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아파트 입구 앞을 턱하니 지키고 있는 벤치 한 쌍.
겨울에는 그게 거기 있는지도 모르다가 서서히 날이 풀리면서 그 위용을 떨치니 두려워라. 그 벤치앞을 지날때마다, 난 교무실 앞에서 얼어버려 쭈삣거리는 어벙한 학생꼴을 한다. 무서워라 아줌마들이여.
대학때 후문 스텐드. 그곳에 널린 빨래처럼 주욱 앉아 있는 남학생들. 주로 공대생이었던 것 같다. 그 앞을 지나려면 괜히 머쓱해지고, 모두 날 쳐다보는 것 같아 은근히 의식이 되곤 했었다. 그때 어색함은 새발의 피라는 걸 알았으니....
어쩔수 없이 집에서 나가고 들어오려면 그 벤치 앞을 반드시 지나야 하는데, 그곳에 항상 포진해 있는 아줌마들. 주구장창 서너 시간씩 거기서 반 나절을 보내는 그들. 모두 안면 있는 이웃인지라 후문 스텐드앞을 지날때보다 시선의 압박이 세다. 고개 인사정도 하지만, 해가 갈 수록 더욱 그 앞을 피하고 싶어지니 고민이 거기서 시작 되더라.. 아파트 베란다에 라푼젤처럼 머리칼은 아니더라도 밧줄이라도 매달아 그리로 들락거렸으면 상상하기도 하고, 지니가 궁전을 번쩍 들어 옮겼듯이 저 벤치를 멀찌감치 옮겨 줬으면 부질없는 공상도 하고. 제발 저 벤치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이 궁리 저 궁리를 한다. 벤치 시즌인 선선한 계절을 싸잡아 원망도 한다.
그러다가 번쩍 떠오른 굿 아이디어. 아줌마떼가 주로 진을 치는 시간은 오후 3시부터 저녁밥 먹기 전까지이므로 이 시간만 피하면 되겠구나. 내 생활 패턴을 바꾸면 될 것을.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괜히 벤치만 원망했네 그려. 내가 생각해도 내가 기특해. 그리하여 나의 외출 - 일주일에 한 두번- 시간을 오전으로 변경하여 그들과의 대면을 데면데면하게 만들었으니. 푸하하하하. 일단 성공. 하지만 나의 외출 종착지는 주로 마트인지라 오전에 횡한 그곳 마트에서 쇼핑을 하려니 좀 뻘줌하기는 하더라..
이렇게 별거 아닌일에 신경이 쓰인다. 최근들어 사람들과 부딪히는걸 꺼리는 나의 개인적은 신변변화도 일조하였으나. 난 솔직히 거기서 서너 시간씩 몽창몽창 써 버리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안된다. 난 집에서 항상 시간에 쫓기고 아이고 바빠 바빠 엘리스의 흰토끼마냥 허둥거리는데 말이다. 그들의 일상을 한 번 들여다 보고 싶다. 나만 왜 이렇게 바쁜건지.
집에 눌러 있으면서 시간에 쫓긴다고 하면 누가 웃을지도 모르나, 내가 이렇게 고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중엔 큰아이가 있다. 가공식품을 전혀 먹을 수 없는 까다로운 아이를 가진 나. 모든 음식을 직접 조리해야만 한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포장 된 음식들은 내 아이에겐 독이다. 식품첨가물이 들어간 음식 한 입으로 우리 큰 아이는 알러지 반응을 나타낸다. 코막힘, 콧물, 기침 ,눈 주위에 흰 버짐처럼 살깣이 일어나기도 하고, 눈을 계속 비벼대 피가 나기도 하는등. 그 반응도 무지 다양하다. 그런 음식 섭취하면 서너 시간안에 몸이 싫다는 표시를 한다. 한번은 에이비씨 초코렛 작은 거 한 개 먹고 이틀간 고생한 적이 있다. 학원 선생님이 먹으라고 까서 입에다 디밀어 줘서 안먹을 수 없었단다. 본인도 먹어선 안되는 음식이 뭔지 알아서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런걸 보면 참 안됐다. 어린것이 친구들이 먹는 과자봉지나 사탕들을 외면하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제발좀 은행이건 병원이건 애들한테 사탕이나 과자 인심좀 쓰지 않았음 좋겠다.
이런 내 아이를 위해 과자도 만들어주고, 이 더운 여름에 집안 기온을 2도정도는 거뜬히 올릴 수 있는 육수내기도 수시로 해야 하며, 과일 고구마 옥수수 과일 등 간식거리를 늘 마련해 두어야 한다. 거기다 공부와 책읽기. 작은 아이 훼방 말려가며 초등학생 큰 아이 공부봐주기. 수시로 밀어대야 하는 청소기, 이부자리 걷어 매일매일 털기. 영어책 하루 종일 붙들고 틈나는 10여초 단위의 시간 붙들기. 정말 짬을 낼 수 없이 하루가 휘리릭 가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