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sa님의  1:1 게시판으로 올라온 알라딘의 해명입니다. 

안녕하세요?
알라딘 고객팀장 표종한입니다.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 속에서 기사를 대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송구한 일로 글 드리게 되어, 저희 또한 마음이 한없이 무겁고 안타깝습니다.

질의하신 사항에 대하여 솔직하게 저희 상황과 입장을 회답드립니다.

알라딘은 연중 최대 성수기인 3월1일~3월31일, 9월1일~9월30일 두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단기근무인원을 모집합니다.
성수기에는 비수기보다 주문량이 30~50% 이상 증가하는데, 그 지속기간이 2~3주밖에 되지 않아 단기인력의 확보가 불가피합니다.

게다가 파주지역은 대규모 인력확보가 어려워 도급업체의 지원 없이는 정상운영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기고하신 김종호님도 이 경우에 해당하여 8월 31일~9월30일간 도급업체를 통해 근무하셨습니다.

이런 단기근무에 대해서는 계약시에 특별히 주의하여 이 사실을 고지하도록 도급업체에 요청하고 있습니다만,계약과 관리에 문제가 있었는지, 이런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앞으로 개선할 점이 없는지 확인하고 조치하겠습니다.

알라딘은 2년을 계속 근무한 비정규직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절차를 거쳐 정규직화하는 정책을 법정의무기한 이전부터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도급업체를 통한 근무자에 대해서도 급여차등을 두지 않으며, 도급 근무규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인력채용이 가능할 수만 있다면 도급업체에 별도로 수수료를 지출할 필요가 없는 이점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부족한 점을 다시 돌아보고, 서비스뿐 아니라 회사의 모든 면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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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알라딘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알라딘을 '정의의 담론 공동체'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알라딘은 인터넷을 통해 책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여기서 두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해야 한다. 하나는 기업 경영이라는 기술적 측면과 기업 경영의 철학적인 면이다. 알라딘의 사장이 전직 운동권이었고 또 진보잡지 말의 기자 출신이었다는 것은 기업 경영의 철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앞선 경영의 기술적인 측면과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이런 간격, 이런 틈은 분명히 발생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런 충돌의 공간이 있다는 점은 반드시 인정해야한다고 본다.  갈림길에서 알라딘이 우리 사회에 일반적인 사기업의 경영 방식과 달리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길 바라는 편이다. (내가 그렇지 못한 회사에 다녀서 더 그렇다.) 최소한 알라딘의 표팀장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는면-이건 잠정적인데- 알라딘이 다른 기업에 비해 노동착취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어 보인다. 물론 원청업체로서 하청업체의 고지의무 관리에 소홀한 점은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근원적인 것이다. 근로자파견법의 가장 허술한 지점은 원청업체의 책임과 하청업체의 책임 소재를 분리한데 있다. 아마 그것이 많은 대기업들이 근로자파견업체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원청업체는 책임 소재를 하청업체에 넘기면 되기 때문이다. (알라딘이 최소한 원청업체로서 일련의 책임을 외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먼저 알라딘이 사회정의에 부합하고,좌파적(?) 기업에 어울리게, 단기고용인원 마저 정규직화해서 쓰기는 어려워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알라딘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반응은 그냥 소망이다. 어떻게는 모르고 그냥 아름답기만을 바라는 막연한 소망. 그건 기업 경영의 기술적 측면에서 어불성설이다. (내가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열혈 좌파는 '다 필요없다. 그건 정의가 아니다.' 라고 해버리는 속시원한 명쾌함이다. 얼마나 시원한가? 자기는 선명,명쾌한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고..)   표팀장이 밝혔던 두 시즌 동안 인력공급이 단기적으로 많이 필요한 건 분명 사실일 듯 하다. 농촌을 예로 들어보면 쉽다. 과일 하우스를 한다고 쳐보자. 일년 내내 하우스에는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출하기 때는 정말 정신이 없다. 그냥 능력되는데까지 두 부부가 출하하면 될까?...물론 자급자족형 소규모 농사에서는 가능하다. 그런데 대부분은 서울 가락동이나 부산 반여동 농수산물 시장으로 보내야 한다. 과일을 따는 시점은 아주 한정적이다. 더 놔두면 낙과하거나 상품성이 떨어진다. 결국 웃돈을 주고라도 사람을 써야한다. 서부 경남 같은데 가보면 출하기때는 진주나 부산같은 도시에서 일당받고 일하러 오는 아주머니들도 꽤 많으시다. 왜 같은 지역에서 쓰면 될 텐데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농촌에는 노인분들 외에 사람이 없다. 그래서 교통비를 더 얹져주고라도 도시에 있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을 일당으로 쓴다.  앞서 말했듯이 알라딘이라는 원청업체의 하청관리 문제는 지적받아야 하지만 기업의 특수성에 따라 단기 고용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길게 농촌 이야기를 썼다.  

그 단기 고용이 필요한 시점이 끝났는데 그 기업이 더 어떻게 고용상태를 유지하겠는가?  농촌에서 사과,배 다 따고 서리 내리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하겠는가?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이걸 가지고 '정의'를 운운하고 '좌파'를 운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인정상 보면 정말 안타깝다. 가장이 일자리를 잃어버리는데 그렇지 않겠는가. 알라딘이 귀책사유가 있어서 부당노동행위 소송을 걸 수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소를 통해서 알라딘에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장기적으로 안정된 직장도 얻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알라딘의 부당노동 행위여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건 잠정적으로 두고 봐야겠다. 그 때까지 불매 운동이나 서재 폐지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기업경영의 기술적 측면과 철학적 측면의 공간에서 어떤 결과가 어떤 조정이 나오는지를 봐야지, 일단 무슨 일만 벌어지면 '정의'와 '선'의 이름으로 현실의 냉혹함과 사안의 미묘함을 장악하려는 것은 문제다. 우리들은 사실 모두 파견업체와 관련되어 있고, 그런 노동 구조 속에 있다. 그런게 구조의 힘이고 무서움이아닌가. 마트에 가면 파견업체 소속 직원들이 태반이다. 학교는 아니라고? 학교 경비원들도 과거에 감단직 노동자였다.아파트에도 그런 파견업체 소속 경비원들이 거의 다수다. 택배 회사는 아닌가?  이건 거시적인 문제이다. 

  파견업체를 쓰는 것 자체가 권장할만한 일은 결코 아니다. 아니 기업은 직접 고용비율을 높여야만 한다. 그렇지만 진보적(?) 성향의 알라딘이 그것을 썻다는 것이 더 부도덕한 일이라거나 더 이율배반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는 그런 틀로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건 자칫하면 도덕적 근본주의에 빠질 위험이 농후하다. '노동 유연성'의 문제는 당위론적 방식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흐름이 되어 버렸다. 이론적으로 노동 유연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저항하는 것과 그런 현실의 흐름이 슬금슬금 세상을 장악하고 그에 대해 대책을 세우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전자의 방식이라면 결론은 한가지 밖에 없다. 파견업체를 불법화하고 모두 정규직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불가능하다. 파견업체의 부당성을 인식하고 수정해 나가돼  불법노동이나 부당노동 행위문제를 제기하고 사안별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있는 회사에서도 과거 파견근로자의 초과근로 수당문제가 파견업체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있을 때는 고용문제로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말 많으면 바꾸면 되니까...(이게 파견업체법의 악랄함이다.) 젊은 친구들이 서명을 부탁해서 나와 우리 팀 사람들은 아주 흔쾌히 싸인을 해주었다. 원청에 해당하는 우리 회사 경영진을 비난했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과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회사 노조에서는 거래가 있는 노무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결국 원청인 우리 회사에서는 그 친구들과 어느정도 합의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가지 않고 절충안으로 소급해주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3분의 1이상이 비정규직 또는 아웃소싱이다. 나는 물론 이 회사와 동일한 정체성을 갖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해당 기업의 구성원으로서 이 상황이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다.  

 정의로운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직접 고용의 형태가 늘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아직 정규직 완전고용을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그런 노력과 정규직화의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이 사회에서 좋은 기업이라 칭할만하다. 알라딘이 전향적으로 전직원의 정규직화를 내건다면 모범이 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성수기 단기고용까지 그렇게 해내기는 힘들것이다.)내 블로그가 있는 알라딘이 좀 더 섬세하게 이 문제에 대처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점점 더 나은 기업이 되어주길 바란다. (내가 있는 회사는 거의 불가능하니 말이다.이 곳은 대놓고 말로 하진 않지만 장기적으로 현재 있는 부서들 중 몇 개의 분사까지도 심심파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 같다. 위기를 계속 강조할 때 위협적으로 그런 말도 가끔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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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가 많아지니 나 역시 스스로 댓글 하나를 더 써여겠다. rosa님의 '연대론'은 내가 객관적인 것처럼 쓴 글에 대한 가장 좋은 돌파법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지켜봐온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객관주의'나 '사실판단'의 추종가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은 모듯 곳에 있다'는 푸코식의 언명을 믿는 편이다. 물론 연대의 방법은 동일하거나 같은 강도일 필요는 없다. 꼭 읽어 보시길 바란다blog.aladin.co.kr/petite/3189244 

 잘 보면 알겠지만 내 글은 기본적으로 초월적 견지에서 객관의 이름을 가장하고 있다. 나같은 쁘띠 회색분자들의 특징은 핵심에 몸을 던지기 보단 외곽에서 말을 던진다는 것이다. 분열적인가? 맞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분열적 자기 고백을 하느냐 하면 '객관' 의 이름으로 내 글이 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무슨 판단,무슨 판단 등등으로 바뀌는 과정은 결국 현실의 구체적인 땀과 피를 텍스트화하는 것이다. 그런 텍스트화는 철학하는 길이긴 하지만 현실과의 쟁투는 아니다. 그런 종류의 텍스트화는 자칫 주체를 현실에서 건져내며 분리시킨다. 즉 내가 분열적이라고 말한 것은 알라딘에 대해 유보적인 이런 생각임에도 궁극적으로 그 노동자와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결코 분열적이지 않다.  내가 말한 것은 '연대'비판이 아니라 '판단방법'의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도덕이나 정의의 이름으로 또는 통상적인 당위론의 이름으로 내리는 판단과정에 대한 것 말이다.   rosa님의 연대론은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며 그 가치를 잊어서는 안된다. 연대는 100% 동일한 조건과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것이 연대의 기본이다. 상황을 텍스트화하여 공중에 붕띄워 놓고 이런 저런 방향으로 실험하는 것은 연구실 실험자의 일이지 생의 중심에서 쟁투하는 사람들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훌륭한 도움은 내 우산을 버리고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산을 함께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그렇다.그런데 그 경우에는 나와 상대만을 구제만을 의미할 뿐 '연대'의 힘을 발휘하긴 힘들다. 비를 맞는 것은 비합리적이지만 그 비합리가 가장 큰 힘을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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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내가 속해 있는 팀의 팀장이 명예퇴직을 했다. 당시 회사는 술렁였다. 인간적인 흠결들을 떠나서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등이 강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직종의 후배인 내가  보기에도 그는 업무적인 면에서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모종의 순수함같은 것도 지키고 있었다. 또한 내가 있는 직종 출신으로는 간부회의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우리 팀의 입장을 전하려면 싫으나 좋으나 그를 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역시 중간 간부로서 회사와 직원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 뒤에 온 팀장들과 비교해 봤을 때 그 스트레스를 본인이 다 감당한 편에 가까왔다. 이후 팀장들은 회사 경영진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말들을 시시콜콜 전체회의에서 전달한다. 마치 고장난 녹음기처럼. 어쨋거나 회사가 주는 스트레스로 그는 신경계에 스트레스성 질환까지 생겼다. 그리고 몇 달 후 자진해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나 역시 그 점에 있어서는 안타까와 했다. 

하지만 난 이 양반과 불가원불가근의 관계였다. 그의 정치적 위치-즉 그가 같은 직종으로 위협받는 현재의 권리들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에 대해 지지를 보낸 것이다. 이 양반은 가끔 술 먹으면 개가 되곤 했다. 기분 좋은 술자리에서도 점점 술이 과해지면 폭언과 폭력이 일상적이었다. 내가 겪은 것만도 한 두가지가 아닌데....칠 팔년전 쯤인가 오후 5시쯤 갑자기 낮술을 먹다가 내게 전화를 한 적이 있다. 회사 앞의 술집인데 X빠지게 뛰어오라는 거다. 부랴 부랴 내 동기랑 뛰어갔더니 무릎 끓고 앉으란다. 시키는대로 했는데...그 때 부터 밑도 끝도 없이 "너희 xx놈들은 X라 맘에 안들어. 너희들이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 너희들이 최선을 다해 살고 있어? " 하여간 이런 식으로 다그치는 것이다. 자기가 계속 호통을 치다가 다시 한숨 가다듬도 또 밑도 끝도 없이 분통작열. 하여간 어처구니 없었지만 그냥 눈 깔고 있었다. 속으로 부글 부글... 

그런데 결국 그것도 맘에 안든거다. '너희가 최선을 다하고 있냐고...이 XX새끼들아...너희들은 다 자격없어" 뭐 이러다가 컵에 든 물을 얼굴에 확 끼얹는 것이었다.  

아...그 순간 임계점까지 갔다. 아 못참겠네 쓰발...술상을 엎어..하는 순간까지 온거다. 그 때 술자리에 동석했던 사람이-그 양반과 호형호제 하던 사이인데- 큰 일나겠다 싶어서 "아...형 많이 취했다. 다들 잘 하는데 왜 그래요? 하면서 그 양반을 반강제적으로 일으켜 세웠다"  그 양반을 거의 끌려가면서도 헛발길질을 해 댔다.  

나와 내 동기는 몹시 기분이 상했고...서로 얼굴만 보면서 씁슬한 한숨만 쉬었다. 

그리고 다음날.  이 양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나타났다. 

이후에도 대상을 바꿔가면서 이런 일들은 툭하면 일어났다. 

한번은 낮술을 먹고 들어와서 눈에 보이는 사람을 자기 자리에 불러앉히고 다짜고짜 "너...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 이렇게 시작한거다. 당시 책상 머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 양반이 술먹고 들어왔다는 소리를 듣고 사무실에 들어가질 않았다. 그냥 아무나 눈빛이 마주치면 불러 놓고 시비를 걸고 싶은거다. 이런 일이 두 세번쯤 있었다. 

언젠가 나는 멀찍이 기둥에 숨어서 회사의 여자선배 하나가 딱 걸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정말 갖은 욕을 다하고 ...고성을 질러댔다. 모두 하나 둘 자리를 떠서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단 일방적인 욕지거리 바탕이 끝나고 그 여자선배는 울음과 분노가 뒤섞여서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전체 회의에서 이 양반은 "어제...일은 내가 공식적으로 사과합니다. 후배님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나중에 이 양반 퇴직하는 날 이 여자선배는 정말 애증의 눈물을 흘렸다.이건 지난 일에 대한 분노만은 아니었다. 정말 애증이었다. 

하여간 이 양반은 퇴직할 때쯤...채 50도 안된 나이이다.... "직장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평생 그렇게 살았고 그런 줄만 알았는데 세상은 넓고 ,너무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각성의 말을 한 것이다. 이 양반은 본인이 술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일주일에 6번쯤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게 다 일의 연장이고 술을 잘 마시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게 진짜 진정성 있게 일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가정사는 잘 모르겠으나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나 같은 인간들-은 일 안하는 인간들로 그는 받아들였다. 그런 그의 입에서 퇴직을 앞두고 다른 각성의 말이 나온거다. 그는 너무 늦게 안 것이 아닐까?  아니 40대에 알았으니 늦은 건 아닌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그동안 그의 삶의 방향과 다르다고 폭언을 당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늦거나 또는 너무 빠른 각성일지 모른다.

최근에 들은 그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새벽 예배까지 말이다. 이건 거의 쇼킹한 뉴스였다. 그는 과거에 교회 다닌다고 술 안먹는 사람들은 아예 자기 옆으로 불러와서 인격모독에 가까운 술 권유 고문을 했다. 방법도 가지가지였고 일종의 가학적 쾌감까지 있는 듯 했다. 몇 몇 여자 친구들은 그것때문에  훌쩍훌쩍 울기도 했다. 그러면 "됐다...치워라. 안 먹으면 됐지. 울긴 와우노? ..하여간 예수쟁이들은...니 예수가 가깝나 니 부장이 가깝나? 대답해봐라.....니 앞으로 나보지 말제이." 이런 식으로 어찌할바 몰라하는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부담감을 주었다. 그랬던 그가....새벽 기도 다닌단다. 나야 물론 기독교와 별로 친하지 않지만 어쨋거나 그가 지난 날의 과오를 새벽에 잘 씻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의 늦은 각성을 토대로 신앙 간증하고 다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직장이 전부는 아니다." "교회다녀라"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그가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도 잘 됐으면 한다.  

하여간 재미있는게 세상이고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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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dogma) 

독단()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인간의 구제를 위해서 신()이 계시한 진리를 말하며, 교회가 신적 권위를 부여한 신앙신조()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네이버에 나온 사전적 정의이다. 

내가 기억하는 도그마는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으로 이용된 것이다. 흔히 현실과의 혼융 또는 교통을 놓쳐버린 마르크스주의 말이다. 마르크스는 누구보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현실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는데도 말이다. 마르크스가 남겼다는 에피소드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그런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저런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도그마화된 곳을 만난다. 그런 사이트 중에는 정치적으로 수구 꼴통이 있는가 하면 진보 꼴통도 있다. 앞선 수구 꼴통과 진보 꼴통의 공통점은 단 한가지 자기의 규범적 판단만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단호하다는 공통분모를 나눈다. 사람들은 수구 꼴통의 퇴행보다는 그래도 진보 꼴통이 낫지 않겠느냐고 위안한다. 보수적 정서가 지배적인 곳에서 진보 꼴통은 최소한 틈을 벌리는 저항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진보 꼴통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끔 자기도취에 빠져 모험주의에 빠지거나 진보 내의 다양성에 대해 폄훼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가 빠진 도그마로 인해 소탐대실하는 경우도 있다. 반동의 기회만 더 확산시키고 자기는 의미론적 만족에 머물때도 허다하다. 이들은 그저 깃발의 꼭대기만을 보며 내가 그 깃발 아래 있다는 것에 역사의 영광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도그마화된 기사단. 성지를 지키는 신의 군대. 바로 진보의 십자군이 되는 것이다. 대의제 하에서 어깨와 가슴에 그들의 소속을 상징하는 군표들을 하나 둘 붙이고 수구보수와 싸운다는 일념하에 녹슨 칼을 꺼내든다. 과거의 훈장을 꺼내기도 한다. 그것은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타인의 악을 무기'로 삼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이명박에 싸우는 것을 진보라고 착각하지 말라'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같은 맥락일거라고 생각된다.  

도그마된 진보 꼴통의 특징은-수구꼴통도 마찬가지이고- 타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블로그라는 문자문화공간을 예로 들자면 타인의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체를 위한 방법론적 오독이 아니라 의식의 협착성이 다른 해석 공간의 존재를 말살 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구 세력들의 경우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악'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그렇다보니 북한이 한 나쁜 짓은 원래 그들의 속성이고 그들의 유화적 모습이나 긍정적인 면은 나쁜 짓을 숨기기 위한 변장한 늑대의 모습이다. 결론은 북한은 '절대 악'이다. 그래서 뭘 해도 '악'이다. 경험적으로든 이데올로기적으로든 이미 모든 판단이 결정되어 있다. 진보 꼴통도 이와 비슷하다. 자기는 '선'의 편에 서 있다는 의식은 수구 꼴통이나 마찬가지다. 도덕이라는 요소는 물론 중요한 가치이다. 또한 철학적으로 상당히 문제적 요소이다. 내가 말하는 도덕은 자기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걸친 '의류로서의 도덕'이다. 갑옷으로서의 도덕이다. 물론 도그마화된 인간들에게는 그 도덕이 자기 옷이 된다.일종의 도덕-기계, 선-기계가 된다. 이렇게 되면  진보든 수구든 십자군 기사단들은 천국을 위한 복음의 전도사 역할도 맡는다. 전도하고 가르친다. 내가 정말 웃기는 건 그들이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걸 일러 '사제권력'이라고도 한다. 그들에게 그것은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늘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진보 꼴통들의 세계관은 확실히 단순명료하다. 모든 것은 정권의 음모이고, 자본의 음모이다. 나와 다른 것은 '모두 적의 2중대'다. 신당참여를 목전에 두고'야권분열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모씨는 과거에 같은 논법으로 그 외의 정당들을 2중대로 폄하했다. 계급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계급의 이름 하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수자, 또는 서발턴들의 목소리도 모두 계급의 적대선을 훼손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들에게 노동자는 자본의 피해자일 뿐이다. 그렇지만 노동자는 자본의 공모자이자 자본의 수혜자로서 더 하층계급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물론 최종심급에서 우리는 자본의 핵심을 이야기해야만 할 것이다. 노동자 계급 내의 분화를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이 결코 자본의 잔인성과 자본에 대한 기소유예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인식을 갖는 것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인가?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착취의 대상이자 또 착취자일 수 있다는 의식은 노동자의 발걸음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시각을 넓히고 노동 연대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 개개인에게도 성찰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현실적 맥락과 어우러져 그 한계선도 설정해야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하나의 단일 대오로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또 인식론적으로도 독단의 오류이다. 흔히 '동일성의 철학'이 가진 약점이다. 보수세력이 원하는 것은 '차이의 차별'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이의 인식'과 '차이의 연대'이다.    

뭐 뻔한 이야기였다.더질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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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교육과 국민의 역사의식,그리고 생활철학에 더럽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예들이다. . 일단 저지르면 된다. 깃발 꽂았는데 지들이 어쩔꺼냐...배째라.  결과만 나오면 그 이후엔 다 끝이다.  

용산? 

일단 들어가서 잡아들여. 절차? 알게 뭐야? 누가 지들 보고 저러래? 쳐들어가!! 

'목표지상주의','결과지상주의' ... 그 과정은, 그 이후는 중요치 않다. 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키우면 다 그런 아이들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목적'과 '결과'만을 미친 듯이 쫓는 인간형을 만들어 놓고 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래? 사람들이 경우도 없고 앞뒤도 없다.천박하게..'라고 혀를 쯧쯧 찬다는 거다. 진짜 천박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오늘 <한겨레신문>은 개인적 관심에 의해 이래 저래 볼꺼리가 무척 많다. 그중에는 이런 것도... 

대리시험은 위법이지만 합격은 인정 

 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48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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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 검색에서는 '공옥진'이라는 이름을 제법 발견할 수 있을게다. 

'공옥진'....병신춤의 달인. 

어린 시절에 TV를 켜면 가끔씩 공옥진 여사의 춤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해학적 표정과 각종 동물들을 재현한 춤들은 코미디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게 아무 공여사의 춤은 춤으로서의 예술적 기능보다는 희극적인 몇 몇 이미지로 기억에 남아 있다.  



내게 그녀의 춤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영영 사라졌다. 지난 시절의 화면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말이다. 

2006년 교통사고 이후 그녀의 힘겨운 투병생활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오는 11월 1일 KBS 스페셜에서 최근 그녀의 삶이 방영된다. 정말 오랜만에 TV에서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닐까 싶다. (꼭 챙겨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요즘 나오는 가수 중에 2NE1의 한 가수가 공여사의 조카 손녀인가보다. 뉴스 검색에 유인촌과 함께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이 그녀다. 기획사에서 그녀의 인적 특이사항으로 공옥진이라는 이름을 활용하고 있는 듯 하다. 비즈니스계가 그렇지 않겠나 싶다. 

지난 10월 10일에 유인촌이 공여사의 영광 자택을 찾았다.  



쇼같다. 그렇다. 쇼다.  

전통 예인들에 대한 유인촌의 관심이 특히 남 다르다는 이야기는 듣지못햇다. 그들의 삶과 전통문화에 대한 노력은 그의 관심 목록에서 있긴 있어도-문화부장관이니 명목상 다 그의 나와바리 아닌가?- 저 밑에 있다. 미디어법을 비롯해서 신경써여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터인데 이해는 된다. 그래도 '유인촌:배우= 공옥진: 광대' 라는 연상을 통해 이미지 효과는 뛰어나다.

어쨋거나 정치인들의 사진찍기는 대개가 쇼인셈이니 딱히 유인촌만을 탓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사진기자들이나 방송 카메라 기자들이 그런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애를 들어 고 노무현 대통령이 낙향해서 기자들 대동하고 벼가 익은 논을 둘러 볼 때가 있었다. 근황도 이야기하고 농업에 대한 애정도 선보이고...하여간 그때 방송에서 많이 나간 장면은 '트랙터를 모는 대통령'이었다.(벼 수확할 때 쓰는게 트랙터 맞나.도시 촌놈이라서..) 그런 장면들은 다 연출된 거다. 주변 기자들이 한번 몰아봐 주시지요....'어..나 이런 거 안해봤는데..그거까지 해야돼나'..'그림 한번 만들어주시지요.' ..'음...뭐 이정도까지만 합시다.''''그래도 대통령님,그림 한번..'하아..그림있어야 이사람들도 갈테니 ..결국 한번 해봐야겠군요.'...뭐 대충 이런거다. 털털털...트랙터를 모는 귀농 대통령의 이미지가 나온다. 한국에서 이런 원조는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농민과 어울려 막거리를 나누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여전히 그를 둘러싼 아우라 중 하나이다. 도시보다 농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높은 것은 농민들의 평균연령이 높거나,학력이 낮거나 그런 이유때문만은 아니다. 실제 박정희 대통령은 농촌 문제에 대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관심을 보인 것은 분명하다. 그 시기는 세계적으로도 일종의 '그린 혁명'이 진행 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과학 영농'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량이 대폭 증가한다. 품종개량도 이루어졌다. 더불어 요즘 외면받는 각종 비료,농약이 스스럼 없이 쓰여서 역설적으로 향후 '유기농시장'의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성장과 더불어 농가의 부채도 증가해 갔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박정희의 농촌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은 분명히 성공적이었다. 그것은 무지랭이 농민들의 허상이라고만 취급할 수는 없다. 설령 그것이 가상일지라도 그 가상의 토대 위에서 정치가 시작되기때문이다. '막걸리와 시바스 리갈'은 둘 다 인식론적으로 실재이다. 

잠시 딴이야기로 갔다. 여튼 유인촌의 공옥진 방문은 쇼다. 그런데 난 그 쇼를 절대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내가 유인촌을 단 한번도 장관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 걸 보면 내가 결코 유인촌을 옹호하기 위해서 이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은 알것이다.) 유인촌의 공옥진 방문은 실제로 공옥진 여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또 실제적인 지원도 가능케 했을 것이다.( 물론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지원까지 못간다는 면에서 이건 쇼에 지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못하는 진보가 유인촌의 쇼를 욕할 수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진보는 왜 그런 쇼를 하지 못했는가? 내 질문은 그런거다. 핸드폰만 쇼를 할 필요는 없다. 진보는 늘 너무 진지해서 '쇼'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진정성과 도덕성의 지표만이 그들의 무기인가? 난 진보가 쇼를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것이 중대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그리고 방법적으로 쇼를 통해서든 뭐든  쇼 뒤의 '이면'을 깨닫고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것으로 가야한다.(이미지 쇼의 문제는 대개 겉만 살짝 훑고 지나간다는 것이고 진보가 더 나으려면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공옥진의 얼굴을 안은 저 손이 그의 손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과거 공옥진 여사는 기업체에서 많은 돈을 들고 와도 자기가 싫어하는 공연을 끝까지 거부했다고 한다.하지만 대학의 대동제같은 공연에는 무료로도 가서 자기의 춤을 보여주고 젊은이들과 웃음을 나누었다고 한다.아마 TV로라도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번이 거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11월 1일 KBS 스페셜이다. 

 <아름다움을 훔치다>. 사진작가 김수남은 공옥진이 본인 스스로 '공옥진이 보다 더 공옥진이 같다'고 흡족하게 평가한 사진이 있다. 어느 시골 읍내에서 멍석을 깔고 춤을 추는 공옥진,그리고 그 춤판이 끝나고 어르신들에게 막걸리를 따라 주고 있는 공옥진이 그 사진이다.  

그녀는 시대의 광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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