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미학 오디세이'의 힘! - 진중권 인터뷰



1994년에 1권과 2권이 나왔어요. 3권이 2004년에 나와 10년 만에 완간 비슷하게 된거구요.


단문이고 구어체를 많이 썼거든요. 글을 써놓고 입으로 읽어서 잘 안 읽히면 끊어 썼어요. 입에다 맞췄죠. 책에 도판도 많이 들어갔고. 그때는 그게 튀는 거였어요. 경박하다, 젊잖치 못하다는 평을 들었죠. 그 후로 인터넷 시대가 되니까 구어체가 익숙해지고, 영상의 시대가 시작됐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그게 표준이 된 거죠.
지금은 입문서들이 가벼워지고, 영상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죠. 그때만해도 그런 책은 많지 않았거든요. 미디어 환경의 변화때문에 살아남은 책이 아닌가 생각해요.

삼성 대위법이라고...멜로디가 동시에 3, 4개가 동시에 진행되며 화음을 이루는 다성음악처럼, 이 책에서도 그렇게 3개의 다른 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요. 크게 미학사에 대한 이야기가 한 축 이구요. 또 한 축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대화를 통해서 미학에 필요한 기본적인 개념을 짚어주고 있어요. 간단한 철학사를 설명하는 거죠.
미학은 철학의 일부기 때문에 철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워요. 마지막 한 축은 1권에서의 에셔, 2권 마그리뜨, 3권 피라네시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죠. 이 세 가지 축이 각자 흐름을 가지고 서로 도움을 주면서 진행이 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다 만나게 되요.

세 사람은 각자 다르죠. 에셔는 네덜란드, 마그리뜨는 벨기에, 피라네시는 200년 전의 이탈리아 사람 이예요. 이 사람들의 그림의 특징은 세계를 그린 게 아니라 자기들의 머리 속을 그렸다는 것이죠. 세계의 이미지가 아니라 관념의 이미지를 그린 거예요.
에셔는 수학과 논리학을 그림으로 그렸죠. 마그리뜨는 철학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실제론과 관념론이죠. 지금 내가 보는 게 정말 존재하느냐 내 의식이 만들어 낸 거냐. 실제로 이건 철학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예요. 피라네시 같은 경우는 그림 속의 건물들을 보면 말이 안 되요. 존재하지 않는 건물이죠. 머리 속에서 상상해서 그린 거예요.
이런 것들을 기술적 형상이라고 하는데, 요즘 굉장히 중요해 지고 있죠. 점점 우리 세계가 그림으로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이죠. 그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그걸 보고 세계의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사진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고, 그 사람의 머리 속을 읽는 게 중요하죠. 그 사람들의 그림을 택했다는 건 그런 의미예요. 미학이라는 철학적 관념을 설명하는데 편했다는 거죠.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내 책 읽고서, 미학 공부 시작했다가 너무 어려워서 깜짝 놀랬다는. 어떤 분들은 책이 쉽다고 하면, 쉽게 쓴 줄 알아요.
재미 있으려면 놀아야 되는 거죠. <왕의 남자> 보면 광대들이 줄 위에서 놀잖아요. 줄 위에서 퉁퉁 튀면서 자유롭게. 하지만 그렇게 놀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겠죠. 사람들은 그건 모르고, 줄 위에서 재미있게 노는 것만 보잖아요. 사실 굉장히 힘들지만 힘이 드는 티를 내지 않는 거예요.
글을 대중적으로 쓴다는 건 그런 거 같아요.쓰는 사람이 글을 쉽게 쓰면 남는 게 없잖아요. 그렇지 않으려면, 많은 독서들과 계획들을 바탕에 깔아야 되거든요. 그에 대한 주체적인 해석들도 깔고 그 위에서 놀아야 되는데 그게 힘들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되는 거예요.

원래는 고등학교 이상을 염두에 두고 썼어요. 고등학생부터 대학교수님들 까지…그런데, 요즘은 중학생들도 잘 읽었다고 편지가 와요.
전 이 책에 이중코드를 넣었어요. 예를 들어,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모르고 봐도 재미있어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독서구요. 그런데, 인문학을 좀 알고 계신 분들이 보면, 이 책에 담긴 여러 가지 복잡한 코드들을 읽을 수 있거든요. 대중성과 전문성을 다 갖춘 것이 바로 이런 이중코드죠.

저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번 읽으면 안돼요. 제가 거기에 집적해 놓은 정보량이 굉장히 많거든요. 농축하고 압축해야 책이 오래가요.
순간적인 베스트셀러처럼 확 팔리고 안 팔리는 책들은 참신한 생각 하나 가지고 쓰는 거죠. 그게 그 시대의 감각과 맞으면 되는 거고. 하지만 스테디셀러로 가려면, 밑에 기본적인 정보량의 있어야 되요. 그때 그때의 트렌드를 뛰어넘는 오래갈 수 있는 내용들, 근본적인 것을 깔아줘야 하는 거죠.


이 책을 읽고 대부분은 책에 나오는 걸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데, 전 사다리만 놓아준 거예요. 독자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써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독서가 필요해요. 책에 나온 하나하나의 항목에 대해서 알아 가야죠.


네이버 뉴스 많이 보죠. 검색으로 네이버 지식인도 찾아봐요.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쓸 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저는 학생들이 질문하잖아요. 그럼 이렇게 얘기해요.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네이버에 찾아보라고. 가령 단순한 정보 같은 경우, 저는 대충 얘기해 주고 자세한 것은 네이버에 가서 찾아보라고 해요.

예전에는 지식이 사람 머리 속에 들어있었는데, 이제는 외장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인간의 두뇌기능이 다른 쪽으로 진화해야 되는 거예요. 예전에는 인간 두뇌의 중요한 기능이 계산 능력과 암기 능력이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암기는 데이터베이스가 대신해주고, 계산은 프로세서가 해줘요.
난 그게 인간이 퇴화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능력을 다른 방향으로 쓰는 거죠. 그게 바로 조합하는 것 이예요. 원하는 정보를 찾아서 새로운 정보로 조직해 내는 능력. 영화로 치면 몽타주 같은 것이죠. 어디 있을 지 모르는 보물섬을 찾아가듯이 항해를 해서 보물을 찾고, 그 보물을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 인간의 역할이죠.
사실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필요한 자료의 80% 가량은 인터넷에서 찾았어요. 저도 놀랬어요.

점점 미디어 환경은 문자가 사라지고 문자가 소리와 그림이 되고 있어요. 예전에는 활자 권력이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몰락하고, 소통의 중요한 수단이 소리가 되어 가고 있어요.
인터넷 글쓰기라는 것은 소리를 글로 쓰는 것 이예요.글을 쓰는 상황 자체가 대화적 이잖아요. 정서적 친교이구요. 사실 그 옛날 원시 때 존재했던 것이 구술 문화예요. 이제 새롭게 일어나는 지금의 현상을 전 제 2차 구술문화라고 부르는데, 거기엔 활자 문화를 뛰어넘을 소통의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제 2차 구술 문화는 텍스트를 바탕에 깔고 일어나요. 이럴 때일 수록 텍스트를 읽고 쓰고 이해하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해질 거예요.
미래는 둘로 가는데 하나는 프로그램을 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프로그래밍 당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프로그래밍 하는 사람들은 텍스트를 깔고 즉, 합리성과 독해, 이해 능력을 가지고 그림을 이해하고 만드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일 거예요.
미래의 문맹자는 그림을 못 읽는 사람들 이예요.남들이 만든 그림에 주입 당하는 사람들이죠. 여러분들은 어느 쪽에 속하겠느냐. 그림 속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자기 속의 텍스트를 그림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될거냐. 아니면, 남들이 만든 그림을 가지고 , 그걸 세상이라고 착각하고 살겠느냐.
저는 이런 시대에 오히려 결정적인 것이 이성이라고 생각해요. 활자 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것, 그걸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