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cker 크래커 (CD 1장 포함)
토마 지음 / 애니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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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밤을 샜으니 오늘.. ^^ 오늘 부천국제만화페스티벌에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기획상 부분에 이 만화 크래커가 당선이 되어있는것이다.  어떤 만화인지 궁금해서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림도 좀 그렇고 글씨체도 맘에 들지 않아서 계속 볼까 말까..망설였는데 어쩜 넘기다보니 푹..빠지게 되더군!!

남자 여자 과연 친구가 가능할까.. 뭐 이런 얘기를 떠나서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거 같아서 참 좋았다. 독립은 하고 싶은데 혼자 살기는 두려운 연식은 가장 죽이 잘 맞는 친구 무진이네 집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무진이는 남자, 연식이는 여자!! 우리 일상생활에서 진짜 아주 자주 일어나는 일들을 편안하게 그려주고 있다. 특이할것도 없고, 이색적일것도 없이 그저 다 그럴듯한, 일어날법한 이야기들로 엮어져 있다.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가끔씩 보이는 두 사람의 쑥쓰 모드가 앞으로 이들이 계속해서 친구로 남을것인지 연인으로 발전할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바램은 그냥 친구로 남는거!! 이제 더이상 남녀간에 친구가 성립되느니 마느니로 다투기 싫으니 그저 친구로 남아주길 바랄뿐... (이 만화에서만이라도..^^)

일단 상받은거 너무너무 축하하고!! 앞으로 더 멋지고 사랑스런 연식과 무진의 일상을 그려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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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8-1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천국제만화페스티발기간이군요. 벌써 잘 다녀오세요

씩씩하니 2006-08-1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패스티벌...흥미롭게 느껴져요..
거긴 왠지 세상을 재미있게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올듯하지 뭐에요..

이쁜하루 2006-08-22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재미있게 즐기는 사람도 있고 아직도 덜자랐구나..혼나는 사람도 있구 ^^
잘 다녀왔습니다
 

 

기억의 조각들은 아주 사소한 것을 계기로 불시에 찾아와 무더기로 쏟아져 버린다

그리고는..

무방비 상태에 있던 인간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듯 괴로운 시간이 지나가면 곧 괜찮아질 것이다.

나는 아마도 또 벽을 만들어 갈테니까

저번것보다 훨씬 두껍고 튼튼한 벽을...

그러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실컷 슬퍼해도 괜찮다.

이런 순간들이 반복되다보면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고 예민했던 그 시절들의 나는

언젠가...

말끔하게 다듬어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랜시간 거친 파도에 마모된 바닷가의 유리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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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글귀다.

희진이처럼 내내 참고 있던 무언가를 확..터트리게 되면서 왈칵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글..

나도 언제나...상처 받지 않기 위해 벽을 쌓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무너지면 또 쌓고 또 쌓고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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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10-1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오늘보다 두꺼운 벽을 치며 세상을 살아가는 저를 봅니다..
상처 받을 때마다 앞으로 나서기는 커녕 사는게 다 이런거지...그래 세상은 어차피 나 혼자지..하면서 그렇게 벽을 만들어갑니다..
그러지 말아야하는데.......왜 이렇게 세상을 방어적으로 살게되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쁜하루 2006-10-20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나약한 존재이니까요! ^^
누구나 다 상처 받으면 그걸 치유할 능력이란 없는거 같아요
그래서 다른것들에 의지하잖아요 종교나 심리상담이나...
뭐 세상을 방어적으로 사는것이 꼭 나쁘지만은 아니니까 자책하진 말자구요!
그리고 씩씩하니님은 충분히 힘차게 살고 있는것 같은데 ^^
 
달려라 바퀴! - 제1회 바람단편집 높새바람 11
최정금 외 지음,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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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 단편집을 읽으면서 동화란 무엇인가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동화 : [명사]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童心)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 또는 그런 문예작품. 대체로 공상적, 서정적, 교훈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 출처 네이버 사전

내게 있어 동화라는 개념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공상부분이 가장 두드러진 특성처럼 여겨졌었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들이 호랑이가 담배도 피고, 까치가 은혜도 갚 듯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것 같은 일들이 많았고, 이솝우화, 안데르센 동화집, 로알드 달의 책 등 여러 이야기들이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단편집은 달랐다. 이걸 동화라고 불러도 되나? 라는 의구심이 들정도로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인권위원회에서 펴냈음직한 이야기들도 꽤 많았다. 난 이 단편집을 동화와 소설의 중간 즈음으로 바라보기로 하였다.  

소설 : [명사]  <문학>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 일정한 구조 속에서 배경과 등장인물의 행동, 사상, 심리 따위를 통하여 인간의 모습이나 사회상을 드러낸다.  - 출처 네이버 사전

나는 사실 읽으면서 참 좋았다. 개죽음, 고물성을 지켜라, 기도하는 시간, 명랑한 블루, 분홍빛 가출, 작은집 이야기 이 특히 좋았는데 읽고 나서 생각할꺼리를 참 많이 만들어준 이야기들이였기 때문이다. 개죽음은 작은 생명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고, 고물성을 지켜라는 NIMBY 라고 해야하나, 동네에 고물상, 고아원, 장애우시설 등을 꺼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기도하는 시간은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가르쳐주었고, 명랑한 블루는 살짝 패미니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분홍빛 가출은 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작은집 이야기는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읽으면서 참 좋았지만 이런걸 아이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을까? 살짝 고민이 되었다. 엄마가 되면  아이들의 책 읽기의 수준을 나이에 맞춰 높여가는것에 많은 고민을 하는것 같다. 난 아직 아이가 없지만 언니의 경우만 봐도 4-6세 추천도서 라든가.. 이런식으로 수준을 높여 가면서 보여주는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느 나이즈음에 보여주는것이 가장 좋을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올라갈 때?? 아님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갈 때? 잘 모르겠다. 항상 아이들을 위한 동화는 아이가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재미가 있어야해! 라고 생각해왔던 내게 이 책은 살짝의 충격을 던져주었다고나 할까.  재미도 있지만  깊은 사고의 세계로 건널 수 있는 다리, 뭐 그런 책이라고 여겨진다. 좀 더 많은 이런 책들이 나와서 동화의 한 장르로 보편화 되었으면 좋겠고, 아이들도 편안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책 읽은 뒤 한번즈음 토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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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08-1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 동화에서 너무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드라구요.
근대..아이들은 나름의 이해를 한다네요...
밝은 것,,,가벼운 것만 주고 싶은 것도 우리의 과보호일까요??

이쁜하루 2006-08-22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어제 미술 수업을 듣는데 현각스님이 세상은 혼돈과 갈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은 혼돈과 갈등이..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하대요..그래서 그럼 아이들에게 세상은 혼돈과 갈등으로 되어있다..라고 말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의 언어로 가르쳐야 한다면서 희망과 빛으로만 되어있는건
아니라고..말해줘야 한다고 하대요...
아이들이 희망, 빛으로 이 세상을 만들어주길 바라는데..그건 또 아닌가봐요..^^
 
 전출처 : kimji > 달콤한 당신들의 도시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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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달다,의 반대 의미는 무얼까. 쓰다? 짜다? 달지 않다? 아무 맛도 없다?  달콤한,이 수식하는 건 '나의', '도시'다. 달콤한 나. 혹은 달콤한 도시. 그러나 독자는 이미 알고 있다. 달콤하다,가 반어적인 의미라는 것 쯤은 말이다.  
  인물들의 현실은 다분히 달지 않다. 해놓거나 이룬 거 없는 서른둘이라는 나이, 녹록하지 않은 가족사, 멋질 것도 근사할 것도 없는 일, 너무 늦었거나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희망이나 꿈도 달지 않다. 그 뿐인가. 언제나 지끈지끈 머리 아픈 연애는 어떤가. 일곱살 연하남과의 연애,도 연애지만 결혼을 떠올리며 만나는 반듯반듯한 30대 중반의 남자와의 연애도 그리 수월치 않다. 이혼남이 된 첫사랑과의 재회, 오래된 우정의 선을 넘길듯 말듯한 이성친구와의 관계도 묘연하다. 연애 뿐만이 아니다. 결혼은 어떻고, 이혼은 또 어떤가.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러하다,고 쉽게 말할 수 있다. 누구나 그렇게 복닥복닥 살아가는 거라고,도 할 수도 있다. 햇빛 쨍 한 날이 있으면 비가 오는 날도 있는 거라고,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이 내 일이 되었을 때의 막막함이라든지, 절박함, 혹은 절망감, 때로는 자포자기도 할 수 있는 (기이한) 용기를 생각해보자.(아, 괴롭다). 하루하루는 고만고만한데, 나이는 점점 더 늘어가는데 왜 점점 더 우울해지고 점점 더 부족한 것들 투성일까(부족한 건 점점 더 늘어나기까지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치의 발전도 없으며 왜 한 가닥의 희망도 한 뼘의 기쁨도 늘지 않을까. 그건,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돈이 있나 없나, 어리나 늙었거나, 애인이 있거나 없거나, 여자거나 남자거나, 당신이거나 나이거나. 현실이 그렇게 단 것이 못 된다니, 그럴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 소설에는 다른 원인이 하나 더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하고, 이십대후반이 되면 결혼을 하는 것. 이성관계의 양다리는 안 되고, 직장에서는 유능해야 하며, 정의로워야 하고,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이만큼은 해야 된다는 사고방식. 바로 통념이다. 물론 통념도 현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으나,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통념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예를 들면 상품의 브랜드네임으로 인물, 소설적 상황, 배경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키 운동화, 이효리의 새 앨범, 정우성의 외모, 애니콜, 생고구마칩, 리바이스타입원 청바지, 스타벅스, 지펠 등이 이 시대를 형상화 할 수 있는 대표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 시대의 30대 미혼(혹은 비혼) 여성의 취향,이 마치 꼭 저런 것들이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전제 말이다. 통념이라 하기보다는 정형성,이라는 의미가 조금 더 가까운 것들. 그래서 위험하다. 그 정형성은 인물들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만드는데 수월하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로 독자를 소외시키기에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용감하게 실명을 사용한다. 현실감과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 혹은 '그것만이라고는 할 수 없음'에 대해서 어떻게 반박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형성에서 한치의 다름을 허용하지 않음, 그것이 종종 가독을 저해하지만 이중적이게도 가독을 위한 친절한 안내가 되기도 한다는 건 분명하다.  
  인물들은 그런 통념에 갇히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그 통념에 자신을 넣으려고 애쓴다. 그것을 제도권 안으로의 안전한 귀착으로 여기면서, 그러나 그것이 속물로 치부될까봐 섣불리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결국 달콤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달콤함을 꿈꾸고, 그러나 달콤하지 않은 끝을 만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달콤하기 위해서 산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소설의 갈등은 바로 개인과 통념사이의 싸움이 아니었을까. 인물들끼리의 갈등보다 인물이 통념과 싸우는 형색이 더 짙었다. 그러나 독자는 안다. 결국, 현실의 인물이 통념을 이겨 버릴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따지고보면 소설은 처음부터 끝이 예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달콤하다,라고 말했으니까. 달콤하다고 말하는 건 달콤하지 않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극명하게 정확한 메시지 전달이었다는 것이다.

  나의
  1975년생이면 주인공 오은수는 나와 동갑니다. 교과서가 바뀌었고, 수능0세대였으며, 방위가 사라진 세대다. 졸업해보니 IMF여서 유학을 가거나 대학원에 들어갔다. 또 다시 졸업을 하고 다시 현실로 와보니 2차 IMF가 눈앞에 떡 펼쳐져 있었다. 75년생들은 토끼띠다. 두 귀를 축 늘어트리고 코를 찡긋거리면서 불안한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는 희멀건한 토끼 한마리,를 떠올리면 75년생들을 대변하는 이미지가 될까? 여하튼, 주인공과 친구들은 75년들이다. 곧 서른둘이 되고, 일도 연애도 잘 풀리지 않으면서 결혼에 대한 강박관념, 꿈에 대한 강박관념, 연애에 대한 강박관념 속에서 허부적거린다.
  삼십대는 쉽게 자신의 세계관을 수정하지 않는다. 고집이 아니라, 이제 굳혀진 자신의것,이 되버린 것이다. 제 몸인양 자신의 사고는 자신의 생각대로 고정되었을 뿐이다. 유연할 것 같지만 결단코 유연하지 못하는 것이 삼십대의 마인드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철없다고 손가락질하던 이십대를 갓 지나왔고, 이제 어디서든지 내 몫의 일도 할만하다. 그러나 중년은 아니니 젊은 것 같지만 푸릇한 20대를 보면 기가 죽는 걸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소설 속 인물들이 가진 공통점이고, 그래서 그들은 갈등하며 싸우고 다시 화해한다. 내 사고를 바꿀 수 없으므로 싸울 수밖에 없고, 그들은 동년배이기 때문에 화해한다. 그들의 결속을 단단히해야 20대에게 치여도, 중년에게 눌려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 오은수와 재인과 유희, 유준은 명확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개인으로 등장하지만 그들은 모두 75년생을 대표하는 대명사와 같다. 75년생이라고 한정할 필요도 없다. 이 시대의 삼십대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니까. 단 오은수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극단에 선 인물들 사이에 절충안같은 성격으로 만들어놨을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같은 목소리이다. 그 목소리는 바로 소설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것. 우리의 도시가 아니라 너의 도시가 아니라 나의 도시라는 것에 주의를 둘 필요가 있다. 소설에서도 등장하지만 사회를 이루는 최소단위는 가정이라고 배웠지만 실제로는 이 개인 개인들의 집합체라는 진술이 그 의미를 대변한다. 세상은, 어차피 혼자다. 부모형제간도 타인인데 하물며 친구나 애인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서로 만나고 사랑을 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것을 되풀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 하나는, 그 개인, 즉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그 '나'는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일과 꿈에 대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잘 사는 것인지, 어떤 선택이 더 현명한 것인지,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 말이다. 미혼이나 비혼이나, 가족을 꾸리고 있는 자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미혼여성으로 축소화되고 있는 인상이어서 안타깝다. 조금 더 포괄적으로 접근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 말이다. 은수, 재인, 유희 이 세 여성의 연애와 결혼관을 통해 보여지는 그들의 삶과 진중한 고민, 그리고 해결방안이 대의적 의미를 못 가지는 점이 안타까웠다는 것.
  그러나 충분히 그들의 고민에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은 나도 그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었던 이십대 후반, 내가 겪고 있는 서른 초입이라고 해서 왜 그저 평탄하기만 하겠는가. 뭐랄까, 멋져보이는 그녀들에게도 이런 고민과 서글픈 현실이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못된 심리. 허울 속에서 썩고 있던 그녀들의 마음을 슬쩍 엿보고 난 후에 가지게 되는 이 알량한 안도감. 그것이 책을 다 읽고나서 선뜩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작가가 바란 의도였을까. 이런 알량한 마음, 그 마음을 확인하며 치졸한 '나'를 실감하게 하는 작용, 말이다.

  도시
  도시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개인과 개인들이, 통념에 어긋나지 않게 사는 것. 그것이 가장 안전하며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예를 들어, 함부로 꿈을 좆는다거나, 함부로 통념이 가진 위선에 맞선다거나, 함부로 자신을 사랑하는 걸 포기하게 될 경우, 도시의 삶은 영위할 수 없다.
  소설 속 인물들이 움직이는 동선은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에서 이뤄진다. 단순히 도시, 즉 서울이라는 물리적 지리공간 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외로움을 느끼지만 절대 외롭다 발설하지 않으며, 외롭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해도 그 외로움이 극복되지 않아 다시 이별하게 된다. 그러나 도시의 불문율이 있다. 그건, 바로,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 도시적 삶의 행태는 다분히 행복하다와 거리가 있어야 한다. 외롭고, 쓸쓸하며 고독한.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우울한 자태가 되버리는. 그리하여 도시의 삶이란 그저 그렇게, 오늘도 고층빌딩의 잿빛을 닮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판에 박힌듯, 누구나 그러하듯 말이다.
  소설 속에서의 도시, 즉 서울은 소비의 공간이다. 물질의 소비,뿐만이 아니다. 사랑을 하고, 의심을 하고, 믿음을 가지며, 슬프고, 기쁘고, 외롭고 우울하고 등, 모든 감정들을 소비하기에 적절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이 많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많아질수록 외로움은 깊어간다.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고독은 짙어간다. 그러므로 과잉된 감정을 처치해야 한다. 사랑으로 우정으로, 혹은 그 어떤 양태의 관계를 통해서라도.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조절능력이 미약하다. 태오는 너무 많이 사랑하며, 은수는 너무 많이 생각하며, 재인은 너무 많이 계산하고, 유희는 너무 많이 희망적이다. 유준은 너무 많이 낙관적이며 김영수는 너무 많이 어둡다. '너무 많이'라는 과잉들의 충돌이 관계의 틈을 비집고 나가 갈등을 만든다. 그리고 그 갈등은 결국 파국으로, 혹은 화해로 맺어진다. 도시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언제나 부족한 시간에 내 과잉된 감정을 최소화 시키는 일상을 보내는 것. 그러니 갈등은 필연적이며, 관계의 얼그러짐 또한 내재되어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달콤한 당신들의 도시
  소설은 아주 명확하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모두 분명하고(너무 분명해 빤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갈등은 현장감있게 처리되었으며, 문체는 재기발랄하여 가독성이 높고, 메시지도 똑부러진다. 더할나위 없이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어쩐지 조금 씁쓸하다.
  나와 동갑내기인 인물들의 일상을 훔쳐보면서 나는 그들에게서 나를 발견하곤 했다. 너무나 닮아서 속이 쓰리기도 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와 전혀 닮지 않은 부분도 많다. 보편적이지 못한 건 나일까, 소설 속 인물일까. 나는 내가 평범하게, 보통의 일상을, 그저 평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내 사고체계도 그저 평균치를 맴돈다도 믿으며 살았는데, 가만히 보니 나는 좀 얼뜨기였다는 느낌이 든다. 얼뜨기가 아니라면 촌스러운 사람이거나, 촌스러운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 물정에 어둔 사람. 그도 아니면, 뭐랄까 조금 뒤떨어진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생각 말이다. 그건 아마도 작가의 진술이 확정적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누구나 그럴지도 몰라, 라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모두 이렇다고! 라고 큰 소리로 말하니, 거기에 포함되지 못한 나는 지레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나만, 그렇게 읽은 것일까?

  소설을 다 읽고서 나는 섣불리 인물들의 내일을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행복하거나 혹은 외로울 것이다. 쓸쓸하거나 혹은 열정에 불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안정되거나 혹은 여전히 불안할지도 모른다. 여하튼, 인생이란 흐르는 것이 아닌가. 나의 시계바늘이 움직이는 만큼 당신의 시계도 똑같이 움직일 것이다. 도시의 시간이 그러하듯, 도시를 메꾸고 사는 개개인들의 시계가 그러하듯 말이다. 그러니,
  잘 살아라, 지금껏 살았던대로 살아라, 너희들. 함부로 아프고, 함부로 똑똑한 척 하고, 함부로 우울해하고, 함부로 예쁜 척 하고, 함부로 사랑하면서 살아라. 그것이 가장 도시인 다운 삶일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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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Exhibition (드라마 전시)의 형태인 [Her Room]을 아르코 미술관 전시실에서 보고 왔다. 드라마 전시라...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그녀의 방이니 만큼 살짝 패미니즘 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갔는데 그냥 평범한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여성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었다. 좀 특이 사항이 있다면 다른이들보다 좀 더 신경질적이라는것과 소화불량에 자주 걸리는 것, 그리고 모든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 죽음을 택하는 것.. 이정도가 좀 오버된 일상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저것들도 사실 두고보면 내 내면에서는 하루에 열두번도 더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지아의 연기가 이십대 답지 않게 농익고 자연스러워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과 공연을 구분안되게끔 하는 것 같았고, 여섯개로 구성된 방에서 각자 보여주는 색깔과 주제들이 달라서 즐거운 공연이 되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감각과 감성을 더 자극하는 공연이였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거야? 라를 생각하기보다는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나와의 공감대를 찾아내고 즐겁게 또는 슬프게 받아들이면 되는 그런 공연인듯하다

낮에는 공연없이 공연 세트를 전시만 한다고 하는데 공연을 봐야 그 세트가 주는 의미들이 무엇인지 더 잘 파악될듯하다.

공연은 26일까지 평일 저녁 8시 토,일은 낮 3시 6시. 이렇게 공연 된다. 이항나 샘이 연출을 하셨는데 영상과 현실을 적절히 오가는 연출!! 예전 연극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그렇게 멋지게 해내셨다고 하더니 연극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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