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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 정준영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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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환 |
| "오늘 좋은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변명 같지만, 당장 취직 걱정해야 합니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우리를 재단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일 밤 9시 3분경,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층 교육장에 한 대학생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6월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 상상변주곡 2회의 주제의식이 농축된 '독백'이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정준영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교수(아래 호칭 생략)가 '우리에게 우리는 무엇인가'를 따진 이유와 맞닿아 있었다.
"청년 실업? 국회 앞에 10만명이 모인다면?"
하지만 두 사람의 연주, '젊은 세대'는 분명한 차이를 드러냈다. 진중권에게 젊은 세대는 "사회를 알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 하는 욕구도 없는" 사람들,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며 정보사회에 필요한 디지털 반사신경을 발달시키고 있는 미래의 블루칼라"들이 대부분인,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신체를 지니고 있는 '무엇'이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역사에 최종목표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해방된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미래는 그저 SF의 시간일 뿐이고, 역사는 그저 퓨전 사극의 배경일 뿐이다. 예전에는 드라마 시간을 한 번 놓치면 보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언제라도 가능하다. 시간이 클릭할 수 있는 공간이 돼버렸다.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의 선형성에 대한 믿음도 약화된다. 젊은 세대에게 세계는 역사의 진행이 아니라, 동일한 이미지의 영겁회귀일 뿐이다. 젊은 세대가 역사의식을 갖추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주장에 손석춘은 문제를 제기했다. "젊은 세대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진실을 모르게 만드는 교육 현실에 대한 지적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손석춘은 "그들이 드라마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백수와 백조가 쌓여가고 학점경쟁에 내몰리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등록금은 계속 오르고 취업은 어렵다. 수천만원씩 들여 대학을 다녔지만, 취업이 되지 않아 자살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학생운동이 침체해 있을 상황이 아니다. 국회의사당 앞에 10만 명이 모여 시위해 보라. 달라질 것이다. 정치인들이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안 모이잖아요. 공차기 응원에는 수십만명씩 모이면서도. 신자유주의 사회와 다른 사회를 왜 상상하지 못하는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끈을 놓지 말자. 힘을 합치면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NL이 인간을 믿는다면, PD는 텍스트를 믿는다"
허나 진중권에게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농경적 신체'의 주장인 듯 했다. 진중권은 모든 나라의 변화 양상을 농경사회-산업사회-정보사회로 구분하고 NL을 농경적 신체, PD를 기계적 신체, 미래의 노동자 계급(?)을 정보적 신체에 각각 대입했다. 그리고 각 신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농경적 신체. 조직화를 하기보다 '관계 맺기'를 활용하고, 논리적 설득보다 정서적 '감동'을 강조하고, 품성이나 의리 같은 전근대적 수사법을 사용한다. NL의 이상 속에는 미국에 반대한다는 네거티브한 요소와 산업화로 잃어버린 공동체적 삶에 대한 낭만적 동경이라는 포지티브한 요소가 공존한다.
기계적 신체(PD). PD는 문자문화의 전형이다. NL이 인간을 믿는다면, PD는 텍스트를 믿는다. PD는 인간관계보다 사상서적을 더 신봉한다. 품성보다 논리가 중요하고, 의리보다 원칙이 더 중요하다. 세계와 문자의 동일성을 굳게 믿는다.
정보적 신체. 빌 게이츠의 상품엔 '무게'가 없다. 상품이 비(非)물질화하고 정보가 재화가 된 정보사회가 원하는, 과거와 다른 수준의 신체다. 정보적 신체는 조직이 아닌 네트워크로 관계를 맺는다. 이들에게는 정치는 물론 역사도 비물질화한 채로 가상, 유희, 오락의 영역에 편입된다. 방송 3사의 고구려 드라마가 일깨워준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의식'이 아니라, 판타지로 이루어진 황홀한 환각의 체험이다."
결국 진중권에게 NL과 PD의 대립은 "다른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실은 다른 신체의 대립"이며 오늘날 젊은 세대는 "역사의식을 갖추길 기대할 수 없는, 과거와 전혀 다른 신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진중권의 '신체의 지질학' 논리에 손석춘은 "NL과 PD의 구분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신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손석춘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NL이 설득력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농경적 신체'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현존하고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 정책이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측면이 강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젊은 세대 박정희 찬양, 현실 아닌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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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영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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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환 |
결국 젊은 세대에 대한 진중권의 '차가운' 평가는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거기서 정보사회로 가는 변화가 유례없이 급속하게 이뤄진"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의 몸이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사이보그화한 신체로 변했고, 인터넷을 목숨 걸고 하는 민족이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중권은 "텍스트 세대의 눈에 '보수화'로 보이는 젊은 세대의 역사의식 결여"가 결코 보수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진보나 보수의 이항대립을 넘어선 완전히 차원이 다른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자로 쓰인 역사가 사라진 곳에 영상으로 그려지는 신화"처럼 "진짜 박정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박정희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정준영은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펼쳤다.
"우리 몸에는 구석기 시대 특징이 여전히 남아 있다. 신체는 유연하지만, 잘 변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젊은 세대의 보수성을 정보적 신체의 틀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과연 정보적 신체가 얼마나 성숙할 수 있겠는가. 지금 박정희 우상화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아니다, 걱정할 필요 있다. 지금 대학생들이 소시민화하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보수', 관념적으로는 '진보'. 이것이 소시민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나치즘이 바로 소시민층에 기반을 두지 않았는가. 언제든 파시즘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진중권은 "삼족오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디지털 파시즘 또는 판타지 파시즘이 나타날 수 있지만, 어느 사회에든 일정 분량의 사이코가 있게 마련이다, 거슬리는 상황일 뿐"이라며 "박정희 찬양은 실제적인 의식이 아니라 드라마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한심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석춘은 검은 건반, 진중권은 하얀 건반
그리고 진중권은 "무엇보다 급격한 변화를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방점을 찍었다. 결국 진중권의 주장을 '젊은 세대가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로, 손석춘의 주장을 '젊은 세대도 상상할 수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검은 검반(반음)의 가능성을 손석춘이 높이 샀다면, 진중권은 하얀 건반(온음)을 먼저 정확히 눌러야 한다는 것.
하지만 상상변주곡 2회에서 세 사람의 '불협화음'은 '젊은 세대'를 코드 삼아 어우러질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는, "틈날 때마다 관련 서적을 읽기는 하지만, 정작 실천에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볼 때 답답하다"는, 토론을 참관하던 젊은 세대들의 솔직한 토로에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손석춘은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다른 나라를 모델로 삼을 필요도 없다, 우리 나름대로 모델을 만들면 된다"고 당당한 '주관'을, 진중권은 "사회에 대해 관심을 통해 자기 처지를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냉철한 '객관'을 강조했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토론과 '우리'를 고백하는 시간으로 2번째 상상변주곡은 막을 내렸다.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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