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시절 이삼십 키로그램의 배낭을 메고 지리산을 올랐던 경험이 에팔레치아를 트래킹하는 작가의 고군분투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벽돌이 되어가는 단단한 배낭을 지고 끝도 없이 올라 갔던, 45도는 거뜬해 보이던 돌계단에서의 후들후들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까지 난 그날의 배낭보다 무거운 뭔가를 만나지 못했다.   

미국 애팔래치아 3360킬로미터에 달하는 트래킹. 그 안에서 시간의 의미는 멈추었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난다. 그 중간은 그냥 중간일 뿐이다.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걸으려는 의지뿐이다....서두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또 아주아주 멀리 걸었어도 당신은 항상 같은 시간과 장소에 놓은 존재일 뿐이다. 숲이다! 어제도 거기에 있었고,내일도 거기에 있다. 그야말로 광대무변한 하나의 단일성!  p118

국립공원 관리국의 실정에 대한 비판도 반복해서 지적하고 개탄하고 있다. 자연을 복원하기 보다는 주차장이나 캠핑카의 야영지를 만드는 등 자연에 문명을 덧칠하는 데 예산을 쓰고 있는 정책과 그동안 자연에 불필요하게 개입해 자연을 망쳐놓더니 이제 개입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더이상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는 그들의 태도에 작가는 그들을 경이로운 존재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하고 세밀한 지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데,

뉴욕 뉴저지 트레일 곤퍼런스가 제작한 이 지도는 숲은 녹색,물은 파란색,트레일은 붉은색,표기는 검은색의 4도 인쇄가 되어 있었고,분류도 이해하기 쉬웠을 뿐 아니라 척도에 따라 제작되었으며,연결되는 길과 보조 트레일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다. 지도만 보면 항상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걸 즐겨 보라는 뜻으로 제작한 것 같았다......그동안 주위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무신경했던 원인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는 데서 기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이제 드디어 내 위치를 알고 내 미래를 알 수 있으며 변화무쌍하지만,그래도 항상 파악이 가능한 지형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p300   

이 문장을 읽으면서, 이탈했걸랑 비교적 즉각 귀환할 수 있는 지도 한 장 나도 있었으면 좋겠네하고 히죽 웃었다. 내가 걷는 길과 나의 위치를 바로 파악하고 싶은 욕심이다. 가끔 지도의 마지막까지 걸었던 미래의 나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상상을 해 본다. 그녀는 내게 충고할 것 같다. 걸어 온 길보다 남아 있는 길이 짧음을 매순간 상기하고 오늘을 씩씩하게 살아야 하는 게 살아 있는 이들의 사명이라고. 

2011년 2월 중반이다.  

가화만사형통이 금년의 나의 글귀인데, 잔소리 접기 실천만으로 내 남자의 부가가치가 극대화되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핸드폰 머리에 쓰인 전화위복은 작은 변화에  요동치지 않도록 날 늘 보호해 준다. 허나 아이들에게만은 좀 더 긍정적인 반사대상이 되도록 오백 만 메가바이트 정도의 인내심은 기본으로 깔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매일 아이를 통해 되새김 받는다. 오늘 아침엔 봄방학이라 늦게 일어나고 싶은 큰아이가 샤워 부스 안에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을 목격했다. 기겁을 했다. 변기에 소변을 보면 소리가 나서 자신이 깨어난 것을 엄마가 알 것이고 그러면 더이상 늦잠을 자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 정말 믿을 수 없다. 소리가 나는 걸 피하려고 했으니 샤워부스에 남아 있는 소변은 재수 없는 누군가가 무심코 밟게 된다는 얘긴데 그 재수 없는 누군가는 내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 더 뜨악한 것은 오늘의 사건이 재범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 나는 매일 매일 내 용량이 턱없이 달린다는 위태로운 내 위치를 파악하며 위기감을 느낀다. 아으~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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