고성을 지르며 두 팔을 위로 치켜 들고
아이 : "와! 일기왕이다. 스티커 받는다" ,
나 : "....................."
교실은 내가 상상치 못했던 갖가지 아이템에 스티커가 걸려 있었다. 사실 적잖이 놀랐었다. 왜 아이들을 이렇게 줄을 세울까. 일등부터 꼴등까지는 아니어도,누락을 눈치 챈 소수의 아이들은 상실을 반복 경험해야 한다. 그야말로 경험할 필요없는 패배를 학습당하고 있었다. 교실은 모든 행동,성과 하나 하나가 스티커의 갯수로 낱낱이 평가되고 있다. 그것도 명확한 기준이 있는 방식이 아닌 다수를 위한 '골고루'에 의해.
스티커 시스템은 행동 교정에만 사용되어야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노력이 요구되는 성과나 성취에 들이대는 스티커엔, 1학년 아이에게 극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 가혹한 부작용이 있다. 스티커 시스템하에 다수의 아이는 시스템의 취지대로 올바른 행동을 강화해 가고 있다. 하지만 내 아이는 개인적인 기질과 맞물려 그 시스템이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에 노출되었다. 스티커의 (골고루) 평등 원칙을 아이에게 이해 시키고 아이가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평등보다는 공정!인데....
내 아이를 두둔하거나 거듭되는 문제 행동을 정당화 하고자 함이 아니다. 아이 행동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니 아이의 반응이 이해는 된다'뿐이다. 화와 실망이 조금은 누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