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을 10년 했습니다.올해 휴가는 장기근속 휴가로 9일동안 쉴 수 있었습니다.내일이 그 마지막 날이 되겠군요.인생을 10년 단위로 정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습니다.10년 동안 제게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
#1. 지난 10년 동안 저를 키운 8할은 '외로움'이었습니다.키케로의 글 중에 '인간은 가장 외로울 때 가장 자유롭다.' 라는 말이 기억납니다.책을 읽을 수 있었고 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고속도로 위에 '외로움'을 흘렸습니다.때로는 지나가버린 철길 위에도 '외로움'을 던져 놓았습니다.저의 외로움은 제가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아마 제가 가족들과 서울에서 함께 살았다면 이런 기회를 갖진 못했을 겁니다.
10년 동안 제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저를 사랑해주었던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데 언제나 힘이 되어준 분들입니다.그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에 제가 나무처럼 자랄 수 있었습니다.저의 인간관계가 그닥 넓지 않기때문에 앞으로도 그들과의 인연을 놓지 않을 겁니다.당신들의 애정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2. 이제 저는 서울이 낯섭니다. 서울이 현기증납니다.어제 개워놓은 토사물을 아침에 바라보는 마음으로 하루 동안의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강남으로 압구정으로 그리고 홍대앞까지...예전에 서울 살 때도 그다지 많이 가보지 않았던 곳들입니다.그래서 더 낯설고 어색했겠지요.도로를 녹이는 태양을 받으며 지나가는 차들을 봤습니다.머리통을 옥죄고 있는 날이 선 건물들을 보았습니다.구름의 보송함을 가려 버리는 스테인레스 스틸의 딱딱함이었습니다.보편적인 의미에서 예쁘다고 할 수 있는 젊은 여자들을 보았습니다.절반은 진짜 명품 선글라스를 또 절반은 짝퉁을 쓰고 거리를 내것인양 활보했습니다.온통 퍼져있는 분내에 저는 어지러워졌습니다.지하철을 타고 압구정에서 홍대를 향했습니다.반으로 접은 '조선일보'를 열심히 보고 있는 중년의 여인.조선일보의 기획기사인 'our asia'... '나는 네 살 때부터 돌을 깨었어요' '나는 이게 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라는 어느 네팔 소녀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자본의 분내가 진동하는 곳에서 돌냄새가 코끗을 찌르는 네팔 어느 시골마을로 오거니 가거니 하면서 목적지까지 갔습니다.
먹고 마시고 ...저는 그곳에 있었지만 그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저는 저를 종이에서 오려낸 네모 조각을 만들었습니다.저는 그 도시에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조금도..
10년을 타향에서 살면서 서울로 다시 올라가려고 무척 노력했던 적도 있습니다.어느 순간 그런 계획은 접었습니다만 서울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하지만 하루 동안의 서울나들이에 저는 스스로 선언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저는 서울을 싫어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부산이 서울보다 결코 낫지는 않습니다.이 곳도 어딜 가나 자동차와 살벌한 건물들과 우격다짐의 경상도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서울의 날카로운 이해관계가 누그러진 대신 내집단의 의리를 강조하는 비상식적인 온정주의가 만연합니다.서울에서 엘리트들이 지배하고 있는 곳을 이곳은 지역 토호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저는 이 곳에서도 결코 내집단인 적이 없었습니다.앞으로도 어떤 집단을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저의 만남은 언제나 고구마뿌리 같았습니다.제게는 친한 그룹을 뜻하는 '패밀리'라는 것이 없습니다.저의 만남은 언제나 '개인 대 개인'의 만남이었고 앞으로도 바뀌진 않을 것입니다.접착력이 약한 '포스트 잇' 같은 부산에서의 10년이 지나갑니다.부산살이에서 얻었던 것은 제가 '지역적 타자성'에 대해 눈떴다는 것입니다.이런 작은 깨우침은 좀 더 범위를 넓혀 더 큰 '타자성'에 대한 이해의 단추가 되었습니다.부산이 제게 준 것은 이것입니다.
#3. 지난 10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밤을 새워도 끝이 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많은 생각이 있었습니다.생각 속에 생각이 들어갔습니다.그러나 생각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습니다.이제 또다른 10년을 생각합니다...바람이 움직이듯 움직여야할 때가 되었습니다.계획과 열정에서 먼지를 털어내야 할 듯 합니다.
제가 좋아하던 과거 직장상사가 계십니다.그 형님은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전 그분과 같은 면도 있고 또 다른 면도 있습니다.우리 둘은 그 점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전 그의 자유로움을 사랑합니다. 그의 자유로움은 세상으로부터의 일탈이었으나 새로움을 창조하지 못했습니다.그는 영혼이 자유로운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입니다. 영혼이 자유로운 것 하나만으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분이고 제겐 존경을 받을 만 합니다.
하지만 '청출어람'이어야 합니다.제가 가야할 길이 그가 만들지 못했던 지점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마천의 '사기' 에 나오는 글입니다.
"불비즉이 일비충천 불명즉이 일명경인" .....울지 않으매 곧 그럴뿐이요 한번 울면 하늘을 찌르고 울지않으매 곧 그럴뿐이요 한번 울면 모든사람을 놀라게 한다.
제가 붕새가 될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날아보지 않고는 제가 새인지 가축인지 알 수 없습니다.제가 닭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남은 10년이 되었으면 합니다.몇 번 지붕에서 뛰어내려 발목이 부러지더라도 지붕 위에서 너무 무서워 몇 번을 돌아 내려오더라도.....10년 뒤에 지금보다 더 자라서 또 다른 제가 되어 있기를 기대합니다.
#4 이제 곧 다시 일상으로 복귀입니다.약간의 몸살을 앓을 듯 합니다.하지만 어떤 몸살이든 낫지 않는 몸살은 없습니다.휴가가 제게 준 것들...지난 시간이 제게 준 것들...다시금 고운 흙이 되어 제 뿌리에서 저를 더 키우기 위해 영양분을 공급해주리라 믿습니다.그 고운 흙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좋은 나무가 되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