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노조선거 강동구 후보 승리
66표 차로…2045(강동구) 대 1979(김영한 후보)
 

2008년 12월 03일 (수) 22:06:16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이병순 사장체제의 첫 KBS 노동조합 선거로 관심을 모았던 제12대 KBS 노동조합 정·부위원장 선거 결과 현재 노조를 계승한 기호 1번 강동구·최재훈 후보가 4번 김영한·김병국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KBS 노동조합 선거관리위원회가 3일 밤 노조 결선투표를 개표한 결과 1번 강동구 후보가 2045표, 기호 4번 김영한 후보가 1979표를 얻어 66표 차로 강 후보가 12대 노조 정·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 서울 여의도 KBS 본관 1층 로비에 마련된 개표장소에서 선관위원들이 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세차례에 걸쳐 이뤄진 개표에서 본관(서울 여의도) 수원 부산 전주 광주 울산 안동 김제 등의 조합원이 참여한 1차 투표에서는 강동구 후보가 606표를, 김영한 후보가 550표를 얻어 사실상 초반부터 격차가 벌어졌다. 신관 창원 제주 대구 진주 충주 포항 등 조합원들이 참여한 2차 개표에선 김 후보가 918표를 얻는 데 그쳐 896표를 얻는 강 후보에 22표밖에 따라잡지 못했고, 3차 개표에선 강 후보(546표)가 김 후보(511표)를 되레 35표 더 벌였다. 무효표는 57표였다.

투표율은 95.1%(4264표 중 4081명 투표)를 기록, 또다시 역대 최고의 관심을 보였다.


   
  ▲ 결선투표는 총투표율 95%를 넘을 만큼 KBS 전체 조합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개표장소 밖에서 개표과정을 지켜보는 KBS 조합원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 KBS노동조합 12대 정,부위원장 결선 선거에서 당선된 기호 1번 강동구, 최재훈 후보가 노조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인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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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2-04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병순 체제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노조였다..이제 노와 사가 결합하누나...저기 물 건너 간다.

노이에자이트 2008-12-0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BS는 이렇게 되는군요...
 

^^ 내가 악기를 제대로 다룰 줄 안다면 한 번 도전해봤겠다.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인터넷이 여기까지 왔다.

와우...진짜....

상상력을 충만케 해주는 진짜 멋진 기획이다. 그냥 그 기획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흥분된다. 

음악이야말로 인류의 영원한 에스페란토 아닌가....세계 각지는 물론이고 , 메크로폴리스 뉴욕부터

아이슬란드의 시골 촌구석에서 울려 나올 음악을 상상하면...

'음악이란 이런 것이다' 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멋진 프로젝트다.

각 파트 별로 사람들을 뽑는다고 하니-마이클 틸슨 토마스의 지휘- '글로벌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를 의미있게 활용하면 정말 멋지겠다.

 세계 각 국에서 스폰서 받고, TV 중계, 음악판권 등의 수익금은 제 3세계 빈곤 퇴치에 사용한다면.... 멋지겠는걸!! 다큐멘터리 제작이나 공연 영상물에 대한 저작권 계약마저 끝냈을 것 같다.

 프렉튀스..프렐...ㅍ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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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12-03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지아의 소개도 재미있군요! 저도 한 번 도전해볼까요? ^^

드팀전 2008-12-04 06:58   좋아요 0 | URL
가시는 겁니까...카네기 홀.^^
글로벌 컴피티션!!

마노아 2008-12-04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전율이 일만한 기획이군요. 1분 30초 동안만으로도 짜릿했어요!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발견한 책이다. (알라딘에 들어와서 보니 지난 6월 로쟈님의 페이퍼에서도 있었다.)

서점에서 대충 넘겨봤는데, 세가지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미국경제학협회 AEA 연례총회의 이야기. 두 번째는 애덤스미스,케인즈 등의 경제사상사, 그리마 마지막에는 최근 경제학의 동향이다. 우석훈도 언급했던 '폴 로머'와 그의 스승인 로버트 루커스 등 과거의 경제학이 아니라 '흐르는 학문'으로서의 현재의 경제학 이론들이다. 이 부분이 매력적이다. 저널리즘적인 글쓰기로 비교적 평이한 서술로 보였다.

최근 경제에 대한 관심이 독서계에서 경제사상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예전에 쉽게 읽는 경제사상사에 관련된 페이퍼를 올린 적도 있다. 그 이후의 책으로 읽으면 좋을 듯 하다. 저널리즘적인 글쓰기로 그다지 난해하지도 않은 듯 하다.(물론 이건 영원히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살로메>이다. 앞의 표지가 이 희곡에서 가장 유명한 죽은 요한의 얼굴에 키스하는 살로메를 그린 것이다.

 교회를 다녔던 지라 살로메의 일화는 어린 시절 부터 알고 있었다. 살로메가 춤을 추고 세례 요한의 목을 원한다는 말을 하는... 그리고 그것 뿐. 살로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나이가 든 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살로메>때문이다.

나는 아직 <살로메>를 본 적이 없다. 음악으로만 들은 '일곱 베일의 춤' 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오페라 무대에서 <살로메>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그로테스크함을 강조하는 연출경향이 지배적이다.몇 몇 스틸 컷들을 엽기적 영화 이미지에 익숙한 나에게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지만....관현악에 비해 오페라를 조금 늦게 들었기때문에-클래식 말고 들을 것도 많구- 러시아 오페라나 슈트라우스<살로메>,베르크의 <보체크>같은 것들은 좀 미뤄두고 있다. 

 남회근의 <금강경 강의>이다.^^

사실 이런 책들은 상쾌한 공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이야 이런 책이 '진정한 진리'의 길을 말하는 것이고 그 외에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은 허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나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아니 많이 했기 때문에 더이상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을 뿐이다. 바울의 말처럼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고 생각해버리는 게 가장 편리하다.

개인의 윤리적 범주에 적합한 것을-금강경이 비단 윤리문제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수용자는 수용하고 실천한다 -정치와 사회의 영역까지 확산해서 이해하려는 태도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REFRESH이다. 난해한 쉼이 되겠지만...

 

 팀 에덴서의 <대중문화와 일상.그리고 민족 정체성>이다. 제목을 하나씩 떼어 놓고 봐도 모두 큼직큼직한 주제이며 매력적인 영역이다. 대중문화....일상....민족정체성. 대중문화라는 영역은 원래 내 전공영역이기도 하고 이후에도 늘상 관심이 많다. 일상 영역도 마찬가지 아닌가. 앙리 르페브르는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대해 일상의 반복성이 그것을 망각케 해준다고 했다.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영역도 그 일상이고 또 정치적,문화적 운동이 발생하는 곳도 일상의 영역이다. 거기에 상상의 공동체라는 민족문제가 결합된다. 내용은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다. 

사극드라마는 연개소문과 김춘추가 통일제국의 같은 꿈을 꾼다는 정말 '상상의 공동체'로 근대에 구축된 민족의식을 강화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고만 생각치는 않는다.  무슨 대단한 역사관은 아니다.  최소한 한국의 '민족중심주의'에 지친 나머지 '탈민족주의'개념에 열광하고 멈추는 단계는 지나가고 있다는 뜻일 뿐이다. 

이 책은 현재 읽고 있는 책이다. 셀던 월린의 <정치와 비전>.후마니타스에서 나왔다.(이 출판사는 참 대단하며 대견하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책인듯 한데 현재 1권밖에 나오지 않았다.이 책은 한 해를 한 달 남긴 시점에서 내가 선택한 올해의 책에 들어간다. 플라톤부터 서구정치 사상사를 다루고 있다. 1권은 칼뱅까지다.그런데 단순히 플라톤은 어떤 정치사상이구..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떻구 하는게 아니다. 정치사상사의 연속성이라는 전제하에서 이들의 사상을 하나로 꿰고 있는 커다란 바늘이 있다.책의 1장이자 인트로에 해당하는 '정치철학과 철학'은 역자의 말처럼 반복해서 읽어도 좋을 듯 하다.

 

정치와 비정치가 맞짱(?)-사실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을 떳던 올해 내가 이 책을 놓치고 지나갔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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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0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뉴라이트 쪽에서 보는 아담 스미스와 진정한 자유주의자로서의 아담 스미스를 구분해보고 싶어요.뉴라이트 경제논객으로 대중들에겐 공병호,복거일이 유명하지만 교수 중에선 민경국(강원대학교)이 요즘 활발히 글도 쓰고 집회에도 나오더라구요.신자유주의가 잘못되었다는 최근의 흐름에 맞서서 아니다...하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보수색채가 진한 시대정신이나 한국논단 등에도 활발히 기고하고 있지요.주목할 만한 인물입니다.

드팀전 2008-12-03 17:46   좋아요 0 | URL
한겨레인가를 보니까 뉴라이트 내부의 잔갈등들도 많더군요. 이론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03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와일드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의 작품엔 동화에도 유혈이 낭자한 묘사가 참 많아요.잔인하달까요.살로메는 아예 미성년자 관람불가를 겨냥하고 쓴 것 같기도 하구요.요한의 머리를 베어서 쟁반에 담아오는 장면은 ....글쎄요.압권이라고 해야 하나요...

드팀전 2008-12-03 17:51   좋아요 0 | URL
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를 봐야하는데... 컬트영화나 오컬트 무비 등에 비하면 다 장난이지요.^^
사실 진짜 공포는 '유혈'이라기 보다는 '안개'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0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마나타스에 대해서 대견하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요? 참고로 말씀 드리면 저는 최장집씨가 최근에 촛불시위라든가 대의제,정당정치 등에 대해 하는 발언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요즘은 그의 80년대 논문을 두 편 택하여 정독하며 요약하고 있는 중입니다.일본의 어느 학자가 일류정치 이론가라고 평했다고 합니다.후마니타스 사장 박상훈 씨까 그의 제자더군요.경향신문에 가끔 나오는 그의 글도 주목할 만하더군요.

드팀전 2008-12-03 17:49   좋아요 0 | URL
후마니타스가 대견한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뒤늦게 출발한 출판사로서 돈 안되는 인문사회시장에서 좋은 책들을 꾸준히 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당 정치로의 수렴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만 최장집 교수가 운동의 정치에 대해 혹독한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봅니다.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유동적인 과정을 안고 있는 것이기때문이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12-04 13:18   좋아요 0 | URL
소외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에 대해 중점을 두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면서 정치무관심을 자랑이나 하는 듯이 과시하는 풍조에 대한 최장집 씨의 염려는 새겨들을만 하지요.
 
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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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위의 은행잎이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맞춰 팔랑팔랑 춤을 춘다. 매월 말 고지서를 들고 나타나는 우체부처럼 겸허를 알려주는 계절이 우리를 찾아왔다. 이때 쯤 되면 돌돌 말아 봉인해 놓은 '선한 마음' 이란 것이 살짝 일어난다. 십자가 위에서 회개한 죄수들의 마음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끝이 좋으면 '천국이 그대들의 것' 이므로.

그래서 나도 한껏 큰 마음을 냈다. 그 동안 고마운 분들에게 영화에 대한 나의 엄청난 비밀을 슬며시 알려주려고 한다. 영화가 100배쯤 재미있어지는 비밀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 <스토리텔링의 비밀>이기도 하다.먼저 고사리 손으로 승리의 V자를 만들어 보라.

그렇다. 바로 그렇게. 비밀은 두 가지다. (기호 2번이 아니라)

첫 번째 비밀은 이미 말했다.언제 말했냐구? 분명히 이 글에서 이미 말했다. 당신이 부주의해서 흘린 과자를 수퍼주인에게 다시 달라고 요구하지 말라. 첫 번째 비밀은 대문에 써있다. 즉 내가-우리가-영화관이나 TV앞에 앉아 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옆에 있었다는 것이다. 아카데미아에 수강 등록한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의 저자 마이클 티아노의 첫번째 비밀도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두 번 째 비밀이 궁금해 질 것이다. 청룡영화상의 김혜수처럼 야한 드레스를 입고 살짝 뜸을 들여줘야 제격이다. 개봉박두!! 

모든 비밀은 그것이 비밀이라는 언어의 집 안으로 들어갈 때 이미 비밀이 아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의 두 번째 비밀은  '이미 비밀이 아닌 것을 비밀이라고 말함으로써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그 비밀이 무언지 알고 싶게 만들고 마지막에 가서 그 비밀은 사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비밀이 아닌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 문장에 '비밀을 9번을 썻다. 이 문장의 기획의도는 좋은 문장이 아니라,'비밀'을 몇 번 써서 한 문장을 만들수 있나 연습이었다.가독성 최악이지만 해보면 재미있다.)

난독증때문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분을 위해 정리한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에서 말하는 '비밀'은 이미 '비밀'이 아니라는 말이다.즉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체험하고 있는 것들,즉 일반화 시키지 못했을 뿐-우리의 몸과 정서와 감정들이 움직이는 방식들에 대해-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그리스 시대부터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영화나 TV를 보아왔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어떤 원형적인 장치들로 부터 유사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진부하단 말인가? . 아니다. 이건 오히려 새롭다는 말이다. 이건 마치 한국인이 한국어 문법책을 볼 때 느껴지는 신선함과 비슷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동적인 반응으로 나오는 것을 문법책은 일반화된 규칙으로 설명한다.우리에게는 '그냥 조상때 부터 그래서 그런다' 가 제일 쉬운데 말이다. 이 책도 결국 그런 것이다.

"나는 당신들의 정서가 무엇을 원하는지,그리고 무엇에 반응하는지 알고 있다. 지난 여름부터.."

마이클 티어노의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원칙들을 가지고 잘 만들어진 '헐리우드'영화의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글이다. 또는 반대로 잘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이들을 위한 책이기도하다.하지만 굳이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욕심이 없어도 상당히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스토리라인과 관련된-미디어적인 수용습관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 보려는 이에게는 좋은 안내서이다. 즉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어떤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다. 작가가 되려는 이들 보다는 오히려 미디어 수용자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 오히려 이 책은 미디어 교육 교재로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우리는 왜 <베토벤 바이러스>에 열광하는가? 우리는 왜 뉴스를 보기전에 소녀시대의 윤아가 나오는 <너는 내 운명>을 빠짐없이 보는가? 우리는 왜 헐리우드의 영화를 보고 나면 산뜻한데, 이름도 어려운 동유럽이나 아랍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면 화장실에 두고 온 휴지가 생각이 나는가?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우리가 늘상 접하는 드라마나 영화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빠뜨리는지, 그리고 관객들에게 어떤 효과를 주는지를 말하는 책이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수 천년전 제우스의 자손 중에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저작권료도 소멸된 고전에 기대어서 밥상 하나 차리는 것이다.

마이클 티아노가 말하는 좋은 스토리를 쓰는 요령은-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관객들이 쏙 빠져들게 만드는 스토리이다- 몇 줄로 정리된다. 특히 저자는 풀롯의 중요성에 대해 누차 강조한다. 즉 구조의 중요성이다. 이건 비단 시나라오 뿐 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도 강조되어야하는 점이다.(반성 해야겠다. 막쓰는 경향이 있어서리...) 자...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얻은 금과옥조들이다.

행동으로 부터 시작해라.(액션 아이디어라고 한다.)/ 이야기의 무게 중심을 만들기 위해 비극적 행위를 사용하라./ 모든 극적 행동을 개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연결하라./ 이야기가 실제있었던 것 처럼 느껴지게 하라. /운명의 반전과 발견의 순간을 구축하는 방식을 찾아라./ 가슴 아픈 도덕적 갈등을 심어라./ 시나리오 안에 당신의 도덕적 세계를 펼치고 선과 악을 중재하는 인물을 창조하라.그리고 당신의 주인공이 세상의 절대선을 대변하게 하라.

잘만들어진 헐리우드 영화의 스토리는 대개 이런 규칙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이클 티아노는 이러한 주제들을 설명하기 위해 <록키>,<아메리칸 뷰티>,<글라디에이터>,<대부>,<블레어위치>,<엔젤하트>,<타이타닉> 들의 영화를 예로 든다. (나는 <엔젤하트>를 무척 좋아했다.미키루크는 그 때가 전성기였는데..로버트 드니로가 사탄으로 나온다.)

<시학> 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으로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6장) 연민이란 누군가 부당하게 불행해지는 것을 볼 때 생기며, 공포는 우리도 그런 불행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생기기 때문이다.(13장)

티아노는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을 최고의 카타르시스장면으로 든다. 사랑하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디카프리오는 운명의 극적 반전 속에 자신을 맡긴다. 차가운 바닷물에서 꽁꽁 얼어죽는길을 선택한거다.육체적,정신적 고통이 극대화된다. 관객들은 스크린에 홀딱 빠져들고 그들이 마지막 대사를 힘겹게 한마디씩 뱉을때 마다 객석은 훌쩍이는 거다. 하지만 한 가지 카타르시스가 더 있다. 나이든 윈슬렛이 죽으며 디카프리오를 그리워하는 장면이다. 만약 윈슬렛이 그렇지 않고 혼자 온갖 남성편력을 과시하며 성이 다른 수많은 아이들의 축복 속에서 수 십억 달러의 유언장의 내용을 읽다가 죽었으면 어땟을까?  상식이 있는 인간이라면 절대 그렇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관객들은 윈슬렛이 곱게 늙고 그 거대한 사랑을 간직하며 다시 디카프리오를 천국에서 만나주길 바란다. 영화꾼들은 그걸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이 지점은 영화 미학의 심각한 주제와 관련이 있다. 마이클 티아노는 당연히 헐리우드의 주류적인 스토리 구조를 최고로 치고 있다.(물론 이것이 보편적이고 가장 널리 확립된 구조이다.)하지만 많은 예술가들은 이미 오래전 부터 다른 길을 걷는다. "왜 영화가 관객들을 빠뜨려야 하지?" "왜 카타르시스라는 이름으로 관객들의 취향에 복종해야 하지?" " 감정의 배출을 하고 극장을 나가면 그것으로 영화의 목적은 끝인가?" ....결국 질문은 "그렇다면 영화란 무엇이지?" 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마이클 티아노가 그런 질문까지 하지는 않는다. 그는 헐리우드 작가이다. 비록 헐리우드 밥을 먹고 있지만 그런 질문들에 대해 모를리는 없다.단지 존재의 양식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헐리우드 오리엔티드된 방식으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들의 반근거가 될 만한 영화는 수두록하다. 저자 역시 이 책을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탁해서 쓰면서도 머릿 속에 반대 논리로 제시할 만한 영화가 툭툭 끼어들었다고 말한다. 헐리우드 영화 역시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나 존 포드의 재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시작으로서의 원칙'에 대해 집중한 것이다. 몇 몇 천재들을 빼놓고는 뛰기 위해서 걷는 방법부터 배워야하기 때문에.

누구나 이야기꾼이 될 수는 없다. 또 헐리우드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도 없다. 대신 우리는 <스토리텔링의 비밀>을 보면서 우리가 매일 매일 보는 드라마나 영화의 스토리 라인에 대해 한 번 더 분석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쓴다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때 그 스토리라인이 담고 있는 함의들과 그 작용점들에 대해 조금은 더 알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말에 본 영화들을 티아노가 제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공정라인에 따라 배열해 보자. 물론 그런 배열은 훈련을 위한 한 과정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그 조각들을 다시 모아서 총체적인 완성품으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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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11-29 17:59   좋아요 0 | URL
내년 1월에 이 책에 대해서 강의를 할 예정인데, 유익하게 참조하겠습니다.^^

드팀전 2008-11-29 23:28   좋아요 0 | URL
^^ 저도 가서 듣고 싶군요. 최근 영화나 한국영화들을 예로 들면서 하면 학생들에게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간첩 누명 쓴 ‘송씨 일가’의 지옥 같은 25년
2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의 전말이 국정원 진실위를 통해 밝혀졌다. <시사IN>은 당시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 그들의 어제와 오늘을 취재했다. 그것은 피눈물로 얼룩진 한 편의
 

[7호] 2007년 10월 29일 (월) 11:54:02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시사IN 안희태송기복씨(사진)와 송기준씨는 인터뷰 내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가슴속 깊이 패인 상처는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되어 줄줄 흘러내렸다. 그들은 사건 이후 수십 년 만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안기부의 조작은 평온하던 한 일가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내가 원래 이 보랏빛 꽃을 참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젠 싫어··· 거기서 맞을 때 내 얼굴, 내 몸 색깔이 꼭 이랬어요. 두 팔과 다리를 묶고 자기 혁대를 풀어 나를 때리는 거야. 하염없이··· 그 수사관이 마약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때릴 수 있을까요. 아! 그 보랏빛!”

기자가 선물한 보랏빛 가을 국화가 화근이었다. 꼭 ‘25년’ 만에야 진실이 밝혀진 것을 축하하고 싶어 준비한 탐스러운 가을 국화 스물다섯 송이가 가슴 깊은 곳의 상처를 들쑤시고 말았다. 갑자기 송기복씨(66)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러곤 크고 길게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말리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울기만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고, 말려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그는 처음으로 ‘제3자’에게 평생을 묻어온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는 것이다. 10월24일, 이날 오전에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과거의 조작사건 중 하나로 이른바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을 발표한 날이었다. 

전날에도 송기복씨는 전화를 걸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기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따져 물었고, 때로 격하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는 “세월이 흘렀다 해도 당신들이 지금 우리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 믿을 수가 없다”라며 목이 메곤 했다.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면 언제든 터져버릴 것 같은 극도의 불안과 긴장. 대체 25년 전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기에 그는 그때의 아픔을 지금 이 순간에도 느끼고 있는 걸까.

1982년 9월11일 아침, 한국의 모든 일간지에 대문짝만 한 기사가 실린다. 이른바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북한의 대남 공작 부서인 노동당 연락부 송창섭 부부장(당시 62세)이 여덟 차례에 걸쳐 남한에 잠입, 모두 28명의 가족·친지들과 모략해 대규모 간첩 활동을 해왔다고 안기부가 발표한 것이다. 간첩단의 규모에서나 사건의 파장에서나 가히 ‘1980년대 최대의 간첩단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내용이었다. 전국의 모든 신문과 방송들은 한 달 가까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이 사건의 파장이 적지 않았던 것은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들이 전직 대학교수, 교사, 회사 중역 등 신분이 뚜렷한 인텔리들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당의 고위 간부인 송창섭씨가 형제와 가족, 심지어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까지 포섭해 조직적인 간첩 활동을 벌였다는 발표라서 드라마틱한 면까지 있었다. 실제로 훗날 이 사건을 소재로 한 TV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다.

안기부가 연출하고 언론이 생중계한 이 ‘무시무시한 가족’의 삶은, 그러나 피눈물로 얼룩진 것이었다. 대법원이 이 사건을 두 차례나 무죄 취지 파기환송했음에도 가족들은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뿔뿔이 흩어졌고, 서로를 원망하며 살아야 했다.

끝없는 고문의 후유증

송기복씨는 사건 당시 서울 신광여중 교사였다. 그는 1982년 3월2일 신학기 첫날, 학교로 찾아온 안기부 수사관에 의해 청주로 연행됐다. 그러곤 116일 동안의 불법구금과 1년5개월 간 구속 끝에 이듬해 12월25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사건 관련자 중 가장 낮은 형량이었다.

그럼에도 116일 동안 자행된 안기부의 고문으로 송기복씨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물 먹이기, 잠 안 재우기, 손톱 밑 바늘로 찌르기 따위 수십 가지 고문을 가하며 아버지 송창섭과의 관계를 추궁했다. 수사관들은 한 여성의 ‘성 정체성’도 완전히 짓밟았다.


   
 
ⓒ시사IN 안희태송기준씨
 
 
“가끔 술 먹이는 고문을 받곤 했어요. 차라리 술 마시고 정신을 잃는 게 낫다 싶어 막 받아먹었죠. 그럼 그때부터 어린 수사관들이 날 능욕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짐승의 성기로 만든 술안주를 내게 주며 먹으라고···. 그러곤 넌 섹스할 때 어떻게 하냐, 어떻게 생겼냐··· 정말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석방된 뒤 송기복씨는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남성에 대한 공포와 저주’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동성동본임에도 결혼을 감행했을 만큼 깊이 사랑했던 남편 송영섭씨에게도 “왜 나와 이혼해주지 않느냐. 나 같은 빨갱이와 사는 당신은 위선자다”라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한 번은 남편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서 당신에게 사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내가 속으로 ‘저 인간이 내게 뭔가 잘못한 게 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믿지 못한 거죠.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세상에 그런 남편이 어디 있겠어요. 너무나 죄스럽고, 한스러워요.”   

기복씨는 방송작가 김수현씨와 청주여고 동기이기도 하다. 석방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작가는 송씨에게 “기복아, 이 모든 일들을 모두 기록해둬라”라고 당부했다. 이 말을 실행에 옮기듯, 송씨는 차곡차곡 기록을 모아뒀다. 그가 기자에게 보여준 분홍색 보자기엔 남편의 면회일지, 그리고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 수백 통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남편이 적은 면회일지와 편지들은 곧 송씨가 이제껏 생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사건 이후 송씨는 직업을 잃었다. 교단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은 물론, 교원연금도 받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공군 중령이었던 남편 송씨마저 이 사건으로 강제 예편당했다.

생계가 막막하고, 세간의 눈치까지 살펴야 하는 한국에 머무를 까닭이 없었다. 남편 송씨는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카이로프랙틱’(척추교정법)을 배우러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송씨는 한국에 홀로 머물러야 했다. 안기부 측이 “송기복이 미국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려 한다”라며 여권 발급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1년 넘게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미국에 갈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난 날은 공교롭게도 1987년 6월29일이었다. 

영원히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한국에 다시 돌아온 것은 ‘미국의 의대에서 배운 척추교정법을 한국에 전파하며 떳떳이 살고 싶다’는 남편의 뜻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 송씨는 끝내 아내의 누명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2002년 세상을 떠났다.
부친에 이어 척추 교정의로 살아가고 있는 아들 송준혁씨(38)는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으신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기 전에 모든 일이 명백히 밝혀졌으면 좋겠다”라는 바람뿐이다. 

가족·친척 모두 죽고 망가져

이튿날,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의 작은 마을을 찾았다. 송기복씨의 사촌 오빠인 송기준씨(79)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마을 어귀에서 한참 더 들어간 곳에 외따로 살고 있다. 마흔이 넘은 아들과 둘이서 손바닥만 한 접착제 공장을 운영하는 ‘거물 간첩’은 이제 걷는 것조차 힘겨운 팔순 노인이 되었다. 
    
송기복씨의 삶도 불행했지만, 송기준씨의 삶은 ‘파탄’ 그 자체였다. 사건 당시 번듯한 화학공장을 운영하며 서울 서초동에 있는 184㎡(55평)짜리 아파트에 살았던 그는 밀입북 혐의 등으로 ‘제2의 주범’에 지목돼 1심에서 사형을 선도받은 뒤 상고 끝에 6년 실형을 살았다. 하지만 출소한 후 그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집과 공장은 소송비용 등으로 남에게 넘어갔고, 아내와는 협의이혼했다. 큰딸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교사였던 둘째 딸은 권고사직을 당했다. 셋째 아들은 고교를 중퇴했고, 막내는 신문팔이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다. 자식들 앞에 얼굴조차 내밀 수 없었다. 이때 그의 나이 환갑이었다. 


   
 
ⓒ시사IN 안희태‘송씨 일가’ 사건을 조사한 국정원 진실위는 10월26일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설명회를 열었다.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 평소 그를 좋게 본 한 지인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우사가 비었다며 아무거나 해보라고 권했다. 고문으로 망가진 몸을 이끌고 환갑의 노인은 소똥 천지였던 우사를 접착제 공장으로 만들었다. 겨우 3년 전까지만 해도 공장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잘 만큼 비참하게 살아야 했다. 송기준씨는 “그나마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지금은 행복해야 마땅한데도, 여전히 내 삶은 지옥 같다”라며 서럽게 울었다.

인터뷰 도중 집 전화벨이 몇 차례 울렸다. 그는 상대방과 국정원 발표 내용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전화를 건 김 아무개씨는 기준씨의 삶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25년 전에 내가 운영하던 회사의 직원이었어요. 그런데 법정에서 나의 밀입북 혐의를 뒤집는 증언을 해줬어요. 그래서 내가 목숨이라도 건진 거야. 하지만 그 친구는 그것 때문에 6개월 실형을 살았어요. 그 뒤 생사도 까맣게 모르다가 지난해에야 다시 만나게 된 거야. 얼마나 반갑던지 껴안고 엉엉 울었어요.”   

수십 년간 생사를 모르고 살아온 게 어디 그들뿐이랴.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 터를 잡고 살았던 ‘송씨 일가’는 간첩단 사건으로 완전히 붕괴됐다. 송창섭씨의 모친은 사건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객사했고, 송기복씨의 작은아버지 송오섭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떴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죽었다는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었지만 ‘산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길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난해 국정원 진실위가 사건 조사에 착수하면서 이들은 25년 만에야 서로 재회하게 된다. 하지만 수십 년 만에 만난 ‘혈육’도 그저 반가울 수만은 없었다. 송기복씨는 “내가 안기부에서 기준 오빠의 이름을 댄 것 때문에 오빠가 잡혀갔을지도 모른다”는 미안함에 사로잡혀 있었고, 송기준씨는 그대로 “동생이 미안해할까 봐 선뜻 연락을 하기 어려웠다”라고 털어놓았다. 다른 형제와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실위의 노력으로 사건의 실체는 밝혀졌지만, 송씨 일가가 지난 세월 동안 당한 고통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국가의 배상 문제다. 과거 안기부 조작으로 고통받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재심특별법의 제정도 필요하다. 송기복씨와 송기준씨를 비롯한 송씨 가족들은 “간첩단 사건의 실체가 안기부의 조작이었음이 드러난 만큼 국가가 배상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당시 무책임하게 사건을 보도했던 언론들도 진실을 알리는 데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요구한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빼앗긴 세월’을 되찾는 유일한 길은 돈이 아니라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송기복씨와 만나던 날, 그는 쉴새없이 전화를 해대는 언론사 기자들을 향해 “왜 날 인터뷰합니까, 날 잡아가둔 사람들을 찾아서 혼내는 게 언론이 할 일 아닌가요?”라며 호통을 쳤다. 하지만 25년 전, 이 사건을 1면 톱 기사로 다루며 호들갑을 떨었던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주요 신문의 기자들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이들 신문에선 DJ 납치와 KAL기 폭파 등 굵직한 사건에 가려 송씨 일가 사건의 진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을 통해 진실이 알려지고 나면 동네 노인들과 어울려 소주라도 한잔 맘 편히 마시고 싶다”라는 팔순 노인의 바람이 떠올라 신문을 펼쳐든 기자는 내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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