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사유의 기원
장 피에르 베르낭 지음, 김재홍 옮김 / 길(도서출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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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시대가 이 세대를 어지럽힐 때도 /그대는 우리와는 다른 고민 속에 /인류에 친구로서 남아 있으리 /그리고 인간에게 그대는 말하리라
“아름다움은 참다움이요 참다움은 아름다움”이라고 - 그것이 그대가 지상에서 알 전부요 그대가 알 필요가 있는 전부다 .                  .... 키이츠 <그리스 옛 단지의 노래>
   

먼 여행을 떠날 때는 언제나 신발 끝을 단단히 묶어 두어야 한다. 첫 발은 무겁지만 이내 눈 앞에 펼쳐질 풍광을 기대한다면 심란함은 찰나의 일이다. 이제 우리는 장 피에르 베르낭의 <그리스 사유의 기원>이라는 책에 기대어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간 여행을 하는 우리의 눈 아래로는 아카데미아에서 토론하는 플라톤이 보이고 거리를 배회하는 소크라테스가 들어온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시장 한 구석에서 시를 낭송하는 호메로스도 지나가고 전차를 몰고 달려가는 아킬레우스의 번뜩이는 갑옷도 보인다. 트로이 성이 무너진다. 조금 더 더 과거로 들어간다. 이제 우리는 BC 2000년 크레타의 미노스 궁전 앞에 와 있다. 왜 이 곳까지 온 것일까?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라는 말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 중 대표적인 중 하나는  '이성' 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 시대 이래 인류는 '이성' 의 진보에 바탕을 둔 역사의 패러다임 안에서 살아 왔다. 최초로 '이성'이란 개념을 알아내고 이를 통해 인류 역사에 기여한 것이 바로 그리스이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이성'의 역사가 아니던가? 서구인에게 그리스는 동양의 요순시대처럼 일종의 원형 지혜의 보고로 기억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전체 문명은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가 아무리 동양적인 것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더라도 인류의 역사가 서양이 주도한 보편적 이성의 역사 위에 정태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또한 동양의 가치와 역사를 지지하는 것이 이런 보편적 이성 개념의 폐기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장 피에르 베르낭은 인류가 아니 조금 더 좁혀서 이야기하자면, 그리스가 어떻게 '철학'이니 '이성'이니 하는 인류의 선물과도 같은 개념들 만들어 내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하여 폴리스를 만들고 그 공간 안에서 이를 어떻게 구체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 민주정의 완성기라는 페리클레스의 시기, 서구 철학의 첫번째 중흥기라 할 만한 플라톤의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장 피에르 베르낭이 그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첫번째 관문으로 내려놓은 곳이 BC 2000년 대이다. 너무 먼 시기라 가물가물한 지점이다. 우리나라 역사로 보자면 단군 왕검이 고전선을 세운 시기가 바로 그에 상응한다. BC2333년이다. 저자는 그렇게 먼 시기부터 시작해서 그리스 황금기 바로 직전에서 여정을 마감한다. 폴리스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의 등장이 바로 이 짧은 책의 마지막 장에 해당된다. 

장 피에르 베르낭은 그리스 세계의 '단절'의 문제를 몇 가지 거론한다. BC 12세기의 도리아인의 침공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과거 그리스의 오리엔트와의 교류를 단절시켰으며, 단출하며 여백을 존중하는 기하학적 세계관을 반영케 했다. 이어지는 시기를 헬레스의 암흑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시기가 끝나며 호메로스의 시대가 온다. 베르낭은 이런 고립과 재구축의 긴 시간들이 폴리스와 합리적 사고라는 새로운 고안물이 등장하는 서막이 된다고 말한다. 결국 그리스는 긴 단절 끝에 다시 재개된 오리엔트와의 교섭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독창성과 우월감을 만들어 내는 사유형식을 고민한다. 그리고 이 시기를 통해 정치적 사고와 철학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스 사유의 기원> 1장은 크레타의 미노스 문명이 갖는 궁전 중심의 문화에 대해 논한다. 이 궁전 문명은 이후 몇 번의 붕괴를 통해서도 사라지지 않고 미케네 문명과 멸망한 크레타를 계승한 아카이아인들에게 까지 계승된다.  2장에서는 뮈케네 사회의 군사조직중심적,궁전 중심적인 미케네 문명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리엔트적인 속성(히타이트)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과거 크레타와 달리 군사적 역할이 강화된 모델이었다. 전사 계급의 특화같은 요소들도 돋보인다. 베르낭은 뮈케네 왕권의 몇 몇 가지 특성을 두고 '관료체제적이며 봉건적' 이라는 분석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견해를 보인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여전히 궁전 중심의, 왕 중심의 체제였다. 뮈케네의 사회상에서 중요한 것은 토지의 분할이다. 토지를 이중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세속토지이고 또다른 하나는 촌락공동체의 토지이다. 앞의 것은 왕과 전사들의 소유이고 뒤의 것은 공동체 땅이다. 이런 토지의 이원화된 구획과 권력의 이원화된 구조는 뒤에 다른 종류의 변화를 예상케 한다. 

3장에서는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발생한 헬라스의 변화에 대해 주로 언급한다. 이 시기 이후를 흔히 헬라스의 암흑기,또는 단절기라고 한다. 오리엔트와의 교류도 단절되고 사회의 주조를 이루는 가치도 달라진다. 이렇게 달라지는 단층은 오히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조건이 된다. 호메로스의 시가들은 이런 단층이 만들어낸 '성과 속'의 분리와 세속화를 지향한 예가 된다. 또한 궁전 중심 체계가 붕괴하면서 촌락공동체와 전사 귀족(가문) 사이의 균형은 공백상태로 남게 되고 이는 새로운 격변을 초래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새로운 혼란이고 그에 대한 반작용은 이를 해소하기 위한 '소피아'(지혜)의 출현으로 나타난다. 뒤에 출현하는 초기 자연철학자의 퓌시스 (자연)개념에도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그리스인들에게  퓌시스는 처음부터 '인간의 세계','인간의 관계'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폴리스니 이소이아(평등),디케(정의),프로네시스(반성)이나 하는 그리스 철학의 모든 개념들은 이런 '인간'의 문제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베르낭은 이런 군주권의 붕괴가 아르케(지배,권력)의 분배형태로 나타난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리엔트인 스키타이의 전설과 아테네의 전설을 통해 그리스가 독특하게 권력의 분배와 상호 역할 분담, 견제 형태로 발전한 특징을 짚어낸다. 그리고 비로소 정치를 위한 '아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준비가 된것이다. 아곤을 하는 곳이 바로 지난해 시대를 거슬러 가장 뜨거웠던 '아고라'이다. 아고라가 가진 의미는 그 공간적 중심성은 물론이고 평등주의 정신,세속화 정신, 인민주의의 정신을 반영하는 상징이된다. 신의 위한 아크로폴리스와 세속을 위한 아고라가 아테네의 가장 중심적인 곳에 위치했다는 것은 도시의 골격이 어떤 정신성을 반영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4장 '폴리스의 영적 우주', 우리는 이제 BC 8-7세기 까지 왔다. 베르낭은 폴리스의 특징에 대해 몇 가지로 요약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폴리스는 무엇보다 다른 모든 권력 도구를 넘는 연설에 대한 탁월성을 함축하고 있다. 이는 정치와 로고스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수사학,궤변술,논리학의 발전을 점칠 수 있게 한다. 두번째 폴리스의 특징은 완벽한 공개성이다. 공통의 관심과 공통의 절차에 대한 강조이다. 왕이나 일부 가문이 보유했던 배타적 특권은 민주화와 드러냄이라는 이중적 이행과정 속에 놓여있게 된 것이다. 베르낭은 이를 '설명의 청구'라는 말로 표현했다. 세번째 특징은 이런 과정들을 '법의 기록'에 대한 강조이다. 정치학에서 '입법의 기능'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강력해진 것이다. 네번째로 중요한 것은 '호모이오이' 즉 국가 안에 모든 사람이 정치적으로 평등하다는 강력한 평등주의적 입장이다. 이것은 현대적 계급의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솔론의 개혁같은 것에서도, 플라톤의 정치철학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평등'은 각기 다른 계층의 역할에 대한 균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베르낭은 이를 '기하학적 평등'즉 '비율'이라고 말한다. 어쨋거나 근대적 계급관념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이다. 그는 폴리스 중에서 베르낭은 스파르트를 가장 강력한 평등주의의 실천이 이루어진 곳으로 보여준다. 공동체중심주의는 어떤 형태로든 개인에게 동일한 요소들을 강제한다. 절제,금욕같은 것들이 스파르타는 물론이고 모든 폴리스에서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는 것은 더 논할 바가 없다.

5,6장에서는 폴리스의 중요한 구성원리들이 틀을 잡아 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우리는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디케의 개념,이소이아의 실천방안,소프로쉬네(절제)에 대한 관념들을 하나씩 읽어 나갈 수 있다. 정의,평등,절제 같은 것들은 여전히 현재에도 울림을 갖는다. 이런 개념들의 대상자이자 주체는 결국 중산계급자들이었다. 적절함과 중용은 계급적으로도 그들의 몫이었고 또한 사회 전체의 가치로도 가장 중심적인 곳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즉 시민계급은 귀족의 오만한과도 일반 대중의 안일함과도 거리를 둔 중요적인 위치에 있었고 이들이 '소프로쉬네'를 실천함으로서 도시 전체의 모델과도 일치하게 된다. 베르낭은 '소프로쉬네는 한 개인인 그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이겨냈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도시를 코스모스로 만들고 또 도시를 극기하도록 만든다'라고 한 문장으로 말한다. 

7.9장은 초기 자연철학자-특히 아낙시만드로서-의 이야기를 꺼내는 듯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연철학의 모델이 어디를 가르키고 있었는 가를 말한다. 베르낭은 초기 자연철학자들의 우주관이 사실은 신적 우주관의 세속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신학이 궁극적으로 제우스를 필두로 한 군주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듯이 자연철학적 우주관은 '도시 체계 내에서 인간 세계를 코스모스로 만드는데 성공을 거둔 법과 질서의 개념을 자연 세계에 투사함으로써 도덕적 정치적 사고를 정교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구형 우주론'과 단일원소 불가론은 다른 말로 하면 어떠한 것도 다른 어떤 것을 일방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는 폴리스의 균형과 대칭의 질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베르낭은 <그리스 사유의 기원>의 결말에서 '이성'이 최초로 헬라스에 표현되고 확립된 것은 정치적 차원에서 였다고 말한다. 헬라스에서 개인은 시민과 분리될 수 없었고 시민들은 스스로 전체 구조를 형성하고 상호관계를 조정해 내었다. 즉 정치적 사유가 다른 사유들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철학이 이성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존재'와 '인식'의 문제를 파고 들었다고 본다.  

우리가 그리스를 읽는 것은 결국 그리스인들이 인간 사고의 역사에 새로운 차원을 부과했기때문이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어떤 질문들과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너무 오래 전의 기억이어서 이제는 낯선 것이 된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므네모시네의 영역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가 된다. 그리스는 여전히 우리에게 너무 많이 알려진 듯 잊혀진 영역이며 또한 부서진 잔해로만 그 속살을 잠깐씩 보여주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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