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눈 밭에서    

                      -서정주-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폭으은히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낯이 붉은 處女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運命들이 모두 다 안기어 드는 소리

큰놈에겐 큰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이얘기 작은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기어 오는 소리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속에서는
산도 산도 청산도 안기어 드는 소리   

   

가끔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곡으로 바꾸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생이 한 편의 연극이라면 한 곡의 음악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테니까.  

그냥 별 생각없이 해보는 그런 생각이다. 그리고 그 때 그 때 바뀐다. 예전에는 어떤 곡을 하나 테이프 앞뒤로 전부 녹음에서 듣고 다닌 시절도 있다. 경증 우울모드 상태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요즘 내 즐거움은 '예찬이'를 보는 것이다. 예찬이랑 놀고, 그 아이의 웃음을 여운까지 챙겨들으려고 한다. 그 아이 솜털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하나 씩 배워가는 언어들의 상대가 되어주는 거... 또 가끔 그 아이와 함께 갈 여행을 생각하면서 흐뭇해하는 거.... 그리고 그 아이가 곧 묻게 될 예측불허의 질문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거...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영화 <버터플라이>의 대사들이 생각난다.

영화<버터플라이>에 보면 할아버지와 이웃집 소녀가 그런 아름다운 질문들을 주고 받는다. 

"바다는 왜 썰물이 되는 거야? ...."사람들이 '앵콜'이라고 외치게 하려고"  

"세월은 왜 이리 빨리갈까?"...."바람이 불어주니까"  

"왜 악마와 하느님이 있어?"..."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애깃거리가 되어주려고"  

 

나는 어느 여름날, 예찬이와 캠핑을 갈거다. 노트북에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들을 넣어갈 참이다. 조용한 숲으로 찾아들어가서 우리 둘 만의 음악회를 열거다. 여름 밤의 푸른 어둠이 장막이 되어 주고, 잠 못 이룬 밤 벌레들이 관객이 되어줄 아빠와 아들의 숲 속 음악회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자유의지라면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추억일지도 모르기에... 

벚꽃 피고 진 자리 만큼 짧은 인생이겠지...  
 

....프리드리히 굴다의 ari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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