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잡다가 손바닥 얼어붙은 꼴이 되버렸다. 파업은 거품이었고 그 거품이 가라앉은 자리에 선명하게 누적된 정치적 무능의 결과가 보인다. 

노조는 총회를 통해 두 번에 걸쳐서 '휴가계 사용 불가'를 말했고, 그에 대해 회사가 조치를 취하려한다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전 조합원들 앞에서 밝혔다. 그래서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휴가계를 내지 않고 시위에 참가했다. 그런데 복귀한 다음 날 부터 회사는 팀장들을 통해 경위서를 요구했다. 대상 조합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팀 마다 고성이 오가기도 했고, 전화를 통해 경위서 제출 압력과 협박이 오고 갔다. 물론 각 팀마다 분위기를 알고 조용조용 대응하는 팀장도 있었다. 경위서 제출을 크게 강제했다가는 팀원 전체에게 불만을 살것을 알고 하는 방어적 조치였다. 

노조는 그 날 저녁 다시 비상 총회를 열었다. 노조 위원장이 뭔가 미적거리면서 이야기를 했다. 요지는 "사장과 독대를 통해서 이 문제를 풀겠다. 걱정하지 마라. 시위에 참가하신 분들을 지키겠다. 문제가 대화로 안풀리면 싸움이 장기화될 수 있다. 노조원들이 그것까지 각오해주셔야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경위서 제출해라. 일단 제출하고 만약 인사위원회를 열면 그 때 다시 전열을 가다듬겠다.'  

완벽한 패배의 승인이다.

아직 노조의 공식적 성명이 붙지 않았지만 그 내용을 들은 몇 몇 노조원들은 경악했다. 노조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저버리고 노조원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발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인사위원회가 열려도 이제 아무도 모이지 않는다. 도대체 그 때 무슨 전열이 있겠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집행부 내에서도 고성이 오가면서 그 결정에 대해 불복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집행부 내에서 '그럼 투표합시다.'라는 말이 오갔다고 한다. 우리팀 선배는 집행부를 탈퇴했다. 

몇 몇 사람들에게서 들리는 반응은 이거다. '이제 우리 회사 노조는 없다. 앞으로 노조가 뭐 한다고 부르면 절대 안간다.' 

어제 저녁 집행부를 탈퇴한-거의 패닉상태에 가 있는- 선배를 강제로 끌고 술 마시러 갔다. 그 선배 왈 '이제 모르겠다. 그냥 후배들에게 미안하다.아...모르겠다.이제'  

노조는 그날 낮 이미 휴가계 미제출 시위참가자들에게 경위서 제출을 통보했다. 그 중 일부는 반성문 쓰듯이 제출했다. 이미 쓸어 담을 수 도 없는 일이 되었아. 문제는 이렇게 노조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안그래도 높았던 조합원의 불신이 극에 달하면 끝장이란 것이다. 앞으로 누가 노조의 의지에 동참해주겠는가?

같이 있던 후배는 노조 탈퇴를 통한 복수노조 안을 이야기했다. 중요한 것은 '단절'이라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충격적인 사건에 맞설 수 있는 방식은 충격적인 방식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위원장은 조만간에 집행부와 자진 사퇴를 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것은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조합원의 불신은 차기 집행부까지 이어지게 된다. 내가 내놓은 대안은 위원장의 탄핵이다. 하지만 전체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은 위험하다. 현재 집행부 중에서 차기 집행부 구성에 많이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 집행부 내에서 위원장과 선을 긋는 반대 성명을 통해 '단절'을 선언해야 다음 집행부 구성에서 자유롭다가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위원장은 우리팀 소속 선배고 그 동안 우리 팀 사람들과 관계도 좋았다. 한 때 내 사수로 있기도 했다. 문제는 개인에 대한 애정이나 진퇴여부가 아니다. 노조에 대한 극단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탄핵'이라는 과정을 통해 물러나야지 그나마 상처받은 노조원들의 마음이 달래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노무현 탄핵처럼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위원장에게 탄핵 절차를 통해서 물러나는것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고 설명하고 받아들이게 해야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현재 노조 대의원이 불신임 발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노조 대의원 내부에 성향들도 다르고 따로 대의원 의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20명 정도 대의원 중 실재로 매번 회의를 참여하는 이들은 10명 정도다. 나도 그 중 한명이다. 대의원회의가 열리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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