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특별판)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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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는 서평이 심히 엇갈리는 소설이다. 한쪽에서는 감동과 극찬이, 다른 쪽에서는 실망과 비판이 날 서게 대립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우연한 기회에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나 처음에는 별로 관심 두지 않았다. 이른바 검증되지 않은 한때의 소설 읽기에 자원을 쏟고 싶지 않았으므로. 양분된 독자평이 오히려 흥미를 끌었다.

 

세평에 휩쓸리지 말고 편견 없는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리라 다짐하고 책을 읽어 나갔다. 그래야 나중에 어떠한 작품 평을 해도 떳떳할 것 같아서였다. 초반의 흥미진진한 서사에 몰입하였다. 중반부의 도담과 해솔의 사랑과 방랑, 이별에 마음 아팠다. 후반에 가서 그들의 재회와 이해, 그리고 드러난 비밀 장면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독자의 마음과 작품을 연결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작품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기법과 구성, 표현 등의 미세한 아쉬움은 별다른 흠결이 되지 않는다.

 

“너희는 악연이야. 얽혀서 좋을 게 없어. 절대로 연락하지마.”

정미가 거세게 기침하며 도담의 손을 잡아끌었다. (P.84)

 

정미의 말마따나 두 사람의 인연은 결과적으로 악연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두 사람의 행동이 없었다면 두 가족이 풍비박산 나지 않았을 거라고 확언할 수 없지만, 그처럼 남부끄럽게 목숨을 잃는 결말로 나아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자신이 구해 주고 자신을 구해 준 사람. 같은 또래, 그리고 첫사랑. 도담과 해솔은 분리될 수 없는 사이다. 두 사람은 남들이 갖지 못한 비밀의 공유자이자 겪지 못한 비극의 주인공이므로. 너무나 가깝고 친밀한 존재이기에 오히려 지긋지긋해하고 다투며 뛰쳐나가지만, 그들의 과거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다시 있기 어렵다.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소외되고 싶지는 않으므로. 자기 내면에 가면을 씌운 채 진정한 사랑을 구하는 건 자체로서 가능하지 않은 시도다.

 

해솔과 자신을 과연 무슨 사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은인? 친구? 연인?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잊으려 애썼지만, 사실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이름이었다. (P.203)

 

승주의 말처럼 도담에게 승주, 해솔에게 선화는 대용품이자 구명환이다. 상대의 부재 속에 홀로서기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불가능함을 확신하기 전에 필요했던. 그나마 선화는 슬퍼하면서도 그들을 받아들인다. 해솔의 마음속에 자신이 자리할 공간이 없음을 일찌감치 알아차렸기에. 독자로서 선화의 행복을 다만 바랄 뿐이다.

 

세월의 때가 묻다 보니 창석과 미영의 관계도 그럴 수 있지 하고 생각하게끔 된다. 세상일이란 게 반드시 나의 뜻과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겪어서일까. 한편 도담과 해솔의 지긋지긋할 정도로 강렬하고 뜨거운 고통과도 같은 사랑에도 공감과 애틋함을 품게 된다. 도담은 사랑의 도덕성을 기대하지만, 사랑이란 애초에 눈먼 존재가 아니던가. 창석의 배신에 치를 떨며 찌그러뜨리려고 마음먹은 것 또한 그가 창석을 너무나 사랑해서다. 이후 도담이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을 뿌리치는 이유 역시 자신의 사랑관이 무너져서다.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P.104)

 

이 책의 작가 소개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작가는 영화계 출신이다. 그의 전작을 보면 작가의 배경이 깊게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을 순전한 문학 관점이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로서 접근하면 이 소설의 특성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두 주인공의 명확한 성격 대비. 비현실적일 정도로 치열한 만남, 사랑, 다툼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관계.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기 위한 소설의 여러 장치, 즉 우연성, 주인공의 직업과 사고, 비밀. 주인공을 더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조연의 역할 등.

 

우여곡절 끝에 도담과 해솔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고 다시 놓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린 나이부터 과도할 정도로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맞닥뜨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므로.

 

둘은 물결을 가로질러 서로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해솔과 도담은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P.298)

 

내가 읽은 책은 ‘사랑의 에디션’이라고 한다. 20만 부 돌파를 기념하기 위한 특별판이다. 설명 문구처럼 신진 작가의 구간이 역주행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역주행의 대명사가 되었던 몇몇 아이돌 그룹도 아니고. 감상 후의 소감은 뭐랄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근래에 이러한 몰입감을 가지고 소설을 읽어본 게 언제 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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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손아진 피아노 독주회 - Die blaue Blume Ⅱ

일시 : 2026년 8월 11일(화) 19:30

장소 :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연주 : 손아진 (피아노)

프로그램

  -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C장조 Hob.XVI:50

  - 라벨, 거울

  -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C단조 D.958


* 세줄평

라벨의 연주가 가장 좋았다. 그렇게 애호하는 곡이 아니었는데, 섬세하고 정확한 터치가 곡상에 부합하였다. 하이든 소나타는 분명 잘하는 연주같은데 내가 기대하는 하이든 느낌은 아니었다. 마지막의 슈베르트는 그다운 느낌 외에 미처 간과했던 여러 들을만한 포인트를 짚어주어서 새삼 흥미가 당겼다. 전반적으로 강한 개성을 내세우기보다는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연주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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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데 코르쿠트의 서(書) - 코르쿠트 할아버지의 튀르크족 영웅이야기
이재정 옮김 / 계명대학교출판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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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 서사시>(걷는사람)를 읽었다. 전 12편의 이야기 중 절반인 6편만을 담고 있다는 점과,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평이한 편집에 일말의 아쉬움이 있었다. 다만 국내 초역이라는 점에 만족하기로 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이미 몇 년 전에 완역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작품의 문학적, 역사적 의의를 다시금 되짚어보면 아래와 같다.

 

<데데 코르쿠트의 서>는 아제르바이잔뿐만 아니라 터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전 튀르크인들이 공통으로 보유하고 있는 구전문학으로써, 고대 튀르크족의 생활 관습, 역사, 지리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뿐만 아니라 이슬람 이전 튀르크 사회의 이념과 정치사상, 튀르크족의 삶의 철학을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P.8, 머리말)

 

아무래도 이 책과 걷는사람 판본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오구즈족의 영웅서사시이므로 원서는 오구즈족의 언어, 지금으로 치면 아제르바이잔 또는 중앙아시아 민족의 언어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걷는사람 판본은 아제르바이잔 판본을 처음 번역한 것이고, 이 책은 러시아어 번역본을 우리말로 번역한 중역본이다. 즉 완역본 여부와 원전 번역본 여부가 두 책의 큰 차이점이다.

 

번역 저본이 상이하다 보니, 번역 어휘도 같을 수 없다. ‘디르새 칸의 아들, 부가즈 이야기’는 여기서 ‘데르세-칸의 아들, 보가치-잔에 관한 이야기’로, ‘바이배래의 아들, 밤스 배이래크 이야기’는 ‘바이-부라의 아들, 밤시-베이레크에 관한 이야기’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바사트가 외눈박이 테패괴쥐를 물리친 이야기’가 ‘데페-게즈를 죽인 비사트에 관한 이야기’로 큰 차이를 보인다. 다만 이야기의 줄거리와 내용 전개는 대체로 비슷하다.

 

걷는사람 판본에 실리지 않고, 이 책에만 실린 6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칸르이-코드자의 아들, 칸-투랄리에 관한 이야기’, ‘카즐리크-코드자의 아들, 이예켄크에 관한 이야기’, ‘베킬의 아들, 암란에 관한 이야기’, ‘우슌-코드자의 아들, 세크레크에 관한 이야기’, ‘포로로 잡힌 살로르-카잔을 구출한 아들, 우루즈에 관한 이야기’, ‘외오구즈족과 내오구즈족의 싸움과 베이레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이들 이야기의 배경과 제재는 솔직히 다른 이야기와 특별한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무사의 조건, 부모.형제와 같은 혈연의 중시, 기독교도 적국과의 갈등과 전쟁 등. 모두가 살로르-카잔과 그의 아들 우루즈를 중심으로 그의 신하들인 여러 베크의 이야기다. 특히 우루즈는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아들처럼 묘사되다가 다른 이야기에서는 용맹한 기사로 등장하여 적에게 사로잡힌 아버지를 구출하는 등 여러 이야기에 일관성 없이 등장하여 다양한 구전에 근거함을 알게 한다.

 

특히 ‘외오구즈족과 내오구즈족의 싸움과 베이레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달리 오구즈족이 내오구즈와 외오구즈로 분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어쩌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행위 하나가 종족의 갈등과 분열로 이어지고 끝내 밤시-베이레크와 아루즈라는 두 걸출한 무사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비극을 다룬다. 이 작품의 마지막 이야기로 실렸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정녕 그 이유를 모르신단 말씀입니까? 일전에 당신이 재산을 나누어 줄 때 외오구즈족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내오구즈족 베크들만이 있었지요. 바로 그런 이유로 외오구즈족 베크들이 안 온 것이지요.” (P.267)

 

걷는사람 판본에서는 언급하지 않거나 생략된 대목, 그리고 해설은 이 책의 미덕이다. 먼저 머리말에 따르면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친 백양 왕조(아크 코윤루)라고 하며, 지역적 무대 또한 이란과 이라크, 튀르키예, 그리고 카프카즈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 표제에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까닭은 수록된 12편의 이야기를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노래로 지어서 후대에 전수하였기 때문이다.

 

걷는사람 판본에서는 완전히 생략된 대목이 우선 서문이다. 몇 페이지에 걸친 서문은 코르쿠트 할아버지를 소개하고 그가 칸에게 한 몇 가지 예언과 신에 대한 영광과, 네 유형의 여인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각 이야기의 마지막 단락도 이 책에만 수록되어 있다. 그것은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이 노래를 지었음과 함께 그가 말하는 예언 내용이다. 영웅들도 죽음을 맞이하기에 세상은 덧없음을 애상 어린 어조로 일단 말한 후, 그럼에도 칸은 전능하신 신의 은총으로 영원히 번영을 누릴 것이라고 예찬한다. 마지막으로 신을 향한 기도로 이야기를 마친다.

 

온 세상이 내 것이라고 말하던 그 베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요? 죽음이 그들을 잡아갔고 땅이 그들을 숨겼습니다. 무상한 세상이 누구에게 남겨졌냐고요? 지상의 삶은 왔다가 가는 것이고, 그 종착점은 죽음입니다. 오랜 삶의 마지막도 죽음과 이별입니다. (P.277)

 

비록 러시아어 중역판이지만, 12개의 이야기를 모두 담은 완역본이라는 점, 서문과 코르쿠트 할아버지의 예언 단락도 모두 수록하였다는 점, 그리고 아동 청소년용으로 평이하게 각색하지 않고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였다는 점 등에서 개인적으로 이 책을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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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 돌베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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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국문학과 교수다. 흠, 뭔가 이상하다. 역사학자 또는 사회과학자도 아닌 인문학자가 3.1 운동을 다룬 책을 쓰다니. 3.1 운동을 문학사적으로 조망하려는 책인가 싶은데 책소개나 서평을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누구나 3.1 운동을 알지만 정작 3.1 운동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민족 대표 33인, 유관순 열사, 전 국민의 만세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역사에 비교적 지식이 있는 경우다. 하지만 정작 3.1 운동 자체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확 다가오지 않는다. 태극기와 만세운동, 비폭력 저항운동이라는 추상적 이미지뿐.

 

저자가 3.1 운동 백 주년에 맞추어 이 책을 쓴 까닭은 분명하다. 역사 속의 한 장면, 박제된 이미지가 된 3.1 운동을 학술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적 온기를 품고 자세히 알아보고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임을. 3.1 운동이 단지 지나간 역사적 한 사건에 그치지 않고 우리 근현대 역사와 문화에 깊은 족적을 남기고 이른바 판을 뒤흔들어 놓은 세기적 사건이었음을. 나아가 오늘날 우리는 3.1 운동의 지대한 영향 아래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3.1 운동의 본질과 계승에는 여전히 소극적임을 저자는 말하고자 한다.

 

주석, 출전 및 찾아보기를 제외하고도 560면에 이르는 두툼한 책의 내용을 쉽사리 이해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1부에서 3.1 운동의 전체적 맥락을, 2부에서는 시대적 흐름을, 3부는 실제 인물과 운동 각론을, 4부는 문학적 연계를 고찰한다. 역사와 대중적으로 유명한 민족 대표 33인과 유관순 열사는 거의 다루지 않는데, 민족 대표의 의미와 비중이 절대적으로 낮다는 점과 유관순으로 전형화된 인물 이면에 가려진 민초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3월 1일의 밤을 기술하는 저자의 필치는 세심하며 건조한 객관성에 함몰되지 않는다. 온기를 품은 채 흥분을 배제하면서 최대한 온화하고 담담하게 3.1 운동의 현장과 인물을 그려나간다. 그것은 후대에 비판적 평가 대상이 되는 인물과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연유로 역사와 인문을 결합한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은 것과 같은 깊은 여운을 갖게 됨은 전적으로 저자의 역량이라고 하겠다.

 

3.1 운동은 세계사적 맥락에서는 타당하지만, 국내만으로 제한하여 보면 매우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출현이었다. 강제 병합 이후 독립투쟁은 국지적 활동을 제외하면 사실상 휴면 상태로 접어들었고, 민족적 역량을 결집할 만한 구심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민족 대표 33인은 독립선언만 하면 그것으로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는 정도였고, 대중적 인식도 독립을 위한 만세인지, 독립에 기뻐한 만세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3.1 운동은 태화관 및 탑골공원에서의 작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전국으로 계층을 불문하고 확산되어 갔다.

 

독립의 선언이 곧 독립의 현실을 구성한다는 믿음이야말로 3.1 운동의 비밀이다. ‘와야 할 현실’을 ‘도래한 현실’로 변형시킴으로써, 그러한 정언명령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감염시킴으로써, 3.1 운동의 대중은 그 스스로 새로운 현실의 일부가 되었다. (P.52, 1부)

 

강화도 은세공업자 유봉진 사례는 이러한 자발적 주체를 예시한다. 저자는 3.1 운동의 거시적 의의만 천착하지 않고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재료에도 관심을 보이는데, 다종다기한 선언서의 변형과, 운동에서 태극기의 출현 시기와 그것의 실질적 의미, ‘만세’ 구호가 갖는 비일상적 상징성 등이 그러하다. 또 민초들에게 독립은 추상적 전망이 아닌 토지, 종교 및 기타 현세적 소망과도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그것은 일제 식민 통치가 그들에게서 빼앗아갔고 통제함으로써 당대 체제에서는 획득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재화였음도 빠뜨리지 않는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3.1 운동은 사회진화론이 표방한 제국주의 정당화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반박함으로써 향후 인류 보편주의가 지배적 이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다. 약육강식이 불변의 보편적 원리라고 인정될 때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는 사건은 대세 원리에 부합하므로 비난할 명분이 없다. 민족자결주의를 이해했든 곡해했든, 3.1 운동 선언서가 표방하는 인류 보편의 평화와 행복 추구권은 이후 사회진화론을 극복하는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세계’와 ‘인류’의 보편주의가 학생과 지식인 사이에서의 동향을 벗어나 일반적인 기류가 된 것은 3.1 운동 이후다. 거꾸로 말하자면 인류 보편주의의 성장에 힘입어 3.1 운동의 이념은 비로소 형성될 수 있었다. (P.211, 2부)

 

정신적 차원뿐만 아니라 물리적 기준에서도 3.1 운동의 영향은 지대하다. 3.1 운동의 영향으로 임시정부가 탄생하였으며, 비폭력 평화주의의 한계를 실감한 이후 무장 독립투쟁으로 노선의 큰 방향 전환이 생겼다. 3.1 운동이 외형상 실패하였음은 자명하다. 다만 이것을 독립 쟁취 여부로써만 판단하는 것은 단견이며, 향후 독립운동의 시발점 역할을 하였고 민중 인식을 근대화시켰다는 점을 유념하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3.1 운동 직후 무력투쟁이 극렬해졌다는 사실은 3.1 운동기, 특히 초기의 비폭력주의가 결코 불가피한 전략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3.1 운동의 비폭력은 체계적이거나 수미일관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P.332, 3부)

 

3.1 운동의 장소라고 하면 태화관과 탑골공원, 그리고 아우내장터가 우선 연상된다. 저자는 운동이 전국적이고 거국적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각 지역 사례를 예시한다. 통일된 중심 조직이 없는 만큼 운동의 양상은 지역별로 제각기 달랐고 전개 과정도 상이하였다. 대체로 비폭력 평화운동이었지만 평남 성천처럼 유혈 충돌이 빚어진 사례도 발생하였다. 장터 같은 번화가, 산꼭대기는 물론 다수의 군중집회, 한두 명의 격문과 태극기와 같이 규모도 천차만별이었다. 지방은 유림, 농민, 천도교도, 도시는 학생과 노동자가 만세를 불렀으며, 신분으로는 양반과 평민, 기생 같은 하층민을 포함하여 진주에서는 백정 아낙들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수년 뒤 백정해방운동인 형평사 운동이 진주에서 일어난 게 전혀 의외는 아니다.

 

아산보통학교 교사 박경순, 서울 기생 정금죽, 개성 교회전도사 어윤희 사례는 평범한 여성들이 3.1 운동 참여를 통해 정치, 사상적으로 얼마큼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경우라고 하겠다.

 

국문학자인 저자로서는 3.1 운동이 문화계, 특히 문학에 끼친 영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4부는 일제강점기 개괄적 국문학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헤이그 밀사 이위종과 몽골 어의 이태준, 김필순 일가, 홍명희의 방랑 등 3.1 운동 이전에 식민 지배에 좌절하여 탈출을 모색하던 청년층은 운동을 통해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 또는 대한인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강용흘과 이미륵의 망명 문학은 3.1 운동 후 해외에서 고유성을 기억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무단통치 시기 강력하게 억눌렀던 국문학이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한 계기는 일제의 문화통치 덕분이다. 3.1 운동으로 놀란 일제가 지배 방침을 변경하여 제한적이나마 우리말 교육과 출판을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한다면 3.1 운동이 없었다면 일본의 통치 기조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말은 끝내 말살되고 민족의식조차 미구에 소멸되었을 것이란 뜻이다.

 

3.1 운동 과정에서 민중은 일제의 유혈 진압과 핍박, 고문 등의 참상을 겪었다. 이로 인한 트라우마를 부정하지 못한다. 게다가 외형상 운동의 실패는 실망과 좌절, 패배 의식을 고취시켰다. 여기서 절망의 나락에 빠질 것인가, 어두운 현실을 명철하게 진단하고 분석함으로써 개선과 발전의 여지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인가, 현재 상태가 어둠의 밑바닥임을 깨닫고 희망의 빛을 확신할 것인가에 따라 문학적 입장은 달라진다. 저자는 김동인과 이광수, 심훈, 염상섭을 전형으로 제시한다. 운동 이전 동인지 문학에서 주도적 역량을 발휘하였던 김동인과 이광수는 오히려 3.1 운동 이후 타협의 길을 걷는다. 그들에게 3.1 운동은 민족의 독립 역량을 결집하고 표방한 긍정이 아니라 죽음 직전 마지막 비명으로 인식되었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대표적이다.

 

염상섭의 시각마따나 3.1 운동은 종착점보다 출발점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 적극적 의의를 갖는다. 3.1 운동은 개인적.민족적 층위에서 공히 불회귀적 사건인 동시, 실패냐 성공이냐의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사건이다. (P.543-544, 4부)

 

저자가 4부에 걸쳐 3.1 운동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3.1 운동의 중대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단지 역사적 사실, 현재와는 무관한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하는 시각을 일신하기 위함이다. 역사성의 거대 담론에만 치우쳐 간과하는, 우리네 민중 개개인의 삶과 행동과 선택이 그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3.1 운동을 그 세계사적 맥락으로 되돌리고 3.1 운동에서 토의된 정치.경제.문화적 쟁점들을 오늘에 되살려 보자는 것이다. 3.1 운동은 빛나는 경험이다. 그러나 그 빛은 천상의 순일성이 아니라 지상의 악전고투로 물들어 있다. (P.555, 나가는 글)

 

3.1 운동을 자세히 알고 싶은 호기심과, 국문학자가 3.1 운동을 어떻게 풀어냈을까의 궁금증이 이 책을 읽게 된 동력이었다. 3.1 운동을 다층 다면적으로 이해하고, 개별 인간 차원에서 3.1 운동의 현장을 접근하고 싶다면 읽은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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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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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로 역주행 각광 받는 작가의 데뷔작이다. 표제만 보고 어떤 유형의 작품인지 알기 어려웠다. 영어가 등장하고, ‘빌런’이라는 어휘가 사용되었으니 일종의 SF 소설일 거라고 지레짐작하였다. 막상 소설을 읽기 시작하니 완전히 잘못 짚었다.

 

작가는 영화 연출을 전공하였고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연출한 이력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영화 현장 경험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이 소설은 일반 독자가 알지 못하였던 영화 제작과 연출의 생생한 이면이 담겨 있다.

 

GV 빌런은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다. 성공한 감독과 배우라면 웃어넘길 수 있겠으나 화자처럼 무명의, 실패하고 영화인이라면 전혀 다르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예리하게 가슴 속에 파고든다. 화자가 GV 빌런 다큐멘터리에 착안한 계기도 분명 그에 대한 복수심을 무시할 수 없다.

 

어렵사리 빌런의 동의를 구하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시작하는 나. 이후 소설의 축은 나와 빌런 고태경의 촬영이 축을 이루는 가운데, 나와 종현의 남녀 관계, 나와 승호의 우정 관계가 주변을 장식한다. 처음에는 단지 빌런으로만 생각했던 고태경의 여러 행동이 영화인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이의 실현을 위한 끊임없는 준비와 공부 과정임을 알게 되면서 서사는 크게 방향을 전환한다.

 

“나 아직 영화인이오.”

고태경이 서늘한 목소리로 내 말을 잘랐다. (P.58)

 

관객은 영화 자체를 중시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과 배우, 그리고 제작진처럼 스크린 뒤의 세계는 잘 알지 못할뿐더러 관심도 약하다. 중요한 건 결과로써의 작품이다. 과정에 연출자의 어떤 고충과 한계가 자리 잡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성공한 영화와 영화인,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영화와 실패자로 낙인찍힌 영화인. 현재의 고태경과 화자 조혜나도 엄밀히 말하면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풍자처럼 촬영을 시작하였지만, 인간 고태경을 알아가면서 화자는 점차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와 같은 처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게 사실이다.

 

두 사람의 다큐멘터리 촬영이 별 볼 일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들은 계속 그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화자 조혜나 감독은 독립영화지만 어쨌든 영화를 찍었지만 고태경은 불운의 중첩으로 한편도 찍지 못하였다. 그런 그에게 영화 촬영은 우리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P.138)

 

여기서 작가는 이들을 양지로 끌어낸다. 망한 작품으로 평가받던 이전 연출작이 뜬금없이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고 특별상을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상영한 다큐멘터리는 세간의 화제를 모으며 성공적인 평가를 받는다. GV 빌런으로 비난의 대상이었던 고태경은 졸지에 유명 인사가 되어 관객들의 주목과 응원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고태경의 그녀가 뜻밖의 인물이었던 거 하며.

 

소설의 끝 장면에 이르러서도 그들의 처지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화자 조혜나 감독은 여전히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만 보다 확실한 삶의 목표는 생겼다. 친구 승호 역시 영화판을 떠났지만 자신의 꿈에 매달린다. 고태경은 이제 빌런 짓을 그만두었을까, 아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놓지 않았기에 여전히 영화관을 들락거린다.

 

작가는 과장된 인위적 수사를 최대한 자제하고 담담하게 소설을 전개한다. 굳이 큰 웃음, 사건, 극적 효과를 노리지 않아도 서사 자체의 자연스러운 힘으로 소설은 꽤나 가독성 있다. 은근하고 잔잔하지만 계속 책을 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독자는 누구나 고태경과 조혜나, 승호를 응원하게 될 수밖에 없다. 화자와 헤어졌지만 종현을 우리가 미워할 수 있을까. 작중에서 비교적 악인 역할로 나오는 조병훈 교수 또한 영화에 대해서는 진심이지 않았는가. 박원호 교수와는 결이 다르지만.

 

자기가 좋아한 것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우리가 추구하던 꿈과 기대하던 삶이 전부 무너진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P.168)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참으로 영화에 대한 애정이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자가 생활에 쩔쩔매면서도 영화를 놓지 못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소망이 투영된 것이 아니겠는가. 현재는 소설가로 활동하지만 언제라도 기회만 되면 영화인으로 복귀하겠다는. 고태경이 시나리오를 무수히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칫 진부하고 순진한 교훈을 반복하는 유형으로 전락할 수 있는 작품의 구성이다. 독자가 고태경과 채화영의 만남에 긴장과 스릴을 느끼는 심정은 동일하다. GV 빌런이었던 고태경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서 무대에 서서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발언 또한 상식적이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영화에의 끈을 놓지 않는 화자가 서서히 영화계에 자리 잡을 전망을 보여준다는 설정도 그렇지 않은가. 이 여러 요소가 소설의 재미와 멋을 흠집 내지 않는 이유는 작가가 보여주는 성실한 애정일 것이다.

 

화해와 성장. GV 빌런 고태경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삶과 세상과 화해하게 되었다. 화자 조혜나 감독은 다큐멘터리의 연출자로서 영화와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층 성장하였다. 단단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승호도 계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게 된다. 중간에 비록 실패와 좌절을 겪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요소들이 우리가 이 소설을 다 읽고 났을 때 갖게 되는 흐뭇한 정서의 기반이 아니겠는가. 나도 그 집 단팥죽을 한 그릇 먹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복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는 않을 거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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