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흐린 날의 기억  

                                   이성복


새들은 무리지어 지나가면서 이곳을 무덤으로 덮는다
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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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간 여름의 끝은 여름보다 더욱 여름답다. 반면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은 정수리를 서늘하게 한다. 

시인의 산문집<나는 비에 젖은 석류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에 보면 '과잉의도와 과잉반추는 지나친 자기애'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내게 시인이 말하는 '자기성찰의 긴장과 타인의 사랑을 통한 이완'은 여름과 가을 사이의 간극과도 같다. 언젠가, 아니 자주,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이런 줄 위에 서 있는 삶, 길 위에서 끝맺게 될 삶이 인생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 바람은 휘청거리면서도 그 줄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 여름의 끝'에 나는 길 위에 서 있는 삶을 생각한다. 이 계절은 그런 면에서 삶의 거대한 알레고리다. 

  예찬이는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 잘 이겨 내리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예전보다 '절망'이라는 단어를 덜 꺼내게 된다. 아니 덜 꺼내려고 한다. 앞을 내다보면 희망적인 일보다 이 아이가 견뎌야할 절망적인 일들도 많겠지만 감기를 이겨내듯 잘 헤쳐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아니 소망한다. 결국 '비에 젖은 석류꽃잎'같은 아이의 일에 대해  내가 거들지 못하더라도 나는 시인처럼 애정어린 시선을 영원히 놓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에 젖은 시선 속에 인류가 유전자 속에 누적 시켜 내게로 전승시킨 '거대한 뿌리' 의 한 조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힘이 필요하다. 하늘을 바라볼 힘.  

그 여름의 끝, 멀리 가을의 입김이 묻어 있는 그 하늘을 '관뚜겅을 미는 힘' 으로 그렇게 바라봐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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