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일 포스티노>를 너무 좋아했다.기억에 한 세번쯤은 본 것 같다. 이탈리아의 소박한 리얼리즘적 전통도 살아있었고 배우들의 순박한 연기와 위트,그리고 영화음악까지... '아름다운 영화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적절한 예가 될 법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에 대해서는 이번 출판 전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영화와 소설의 완성도가 늘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기에 내심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일 포스티노>에 대한 멋진 추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원제목은 <불타는 인내>이다.소설 속에 등장하는 네루다의 노벨상 수상 연설의 한 대목이다.작품의 제목은 이 소설이 영국인 감독 마이클 레드포드에 의해 영화화되면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바뀌었다고 한다.영화제목은 이를 더 줄여 <우편배달부>였지만... 영화는 아카데이 최우수 영화상 후보에도 오르고 전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나의 책읽기에서도 영화 <우편배달부>의 이미지가  결국 소설을 잠식해 버렸다.소설과 영화가 몇몇 다름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쪽 이미지로 소설을 읽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하다 결국 그 나름대로 즐기기로 했다. 거기에 더하여 영화 0.S.T를 들으며 읽어버렸다. 소설을 읽는 동안 영화속에 보여지던 푸른바다와 마리오(마시오 뜨로이지 분)의 선한 눈빛과 네루다(필립누아레 분)의 뚱뚱한 여유로움이 떠올랐다.

영화와 소설이 다른 부분은 먼저 배경이다. 영화의 배경은 네루다가 망명생활을 하는 이탈리아 나폴리 어느섬 으로 설정되어있다.하지만 소설 속의 배경은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라는 섬으로 설정되어있다.주인공 마리오 역시 소설 속에서는 17살의 청년이지만 영화속에서는 30대 청년으로 나온다.하지만 개인적으로는 30대설정이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어눌하면서도 시심이 가득한 마시오 뜨로이지라는 명배우의 공때문이 아닐까 한다.물론 결말 부분도 조금 다르다. 영화 속에서는 마리오의 죽음이 조금더 직접적으로 그려진 반면 소설속에서는 조금 상투적이지만 간접적인 암시를 띤다.소설이 영화에 비해 내용상 조금 더 강조했던 부분은 정치적인 주제들이다.그렇다고 심각한 접근을 의미하진 않는다.작가 스카르메타가 칠레 아엔데정권의 붕괴에 대한 아쉬움과 그 부당성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와 소설에서 공히 가장 멋진 장면은 마리오가 베아트리사를 꼬시기 위해 메타포를 배워가는 과정이다.또 영화를 이야기해서 그렇지만 그 설레임을 뜨로이지는 너무도 잘 연기해냈다.마리오가 베아트리스에게 한 첫번째 메타포 "당신의 미소가 얼굴에 나비처럼 번진다." 라는 구절을 읽는 동안 꼬질꼬질하면서도 순박했던 뜨로이지의 얼굴이 눈 앞에 선했다. (그런 배우가 안타깝게 그리도 일찍 세상을 떠나다니..) 또 하나의 멋진 장면은 네루다에게 섬의 소리를 녹음해 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읽을 때 사운드 트랙의 그 부분을 들었다. 영화의 장점은 그 부분을 소리로 표현해낼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갈돌을 굴리는 바다소리와 뱃속에 들어있는 아이의 발길질소리..그리고 그것들을 채녹하기 위해 안간힘쓰는 마리오의 얼굴들. 소설이 가진 들려줄 수없는 한계를 영화는 영상화,음성화해 내었다.반면 소설의 장점은 멋진 표현으로 이 부분을 감당해낸 점이다. 마리오가 녹음한 소리는 이런 것이다.

  ' 불평이나 일삼는 무정부주의적인 펠리컨의 날개짓' ' 해변의 야생 들국화 꽃받침에 앉아 쫑끗거리는 주둥이로 태양의 오르가슴을 만끽하는 날렵한 벌 떼 소리.' '불꽃놀이처럼 쏟아져 내리는 별똥별을 보고 개들이 하릴없이 짖는 소리' 등등.....  이 정도면 활자들이 소리를 내는 듯 귀에서 울린다.

영화에 비해 소설이 확실히 우위를 점유하는 곳은 바로 재치넘치는 대화와 해학이다. 거의 모든 장면 장면 등장하는 인물간의 대화는 빙그레 웃음을 머금게 한다. 우리 소설 춘향전에 월매의 대사처럼 마리오의 수작에 넘어간 딸과 과부엄마가 나누는 대사는 박장대소 수준이다.과부와 네루다의 통화 그리고 마음 졸여한는 마리오와의 대화에서도 한번씩 툭툭뱉어지는 대사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또 영화에서는 많이 삭제되었지만 순박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성적묘사의 해학성등도 소설 읽는 재미를 더한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나온지 좀 되어서 비디어가게 구석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안보신분들은 한번 꼭 보시고 영화를 아끼셨던 분들 역시 추억을 되뇌이며 영화만큼 멋진  원작소설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음....그리고 오늘 계속 들었던 사운드트랙에 대해 한마디. 사운드 트랙에는 귀에 익은 주제곡도 있지만 네루다의 시를 유명 영화배우,가수들이 낭송하는 트랙이 전반부를 차지한다. 스팅,웨슬리 스나입스.사무엘 잭슨,랄프 파인즈,앤디가르시아,줄리아 로버츠,마돈나.....  궁금하신분은 한번 들어보시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구두 2004-08-30 18:33   좋아요 0 | URL
훌륭한 리뷰입니다. 네루다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읽고 추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시는군요. 참말로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아직 영화도, 책도 읽지 않았습니다. 좋은 것일수록 천천히 즐기자는 뜻도 있지만 역시 게으른 탓이지요. 덕분에 저는 책을 먼저 읽고 나중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군요. 이럴 땐 게으른 것이 나쁜 것만 아닌 것 같습니다. 리뷰에도 별을 준다면 서슴없이 다섯 개 모두 드리고 싶습니다.

마녀물고기 2004-08-30 19:22   좋아요 0 | URL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해 섬의 소리들을 녹음하는 모습을 보면서 코 찡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네루다를 향한 마리오의 존경과 사랑이 네루다에게 무참하게 꺾이는 것 같아 가슴 아팠던 일도요. 며칠 전 민음사세계문학전집 몇 권을 사면서 이것도 넣을까 하다가 영화의 이미지가 너무 아름다웠던 탓에 그만 두었었는데, 엄.

파란여우 2004-08-30 22:16   좋아요 0 | URL
불행(?)하게도 영화와 책 둘 다 접하질 못했습니다..떠도는 소문만 접했지요. 언제 시간이 되면 완파하리라 마음만 먹다가 님의 멋진 리뷰에 반합니다. 저는 님의 리뷰를 보면서 이제 책을 골라야 할까 봅니다.허락해 주실꺼죠?^^

stella.K 2004-08-31 00:31   좋아요 0 | URL
바람구두님 때문에 여길 다시 오게 되었네요. 님은 가끔 제 서재에 들려주셨는데요. 바람구두님이 어찌나 님 자랑을 하는지...^^
<일 포스티노>는 저도 본 영화죠. 참 좋은 영화예요.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근데 정말 님의 글을 읽으니 저도 책으로 읽어 봐야겠네요. 오래 전 저도 이 책 보관함에만 남아 놓고 있었는데...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