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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특별판)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5년 6월
평점 :
품절
<급류>는 서평이 심히 엇갈리는 소설이다. 한쪽에서는 감동과 극찬이, 다른 쪽에서는 실망과 비판이 날 서게 대립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우연한 기회에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나 처음에는 별로 관심 두지 않았다. 이른바 검증되지 않은 한때의 소설 읽기에 자원을 쏟고 싶지 않았으므로. 양분된 독자평이 오히려 흥미를 끌었다.
세평에 휩쓸리지 말고 편견 없는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리라 다짐하고 책을 읽어 나갔다. 그래야 나중에 어떠한 작품 평을 해도 떳떳할 것 같아서였다. 초반의 흥미진진한 서사에 몰입하였다. 중반부의 도담과 해솔의 사랑과 방랑, 이별에 마음 아팠다. 후반에 가서 그들의 재회와 이해, 그리고 드러난 비밀 장면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독자의 마음과 작품을 연결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작품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기법과 구성, 표현 등의 미세한 아쉬움은 별다른 흠결이 되지 않는다.
“너희는 악연이야. 얽혀서 좋을 게 없어. 절대로 연락하지마.”
정미가 거세게 기침하며 도담의 손을 잡아끌었다. (P.84)
정미의 말마따나 두 사람의 인연은 결과적으로 악연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두 사람의 행동이 없었다면 두 가족이 풍비박산 나지 않았을 거라고 확언할 수 없지만, 그처럼 남부끄럽게 목숨을 잃는 결말로 나아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자신이 구해 주고 자신을 구해 준 사람. 같은 또래, 그리고 첫사랑. 도담과 해솔은 분리될 수 없는 사이다. 두 사람은 남들이 갖지 못한 비밀의 공유자이자 겪지 못한 비극의 주인공이므로. 너무나 가깝고 친밀한 존재이기에 오히려 지긋지긋해하고 다투며 뛰쳐나가지만, 그들의 과거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다시 있기 어렵다.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소외되고 싶지는 않으므로. 자기 내면에 가면을 씌운 채 진정한 사랑을 구하는 건 자체로서 가능하지 않은 시도다.
해솔과 자신을 과연 무슨 사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은인? 친구? 연인?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잊으려 애썼지만, 사실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이름이었다. (P.203)
승주의 말처럼 도담에게 승주, 해솔에게 선화는 대용품이자 구명환이다. 상대의 부재 속에 홀로서기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불가능함을 확신하기 전에 필요했던. 그나마 선화는 슬퍼하면서도 그들을 받아들인다. 해솔의 마음속에 자신이 자리할 공간이 없음을 일찌감치 알아차렸기에. 독자로서 선화의 행복을 다만 바랄 뿐이다.
세월의 때가 묻다 보니 창석과 미영의 관계도 그럴 수 있지 하고 생각하게끔 된다. 세상일이란 게 반드시 나의 뜻과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겪어서일까. 한편 도담과 해솔의 지긋지긋할 정도로 강렬하고 뜨거운 고통과도 같은 사랑에도 공감과 애틋함을 품게 된다. 도담은 사랑의 도덕성을 기대하지만, 사랑이란 애초에 눈먼 존재가 아니던가. 창석의 배신에 치를 떨며 찌그러뜨리려고 마음먹은 것 또한 그가 창석을 너무나 사랑해서다. 이후 도담이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을 뿌리치는 이유 역시 자신의 사랑관이 무너져서다.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P.104)
이 책의 작가 소개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작가는 영화계 출신이다. 그의 전작을 보면 작가의 배경이 깊게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을 순전한 문학 관점이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로서 접근하면 이 소설의 특성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두 주인공의 명확한 성격 대비. 비현실적일 정도로 치열한 만남, 사랑, 다툼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관계.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기 위한 소설의 여러 장치, 즉 우연성, 주인공의 직업과 사고, 비밀. 주인공을 더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조연의 역할 등.
우여곡절 끝에 도담과 해솔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고 다시 놓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린 나이부터 과도할 정도로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맞닥뜨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므로.
둘은 물결을 가로질러 서로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해솔과 도담은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P.298)
내가 읽은 책은 ‘사랑의 에디션’이라고 한다. 20만 부 돌파를 기념하기 위한 특별판이다. 설명 문구처럼 신진 작가의 구간이 역주행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역주행의 대명사가 되었던 몇몇 아이돌 그룹도 아니고. 감상 후의 소감은 뭐랄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근래에 이러한 몰입감을 가지고 소설을 읽어본 게 언제 적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