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주미힌님이 퍼온  페이퍼 <나는 다섯번 잡혔다>를 보다가 어제 거리에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평화로운 집회였고 축제같은 시위여서 좋았다. 집에 있는 아기와 통화도 하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겠다라는 불경스러운 생각을 했던 행진이었다. 소고기는 서울 사람이나 부산 사람이나 똑같이 먹게될 터인데 시위에도 중심과 주변성이 생긴다.하지만 어떡게 하겠는가?

축제같은 행진을 한 걸음 내딛다가 이렇게 평화로운 시위의 토대를 위해 쓰러졌던 이들을 생각했다. 허공으로 떠나버린 분노와 얼음같이 굳어버린 함성들.그리고 아스팥트 위에 떨어졌던 혈흔들.처음 나간 대규모 가투에서 지랄탄이 코 앞에 떨어져 넋을 놓아 버린 대학 동기도 생각이 났다. 최루가스는 잘생긴 그 친구를 진흙 구멍을 파는 돼지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미 닫게 버린 명동의 어느 상가 문 틈으로 머리를 디밀고 숨 쉬겠다고 '우웨 우웨'거리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이미 그 곳은 잠겨있었는데도 그 친구는 한동안 구석에서 그 철문을 밀어올리려고 했다. 눈은 감은채 '우웩 우웨' 돼지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민주주의는 탐욕스러운 야수처럼 많은 피를 요구했다.수많은 싸움과 죽음이 있었다. 그 시절이 가고 이제 최루탄이 어떤 향수를 닮았는지 알지 못하는 세대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시대는 여전히 깜깜하고 싸워야 할 적들은 훨씬 현명해졌다. 골리앗보다 상대하기 힘든 것은 안개같은 적이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대,우리의 적은 안개같다. 그래서 전선은 더 미분화되어야 하고 더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그런 면에서 80년대의 터널을 막 기어나온 듯 한 이명박은 역설적이게도 상대하기 쉬운 적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동안 386세대에 비판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나는 386의 끝자락으로서 그것이 내가 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386세대를 하나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편의상 그렇게 하자. 내가 싫어했던 386세대는 크게 두가지 부류였다. 하나는 '운동엘리트'들이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국화나 정계 언저리에 있다. 나는 그들이 정계 입문했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 들 중 많은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이상을 현실에 조화시켜 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그들이 그렇게 비판했던 기득권 체제의 막내 동생이 되어 함께 고기맛을 향유한다. 또는 운동의 경험을 발판 삼아 그 고기를 얻는 대열에 낀다. 또 마땅치 않은 386세대는 '성찰하지 않는' 그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운동 경험과 시대 정신을 더 이어가지 않는다. 운동에 끝은 없다. 운동은 움직이는 것인데 그들은 경험을 박제화 시켜 버리고 이젠 생활전선의 투사가 되었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이익'과 '이상'을 맞트레이드한다.

나는 줄곧 386세대들에 비판적이었지만 그들이 한 시대를 겪으며 아파하고 피흘리고 이룩해 놓은 것에 대해 큰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역사가 없었으면 지금처럼 고등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축제를 벌일 수는 없었다. 어느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뚝떨어진 '사회적 존재' 란 없다. 나는 이번 시위가 새로운 형태의 시위여서 누구보다 반갑고 ,또 그 끝이 누구보다 궁금하다. 그리고 축제의 밥상을 멋진 수사학으로 차려준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흙이 묻은 운동화로 차려준 이들에게 누구보다 감사한다. 수많은 죽음들에 감사하고 수많은 눈물들에 감사한다. 내겐 오늘의 흥분보다 그들에 대한 감사와 그들이 걸었던 힘든 시간이 더 많이 떠올랐다. 이게 회고적이라면 난 비난을 달게 받을 것이다.대신 나 역시 그 무시무시한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을 탈각시켜 버린 무정함을 묻겠다. 내가  암호화된 귓속말을 이용하든, 인터넷 중계를 이용하든, 내가 병 든 자리에 촛불을 올리든, 나는 그 장구한 물결 속에 하나일 뿐이다. 수 천 년동안 이루어온 그 움직임 속에 하나이다.

이번 시위는 '미국 소 수입 반대'에서 시작되었다가 '이명박 퇴진'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말 '이명박이 퇴진'할지는 모르겠지만....정작 '이명박퇴진'은 '이명박'이 어떡게 하냐에 따라 달린 것 같다. 지금처럼 더 밀어붙이기로 나가면 정말 '퇴진'당할 것은 명백하다. 임기 채우려는 욕심과 머리가 있다면 그런 짓은 안하는게 좋을 듯 한데.2MB의 용량은 이제 가름이 안된다.^^

 어쨋거나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음식은 반세계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다'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전자 조작 거부 운동이나 종자 지적 재산권 반대 운동 같이 반세계화 운동에서 혁혁한 투쟁들은 '음식'과 관련이 있었다. 반세계화 운동의 타깃으로 '맥도날드'가 지목되는 것은 두가지 상징적 의미가 있는 듯 하다.하나는 '미국의 상징' 또다른 하나는 '음식의 상징'. 그런면에서 대한민국에서는 '미국 소'가 그 역을 맡게 되었다.

심상정이 민노당 후보시절 정태인 수석이 '한미 FTA반대' 슬로건의로 '우리 아이의 식탁이 위태롭다' 라는 걸 기치로 내걸었을 때, 나는 파급력이 있는,미디어적으로 효과적인 전술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심상정이 결선에 떨어지면서 그 슬로건은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다만.

이제 시위는 전화되어 '이명박 퇴진'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여론조사가 있었다. 70%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명박의 미국 소 정책'이 잘못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질문에서 40% 이상의 사람이 '이번 일이 정리되고 나면 잘 해나갈 것이다' 라고 답했다. 즉 '미국소' 문제를 단편적인 하나의 정책 실수로 여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것은 '철학'의 부재이지 '정책의 실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미국 소 수입'에 반대하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음식'이라는 특수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별다른 대안이 없어 세계화를 인정한다고 하는 사람들 조차 '음식'문제에 있어서는 그런 흐름에 꼭 동의하지 만은 않는다.

이명박은 앞으로 걸고 넘어질게 수도 없이 많다. 다음은 아마 '대운하'가 될 듯하다. 과연 '대운하' 때도 이만큼의 파괴력을 가질까?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정적이다. 이번의 '대중투쟁'의 경험이 이런 불신이 틀렸음을 입증해주길 바랄 뿐이다.부디...

라주미힌님이 퍼온 페이퍼에서 이번 시위는 '외롭지 않다'라고 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87년 6월 이후 가장 많은 자발적 대중 동원이다. 인터넷을 통해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 조차 에너지를 불어 넣어 준다. 이 거대한 시위는 외롭지 않다.

그런데...외로운 곳은 없을까?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것은 아니다.후미에 있다면 귀에 이어폰 꽂고도 할 수 있는 시위의 안락함과 지대한 관심의 눈길 속에 외로운 곳은 없을까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다. 

 기륭전자. 이랜드, 알리안츠, KTX, 코스콤.....

그 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뭐 지금 그런 생각이냐고?  그래. 나중에 ..뒤에 뒤에 <지식e>같은데서 하면 감동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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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6-0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운 투쟁들...
저도 '밥상투쟁'에 그들을 위한 촛불도 빛이 났으면 하네요...

드팀전 2008-06-04 09:11   좋아요 0 | URL
냉정하게 말해서 그럴 일은 없을 듯 합니다.
그건 직접 맞닥드려야 느낄 수 있는 절박함입니다.저 역시 회사에서 공포감만 느끼고 또 간접경험의 분노만을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사IN 기자들의 파업 후 인터뷰가 아주 솔직하고 좋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어떤 기자가 그랬더군요.
'자주 현장에서 그런 노동자들을 만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분노하고 함께 걱정해주고 해서...그 상황을 제법 잘 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건 완전한 오산이었다. 실제 천막을 치고 거기서 밥해먹고,생계를 위해 에어콘을 뜯고 하다 보니...정말 힘들었다. 새벽에 그렇게 일찍 거리를 청소하는 할아버지가 계신지 그 빗자루 소리도 들렸고...그동안 좀 안다고 생각했던 오만을 버릴 수 있었던게 큰 깨우침이었다.'

전 그 기자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걸 느낄 수 있었던 그의 진정성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가시장미 2008-06-0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롭지않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죠. :)

드팀전 2008-06-04 09:12   좋아요 0 | URL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문제다 보니까요..

마늘빵 2008-06-03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몸땡이 배터리 충전해서 금토일 신나게 놀 예정입니다. :) 어제 오늘은 다른 일로 바빴지만. -_- 내일은 좀 쉬고.

드팀전 2008-06-04 09:13   좋아요 0 | URL
쉬어가면서 하는 게 맞습니다...다치지도 말아야하고.

비로그인 2008-06-04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까지 촛불집회에 참석한 적이 없었어요. 아마도 담주 6.10 때는 갈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주식회사 대한민국에 새 자본가가 자기가 하던 방식대로 일처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요. 이명박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집회를 할 때면 사업주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는 듯한 거 같아요. 국민들이 자본가들의 노동탄압을 그대로 버려두었기에 그렇게 길들여진 자본가가 자기가 원래 하던대로 하고 있을 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답니다.
노동자, 장애인, 여성, 이주노동자... 여러가지 사회적 약자들의 운동은 버려두었던 국민들이 이렇게 크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 면도 있어요. 이명박이 더이상 무리수를 두지 않는 한 정권퇴진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다만 이번 일로 사람들이 집회나 결사의 자유 혹은 자기의 생존권, 인권, 자존감을 걸고 운동하는 여러 집단 및 개인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넓어졌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차근차근 민주주의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리고 기륭전자...^^;)

마늘빵 2008-06-04 09:09   좋아요 0 | URL
네. 지금 시위는 자신의 현실적 삶과 관련된 것이니까 이 정도겠죠. 이 여세를 몰아서 다른 일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합니다. 이제 시위문화가 나날이 진화하고 있고, 동참하는 사람들도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드팀전 2008-06-04 09:46   좋아요 0 | URL
이유님> 국민들이 그럴 수 밖에 없지요.사회적 이슈 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하루의 일상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진해야하기 때문입니다.그렇기때문에 직업적 운동가도 필요하고 이론가도 필요하고...각자의 위치에서 부분적인 얼개를 엮어 나가는 것이겠지요.국민들이 다른 문제에 관신을 덜 갖는 것을 뭐라고 할 수 도 없을 듯 해요.전 대중들에 대해 혁명적 낙관주의를 갖지는 않습니다.그렇다고 대중은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 존재라고 더더욱 생각치도 않구요. 현재의 축제적인 흥분을 새로운 운동주체의 탄생으로 보는 의견들이 많던데..설령 그렇다하더라고 기본적인 '대중 속성'에 대한 성찰이 빠지면 대항권력 상정의 강박에서 나온 조급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또한 전지구적 자본주의 변화에 대한 대항권력의 창출은 운동주체의 여러 형태 중 하나이지 과거의 개념들과의 단절을 상정할 필요도 없어보입니다.그것이야 말로 이론적 선명성을 우선시하는 아카데미즘에 가깝지요.자본이 있는 곳에 노동운동이나 피억압자들의 구체적인 저항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프님> 그런 바람은 가져봅니다. 투쟁과 승리의 경험은 그래서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 시위는 아프님 말씀처럼 '주제의 직접성'과 '이명박의 무식함'이 나사의 회전운동을 일으켜서 거대해진 것으로 보입니다.특히 '이명박'의 공이 커보입니다.이명박의 무식함은 앞으로도 계속 갈 터이고 진보 진영이 어떻게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듯 한 신자유주의적 주제들이 대중들에게 소고기 문제처럼 직접적 사안인지 알리는데 총력을 기울여야겠지요. 뭐 무슨 전위같은 이야기냐라고 욕먹을지 모르겟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