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하다. 그것도 무식할 정도로 오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 진 적이 없다. 이제 "내 세상이 왔다." 고 어깨를 잔뜩 세우고 아무데서나 허리띠를 풀 만도 하다. <시사인>의 천관율 기자의 분석 처럼 그 동안 약한 적들, 교란 시키기 쉬운 적들 부터 하나 씩 차레로 붕괴 시켰다. 크고 작은 위원회와 단체들 부터, 신문과 방송, 제주나 밀양의 주민 저항들, 전교조, 진보당 등등. 맞서 싸워야 하는 세력들은 어처구니 없는 칼날이 들어 오고 있는데도 여론의 눈치, 자기 당의 입지,이후의 동향 등을 고려하다가 어느 새 손이 잘리고, 발이 잘렸다. '약한 적 부터 고립시키고 괴멸시킨다. 그러면 마지막 강한 적도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박근혜를 비판하고, 대선불복 운운하자 새누리당은 제명 운운한다. 그러자 민주당 내부에서는 파장을 고려하여 당대표가 '입 닥쳐. 누가 마음대로 이야기하라 했어.'라며 오히려 자기 자식 엉덩이를 후려 팬다. '앞으로 허락 받고 말 안하면 가만 안둬' 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앞 집 아줌마에게 사과하기 급급하다. 향후 정국을 풀고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 종북딱지를 벗기 위한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어른스러운 행동' 인것 처럼 행세해야 하기 때문이다. 레퍼토리가 신선함은 별로 없는 100번 째 리허설 같다.막연한 대치 보다는 한번 이빨로 으르렁 대고 자기 자리 돌아가서 다음 쉬는 시간에 손 내미는 게 극적으로 그럴싸 해보이니까.
컴퓨터도 잘 고쳤던 정치인은 국정원 댓글이라는 삼척동자의 눈에도 보이는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생색한번 내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아니 어디서 백신 계발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인다. 미묘한 문제이며 여야를 떠나 구 정치계의 더러운 작태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대략 정리 될 쯤 숟가락 얹는 안정되고 건실한 수순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철도 파업 사흘 째 6천명 이상을 직위해제 해버렸다. 강공으로 겁박하고 안되면 공권력으로 두들기면 결국 다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그래봐야 기껏 손 시렵게 천막이나 치고 나앉을테니 할 테면 해보라는 것이다. 무릎 담요는 자비 부담이니 관절염이 오는 건 오로지 너희들이다. 이런 오만함과 소통의 부재, 국민을 졸로 아는 자만심의 결말은 이미 책에 다 나와 있다. 끝이 안좋다.
79년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것, 87년 전두환 정권이 손을 내린 것. 그 끝에는 늘 사건이 있었다. 총격이 있었고, 턱하고 억이 있었고, 길 위에 쓰러짐이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사건들이 두 번 똑같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한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것이 초등학교 국어교과의 목표인데 그것 조차 제대로 안되는 거다. 똑같은 사건은 역사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사건들은 반복된다. 그것은 모양을 바꾸고,형태를 바꾸고, 효과를 바꾸어 가며 역사 속에 기입되어 흐름을 단절시키고, 유속에 변형을 주고 유유히 모습을 감춘다. 물론 그 사건 하나만으로 역사가 뒤바뀌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불만과 분노의 에너지는 시간과 일상이라는 비이커 속에서 액체상태로 용해되어 있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건들과 더불어 임계점을 넘는다. 폭발한다. 아직은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자꾸 그려진다. 그들의 오만함이 불러 일으킨 기시감이다.
현재 정권의 오만함을 제어할 수 없는 것은 무능하던 유능하던 저항세력에 어떤 구심체도 없기 때문이다. 연애소설 쓰던 야당 대표는 누구나 알다시피 관리형 핫바지다. 아무런 세력도 정치적 비전도 없다. 그 사이 야당을 포함해 일련의 저항세력은 정권의 막무가내를 무한도전 가요제 바라보듯 멍 때리고 지켜 보다 팔다리 다 잘렸다. 정치 공동체 내부의 저항의 연대감도 사라져 버렸다. 그냥 크고 작은 분노들은 팝콘 튀듯 여기 저기 튀어 다니고 있다. 가끔 일베를 만나면 그 아이들과 싸우는게 무슨 대단한 일인양 말이다.
지금 이런 눌려 버린 압축된 공기를 뚫고 저항의 힘들을 뭉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다. 그의 운명은 그거였던 것 같다. 나서서 저항하고 연대를 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