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흐린 날의 기억  

                                   이성복


새들은 무리지어 지나가면서 이곳을 무덤으로 덮는다
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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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간 여름의 끝은 여름보다 더욱 여름답다. 반면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은 정수리를 서늘하게 한다. 

시인의 산문집<나는 비에 젖은 석류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에 보면 '과잉의도와 과잉반추는 지나친 자기애'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내게 시인이 말하는 '자기성찰의 긴장과 타인의 사랑을 통한 이완'은 여름과 가을 사이의 간극과도 같다. 언젠가, 아니 자주,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이런 줄 위에 서 있는 삶, 길 위에서 끝맺게 될 삶이 인생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 바람은 휘청거리면서도 그 줄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 여름의 끝'에 나는 길 위에 서 있는 삶을 생각한다. 이 계절은 그런 면에서 삶의 거대한 알레고리다. 

  예찬이는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 잘 이겨 내리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예전보다 '절망'이라는 단어를 덜 꺼내게 된다. 아니 덜 꺼내려고 한다. 앞을 내다보면 희망적인 일보다 이 아이가 견뎌야할 절망적인 일들도 많겠지만 감기를 이겨내듯 잘 헤쳐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아니 소망한다. 결국 '비에 젖은 석류꽃잎'같은 아이의 일에 대해  내가 거들지 못하더라도 나는 시인처럼 애정어린 시선을 영원히 놓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에 젖은 시선 속에 인류가 유전자 속에 누적 시켜 내게로 전승시킨 '거대한 뿌리' 의 한 조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힘이 필요하다. 하늘을 바라볼 힘.  

그 여름의 끝, 멀리 가을의 입김이 묻어 있는 그 하늘을 '관뚜겅을 미는 힘' 으로 그렇게 바라봐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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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리, 세상을 깨우다 대한민국 보고보고 시리즈 1
배연형.서희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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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다. 물에 가라 앉은 고향 마을의 돌담길을 따라가는 듯한 여행이다.  

여행은 장소의 이동이다. 그런데 <한국의 소리 세상을 깨우다>는- 제법 거대한 제목의-시간의 역행이다. 몸집으로 뱉어낸 거미줄을 다시 삼키는 거미처럼. 되감기하는 릴테이프의 회전처럼. 소리길을 찾아 나선 여행에서는 공간의 수평선과 시간의 수직선이 교직된다.  

길을 나서자. 

<한국의 소리,세상을 깨우다>의 여정은 서울에서 시작된다. '대한제국 대황제 보령망육순 어극 사십년 칭경기념비'...서울 살면서 광화문 근처를 자주 다녔지만 비각에 눈길을 준 적 없었다. '교보 앞에 무슨 비각이 하나 있었다. 그 정도.' 도로원표...얼핏 본 것 같기도 하다. '광무대'....동대문 근처였다구?

여행은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1900년대 초반 세워진 협률사,원각사,광무대 등 근대식 극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100년이 지난 현재의 서울에서 끝난다. 추측컨데 지금 우리 소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온고지신'의 역사를 통해 이해하고 새로운 각성을 갖자는 것이 여행의 목적인 듯 싶다. 

 소리길은 남쪽을 향한다. 한반도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다. 여행 경로의 방향을 생각하며 잠시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위 전국 여행이라고 할 만한 기행을 살 면서 두 번 했는데 모두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육상 트랙을 돌아도 시계반대 방향으로 도는 데, 왜 나는 그 반대로 햇을까?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본 동해 바다의 수평선의 파란 강렬함이 끌어 들이는 힘 때문이었을까? 하여간 다음 번 여행은 꼭 시계 반대방향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이 여행은 사당패의 본거지 안성부터 시작해서 충남 서천-논산-익산-전주- 고창 -담양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 여행 길라잡이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번 여행에서 특히 살펴보고자 하는 지점을 파악할 수 있다. 저자 배연형 선생은 고음반연구회 활동이나 방송진행 경력 등으로 판소리계에서는 나름 이름이 알려진 분이다. 노재명,정창관, 최동현 선생들과 함께 판소리 대중들에게는 음반 해설이나 판소리 관련 글들을 통해 익숙한 이름이다. 이 분들과 함께 판소리의 대중화에 주력하고 계신 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 소리기행을 전반적으로 담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핵심은 조선 성악의 최고 예술이었다는 '판소리'에 집중되어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책의 분량으로 보더라도 4개의 챕터중 2개 부분이 '판소리기행'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행 가이드 배연형 선생을 따라 본격적으로 소리 기행 중 특히 판소리 여행을 떠나야 할 때다. 안성 청룡사를 떠나면 본격적인 판소리 이야기가 시작된다. 판소리 관련된 2-4장의 첫번째 소제목과 마지막 소제목을 보자. 여행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셈이다.  '중고제의 끝자락 ,거장 이동백'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현대 국악의 중심, 보성소리와 창극'으로 판소리 이야기가 끝난다. 공간적으로 보면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에서 시작해서 전남 보성군과 고흥군 거금도에 해당한다.(거금도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가면 나로호를 발사한 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이다.) 이렇게 여정을 잡은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 여행의 출발이 서울에서 시작해서 남하하여 다시 서울로 끝나는 것도 사실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단지 저자가 서울에 살아서 그런 것 만은 아니다.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도록 하자.  

둘러볼 여행지는 모두 판소리 명창들의 고향이거나 활동 무대들이다. 그곳에 무슨 화려한 유적지 같은 것은 없다. 박물관이나 동상 정도 만나면 다행이다. 하지만 발걸음 마다 '오리정의 이별'을 앞두고 울부짖는 춘향이의 설움과 '상좌 다툼'을 하는 민화 속 동물들의 웃음이 묻어 있다. 여기 등장하는 명창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서천 장항의 이동백, 김창룡 명창, 판소리의 중시조 송흥록 명창, 30년 앞을 보고 판소리를 했다는 익산의 정정렬 명창, 최초의 판소리 이론가라 할만한 고창의 동리 신재효 선생, 순창의 김세종 명창, 장판개명창, 서편제의 시조 박유전 명창, 최초의 여성 판소리 스타 이화중선 명창, 쑥대머리의 임방울 명창, 구례의 유성준,박봉술 명창, 보성소리의 정응민 명창, 창극의 개척자 김연수 명창.....그 외에도 소리의 사숙 관계를 통해 수많은 명창들의 이야기가 덩쿨칡처럼 얽혀있다. 

저자는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도 않은 판소리의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개략적으로 판소리의 역사와 명창들의 계보를 정리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 동편제,서편제,중고제의 계보와 판소리 다섯바탕의 전승 계보를 그릴 수는 없다. 하지만 딱딱하게 씌여질 수 있는 개론서들 대신 쉬엄 쉬엄 여행하는 기분으로 판소리 이야기와 명창들의 야화들을 섞어 들으며 판소리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소리, 세상을 깨우다>에 나오는 주요 지역들 중 이미 가 본 곳들도 꽤 있다.그렇지만 나 역시 판소리에 관심을 갖기 전까진 하나 같이 그냥 스쳐 지나쳤다. 5-6년전에 보성 차밭에 갔더니 한복을 아름답게 차려입은 여인이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도 '아..보성. 차말고도 판소리도 유명하지' 하면서 그냥 지나쳤다. 그랬으니 정응민의 고택을 애써 찾을 일 만무하다. 낙안 읍성도 흥미롭게 돌아다녔지만 그곳이 송만갑,오태석 명창과 관련있는 전혀 알지 못했다.(아이가 크면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전라도 소리 여행'을 한 번 꼭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다. 이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진도도 포함될 것이다.) 

판소리 명창들의 일화들과 야화들은 사실 이런 저런 판소리 책을 읽다보면 여러번 중복되는 내용들이다. 그들이 살았던 장소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풀려나오니 현장감이 높다는 것이 장점이 될 터이다. 여기서는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다 언급하지는 않겠다. 과거 명창들의 소리는 대략 저작권도 만료되었을 테니 조금만 공을 들이면 음반을 통하지 않고도 온라인 상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껏 소리를 잡아 올렸다 '턱'하고 내려놓는 이동백 명창의 소리나 과거 명창들의 더늠을 잘 흉내내었다는 김창룡 명창의 소리, 장자백, 이선유,이화중선 등등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이 여행의 발걸음을 따라 간다면 훨씬 좋을 듯 하다. 

자...앞에서 이야기한 배연형 선생이 '충남 서천부터 보성까지 판소리 여정'을 잡은 이유를 이야기할 때다. 그것은 '판소리 전파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판소리를 들으시는 분들은 이미 눈치를 채셨을 것이다. 판소리 발생 논쟁은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판소리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전성기를 누린 음악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무가기원설, 설화기원설,광대소학지희설,육자배기토리설, 창우기원설 등등... 그런데 이중 핵심은 '무가기원설'이다. 주장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판소리에 있어서 창자들이 전문적인 집단이나 사람이었다는 점과 판소리의 시작이 시나위권 중에서 주로 전라도 지역이라는데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발생론의 기점에 대해 다른 이견이 '중고제 기원설' 또는 '경기충청 기원설'이다. 이 책의 저자 배연형이 바로 대표적인 주창자이다. <한국의 소리, 세상을 깨우다>의 구성이 남쪽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북쪽에서 출발해서 땅끝인 보성과 거금도에서 끝나는 것, 즉 남하하는 여행을 채택한 것, 이것은 판소리의 남하를 주장을 해온 저자의 판소리 전파론을 여행 여정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여행의 여정이 저자가 주장하는 판소리의 진화 방식과 같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중반부에서 부터 주류의 '무가기원설'에 대해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다가, 중반부와 결말부에서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피력한다. 

흔히 동편제와 서편제의 경계선을 섬진강으로 보지만 그보다는 전라북도와 남도의 경계선에 해당하는 노령산맥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쉽다. 요컨데 판소리는 경기와 충청에서 발생하여 점차 전라북도로,그리고 전라남도로 퍼져나갔다. p250 

그러니까 저자의 주장으로 보자면 판소리는 경기,충청의 중고제 소리(그 전에 고제 판소리가 있다) 가 전라북도 쪽으로 가서 동편제 소리가 되고, 이후 계면조와 기교를 더한 서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서편제 중에서 박유전으로 부터 정씨가문으로 계승된 보성소리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과정이 200년쯤 걸리게 되면서 맨 먼저 시작된 중고제는 전통이 끊기고, 송씨 가문의 동편제 소리도 송만갑을 경유하여 조금 변모하고, 주로 서편제와 보성소리가 현대 판소리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경기 충청에서 시작해서 보성에서 판소리 기행을 끝맺는다. 그리고 이런 도정을 통해 남하한 판소리가 보성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와 주류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해 말<판소리 100년의 타임캡슐>이라는 책을 통해서 방대한 실증적 자료를 통해 이를 입증했다고 하여 학계에 관심을 끌기도 했고,또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니까 <한국의 소리>이 책은 <판소리 100년의 타임캡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책인 셈이다.

그럼 과연 무엇이 판소리 기원론 또는 전파론의 정답이냐? 누가 알겠는가? 여하튼 그의 각고의 노력으로 판소리에 대한 연구의 폭이 넓어질 것 만은 사실일 듯 하다. 그러나 배연형 선생의 '경기충정지역 기원설'은 판소리계에서는 비주류적인 견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설명만 믿고 어디 가서 '판소리는 경기충청에서 시작해서 내려간 거다.'라고 너무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좀 갸우뚱 하거나 머뭇거릴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내 관심을 끄는 또 한가지 빠뜨리기 쉬운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명창들의 전신 사진들이다.  여러 판소리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사진이다. 명창들은 모두 한결 같은 포즈다. 그들은 모두 한시 한폭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을 찍었다.그런데 이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을 사진사이다. 이 사진은 모두 벽소 이영민 선생이 찍은 것이다. 그는 전문사진사도 아니고-그 시대에 그런게 있었겠는가?- 판소리 명창도 아니다. 그는 일제시대 순천사람으로 우리 소리의 중요성을 알고 명창들의 사진뿐만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귀명창이다. 진정한 남도의 문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진옥섭의 <노름마치>에도 보면 이영민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명창들 뒤에 있는 시는 바로 벽소 선생이 명창들의 소리를 평한 내용이다. 자존심 강한 당대의 명창들이  자신의 소리를 평가한 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벽소 선생의 문장이나 공력이 명창들의 소리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자를 다 모르고 한문시를 제대로 독해하지 못해서 사진 속의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음이 무척 안타깝다. 이 책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벽소 선생의 이런 글이 쉽게 찾아진다.   

복사꽃 훈훈한 밤 봄성(春城)엔 달빛이 가득
버들 숲엔 안개끼고 누각엔 바람이 부네.
한 마디 맑은 노래 하늘은 강물결과 같은데
하늘음악(仙樂) 구름 중에서 울리는 듯 하여라  

                                         장흥 김녹주 명창에 대한 벽소 선생의 한시.

어차피 명창이 될 수는 없는 몸들이니 벽소 선생의 마음 자락 한 줌만 훔쳐도 즐거이 소리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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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 일 트로바토레
TDK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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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트로바토레>는 '음유시인'을 말한다. 요즘 말로 하면 '싱어 송 라이터'쯤 될까?  극 중 주인공 만리코가 자신을 레오노라에게 그렇게 위장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복수의 대리인이며, 루나 백작의 정적이자 연적이다. 오페라<일 트로바토레>의 스토리는 두 개의 큰 기둥이 있다. 각각의 기둥에는 '복수' 와 '사랑'이라고 씌여있다. 인류가 '겨울을 대비하여 햇빛을 모으고' (내가 좋아하는 동화책 <프레드릭>에 나오는 말이다. 프레드릭은 생쥐 작가다.) 가장 많이 곳간에서 꺼내 먹는 소재이다.  

<일 트로바토레>는 신화나 민담의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유럽에 구전되던 신화나 민담 등이 베르디의 음악으로 형상화 된 것으로 보인다. 오페라에는 '유아살해' 라든가 '근친살해' 같은- 백작와 만리코의 관계는 카인과 아벨과도 같다.- 요소들과 '마녀설화' 같은 요소들이 들어 있다. <일 트로바로레>의 도입부 성문 장면에서 백작의 근위수장인 페르란도가 화자가 되어 그 간의 상황을 요약한다.  

 현재 영주인 루나 백작의 아버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둘째 아들에게 변괴가 생긴다. 유령같은 집시 여인이 아이를 만져보고 나서 아이가 병이 생긴 것이다. 이에 분개한 백작의 아버지는 여자 집시를 화형에 쳐한다.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 복수 해줄 것을 부탁하는데, 그 즈음 백작의 둘째 아기가 사라지고 만다.그리고 화형대에서는 집시의 유골과 함께 반쯤 타다 만 아기의 뼈가 발견된다. 

페르난도의 설명은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 집시 딸인 아주체나가 등장하여 아들 만리코에게 복수를 외치며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줄 때까지는 말이다. 집시 딸인 아주체나는 화형식이 있던 그날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울며 어머니를 따라간다. 그리고 몰래 백작의 둘째 아들을 납치했던 것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고통을 보며 아기를 불길 속에 밀어넣는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백작의 아기가 옆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그렇다. 처절한 공포와 분노,슬픔 앞에서 그녀는 정신을 놓친 것이다. 그녀는 백작의 아들 대신 자기의 아기를  불에 밀어넣은 것이다. 

아주체나는 이제 어머니와 자기 아들의 비극적 죽음의 원인이 백작 가문에 있다고 생각하고, 장성한 첫째 아들, 루나백작의 복수를 도모하는 것이다. 불길에 던져지지 않고 살아남은 백작의 동생 만리코를 통해서 말이다. 그녀는 만리코를 자신의 아들로 키웠던 것이다. 그런데 아주체나가 사악함의 전형적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데 이 오페라의 매력이 있다. 그녀는 실제로 복수를 꽤하지만 만리코를 정말 자기 아들처럼 생각하고 키운 것이다. 결국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형제 간의 살육을 유도하면서도 자기가 키운 아들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갖고 있는 모순적인 어머니가 아주체나 인 것이다. 그녀의 이런 이중적인 딜레마는 그녀의 캐릭터를 살아있게 만든다. 아주체나는 결국 <일 트로바토레>에서 '복수 라인'의 중심 축이다. 

스토리의 또 다른 한 축은 '사랑 이야기'이다. 루나 백작이 만리코에게 적대감을 갖게 된 원인이다. 루나와 만리코는 한 여인을 두고 사랑의 경합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그녀가 레오노라이다. 레오노라는 음유시인으로 위장한 만리코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럴 수 록 루나 백작의 분노와 질투는 커진다. 자기와 비할바 없는 음유시인 따위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비천한 자에게 여인을 빼앗긴다는 모욕감과 질투 앞에 칼을 들게 된다.   



 1978년 카랴얀이 빈 슈타츠오퍼와 함께 연주한 <일 트로바토레>는 이 오페라의 공연물 중에서 고전의 반열에 꼽히는 영상이다. 카라얀은 여기서 지휘는 물론이고 무대,조명,의상 등 무대 연출에도 직접 관여하여 '카라얀 프로덕션'으로 이 작품을 완성한다. 당시 잘츠부르크 무대에서 활약하던 카라얀은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 <일 트로바토레>에 특히 매력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영상물 내지의 해설을 보면 '일트로바토레에서 원형적 인물들을 보았기'때문이라고 한다. 이 공연물을 원래 TV로 유럽 전역에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캐스팅과 관련된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이 공연물에서 30년전의 싱싱한 목소리의 플라시도 도밍고의 만리코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프랑코 보니솔리가 이 역을 맡기도 되어 있었으나 그의 공연 리허설에서 그의 상태가 거의 최악이었던 듯 하다. 그래서 대타로 급히 도밍고가 캐스팅되었다.  

<일 트로바토레>는 특히 4명의 남녀 성악가들의 고른 안배가 매력적인 오페라이다. 이 공연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기준 중에 하나는 4명의 각기 다른 성역의 가수들이 얼마나 재기량을 보여주었느냐, 그리고 그들의 조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는가이다. 카라얀의 <일 트로바토레>공연물이 고전 반열에 오를 수 있다면 이 음반이 그런 4명의 카리스마 있는 가수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만리코의 도밍고는 -지속적으로 지적되는- 고음의 한방은 보져주지는 못하지만 젊고 윤기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카라얀의 오페라 연출에서 지적된다는'배우들의 정적인 움직임'에 있다. 도밍고의 장점 중에 하나는 그가 이탈리아 테너들처럼 청량한 고음을 장착하고 있진 못하지만 극 중 배역에 대한 몰입과 연기력에서 동급 최강 대우를 받아왔다. 부드러운 면모와 분노의 화신이 되어야 하는 만리코는 그런 면에서 역동적인 모습이 필요한데 이 오페라에서 도밍고의 움직임은 정적이다.  

루나 백작의 피에로 카푸칠리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바리톤의 안정감을 보여준다. 특히 부리부리한 눈동자와 백작의 근엄함을 느끼게 해주는 목소리는 훌륭하다. 또한 연인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들어낸 질투의 감정 역시 그의 선 굵은 목소리에 잘 어울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새롭게 발견한 소프라노가 레이아나 카바이반스카 이다. 세계적인 목소리임에도 칼라스나 서덜랜드급의 대우를 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흘려 지나갔던 듯 하다. <일 트라바토레>에서 그녀는 고혹적인 미모와 그에 어울리는 기품으로 자기를 희생하는 레오노라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곡인 '사랑의 장미빛이 날개를 타고'라고 노래하는' D'amor sull'ali rosee'같은 곡에서 그녀의 여리면서 기품있는 목소리는 은빛 메차보체를 끌어낸다. 그리고 이들 세명이 함께 부르는 삼중창 Di geloso amor sprezzato 도 좋다. 



그렇지만 내가 <일 트로바토레>를 들을때 가장 민감하게 듣는 사람은 아주체나다. 이 역할은 독성이 대단하다. 그래서 너무 이 역할을 잘하면 다른 역할에서 무디어질 수도 있다는 역설도 존재한다. 카라얀의 사랑을 받은 메조 소프라노가 바로 피오렌차 코소토이다. 그녀의 아주체나는 뱃 사람을 원귀로 만든다는 세이렌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세이렌의 미소 뒤에는 늘상 독이 발린 비수가 숨어 있다. 피오렌차 코소토의 목소리가 그렇게 강력하다. 종종 그녀를 전시대의 최고 메조소프라노 줄리에타 시묘나토에 비교하곤 한다. 시묘나토가 조금 더 귀족적이고 풍요로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레퍼토리에소도 시묘나토가 조금 더 넓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내게 최고의 아주체나는 피오렌차 코소토이다. 그녀는 카라얀의 <일 트로바토레> 말고도 명반으로 알려진 툴리오 세라핀이 지휘한 음반에서도 아주체나를 맡았다. 도밍고보다 조금더 더 좋아하는 카를로스 베르곤지가 그의 아들 만리코 역을 맡았던 음반이다. 카라얀의 이 영상물에서 피오렌차 코소토는 가장 연극적인 분장을 했다. 마치 디오니소스 제전의 광란의 여사제같다. 백박마녀전의 마녀처럼 코소토의 아주체나는 활활 타오르는 분노를 무대 위에서 내뿜는다. 끊어오르는 독성의 용광로처럼 이글 거리는데 이 점이 가장 큰 매력이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주체나의 이중성-즉 복수의 화신이자 어머니로서의-이 그 강력함에 가려지는 부분이다.   

조각같은 외모의 카랴안답게 사운드는 풍부하고 미려하다. 영상의 화질은 아무래도 78년 작품이다 보니 요즘 것들과 비교하면 곤란할 듯 하며,또한 무대 연출은 전통적인 스타일이지만 무대를 화려하게 만드는 제피렐리식과는 거리가 있다.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이 인상적이다. 한 세대 전에 좋은 가수들의 맹활약으로도 기억될만한 영상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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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낮에 예찬과 해운대에 있는 장산에 다녀왔다. 산책을 하다가 죽어 있는 잠자리를 보고 설명도 해주고, 잠자리를 물에 보내며 "좋은데로 가세요."로 했다. 

아이가 머리에서 땀이 난다며 자꾸 긁기에 근처에 작은 약수터에 가서 세수를 시켜주었다. 집에 잇는 물보다 차가왔던게 인상적이었나 보다. 시원하다며 얼굴이 환해지더니..."약수" 라는 말을 머릿속에 새겨갔다. 약수터 앞에서 둘이 포도도 아옹다옹 먹고 즐거운 산책이었다. 

그런데 그 날 오후부터 예찬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은 최악이었다. 때마침 둘째 재원이마저 앙앙 울어댔다. 예찬이는 몸이 아프니 마음도 서럽고 펑펑 울고... 평소에는 모두 나랑 잘 놀던 친구들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다 필요 없다. 엄마뿐이다. 거의 1시간을 둘이서 스테레오로 울었다. 

저녁 8시쯤 열을 재어보니 38.8 도였다. 해열제는 먹이지 않고 어디서 얻어온 해열 패치를 머리에 붙였는데 그거 안붙이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한 10여분 씨름을 했다. 

아침에 예찬이 체온을 재었더니 1도 가량 내려갔다. 

아내와 나는 신종플루에 대한 걱정을 동시에 해야만 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열재어보고 문제가 있으면 바로 병원으로 가자고 이야기해두고 나왔다 

오전에 잠시 열이 내려갔다고 하더니 오후 다섯시 무렵에는 39도 가까이 또 올랐다. 결국 부랴부랴 퇴근에서 근처에 있는 신종플루 거점 병원으로 향했다. 토요일에 예찬이 친구와 놀이동산을 다녀왔고, 또 마트도 갔다왔기 때문에 더욱 그랫다. 

보건소에서는 이미 신종플루 검사를 하지 않는다. 정부의 플루 대처방안이 바뀌었기 때문이다.흔히 신종플루 검사는 독감검사부터 해서 A형 판정이 나오면 2차 신종플루 검사에 들어간다. 그런데 어제 갔더니 곧바로 신종플루 검사를 했다. 사흘 정도 있어야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타미플루를 바로 처방했다. 몇 가지 과정들에 대해 의사에게 물었는데 의사의 설명이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타미플루의 효과는 48시간 내에 가장 높다는 것도 들었던 것 같고, 플루 대책이 바뀌어서 의심이 가면 일단 처방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일주일전 정부의 방향과는 또 달라진 것이고 이건 신종플루의 양상에 따라 바뀔 수 밖에 없다. 

비용은 대략 4만원 미만이었지만 일단 본검사로 바로 들어가고,또 처방을 곧바로 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만, 병원의 영리 목적을 위한 방식이라고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쉽게 말하지는 않겠다. 그런 의혹들이야 플루 초기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플루에 대처한 정부의 방침이 너무 안이했던 것이 사실이기에 그것이 더 문제다. 질병관리본부장이 어제 부랴부랴 백신 구하러 출장나가는 모습을 TV 뉴스를 통해서도 봤다.  보건문제에 대해 국민들도 내심 조금 걱정은 하면서 "설마 나는" 이라는 뜻모를 자부심 역시 좀 문제가 된다. 다행을 바라는 소망과 현실은 좀 다르다.  신종플루가 3천명이라는데 모두 자기나 자기 아이들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할게다. 그런데 나는 어제 밤 아이와 자면서도 "예찬이가 만약 플루라면 나 역시 안전치는 못하겠군." 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저 저녁 TV로만 보던 타미플루를 아이에게 먹였다. 그리고 태어나서 3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에게 해열제라는 걸 먹였다. 그 덕인지 어쨋는지....오늘 아침에 열이 37도정도로 많이 내려갔다. 아직 안심할때도 아니고 결과는 사흘 정도 있어야 될 터이니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한다. 

간호사랑 약사랑 그런 이야기를 했다. "예전 같은 면 그냥 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넘길텐데 요즘은 일단 감기가 단순 감기가 아닐 수 있어서 아무래도 불안하지요. 증상이 감기랑 별반 다르지 않으니 검사해보지 않으면 알 수도 없고.." .... .... 

요즘은 감기만 걸려도 일단 의심이 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맘 때 최상의 건강 수칙은 '감기조차 걸리지 않는다.' 이다. .. ...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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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을 생각하며

                                   김수영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ㅡ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담뱃진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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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자유가 영원히 궁기에 찬 빈 그릇이듯 혁명이란 말도 그렇지 않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상상력으로만 근근히 보릿고개를 넘기는 혁명을 보면서도 말이다. 

혁명 이후에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빈 방이었다. 혁명은 그 빈 방 앞에서 마치 만 개의 열쇠꾸러미를 뒤지는 성 바오로처럼 꾸물거린다. 늘상 먼저 열쇠구멍을 열고 들어간 '혁명 이외'의 것의 뒤통수를 주머니나 뒤적이며 바라보는 것이다. 집을 찾지 못하는 혁명은 투덜거리며  동사무소로 향한다. 면서기의 고압적 눈길을 정수리에 받으며 삐둘 삐둘 빈 칸을 채우고 자신은 다시 세입자로 살거나 또 다시 길을 헤맨다.  

지나치게 비관적인 말이다. 맞는 말이다. 역사의 적층하는 힘을 너무 무시한 것일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전통적인 혁명을 나는 꿈 속에서도 그리지 못한다. 작은 반란들은 가끔 꿈에 출몰해서 졸린 눈 속에서도 혼자 멋적게 한다.  '방만 바꾸고, 가벼움마저 재산이 되어 버렸는데도 가슴만은 풍성한'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바리케이트를 넘는 것도 혁명이지만 생활세계에서의 혁명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아니 평생을 걸만큼의 의지와 용기가 바탕이 되어야 '가래침'이라도 뱉을 수 있는 것이다.   

너무 멀리 있어 아무 소리도 전달되지 않는, 또는 소리가 들려도 들으려 하지않는 푸른 집의 어느 인사와 싸우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당장 내 코 앞에서 이를 쑤시고 있는 과장에게, 틈틈이 넓은 사무실에서 퍼팅연습하고 있는 전무이사에게 목소리를 전달하고 반항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멀리있는 적에게 고양이처럼 도도하면서도 가까운 그의 분신들에게는 먹이를 구하는 강아지처럼 쪼그라드는 것은 아닌가?   

아무 말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혁명은 내적 혁명부터라는 식의 자기초월적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고 또 경험하는 그 비루함.  

거기 일부러 손을 대는 것은 상처에 염증을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다. 무슨 강박적인 근본주의자가 되기 위함도 아니다.  

 내 스스로에게 묻는거다.  

멀리 있는 적에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덜질 수 있는 비수를 가까운 곳에서도 머뭇거림없이 던지고 있는지 말이다. 그냥 '무시'라는 간판을 내건 '회피'의 이름으로 돌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상처에 파상풍이 깊어져 내 영혼이 도려내어져서는 안되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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