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태양님에게 옥수수를 삶아 회사 사람들과 나눠먹으라고 싸 보낸지 40분정도가
지났을 때 태양님께 전화가 왔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시골에 가야한다고..
결혼한 지 4년이 지났지만 큰 아버지 얼굴을 뵌것은 4번이나 될까.. 명절때도 잘 가지 않는데다가
아버지와 큰아버지 사이가 그닥 좋지 않아 자주 뵐 수 없었다. 그래서 슬픔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진작에 자주 찾아뵐것을....하고 말이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절을 하고 며느리들 틈에 합류했다. 며느리라고 해봤자 4명밖에 되지 않았다.
손님들 치루느라고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장례식장인지 학창시절 열심히 써빙봤던 식당인지
분간하기 힘들정도로 술, 담배, 잔돈 심부름 등등... 참 분주한 손님 접대였다.
새벽 4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손님이 줄어들질 않았다. 막내 며느리인지라 꾀를 부릴수도 없었다.
피곤은 엄습해오고... 세 테이블정도 남았을 때 눈을 붙이기 위해 차로 갔다. 그곳에서 불편한 옷을
갈아입고 잠시 눈을 부쳤다. 그렇게 첫째날을 보냈다.
아침에 상복이 도착했다. 땀흡수는 고사하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질나쁜 나이롱 상복을 바지와 티위에
입고 손님을 치뤘다. 염을 하고 제사 지낼 때 큰 어머니와 언니의 곡소리에 눈물을 쏟고는 또다시 손님들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이튿날은 그래도 12시가 조금 넘자 손님이 줄어들었다.
1시가 조금 넘어서 차로 갔다. 상복을 벗어선 안된다고 해서 그걸 입고 차안에서 자려니 덥고 꿉꿉하고
그렇게 이틑날도 지나갔다.
5시 40분쯤 아주버님이 깨워 일어나 분향소로 갔다. 어제새벽까지 먹은 술상들이 그대로 있었다
치우고 나니 6시 30분.. 제사 준비를 7시 아침 제사 를 지냈다.
9시 발인제사.. 제사 후 버스에 올라타 큰아버님 관을 싣고 선산으로 향했다.
선산 입구에 상여가 먼저 와있었다. 관을 내려 상여에 맨 후 노제를 지내고
이제가면 언제오나~ 소리에 맞춰 상여꾼들이 앞장을 서고 우리는 뒤 따랐다.
선산가기 쉬운길에 가정집이 있었는데 상여가 집앞으로 가는것이 싫다 하여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야했다. 나이롱 상복이 제대로 역할을 해주어서 온 몸은 싸우나 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상여꾼들은 막내아주버님 친구들이였는데 정말 너무 힘들어 보였다.
산소에 도착해 무덤에 관을 넣는 동안 상주와 직계 며느리만 제외한 세 며느린 식사 준비를 하기위해
산 중턱으로 내려왔다. 산 중턱과 산소가 있는 곳을 오르 내리며 물이랑 음료수 심부를 하고 나니
온몸에 기운이 쏙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산소에 때를 입히는 것까지 하고 제사를 지낸 후 모든 식구들이 식사를 하기위해 내려왔다.
밥을 먹고 큰집으로 가서 영정을 모시고 절을 한 후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처음 겪어본 장례식...
어렵고 복잡하고 돈도 참 많이 들더라...
천만원 가까이 돈이 드는 걸 보면서 살아 생전 천만원어치 먹이고 힙히지! 돌아가신 후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 돈을 들이나..하는 생각에 괜시리 울컥! 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울 엄마 아부지..할머니 할아버지 자주 찾아뵈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이렇게 가까이 와 있다는거 실감한 삼일이였고, 가족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였다. 친구, 가족.. 모두 연락 자주 하고 살아야지...
그리고 잘 해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