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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데 코르쿠트의 서(書) - 코르쿠트 할아버지의 튀르크족 영웅이야기
이재정 옮김 / 계명대학교출판부 / 2021년 8월
평점 :
앞서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 서사시>(걷는사람)를 읽었다. 전 12편의 이야기 중 절반인 6편만을 담고 있다는 점과,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평이한 편집에 일말의 아쉬움이 있었다. 다만 국내 초역이라는 점에 만족하기로 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이미 몇 년 전에 완역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작품의 문학적, 역사적 의의를 다시금 되짚어보면 아래와 같다.
<데데 코르쿠트의 서>는 아제르바이잔뿐만 아니라 터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전 튀르크인들이 공통으로 보유하고 있는 구전문학으로써, 고대 튀르크족의 생활 관습, 역사, 지리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뿐만 아니라 이슬람 이전 튀르크 사회의 이념과 정치사상, 튀르크족의 삶의 철학을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P.8, 머리말)
아무래도 이 책과 걷는사람 판본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오구즈족의 영웅서사시이므로 원서는 오구즈족의 언어, 지금으로 치면 아제르바이잔 또는 중앙아시아 민족의 언어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걷는사람 판본은 아제르바이잔 판본을 처음 번역한 것이고, 이 책은 러시아어 번역본을 우리말로 번역한 중역본이다. 즉 완역본 여부와 원전 번역본 여부가 두 책의 큰 차이점이다.
번역 저본이 상이하다 보니, 번역 어휘도 같을 수 없다. ‘디르새 칸의 아들, 부가즈 이야기’는 여기서 ‘데르세-칸의 아들, 보가치-잔에 관한 이야기’로, ‘바이배래의 아들, 밤스 배이래크 이야기’는 ‘바이-부라의 아들, 밤시-베이레크에 관한 이야기’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바사트가 외눈박이 테패괴쥐를 물리친 이야기’가 ‘데페-게즈를 죽인 비사트에 관한 이야기’로 큰 차이를 보인다. 다만 이야기의 줄거리와 내용 전개는 대체로 비슷하다.
걷는사람 판본에 실리지 않고, 이 책에만 실린 6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칸르이-코드자의 아들, 칸-투랄리에 관한 이야기’, ‘카즐리크-코드자의 아들, 이예켄크에 관한 이야기’, ‘베킬의 아들, 암란에 관한 이야기’, ‘우슌-코드자의 아들, 세크레크에 관한 이야기’, ‘포로로 잡힌 살로르-카잔을 구출한 아들, 우루즈에 관한 이야기’, ‘외오구즈족과 내오구즈족의 싸움과 베이레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이들 이야기의 배경과 제재는 솔직히 다른 이야기와 특별한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무사의 조건, 부모.형제와 같은 혈연의 중시, 기독교도 적국과의 갈등과 전쟁 등. 모두가 살로르-카잔과 그의 아들 우루즈를 중심으로 그의 신하들인 여러 베크의 이야기다. 특히 우루즈는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아들처럼 묘사되다가 다른 이야기에서는 용맹한 기사로 등장하여 적에게 사로잡힌 아버지를 구출하는 등 여러 이야기에 일관성 없이 등장하여 다양한 구전에 근거함을 알게 한다.
특히 ‘외오구즈족과 내오구즈족의 싸움과 베이레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달리 오구즈족이 내오구즈와 외오구즈로 분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어쩌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행위 하나가 종족의 갈등과 분열로 이어지고 끝내 밤시-베이레크와 아루즈라는 두 걸출한 무사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비극을 다룬다. 이 작품의 마지막 이야기로 실렸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정녕 그 이유를 모르신단 말씀입니까? 일전에 당신이 재산을 나누어 줄 때 외오구즈족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내오구즈족 베크들만이 있었지요. 바로 그런 이유로 외오구즈족 베크들이 안 온 것이지요.” (P.267)
걷는사람 판본에서는 언급하지 않거나 생략된 대목, 그리고 해설은 이 책의 미덕이다. 먼저 머리말에 따르면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친 백양 왕조(아크 코윤루)라고 하며, 지역적 무대 또한 이란과 이라크, 튀르키예, 그리고 카프카즈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 표제에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까닭은 수록된 12편의 이야기를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노래로 지어서 후대에 전수하였기 때문이다.
걷는사람 판본에서는 완전히 생략된 대목이 우선 서문이다. 몇 페이지에 걸친 서문은 코르쿠트 할아버지를 소개하고 그가 칸에게 한 몇 가지 예언과 신에 대한 영광과, 네 유형의 여인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각 이야기의 마지막 단락도 이 책에만 수록되어 있다. 그것은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이 노래를 지었음과 함께 그가 말하는 예언 내용이다. 영웅들도 죽음을 맞이하기에 세상은 덧없음을 애상 어린 어조로 일단 말한 후, 그럼에도 칸은 전능하신 신의 은총으로 영원히 번영을 누릴 것이라고 예찬한다. 마지막으로 신을 향한 기도로 이야기를 마친다.
온 세상이 내 것이라고 말하던 그 베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요? 죽음이 그들을 잡아갔고 땅이 그들을 숨겼습니다. 무상한 세상이 누구에게 남겨졌냐고요? 지상의 삶은 왔다가 가는 것이고, 그 종착점은 죽음입니다. 오랜 삶의 마지막도 죽음과 이별입니다. (P.277)
비록 러시아어 중역판이지만, 12개의 이야기를 모두 담은 완역본이라는 점, 서문과 코르쿠트 할아버지의 예언 단락도 모두 수록하였다는 점, 그리고 아동 청소년용으로 평이하게 각색하지 않고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였다는 점 등에서 개인적으로 이 책을 높이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