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놀러감. 예찬이 모래 위에 맨발로 다니기 시작함. 바다가 혀를 낼름거림.  



19금. 아빠의 연출. 표정 연기는 저 친구가 스스로 한 것임. 훌륭한 모델과 신통치않은 사진가. 




거의 다 읽었지만 리뷰를 언제 쓸지 모르는 로쟈님 책. 재미 있었음. 로쟈식 웃음의 발견, 내내 자근자근 웃다가 '자명종-벤야민'과 '확성기-히틀러'에서는 자빠졌음. 로쟈님이 좋아한다는 '짜라'의 한 대목은  나도 좋아하는 구절. 서곡 4장 자체가 다 cool하다.  



보리....이 작은 친구의 태명은 보리. 부처의 '보리심'의 보리, 함께 자라난 보리밭의 '보리'. 콩콩 뛰는 심장 소리가 보리알 처럼 탱글탱글. 이번에도 조산원....형이 태아났던 그 곳에서 동생도 태어났다. 아이들은 언제나 자기가 태어난 곳. 자기를 받아준 사람을 이모처럼 만날 수 있다.조산사가 페업을 신청하기 전까진... 나...신촌 유문자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나이가 들어 신촌 방향을 지날때면 그 병원을 둘레둘레 찾아보았다. 없었다.    

아이 둘을 조산원에서 낳은 아빠로서...이런 말할 자격은 될 듯. 출산은 질병이 아니다. 산모 역시 환자가 아니다. 차가운 병원, 아이를 기억해주지도 못하는 의사와 간호사, 낳자마자 공동합숙생활을 하는 아이들...이런 도구적이고 편의적 합리성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좋은 조산원은 대안이 된다.   

정보 내지는 홍보를 하자면....우리 집에 있는 두 친구는 모두 연산동에 있는 '한우리조산원' 출신이다. 이곳에서 출산한 엄마들의 인터넷 카페도 있다. 연산로터리에서 신리삼거리 방면으로 가다보면 연산초등학교가 보인다. 초등학교 정문을 지나 5m 가서 일방통행로로 우회전 한다. 그 길 끝까지 가면 작은 2층 양옥집이 있다. 작은 정원이지만 식물들이 많다. 

조산원 원장 선생과 우리는 같은 요가원에 다닌다. 예찬이 엄마의 태교이야기를 듣고 요가에 혹하셨다. 원래는 유연성을 위해 발레를 하시려고 했다나... ㅋ.. 



예찬이는 요주의 대상이 되었다. 한가지는 과도한 애정 표현이 불편함을 만들기 때문이고,또 상대적 소외감을 자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인방어를 하고 있는데...전담 수비수가 나다. 오늘도 오전에 밀착마크했다. 평소보다 내가 더 알랑거리고 성질 안내고 비위맞추고...살랑거린다. 둘째가 태어나면 아무래도 첫째는 어리둥절하기 마련...  

..p.s 내가 요즘 살랑거리는 고양이 꼬리같은  마음으로 틈틈이 집어 드는 시집이다. 

바람구두가 쉰다는데....나도 따라 갈까...고민해본다.그전에 바빠서 쉬게(?)될 가능성이 높아보이긴 하다. 역설은 미적이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렁이 속같은 세상>이라는 수필집이 있다. 개인적으로 아끼는 글모음집이다. '최후의 분대장' 고 김학철 선생이 남기신 글이다. 그 수필집에 보면 <독립운동사의 과대망상증> 이라는 글이 있다. 글은 이태백의 과장법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망여산폭포중>에 나오는 " 비류직하삼천척" 이라는 표현 말이다. 김학철 선생은 문학이나 예술에서 사실에 바탕을 둔 과장은 허용될 수 있으나 다른 영역에서는 곤란하다고 말씀하신다. (과장의 반대,완소법이나 그 외 의도적 축소도 마찬가지이다. 거리의 시위대중의 숫자에 대한 집계축소는 대한민국 경찰의 복무수칙 중에 하나임은 명백하다.) 

김학철 선행은 1998년 10월 23일 <조선일보> '봉오동전투' 기사를 문제삼는다. -지금부터 아마 헷갈릴 거다.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것은 싫은데, 독립운동의 성과를 축소하기도 싫을테니..그런데 둘 다 김학철 선생과 내가 말하는 방향을 잘못잡고 있는거다.- 조선일보에는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명을 부상시킨...그리고 10월 일본군의 1개 여단을 사살..." 이런 말이 나온다.김학철 선생은 이게 부풀려진것이라고 말한다. 냉소적 어투로 "봉오동 전투는 300배쯤, 청산리 전과는 한 500배쯤 부풀려져서 세종문화회관을 경축모드로 채워놓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참가했던 조선의용대 함화공작의 경우 '일본군 병사 200여명의 투항'이라는 보고에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2명을 포로로 잡았을 뿐이라고 한다. 전쟁에 대한 보도란게 그렇지 않던가. 전의를 불태우고 후방의 인민들에게 의욕을 고취하려면 그런 조작들이 횡횡하는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기도 한다. 김학철 선생은 '독립운동'의 의지에 먹칠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최후의 분대장이었음을 기억하시라- '독립운동'이라는 드높은 가치에 복무하기 위해 '민족'의 이름을 조작되는 저널리즘적인 역사기술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남과 북이 모두 이런 우를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김학철 선생은 서울보성고등학교에 초대된 '위대한 보성인' 수상식 소감에서 이렇게 말해버린다. 

"일본군과 싸우긴 싸웟지만 열에 아홉은 졌소이다. 400만 이상의 군대가 마구 엎치락 뒤치락하는 판에 조선 의용대 총 몇 백자루가 고작. 그걸 가지고 어떻게 큰판 싸움을 벌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세발의 피지요. 그런 걸 혁혁한 전과라시는데는 낯이 간지럽습니다. 우리의 항일무장투쟁은 그 전과정을 통해 대첩 운운하는 따위의 거창한 용어로 표현할 만한 전역을 ,우리 단독으로는 애당초에 치러보지를 못했습니다.....자꾸 지면서도 일본군이 무조건 항복을 하는 날까지 계속 달려든 것만은 평가받을 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은 과도한 레토닉에 대한 김학철의 겸손함을 살펴야한다. 툭하면 내뱉는 '민족의 영웅','불후의 문장가','난세의 등불' 등등의 주례사식 레토닉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볼 내용이 있다. 내가 생각컨데 김학철의 소감 중 두가지에 주목해야한다. 나는 두가지 말이 모두 맞는 것 같다. 하나는 전쟁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마지막 평가이다. 마지막 평가를 과장하기 위해 앞의 결과를 수정해야하는지, 또는 최소한 미화시켜야 되는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김학철과 그의 분대원들은 여전히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여간... 

나탈리 에니히의 <반고흐 효과>- 알라딘 예술MD가 고흐를 소개하며 이 책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뛰어남의 증거이다- 는 분명히 예술사회학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현재의 추모열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학적이며, 정신분석학적으로 인용될 수 있는 몇가지 아이디어를 준다. 이 책은 예술사회학이자 고흐를 중심에 둔 대중심리학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연역적으로 구성되는 고흐의 경우와 앞으로 다양한 변수가 산재해 있는 현재의 경우를 같은 맥락에서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정신분석학'이라는 말을 넣은거다.고흐의 경우는 분석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지만 현재의 경우는 가능태로 무수하게 열려있다. (사실 무지하게 조심스럽고 소심하게 쓰고 있다게 느껴질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알라딘의 글쓰기가 그렇게 되었다. 이해는 바라지도 않으니 오해나 하지마라.)  

이명박이 쫓겨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것도 솔직히 자신하진 못하겠다. 어느 누구도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 위의 선택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대신 이명박이 다음 정권까지 그 영속성을 유지하긴 힘들어보인다. 즉 최소한 보수우익들이 칼날을 잡아도 이명박을 도마뱀 꼬리로 삼아야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 같긴 하다. 실제 노제에 참가한 사람들이나 추모객들이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는 그저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단순한 휴머니즘에 기인한 추모객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의 본바탕이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실책-이걸 실책이라 해야 될지 모르겠다. 본성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행동이 맞는듯 한데-은 그런 이들이 가진 '망자에 대한 예의'조차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장례에 대한 예의'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은 유물론적 진보주의자들이 아니라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이다.  

덕분에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올라갔다. 제각각 동상이몽을 꿈꾸며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받는데 사활을 걸었다. '죽은 제갈공명으로 산 중달을 이겨보겠다.' 는 염원인데 사실 이건 '염원'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현재 그 '공명의 후광'의 적자로 나선 정당은 '민주당'이다. 조만간 유시민을 비롯해서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 낼 지 모르겠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노무현과 대립한 경험이 있어서 기댈 수도 없다. 오래전부터 사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드러누운 용도 새끼 봉황'도 없었다.  다음 번 대선에서는 어떤 때보다 '비판적 지지' 열풍이 강할 것 같다. '노무현'에 대한 대속의 정신과 '비판적 지지'는 정비례할 것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 한나라입니까.이번엔 힘을 합쳐 막읍시다.' 이런 정서를 누가 막겠는가?  민노,진보신당 당내에서도 극심한 논쟁에 시달릴 것이다. "그럼 이명박과 추종세력들이 대통령되는 걸 두고보자는 겁니까?" 두 당의 기본 정서 상 비지론을 당론으로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그런 '당정체성' 자체를 흔들기 때문이다. 당원들중에 다수는 당론과 달리 비지를 선택할 것이다. 자기가 꼬박 꼬박 돈 내는 정당의 후보를 뽑지않고 다른 당의 후보를 뽑는것이다. 물론 일견 좀 어처구니 없어보이기는 하지만 당이라는 자체가 동일한 구성체가 아니기때문에 사회적으로 보면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차라리 그 마당이 되면 한국에서는 한번도 실시해본 적이 없는 대연정에 들어가서 한자리 차지하는게 낫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나는 과거 노무현을 찍지 않았다고 '교조주의자' 내지는 '비현실주의자', 심지어 '한나라당 2중대' 라는 말을 들었다. 어느 분이 이 땅의 진보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이 땅을 떠난 어떤 초월적인 구성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저런 말 들으면 역설적이게도 정말 이 땅의 진보에는 기대하고픈 마음이 떨어지긴 한다. 차라리 대한민국의 헌법으로 모든 정당을 다 없애고 미국식으로 공화당/민주당 양당체제로만 남겨 놓는게 좋을 것 같다. 진정 그게 국론분열과 분열된 진보를 해결하는 길처럼 보인다.진보적인 사람들도 선택이 쉽고 말이다. (이건 반어적이다.) 현재 정치적 편가름의 고정점이 '노무현'이 되고 있는 것은 나로서는 우려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새벽 5시에 눈이 떴다. 곧바로 TV로 달려갔다. 반복되는 그림들을 너무 오래봐서 푸른 잔디를 보니 졸린 눈이 빨리떠졌다. 후반전이 시작된지 얼마지나지 않았다. 박지성은 후반전 중반쯤에 교체되었고... 경기는 거의 압도적으로 바르셀로나의 분위기였다. 맨유는 후반전 제대로된 공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는 단단한 수비와 미드필더를 바탕으로 한번에 빠른 공격을 이어갔다. 메시가 헤딩 골을 넣었고...사실 조금 더 치고 받는  화끈한 경기를 원했는데...좀 실망스러웠다. 맨유는 '압도' 당했다기 보다는 찐득함에 손발이 무거워진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된 팀 컬러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해서 좋긴 한데...그 보다 훌륭한 경기를 보지 못해서 ...졸린 눈이 아깝다. 

 

2.지젝은 죽음에 대해 두가지 형식을 말한다. 

'산 죽음' 과 '죽은 생명'이다. 

 생물학적 죽음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은 상징적 죽음이다. 지젝이 '죽지 않으려는 시체'라든가, '두 번 죽어야한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생물학적 죽음은 실재계의 죽임이고 주체적 위치가 소멸되는 것은 상징적 죽음이다. 

지젝에 따르면 '삶과 죽음의 이항대립은 상징계 바깥에 사는 이들의 살아있는 죽음, 실재계의 광기 속에서만 존속하는 신체들로 보충된다. 두 죽음사이의 간극은 괴물이나 아름다운 것의 출현'으로 채워진다. 

 한가지 착각하지 않아야 되는 것은 '괴물이나 아름다운 것'이 '선이나 악'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말 상징적 질서의 붕괴에 대한 리액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흐레 동안 그들은 수많은 장작을 날라왔다. 그러나 열 번째로 인간에게 빛을 가져다주는 새벽이 밝았을 때/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대담한 헥토르를 밖으로 들어내어/ 그의 시신을 높다란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거기에 불을 질렀다.//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이 나타나자 이름난 헥토르의 장적더미 주위로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일리아드>, 24권 784행-789행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중에서 단 한 장면만을 꼽아야 한다면 나는 '프리아모스 왕,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아킬레스를 찾다' 를 고를 것이다.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아들을 찾기 위해 노구의 왕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 동맹의 천막을 찾는다. 신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헥토르의 장례를 위해 며칠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프리아모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 열하루째 되는 날 그를 위해 무덤을 만들어줄 것인즉, 열이틀째 되는 날 꼭 필요하다면 우리는 싸울 수 있을 것이오".  아킬레우스는 선뜻 이렇게 답한다. "프리아모스 노인이여! 그 모든 것이 그대의 명령대로 될 것이오."   



준족의 전쟁-기계 아킬레우스의 이 결정은 단순한 영웅에서 한층 성숙한 영웅으로의 변모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실제로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와의 12일 장례기간 약속을 지켜준다.  

이명박씨는 '최고의 예우를 갖추라'는 말의 메아리가 채가시기도 전에 당장 그날 밤부터 이런식으로 약속을 지켜주었다. 그는 늘 여론의 뒷북을 타고 도는 일을 한다. 과잉 대처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이 기간동안 어떤 움직임이 있을지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다른 종류의 크고 작은 마찰은 불보듯 뻔하다.  영화 <친구>의 마지막 장면에도 장동건의 졸개가 유오성을 막으려할 때 장동건이 이렇게 말한다. "그냥 보내줘라... 오늘 아부지 제사라 카더라...보내줘라."  조폭도 제사는 챙겨준다. 

개인적으로 명계남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는 어제 너무 흥분한 나머지 "국민이 죽여놓고 무슨 국민장이냐?" 라고 날선 말을 했다. 상가집에서 흥분해서 나온 말은 사실 그냥 잊어주는게 예의이다. 그렇지만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심리적으로 부딤감을 갖는 이들도 많아서 이런 말은 해야 할 것 같다. 명계남의 발언은 정말 흥분해서 뱉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명계남은 노무현 대통령을-망자를 언급하는 행위가 다시 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게 된다.-뽑아주고 지켜주지 못한 '대중'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해자들이 어떻게 국민장을 할 수 있냐는 말이다. 얼핏들으면 또 그럴듯 해보이고 뭔가 죄책감때문에 고개를 떨구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에 앞서 대표적 친노 인사로 유명한 영화배우 명계남(57)은 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이 국민장으로 치러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데 대해 "국민이 죽여놓고 무슨 국민장을 하느냐"며 "국민장을 하면 가만 안 놔두겠다"고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명계남은 이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했던 192명의 문상이나 화환을 절대 받아줄 수 없다"며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일보) 기자들이 들어오면 가만 안 두겠다"고 말했다.

먼저 명계남의 첫번째 착각은 '대통령과 주군'을 혼동하는 것에 있다. 명계남에게 대통령은 주군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유권자에게 대통령은 동일한 충성을 바쳐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즉 대통령의 임기 내에 대통령에 대한 판단은 여러가지 형태로 수정될 수 있고 수정되어야만 한다. 명계남은 자신의 입장을 과잉일반화해서 '주군에 대한 충정'을 말하고 있다. 명계남 개인으로는 그런 행동 양식이 타당할 수 있고 지조있는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대중에게 전도시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먼저 노무현 전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단일한 지지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기억이 2MB가 아니라면 5년전 대선 상황을 떠올려서 복기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에 가장 충성도가 높았던 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노사모이다. 많이 해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노사모가 일가친척을 동원해 올인 투표를 했다고 해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은 여러 차례의 당내 경선, 그리고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통해 여러 가지 이해와 성향이 다른 후보들의 지지층을 혼합시켰다. 거기에 막판 정몽준의 배신행위로 분산된 표의 결집까지 있었다. 즉 노무현의 충성스러운 지지층과 그가 얻은 득표수를 착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고보면 처음부터 노무현을 물에서 건져주고 보따리까지 챙겨줄 지지층은 생각만큼 그렇게 두껍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국민'이고 '대중'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 중에는 노무현보다 좀 더 보수적인 지지층도 있엇고, 훨씬 진보적인 지지층도 있었다. 그들은 투표행위를 한 것이지 '충성'서약을 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의 행보에대해 지지하면서도 예의주시하는 층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움직이는 대중'이다.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항목별 지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들은 또한 충격적인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 또 깊은 애도를 보내고 있는 것일뿐이다. 이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작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대중'을 고정된 무엇. 대개는 수동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실로 '대중'이라는 철학적 개념이든 '대중문화'라는 문화적 개념이든 대중에 대해 반쪽만 편의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언젠가 말했지만 대중은 양가적 존재다. 대중에게는 수동적인 면이 있고 그 반면에 역동적인 면이 있다. 대중은 총체적으로 관리되는 즉 전체적으로 보이는 순간에도 실제 어떤 선별적 수용을 취한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대중'에 대해 일면적으로만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서 어디에 더 주목할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다.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쨋다구?>의 역자 한보희는 이런 표현을 한다. 좀 길지만 이 이야기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전체주의 사회의 인민들은 죄다 반민주주주의자로 낙인찍는 것인데(이를 테면 대중독재) 이러한 사고는 민주주의에 관한한 순환적 정의- 민주적인 인민이 만드는 사회만이 민주적이다-로 빠져들거나, 그 자체로 반민주적인 발상인 엘리트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즉 전체주의적 우중들은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거나 민주주의를 망쳐놓는다는 식이다. .... 그리하여 '대중 독재'라는 역설적 관념의 반대편 극단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민주 파쇼' 라는 또 하나의 기괴한 관념이다.  

나는 솔직히 엘리트주의란 말은 거창하고 '대중에 대한 스노비즘' 정도가 아닐까 싶다.대중에 대한 스노비즘에는 일관된 방향성이 없다. 본인 스스로 대중이기 때문에 대중으로서 자처하지만 다른 대중과의 차별을 중요시 여긴다. 대중 속의 재엘리트화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하는 짓에 대해서는 무언가 거부감이 생기고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될 것같은 강박이 생긴다. 차라리 전통주의적인 엘리트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이야기 나누기 쉽다. 하지만 봄날 풍선 날아가는 듯 한 '대중에 대한 스노비즘'은 본인 스스로도 일관성이 없어서 규정해내기 쉽지 않다. 이런 스노비즘 속에는 -모든 것은 아니겠지만- 정신적 미성숙과 관계적 성찰의 미숙함이 담겨있다. 

명계남은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한 국민을 비난하고(이것에 왠지 모를 죄책감을 자극한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겠지만-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있지만 실제로 비난의 화살은 노무현의 측근들에게 더 돌아가야한다. 만약 명계남이 그 측근이었다면 그 역시 노무현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책임이 국민보다 더 크단 말이다. 안희정,이광재가 구속수사를 받았던 것은 노무현 재임기간 중이었다.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한 개인으로도 보지만 그와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의 집합체로 읽기도 한다. 도덕성와 원칙을 지키겠다는 대통령 옆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했다면 사실 먼저 책임졌어야하는 것은 그런 측근들이었다. 이명박의 과잉수사로 전직 대통령이 불미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그 옆에서 더 크게 운다고 그들의 잘잘못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을 더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국민이 아니라 측근들 아니었나 생각한다면 이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그런데 문화계 측근으로 알려진 명계남씨는 '국민이 죽였으니 국민이 책임지라고 한다.'  

물론 명계남의 말 중에는 한가지 명백한게 들어있다. 그동안 노무현을 가장 괴롭혔던 게 누구인지 밝힌 부분말이다. 그것은 보수 언론이었다. 처음에 어떻게 해보려던 노무현은 결국 언론과의 타협을 시도했다. 하지만 취임 초부터 끝까지 언론은 노무현에게 악의적이었다. 그것이 비판이었다고 말한다면 악의적인 것과 비판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거다. 흥미도 끌지 못할 만큼 재미없는 것은 조중동의 논리로 노무현을 공격하다가-즉 노무현을 가장 괴롭히던 주장들을 수용하다가- 죽음 이후에 갑자기 그 책임을 '대중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명계남이 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과거 행각을 대중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이다. 결국 '대중'은 똑같은 식으로 또 다시 죽음의 책임자가 된다. 물론 대중들이 그 죽음에 어떤 책임이 없다는 말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발화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인없는 '대중'을 비판의 도마위에 올려놓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공히 그 죽음에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대중들의 행동' 쪽에 있을까 아니면 '노무현의 측근'과 '보수언론'의 지속적 행동 쪽에 있을까?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건 ,노무현을 비판했건.. 설령 한나라당을 지지했을지라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성숙한 인간들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이다. 추모 행사를 버스로 둘러막거나...나야말로 '진성'이고 '적자'인데 ..너희들 그간 뭐라 했어.빠져..라는 것은 이 시점에  미성숙이거나 어리광의 증거이다.    

7일간의 국민장으로 결정난 듯 하다. 아킬레우스가 그랬듯이 조용히 추모의 정으로 그 분을 보내드리는 시간이다. 나 역시 긴 언설로 가시는 걸음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풍장 49  

 -황동규

늦가을 저녁 아우라지강을 혼자 만나노니/ 나의 유해 예까지 끌고 와 부릴 만하이. 

앞산 한가운덴 잎갈이나무들 위통 벗고 모여/ 마지막 햇빛 쪼이고 있고, 

주위로 침엽수들 침착히 서서/ 두 강이 약속 없이 만나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껄끄러운 두 강 만나/ 고요한 강 하나 이룬다. 

빈 배 하나 흔들리며 떠있다./ 시간이 고이지 않는다. 

 

유해 끌고 오다 고단하면/ 어느 잿마루에 슬쩍 버려도...... 

강 만나러 가다/ 끝내 못 만난 강처럼. 

----------------------------------------------------- 

오늘 낮에 처음 소식을 접하고 하루 종일 먹먹하다.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간 길에도 그 먹먹함은 그림자처럼 내 뒤를 따른다. 

살면서 이제 그만 무던할 것이라 다짐했던 것은 늘상 거짓으로 입증된다. 한 밤의 정전처럼 다가오는 어떤 일들에 마음이 쓰이고 흔들거린다. 

살면서 두 명의 대통령의 비보를 듣게 되었다. 첫번째 독재자의 비극적 죽음은 어린 나이였기에 큰 충격이라기 보다는 어른들의 불안감이 주는 불편함이었다. 거기에 TV속에 비쳐지는 그 음울함과 장송곡들이 초등학생인 내게는 너무 싫었다. 내게 그 대통령의 비극적 사건보다 더 충격적인 죽음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다가왔었다. 고 김광석의 죽음이다. 오늘 오전 노무현대통령의 비보는 김광석의 부음 소식이후 내게는 최고의 충격이었다. 낮 동안 뉴스특보를 보고 다시 또 저녁에 뉴스특보를 봤다. 같은 내용이 고장난 테이프처럼 반복되고 있는데도 계속 보게 된다. 마음은 강가에서 내려놓은 종이배가 작아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처럼 쓸쓸하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5공 청문회가 물론 가장 컷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청문회의 스타는 노무현만이 아니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야당 총재 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 스타중에는 두 정객 밑에서 여당 국회의원으로,또 각료로 허명과 비난을 받았던 이들도 상당하다.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망자의 모습은 3당합당에 반대하며 울분을 토하던 그의 모습이다. 당회의장에서 질질 끌려나가면서 울음 반, 고함 반으로 달려가던 모습. 내가 참가했던 90년 가투 중에서 선배들이 흥에 겨워 '오늘 같은 시위라면 정말 이건 우리가 승리다.' 라고 했던 시위가 90년 봄 3당합당 반대 시위였다. 수유리에서 대충 시위를 하고 지하철로 암암리에 신세계 백화점 분수대 앞으로 몰려 들었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골목 골목 숨어있던 대학생들이 어디서들 그렇게 많이 쏟아져나왔는지. 당시 TV 뉴스에서도 경찰이 규모를 예상하지 못하고 고전했다고 보도한 걸로 안다. 

나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유는 진중권의 생각과 동일하다. '진보정당 구축'이 더 중요한 과제로 여겨졌고, 또한 비판적 지지와도 싸웠다. 하지만 노무현이 꾸릴 공간에 기대감을 가졌고 실제로 그가 만든 탈권위적 분위기속에서 사회 전체적으로 진보운동의 공간이 확보된 것도 사실이다. 그분을 을 찍지도, 절대적 지지도 보내지 않았지만 대부분 진보진영이 그랬던 것처럼 얼토당토 않은 '탄핵정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구해냈다. 그리고 또 다시 그 분과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에 오히려 더 나은 모습으로 남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분의 소탈한 성격과 대중친화력, 서민적 정서같은 것들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햇다. 그건 정치인 노무현보다 사회운동가 노무현에 대한 기대였다. 전직 대통령이란 후광도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현직에서의 문제는 이미 비판할 것은 한 것이고 다시 되돌려 어쩔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의 후반생이- 실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간혹 언급되는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 같은 모습을 남아 주길 바랬다. 집 짓기를 하던지 농업운동을 하던지 환경운동을 하던지...하지만 그동안  애증어렸던 나의 바람도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하루 종일 몇 번을 본 뉴스를 다시 또 본다. 다른 영상들을 볼 때는 착잡하고 그가 겪어온 지난 험난한 시절의 이야기를, 그의 영욕을 돌아보는 영상이 나올 때는 코 끝이 찡하다. 최소한 한국정치사에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같은 인물을 만나려면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했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당당히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은 그보다 더 지난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가슴 깊은 곳에서 추모한다.... 부디 평안하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