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 49  

 -황동규

늦가을 저녁 아우라지강을 혼자 만나노니/ 나의 유해 예까지 끌고 와 부릴 만하이. 

앞산 한가운덴 잎갈이나무들 위통 벗고 모여/ 마지막 햇빛 쪼이고 있고, 

주위로 침엽수들 침착히 서서/ 두 강이 약속 없이 만나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껄끄러운 두 강 만나/ 고요한 강 하나 이룬다. 

빈 배 하나 흔들리며 떠있다./ 시간이 고이지 않는다. 

 

유해 끌고 오다 고단하면/ 어느 잿마루에 슬쩍 버려도...... 

강 만나러 가다/ 끝내 못 만난 강처럼. 

----------------------------------------------------- 

오늘 낮에 처음 소식을 접하고 하루 종일 먹먹하다.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간 길에도 그 먹먹함은 그림자처럼 내 뒤를 따른다. 

살면서 이제 그만 무던할 것이라 다짐했던 것은 늘상 거짓으로 입증된다. 한 밤의 정전처럼 다가오는 어떤 일들에 마음이 쓰이고 흔들거린다. 

살면서 두 명의 대통령의 비보를 듣게 되었다. 첫번째 독재자의 비극적 죽음은 어린 나이였기에 큰 충격이라기 보다는 어른들의 불안감이 주는 불편함이었다. 거기에 TV속에 비쳐지는 그 음울함과 장송곡들이 초등학생인 내게는 너무 싫었다. 내게 그 대통령의 비극적 사건보다 더 충격적인 죽음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다가왔었다. 고 김광석의 죽음이다. 오늘 오전 노무현대통령의 비보는 김광석의 부음 소식이후 내게는 최고의 충격이었다. 낮 동안 뉴스특보를 보고 다시 또 저녁에 뉴스특보를 봤다. 같은 내용이 고장난 테이프처럼 반복되고 있는데도 계속 보게 된다. 마음은 강가에서 내려놓은 종이배가 작아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처럼 쓸쓸하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5공 청문회가 물론 가장 컷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청문회의 스타는 노무현만이 아니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야당 총재 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 스타중에는 두 정객 밑에서 여당 국회의원으로,또 각료로 허명과 비난을 받았던 이들도 상당하다.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망자의 모습은 3당합당에 반대하며 울분을 토하던 그의 모습이다. 당회의장에서 질질 끌려나가면서 울음 반, 고함 반으로 달려가던 모습. 내가 참가했던 90년 가투 중에서 선배들이 흥에 겨워 '오늘 같은 시위라면 정말 이건 우리가 승리다.' 라고 했던 시위가 90년 봄 3당합당 반대 시위였다. 수유리에서 대충 시위를 하고 지하철로 암암리에 신세계 백화점 분수대 앞으로 몰려 들었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골목 골목 숨어있던 대학생들이 어디서들 그렇게 많이 쏟아져나왔는지. 당시 TV 뉴스에서도 경찰이 규모를 예상하지 못하고 고전했다고 보도한 걸로 안다. 

나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유는 진중권의 생각과 동일하다. '진보정당 구축'이 더 중요한 과제로 여겨졌고, 또한 비판적 지지와도 싸웠다. 하지만 노무현이 꾸릴 공간에 기대감을 가졌고 실제로 그가 만든 탈권위적 분위기속에서 사회 전체적으로 진보운동의 공간이 확보된 것도 사실이다. 그분을 을 찍지도, 절대적 지지도 보내지 않았지만 대부분 진보진영이 그랬던 것처럼 얼토당토 않은 '탄핵정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구해냈다. 그리고 또 다시 그 분과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에 오히려 더 나은 모습으로 남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분의 소탈한 성격과 대중친화력, 서민적 정서같은 것들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햇다. 그건 정치인 노무현보다 사회운동가 노무현에 대한 기대였다. 전직 대통령이란 후광도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현직에서의 문제는 이미 비판할 것은 한 것이고 다시 되돌려 어쩔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의 후반생이- 실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간혹 언급되는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 같은 모습을 남아 주길 바랬다. 집 짓기를 하던지 농업운동을 하던지 환경운동을 하던지...하지만 그동안  애증어렸던 나의 바람도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하루 종일 몇 번을 본 뉴스를 다시 또 본다. 다른 영상들을 볼 때는 착잡하고 그가 겪어온 지난 험난한 시절의 이야기를, 그의 영욕을 돌아보는 영상이 나올 때는 코 끝이 찡하다. 최소한 한국정치사에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같은 인물을 만나려면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했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당당히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은 그보다 더 지난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가슴 깊은 곳에서 추모한다.... 부디 평안하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