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사유의 기원
장 피에르 베르낭 지음, 김재홍 옮김 / 길(도서출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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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낡은 시대가 이 세대를 어지럽힐 때도 /그대는 우리와는 다른 고민 속에 /인류에 친구로서 남아 있으리 /그리고 인간에게 그대는 말하리라
“아름다움은 참다움이요 참다움은 아름다움”이라고 - 그것이 그대가 지상에서 알 전부요 그대가 알 필요가 있는 전부다 .                  .... 키이츠 <그리스 옛 단지의 노래>
   

먼 여행을 떠날 때는 언제나 신발 끝을 단단히 묶어 두어야 한다. 첫 발은 무겁지만 이내 눈 앞에 펼쳐질 풍광을 기대한다면 심란함은 찰나의 일이다. 이제 우리는 장 피에르 베르낭의 <그리스 사유의 기원>이라는 책에 기대어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간 여행을 하는 우리의 눈 아래로는 아카데미아에서 토론하는 플라톤이 보이고 거리를 배회하는 소크라테스가 들어온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시장 한 구석에서 시를 낭송하는 호메로스도 지나가고 전차를 몰고 달려가는 아킬레우스의 번뜩이는 갑옷도 보인다. 트로이 성이 무너진다. 조금 더 더 과거로 들어간다. 이제 우리는 BC 2000년 크레타의 미노스 궁전 앞에 와 있다. 왜 이 곳까지 온 것일까?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라는 말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 중 대표적인 중 하나는  '이성' 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 시대 이래 인류는 '이성' 의 진보에 바탕을 둔 역사의 패러다임 안에서 살아 왔다. 최초로 '이성'이란 개념을 알아내고 이를 통해 인류 역사에 기여한 것이 바로 그리스이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이성'의 역사가 아니던가? 서구인에게 그리스는 동양의 요순시대처럼 일종의 원형 지혜의 보고로 기억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전체 문명은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가 아무리 동양적인 것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더라도 인류의 역사가 서양이 주도한 보편적 이성의 역사 위에 정태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또한 동양의 가치와 역사를 지지하는 것이 이런 보편적 이성 개념의 폐기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장 피에르 베르낭은 인류가 아니 조금 더 좁혀서 이야기하자면, 그리스가 어떻게 '철학'이니 '이성'이니 하는 인류의 선물과도 같은 개념들 만들어 내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하여 폴리스를 만들고 그 공간 안에서 이를 어떻게 구체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 민주정의 완성기라는 페리클레스의 시기, 서구 철학의 첫번째 중흥기라 할 만한 플라톤의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장 피에르 베르낭이 그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첫번째 관문으로 내려놓은 곳이 BC 2000년 대이다. 너무 먼 시기라 가물가물한 지점이다. 우리나라 역사로 보자면 단군 왕검이 고전선을 세운 시기가 바로 그에 상응한다. BC2333년이다. 저자는 그렇게 먼 시기부터 시작해서 그리스 황금기 바로 직전에서 여정을 마감한다. 폴리스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의 등장이 바로 이 짧은 책의 마지막 장에 해당된다. 

장 피에르 베르낭은 그리스 세계의 '단절'의 문제를 몇 가지 거론한다. BC 12세기의 도리아인의 침공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과거 그리스의 오리엔트와의 교류를 단절시켰으며, 단출하며 여백을 존중하는 기하학적 세계관을 반영케 했다. 이어지는 시기를 헬레스의 암흑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시기가 끝나며 호메로스의 시대가 온다. 베르낭은 이런 고립과 재구축의 긴 시간들이 폴리스와 합리적 사고라는 새로운 고안물이 등장하는 서막이 된다고 말한다. 결국 그리스는 긴 단절 끝에 다시 재개된 오리엔트와의 교섭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독창성과 우월감을 만들어 내는 사유형식을 고민한다. 그리고 이 시기를 통해 정치적 사고와 철학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스 사유의 기원> 1장은 크레타의 미노스 문명이 갖는 궁전 중심의 문화에 대해 논한다. 이 궁전 문명은 이후 몇 번의 붕괴를 통해서도 사라지지 않고 미케네 문명과 멸망한 크레타를 계승한 아카이아인들에게 까지 계승된다.  2장에서는 뮈케네 사회의 군사조직중심적,궁전 중심적인 미케네 문명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리엔트적인 속성(히타이트)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과거 크레타와 달리 군사적 역할이 강화된 모델이었다. 전사 계급의 특화같은 요소들도 돋보인다. 베르낭은 뮈케네 왕권의 몇 몇 가지 특성을 두고 '관료체제적이며 봉건적' 이라는 분석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견해를 보인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여전히 궁전 중심의, 왕 중심의 체제였다. 뮈케네의 사회상에서 중요한 것은 토지의 분할이다. 토지를 이중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세속토지이고 또다른 하나는 촌락공동체의 토지이다. 앞의 것은 왕과 전사들의 소유이고 뒤의 것은 공동체 땅이다. 이런 토지의 이원화된 구획과 권력의 이원화된 구조는 뒤에 다른 종류의 변화를 예상케 한다. 

3장에서는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발생한 헬라스의 변화에 대해 주로 언급한다. 이 시기 이후를 흔히 헬라스의 암흑기,또는 단절기라고 한다. 오리엔트와의 교류도 단절되고 사회의 주조를 이루는 가치도 달라진다. 이렇게 달라지는 단층은 오히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조건이 된다. 호메로스의 시가들은 이런 단층이 만들어낸 '성과 속'의 분리와 세속화를 지향한 예가 된다. 또한 궁전 중심 체계가 붕괴하면서 촌락공동체와 전사 귀족(가문) 사이의 균형은 공백상태로 남게 되고 이는 새로운 격변을 초래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새로운 혼란이고 그에 대한 반작용은 이를 해소하기 위한 '소피아'(지혜)의 출현으로 나타난다. 뒤에 출현하는 초기 자연철학자의 퓌시스 (자연)개념에도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그리스인들에게  퓌시스는 처음부터 '인간의 세계','인간의 관계'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폴리스니 이소이아(평등),디케(정의),프로네시스(반성)이나 하는 그리스 철학의 모든 개념들은 이런 '인간'의 문제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베르낭은 이런 군주권의 붕괴가 아르케(지배,권력)의 분배형태로 나타난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리엔트인 스키타이의 전설과 아테네의 전설을 통해 그리스가 독특하게 권력의 분배와 상호 역할 분담, 견제 형태로 발전한 특징을 짚어낸다. 그리고 비로소 정치를 위한 '아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준비가 된것이다. 아곤을 하는 곳이 바로 지난해 시대를 거슬러 가장 뜨거웠던 '아고라'이다. 아고라가 가진 의미는 그 공간적 중심성은 물론이고 평등주의 정신,세속화 정신, 인민주의의 정신을 반영하는 상징이된다. 신의 위한 아크로폴리스와 세속을 위한 아고라가 아테네의 가장 중심적인 곳에 위치했다는 것은 도시의 골격이 어떤 정신성을 반영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4장 '폴리스의 영적 우주', 우리는 이제 BC 8-7세기 까지 왔다. 베르낭은 폴리스의 특징에 대해 몇 가지로 요약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폴리스는 무엇보다 다른 모든 권력 도구를 넘는 연설에 대한 탁월성을 함축하고 있다. 이는 정치와 로고스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수사학,궤변술,논리학의 발전을 점칠 수 있게 한다. 두번째 폴리스의 특징은 완벽한 공개성이다. 공통의 관심과 공통의 절차에 대한 강조이다. 왕이나 일부 가문이 보유했던 배타적 특권은 민주화와 드러냄이라는 이중적 이행과정 속에 놓여있게 된 것이다. 베르낭은 이를 '설명의 청구'라는 말로 표현했다. 세번째 특징은 이런 과정들을 '법의 기록'에 대한 강조이다. 정치학에서 '입법의 기능'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강력해진 것이다. 네번째로 중요한 것은 '호모이오이' 즉 국가 안에 모든 사람이 정치적으로 평등하다는 강력한 평등주의적 입장이다. 이것은 현대적 계급의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솔론의 개혁같은 것에서도, 플라톤의 정치철학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평등'은 각기 다른 계층의 역할에 대한 균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베르낭은 이를 '기하학적 평등'즉 '비율'이라고 말한다. 어쨋거나 근대적 계급관념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이다. 그는 폴리스 중에서 베르낭은 스파르트를 가장 강력한 평등주의의 실천이 이루어진 곳으로 보여준다. 공동체중심주의는 어떤 형태로든 개인에게 동일한 요소들을 강제한다. 절제,금욕같은 것들이 스파르타는 물론이고 모든 폴리스에서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는 것은 더 논할 바가 없다.

5,6장에서는 폴리스의 중요한 구성원리들이 틀을 잡아 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우리는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디케의 개념,이소이아의 실천방안,소프로쉬네(절제)에 대한 관념들을 하나씩 읽어 나갈 수 있다. 정의,평등,절제 같은 것들은 여전히 현재에도 울림을 갖는다. 이런 개념들의 대상자이자 주체는 결국 중산계급자들이었다. 적절함과 중용은 계급적으로도 그들의 몫이었고 또한 사회 전체의 가치로도 가장 중심적인 곳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즉 시민계급은 귀족의 오만한과도 일반 대중의 안일함과도 거리를 둔 중요적인 위치에 있었고 이들이 '소프로쉬네'를 실천함으로서 도시 전체의 모델과도 일치하게 된다. 베르낭은 '소프로쉬네는 한 개인인 그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이겨냈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도시를 코스모스로 만들고 또 도시를 극기하도록 만든다'라고 한 문장으로 말한다. 

7.9장은 초기 자연철학자-특히 아낙시만드로서-의 이야기를 꺼내는 듯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연철학의 모델이 어디를 가르키고 있었는 가를 말한다. 베르낭은 초기 자연철학자들의 우주관이 사실은 신적 우주관의 세속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신학이 궁극적으로 제우스를 필두로 한 군주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듯이 자연철학적 우주관은 '도시 체계 내에서 인간 세계를 코스모스로 만드는데 성공을 거둔 법과 질서의 개념을 자연 세계에 투사함으로써 도덕적 정치적 사고를 정교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구형 우주론'과 단일원소 불가론은 다른 말로 하면 어떠한 것도 다른 어떤 것을 일방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는 폴리스의 균형과 대칭의 질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베르낭은 <그리스 사유의 기원>의 결말에서 '이성'이 최초로 헬라스에 표현되고 확립된 것은 정치적 차원에서 였다고 말한다. 헬라스에서 개인은 시민과 분리될 수 없었고 시민들은 스스로 전체 구조를 형성하고 상호관계를 조정해 내었다. 즉 정치적 사유가 다른 사유들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철학이 이성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존재'와 '인식'의 문제를 파고 들었다고 본다.  

우리가 그리스를 읽는 것은 결국 그리스인들이 인간 사고의 역사에 새로운 차원을 부과했기때문이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어떤 질문들과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너무 오래 전의 기억이어서 이제는 낯선 것이 된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므네모시네의 영역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가 된다. 그리스는 여전히 우리에게 너무 많이 알려진 듯 잊혀진 영역이며 또한 부서진 잔해로만 그 속살을 잠깐씩 보여주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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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 잡다가 손바닥 얼어붙은 꼴이 되버렸다. 파업은 거품이었고 그 거품이 가라앉은 자리에 선명하게 누적된 정치적 무능의 결과가 보인다. 

노조는 총회를 통해 두 번에 걸쳐서 '휴가계 사용 불가'를 말했고, 그에 대해 회사가 조치를 취하려한다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전 조합원들 앞에서 밝혔다. 그래서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휴가계를 내지 않고 시위에 참가했다. 그런데 복귀한 다음 날 부터 회사는 팀장들을 통해 경위서를 요구했다. 대상 조합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팀 마다 고성이 오가기도 했고, 전화를 통해 경위서 제출 압력과 협박이 오고 갔다. 물론 각 팀마다 분위기를 알고 조용조용 대응하는 팀장도 있었다. 경위서 제출을 크게 강제했다가는 팀원 전체에게 불만을 살것을 알고 하는 방어적 조치였다. 

노조는 그 날 저녁 다시 비상 총회를 열었다. 노조 위원장이 뭔가 미적거리면서 이야기를 했다. 요지는 "사장과 독대를 통해서 이 문제를 풀겠다. 걱정하지 마라. 시위에 참가하신 분들을 지키겠다. 문제가 대화로 안풀리면 싸움이 장기화될 수 있다. 노조원들이 그것까지 각오해주셔야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경위서 제출해라. 일단 제출하고 만약 인사위원회를 열면 그 때 다시 전열을 가다듬겠다.'  

완벽한 패배의 승인이다.

아직 노조의 공식적 성명이 붙지 않았지만 그 내용을 들은 몇 몇 노조원들은 경악했다. 노조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저버리고 노조원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발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인사위원회가 열려도 이제 아무도 모이지 않는다. 도대체 그 때 무슨 전열이 있겠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집행부 내에서도 고성이 오가면서 그 결정에 대해 불복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집행부 내에서 '그럼 투표합시다.'라는 말이 오갔다고 한다. 우리팀 선배는 집행부를 탈퇴했다. 

몇 몇 사람들에게서 들리는 반응은 이거다. '이제 우리 회사 노조는 없다. 앞으로 노조가 뭐 한다고 부르면 절대 안간다.' 

어제 저녁 집행부를 탈퇴한-거의 패닉상태에 가 있는- 선배를 강제로 끌고 술 마시러 갔다. 그 선배 왈 '이제 모르겠다. 그냥 후배들에게 미안하다.아...모르겠다.이제'  

노조는 그날 낮 이미 휴가계 미제출 시위참가자들에게 경위서 제출을 통보했다. 그 중 일부는 반성문 쓰듯이 제출했다. 이미 쓸어 담을 수 도 없는 일이 되었아. 문제는 이렇게 노조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안그래도 높았던 조합원의 불신이 극에 달하면 끝장이란 것이다. 앞으로 누가 노조의 의지에 동참해주겠는가?

같이 있던 후배는 노조 탈퇴를 통한 복수노조 안을 이야기했다. 중요한 것은 '단절'이라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충격적인 사건에 맞설 수 있는 방식은 충격적인 방식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위원장은 조만간에 집행부와 자진 사퇴를 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것은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조합원의 불신은 차기 집행부까지 이어지게 된다. 내가 내놓은 대안은 위원장의 탄핵이다. 하지만 전체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은 위험하다. 현재 집행부 중에서 차기 집행부 구성에 많이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 집행부 내에서 위원장과 선을 긋는 반대 성명을 통해 '단절'을 선언해야 다음 집행부 구성에서 자유롭다가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위원장은 우리팀 소속 선배고 그 동안 우리 팀 사람들과 관계도 좋았다. 한 때 내 사수로 있기도 했다. 문제는 개인에 대한 애정이나 진퇴여부가 아니다. 노조에 대한 극단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탄핵'이라는 과정을 통해 물러나야지 그나마 상처받은 노조원들의 마음이 달래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노무현 탄핵처럼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위원장에게 탄핵 절차를 통해서 물러나는것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고 설명하고 받아들이게 해야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현재 노조 대의원이 불신임 발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노조 대의원 내부에 성향들도 다르고 따로 대의원 의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20명 정도 대의원 중 실재로 매번 회의를 참여하는 이들은 10명 정도다. 나도 그 중 한명이다. 대의원회의가 열리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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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원래 사흘간 전면 파업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래저래 상황이 그렇다고 하여 3교대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순번 정해서 하루에 대략 30명 가량 상경투쟁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첫 날 갔어야 하지만 허리가 아파서 마지막 날로 미루었다. 

그런데 상경투쟁 첫 날  

회사에서는 간부들을 통해 '휴가계'를 내고 가라고 압박했다. 노조가 멍하고 있는 사이 일부는 휴가를 냈다. 결국 그 날 저녁 노조가 총회를 열어서 위원장이 강단있게 말했다. 

"파업은 회사의 허가를 얻어서 하는게 아니다. 그러니 일체 휴가계를 내지 말아라. 만약 그 일로 부당한 인사조치를 받는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래서 일부는 휴가계를 내지 않고 맘 편안하게 갔다 왔다. 

다음 날. 

회사는 휴가계 안 낸 인간들부터 색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근무지 이탈이니까 경위서를 내라고 압박했다. 간부들은 회의에서 직원들을 질타했다. 

노조..뮝..미? 

결국 그 날 저녁 다시 총회가 열렸다. 

노조 위원장이 나서서....두런 두런 이야기를 했다. 

"사장과 독대해서 이 문제를 풀겠다. 걱정하지마라"  

그런데 위원장이 피곤했는지 앉아 있는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을 달래주지 못한 듯 하다. 같은 팀 소속의 집행부 선배하나가 그런 분위기를 느꼇는지...다시 강하게 '노조가 지킵니다' 라고 분위기를 전환해서 그나마 정리 되었다. 

뭥...미?  

하여간 술도 먹어본 놈이 먹고, 여자를 꼬여도 놀아본 놈이 한다.  

이 문제를 지키지 못하면 노조는 자폭해야 한다. 노조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고 이를 지키지 못하는 노조라면 존재의 필요조차 없는 거 아닌가? 또한 이런 저런 귀찮은 일에 엃혔다는 생각이 개인에게 든다면 앞으로 어떤 투쟁에서도 노조는 불신을 받고 사람들은 슬슬 뒤로 뺀다. '거..해봤자. 괜히 갔다온 사람만 '어' 된다."  이러면 끝장이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의 실용주의...(누군 좋게 이야기했다는데).그게 다 저거에서 나온거다. 친일파와 싸우며 만주벌판을 누빈 사람들은 해방 이후에도 생활보호 대상자로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일제에 빌붙어 일신의 안위만을 추구한 인간들은 그들을 비웃으면서 '그래 봐야 소용없어. 니 살 길이나 챙겨'라고 하고....역사를 제대로 어쩌지 못하면 결국 세대유전되어 이렇게 되는거다. 한 국가나 한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이거 심각한 문제인데 이런 정세 파악도 못한다.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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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였나...아침 7시에 회의를 했다. 높은 양반들 회의하러 가는 시간에 맞추어서..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8시에 도착했고...그 때까지 회의는 시작되지 않았다. 나와야 되는 사람들 중 절반 정도인 7명이 나왔다.  공식적 불신임은 아니었지만 팽배해 있는 중간간부들에 대한 불신임 성격의 회의였다. 즉 대표가 사장과 독대해서 풀겠다...그 수위 문제 가지고 논란이 길었다. 

9시에는 노조 회의....어쩌다 저쩌다 벌써 노조 대의원만 5년째다. 최근에 노조는 대의원의 투표를 폐지하기로 했다. 회사가 직접적으로 대의원들의 성향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 회의를 다녀오면 그 내용이 금새 사장 귀에 들어간다. 무슨 도청 장치가 있는지 ...  

 노조회의 끝나니 팀장 주재 회의...아침 7시부터 11시까지 회의만 했다.

하여간 말 많은 놈이 빨갱이라고...나 역시 위아래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고 있나 보다. 술자리에서 사장도 실실 쪼개시면서 "니 맨날 꼽표 아이가? 불평불만 만타 아이가?" 술자리에서 다른 팀 선배는 "여...강성..이 쉐이 똑똑하고 말잘하고 강성이에요."  

뭐 내 불찰이다. 

그냥 인터넷에서만 급진적으로 중얼 거리거나...촛불집회 가서 이어폰 끼고 함께 구호나 외칠 껄...  얼마나 아름다운가. 들끓고 쏠리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공감하고 나누고.... 

아침 부터 회사 팀별로 고성방가가 오가고 있다. 지금 글을 쓰는데도 20미터 옆 옆팀에서는 중간간부 아저씨가 팀원들 모아 놓고 일장 훈계중이다. 몇 명 대들고 몇 명 담임선생에게 불려간 학생들처럼 고개 숙이고 있고...  

우리 팀도 아저씨들은...각계 격파 이죽거리고... 

어제 한 아저씨는 쓴 웃음과 이죽거림을 양 볼에 물고 내게 와서 이런다. 

"야...그러면 너네들 불법인거야..그럼 개인이 책임져야 되는 부분도 생기는거야 알어?" 

왠만하면 그냥 웃고 말려했는데...어찌나 온 몸에 비아냥의 옷을 입고 있는지.. 

"할 수 없지요.뭐..원래 불복종이란게 어느 정도 희생을 개인이 감내하겠다는 거니까...그래야 한다면 그래야겟지요.뭐"  

출근 했더니 우리 팀에도 고성방가....똘마니와 과격파 선배 사이에 고성방가...  

 

월급들은 잘 받고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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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리는 눈 밭에서    

                      -서정주-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폭으은히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낯이 붉은 處女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運命들이 모두 다 안기어 드는 소리

큰놈에겐 큰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이얘기 작은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기어 오는 소리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속에서는
산도 산도 청산도 안기어 드는 소리   

   

가끔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곡으로 바꾸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생이 한 편의 연극이라면 한 곡의 음악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테니까.  

그냥 별 생각없이 해보는 그런 생각이다. 그리고 그 때 그 때 바뀐다. 예전에는 어떤 곡을 하나 테이프 앞뒤로 전부 녹음에서 듣고 다닌 시절도 있다. 경증 우울모드 상태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요즘 내 즐거움은 '예찬이'를 보는 것이다. 예찬이랑 놀고, 그 아이의 웃음을 여운까지 챙겨들으려고 한다. 그 아이 솜털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하나 씩 배워가는 언어들의 상대가 되어주는 거... 또 가끔 그 아이와 함께 갈 여행을 생각하면서 흐뭇해하는 거.... 그리고 그 아이가 곧 묻게 될 예측불허의 질문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거...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영화 <버터플라이>의 대사들이 생각난다.

영화<버터플라이>에 보면 할아버지와 이웃집 소녀가 그런 아름다운 질문들을 주고 받는다. 

"바다는 왜 썰물이 되는 거야? ...."사람들이 '앵콜'이라고 외치게 하려고"  

"세월은 왜 이리 빨리갈까?"...."바람이 불어주니까"  

"왜 악마와 하느님이 있어?"..."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애깃거리가 되어주려고"  

 

나는 어느 여름날, 예찬이와 캠핑을 갈거다. 노트북에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들을 넣어갈 참이다. 조용한 숲으로 찾아들어가서 우리 둘 만의 음악회를 열거다. 여름 밤의 푸른 어둠이 장막이 되어 주고, 잠 못 이룬 밤 벌레들이 관객이 되어줄 아빠와 아들의 숲 속 음악회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자유의지라면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추억일지도 모르기에... 

벚꽃 피고 진 자리 만큼 짧은 인생이겠지...  
 

....프리드리히 굴다의 ari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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