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문화계 이사람을 보라] 2. 화가 정연두씨
입력: 2007년 01월 02일 17:35:05
 
지난해에 미술계에서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는 ‘사진의 부상’이다. 그런데 이들 사진전에는 사진을 전공한 이들이 촬영한, 전통적인 사진 어법에 충실한 작품보다는 미술을 전공한 이들이 사진을 표현매체의 수단으로 사용한 작품이 더 많았다. 정연두씨(38)는 이러한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 중 단연 선두에 있다. 영국 유학후 귀국해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채 7년이 안되지만 그가 이룬 성취는 놀랍다.
정연두씨가 최근 작업중인 ‘로케이션’ 시리즈의 슬라이드 필름을 손에 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실과 유사하지만 결코 현존하지 않는 세계의 창조’로 요약되는 그의 작업은 그 의도와 개념이 분명하며 잘 짜여진 구성과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자랑한다. 때문에 종종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해 수정을 거친 게 아니냐는 오해도 받지만, 같은 이유로 미술품 컬렉터들과 주요 미술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지난 연말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례적으로 주로 중장년 작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기획전 ‘올해의 작가’전의 2007년도 작가로 정씨를 선정했다.

-현존하지 않는 현실의 창조자-

한 해에 열대여섯 차례의 전시에 참여할 정도로 바쁜 정씨를 만나 그간의 작업과 올 한 해 계획을 들어봤다. 먼저 5월에 열릴 ‘올해의 작가’전에 대해 작가는 “젊은 작가에게 이런 큰 기회를 준 만큼 회고전보다는 새로운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라며 “현재 계속 진행 중인 작업과 새로운 작업을 담아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씨는 대학에서 조소를, 영국 유학 당시 순수미술을 전공한 이후 퍼포먼스·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1990년대 후반에는 음식 퍼포먼스를,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춤추는 남녀의 사진으로 벽지를 만들어 붙인 설치작업 ‘보라매 댄스홀’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거나 혹은 현실에 바탕을 두면서도 결코 현존하지 않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누군가의 꿈을 사진으로나마 실현시켜주는 ‘내사랑 지니(2002~ )’, 유치원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현실로 구체화하는 ‘원더랜드(2004)’, 영화나 광고 속에서 봤을 법한 풍경을 구체화한 ‘로케이션(2005~ )’ 등이 그러하다.

“현실에는 대단한 리얼리티가 담겨 있지만 저는 현실과 무대가 괴리되는 가상공간,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두 개의 가치가 공존하는 상황, 당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제3의 무언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2004년 가을부터 작업해온 로케이션 시리즈는 현실의 공간에 허구의 요소를 도입한 사진작업이다. 노란 은행잎 나부끼는 거리에는 은행나무를 배치한 대형 화폭을 슬쩍 끼워넣고, 한밤중 수북이 쌓인 눈길을 걷는 어린이의 머리 위로는 진짜 눈송이 같은 가짜 눈이 내린다. 영화 혹은 광고 등 어디선가 봤을 법한 낯익은 야외풍경이지만 그속에는 늘 인공적인 요소들이 가미돼 있다.

그가 여러 연작을 통해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결국 인생은 하나의 무대라는 것이다. ‘내사랑 지니’ 시리즈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살면서 우연히 만난, 혹은 늘 스치는 일상의 풍경을 구성하는 인물들의 꿈을 사진으로나마 실현시켜주자는 이 작업은 현재까지 미국, 터키, 영국 등 약 10개국에 사는 20명의 꿈을 실현시켜줬다.

작업의 대부분이 짜임새 있는 구성을 자랑하는 연출사진이어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귀국했을 때부터 결심한 게 제 돈을 퍼서 작업하지는 않겠다는 거였어요. 시간과 여건이 될 때 진행합니다. 한 시리즈를 계속하겠다, 안하겠다고 결정하지도 않고 시간에 구애받지도 않아요. 아이디어가 있고 돈과 시간만 된다면 작업은 언제나 가능하죠. 그런데 이게 꼭 들어맞지 않아요.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데 아이디어가 막 생겨나요. 그럴 때면 차곡차곡 정리를 해두는데 전 ‘적금 들어놓는다’고 표현하죠.”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선정-

지금에야 ‘잘 나가는’ 작가지만, 귀국 당시만 해도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어학원에서 강사로, 게임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현재는 작업과 전시에만 몰두하고 있다.

“작품을 팔아서 제 생활을 꾸려나가고 이것이 또 다른 작품활동을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게 뿌듯합니다. 저는 거창하게 유명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작품으로 떼돈을 벌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시각언어를 가지고 내 아이디어를 가장 유효 적절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족해요.”

요즘 그는 영상작업에도 도전장을 냈다. 6명의 내레이터가 미국 시인이 써준 스크립트를 바탕으로 서로 이야기를 하는 구조로 된 영상물인데, ‘올해의 작가’전에 전시할 예정이다. “무언가 모르는 장르를 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측면에서 마스터가 필요지만 배워가며 하려고요.” 전업작가가 됐지만 ‘아마추어리즘’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작가 정연두, 올 한 해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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