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무아무아 - 하버드가 밝혀낸 외계의 첫 번째 신호
아비 로브 지음, 강세중 옮김, 우종학 감수 / 쌤앤파커스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2017년 하와이에서 망원경으로 이상한 우주 물체가 하나 탐지되었다. 소행성 또는 혜성의 하나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특성을 파악할 수 없어 하와이어로 ‘오무아무아’, 즉 ‘탐색자’라고 명명하였다. 대다수의 천문학자는 오무아무아를 특이하긴 하지만 우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물체로 간주한다. “독특한 모양과 특징적 반사”는 기존의 우주 물체 범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보는 것이다.

 

오무아무아는 외계 기술 장비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가설이다. 모든 과학적 가설과 마찬가지로 데이터와 대조, 검증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과학에서 흔히 그렇듯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는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상당하다. (P.294)

 

이 책의 저자인 하버드대 천문학과의 아비 로브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오무아무아는 외계의 인공 물체라는 주장이다. 기묘한 외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무아무아가 보이는 특이한 궤도는 자연적인 동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견해다. 소행성이나 혜성의 에너지원인 가스나 붕괴가 아닌 다른 동력을 사용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무아무아의 속성과 궤도를 설명하기 위한 무리한 가설을 억지로 전개하기보다 인공 에너지를 토대로 우주를 유영한다고 설명하면 간단하다. 그는 그것이 가능함을 빛의 돛 추론 가설로 제시한다. 아주 얇은 거울 돛을 지닌 경량 우주선이라면 현행 우주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여행할 수 있어 성간 탐사가 가능하다고 제시한다. 우리도 기술적으로 가능한데 고등 문명을 지닌 외계 생명체라고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자연적으로 그러한 형상을 가진 물체는 전혀 없고, 그런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알려진 자연적인 과정도 없다. 그런데 인류는 그 요건에 맞는 것을 만들어 냈고, 심지어 우주로 쏘아 올리기까지 했다. 바로 빛의 돛이다. (P.159)

 

오무아무아의 발견이 이미 늦고 상세한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모든 건 추측과 가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주류 과학자는 오무아무아를 자연물로 이해한다. 비록 정보 부족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특이한 속성도 결국 드물지만 극단적 예외에 속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사 인공물로 보는 의견조차도 우주 쓰레기 정도로 약화해 이해하려고 한다.

 

주류 과학은 우주에는 지구 행성의 인간 외에 고등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성간 여행을 하는 인공물이라는 개념은 원천적으로 논의의 대상에서 배척한다. 제아무리 기묘하더라도 오무아무아는 따라서 자연물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에 냉엄한 비판을 던지는데, 그것은 결국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드러낼 뿐이라는 것이다.

 

천문학에 문외한인 우리로서는 무엇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저자의 주장은 확실히 타당성이 있다. 반면 수많은 천문학자가 단지 맹목적 편견에 사로잡혀 외계 생명체와 인공물을 부정한다고 믿고 싶지 않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를 탄압한 인물들은 과학계가 아니라 종교계가 아니었던가.

 

이 책에서 저자는 외계 생명체 연구에 대한 과학계의 부정적 인식과 몰이해를 비판한다. 자신이 보기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확률이 낮은 이론에는 엄청난 돈을 투입하면서도 지적 생명체가 가까운 우주에 존재할 높은 가능성은 일부러 외면하는 듯한 학계에 실망과 분개가 느껴질 정도다. 모든 건 인간의 유일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기인한다고 본다.

 

대부분의 과학계가 이 가설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오무아무아를 만든 것이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문명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가장 중대한 발견 중 하나, 즉 우주에서 우리만이 유일한 지능이 아니라는 발견이 우리 태양계를 통과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P.297)

 

저자는 ‘우주 고고학’을 제창한다. 지구 행성이 아닌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을 찾아 나서는 일이야말로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오무아무아는 이러한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입증하는 단서 역할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이 순수 과학서로 구분되기 어려운 점이 여기서 발생한다. 어찌 보면 저자는 천문학계에서 소외당하는 비주류의 연구 분야를 부각하기 위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하겠다.

 

게다가 저자가 주창하는 우주 고고학의 성과를 지나치게 낙관론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무아무아가 정말로 외계 인공물이라면, 오무아무아를 날려 보낸 고도의 지성을 지닌 생명체가 존재하는 셈이다. 우리와 그들이 우주에서 조우할 때, 양자 간의 소통이 원활하고 상호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비단 SF 영화의 흥미적 요소만을 위해 외계인의 침공 시나리오가 자주 사용되는 건 아니다. 인류는 과학의 순진한 낙관적 전망이 어떻게 비극적 결과가 이어졌는지 수차례 목격하였다. 과학계와 여기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지지하는 정부와 시민들이 과연 ET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에 그토록 큰 자원과 관심을 쏟을 것이란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의 증거를 발견한다면 이는 우리를 근본적이고도 미묘한 방식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나는 그 변화 중 대부분은 더 좋아지는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P.259)

 

그럼에도 저자의 빛의 돛 추론은 흥미롭다. 태양계를 벗어난 저 먼 우주를 탐험하기 위한 우주선은 빛에 가까운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우리는 아직 태양계를 넘어서지 못하였는데, 빛의 돛이 여기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실제적 고안이라면 관심을 끌 수 있지 않겠는가. 빛의 돛에 달린 작은 카메라가 탐지하는 모든 것은 천문학은 물론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는 우리 자신의 인식에도 분명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므로.

 

오랜만에 읽는 천문학 서적이다. 다만 흔히 생각하는 성격과는 다소 다른 유형인데, 우주와 별, 은하 등을 다루는 게 아니라 외계 존재의 가능성을 추적한다. 어쨌든 오무아무아는 엄연한 사실이다. 단지 우연한 일개 현상으로 만족하고 묻어버릴 것인지 아니면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끌어낼 것인지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우리가 과학에서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복합적인 견해와 맞물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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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제17회 남대문교회 파이프오르간 연주회 - 오르가니스트 강진

일시 : 2026년 5월 29일(금) 19:30

장소 : 남대문교회 대예배실

연주 : 강진 (오르간)

프로그램

  - 바흐, 오르간 협주곡 G장조 BWV 592

  - 바흐, 코랄 전주곡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와 함께 계시옵소서" BWV 649

  - 바흐, 코랄 전주곡 "깨어라, 우리를 부르는 소리 있도다" BWV 645

  - 비에른, 환상모음곡 Op.54 중 6곡 '웨스트민스터의 종소리'

  - 바흐, 전주곡과 푸가 BWV 552 중 5성 푸가

  - 댄 밀러,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 J. C. H. 링크, "피난처 있으니" 선율에 의한 변주곡 Op.55 중 1-4번, 12번, 피날레

  - 비에른, 오르간 교향곡 3번 Op.28 중 5악장 피날레


* 세줄평

오늘 프로그램은 바흐와 비에른이 주인공이다. 바흐의 오르간 협주곡보다는 확실히 코랄이 그나마 친근하다. 비에른의 첫곡은 흥미롭고 마지막 곡은 장대하다. 링크의 작품은 생소하지만 재밌게 들을 수 있을만하다. 연주자의 후평처럼 예배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선곡이다. 지난번보다는 꽤 많은 청중이 자리하여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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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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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마음이 끌리는 책이 있다. <꿀벌과 천둥>을 읽으면서 온다 리쿠를 알게 되었고, 그녀의 소설 중 <밤의 피크닉>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읽어볼까 말까 계속 망설이다 이렇게까지 오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면 심적 해방을 위한 독서라도 괜찮겠다 싶었다.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뒤표지의 문장이 유독 마음에 와닿는다. 걷기의 묘미, 그것도 단체 걷기가 지니는 최고의 미덕을 더없이 간결하게 잘 기술한다. 걷기를 좋아하고, 걷기를 다룬 작품 독서를 애호하는 나로서는 끌리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생들이 거교적으로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야간보행제’,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야간 행군이나 다름없다. 한두 시간도 아니라 스물네 시간을 걷는 강행군은 그야말로 고행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보행제를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막상 보행제를 그리워하는 모순된 감정을 느낀다. 당시의 고통은 순간적이지만 보행제가 주는 추억과 상념은 두고두고 가슴속에 남아서다. 미국에 유학 간 안나의 목소리가 그러하고, 누나의 체험을 부러워하던 준야가 슬그머니 합류한 것도 마찬가지다.

 

나란히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신기하네. 단지 그것뿐인 것이 이렇게 어렵고, 이렇게 엄청난 것이었다니. (P.336)

 

걷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동작인 동시에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 제아무리 침울하고 우울해도 훌쩍 한 바퀴 걷고 나면 한결 가슴이 가벼워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걷기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오늘도 자기 수준에 맞춰 단거리에서 장거리까지 수많은 걸음을 분주히 놀린다. 걷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지만, 여럿이 걸을 때 주위를 향한 경계선을 낮추고 서로의 마음을 수용하려는 태세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단순한 신체적 행위 속에서 타인에게 숨기거나 속이고자 하는 작위적 마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밤의 미학은 어떠한가. 낮과 해가 이성이라면, 밤과 달은 감성이다. 명징한 의식은 밤의 어둠과 고요와 애매함 속에서 풀어지고 튼튼한 심리적 방어망은 느슨해지지 않던가. 여기서 서로 간에 속 깊은 대화를 통해 마음을 주고받는 환경이 조성된다.

 

같은 반인 니시와키 도오루와 고다 다카코는 이복남매이다. 아버지의 외도로 맺어진 관계이니 서로가 편하지는 않다. 친구들에게도 철저히 집안의 수치를 숨기고 있지만 서로를 향한 의식마저 숨길 수는 없다. 영문 모르는 친구들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이 은연 중 좋아하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걸로 오해할 정도다.

 

고교 3학년생으로 마지막 보행제인데, 얼마 있으면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질 텐데, 이대로 데면데면한 관계로 끝내야 하는가. 이 작품은 고다와 도오루의 시점을 오가면서 각자가 교대로 화자가 되어 보행제와 자신과 가족, 친구들의 상황을 기술한다. 고다는 처음에는 반 친구와 후반부에는 단짝 미와코와, 도오루는 줄곧 시노부와 함께 걷기를 이어 나간다.

 

잡담과 때로는 침묵이 교차하면서 진로 진학, 이성 친구 교제와 같은 또래에 통상적으로 갖게 되는 고민을 주고받기도 하며,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마음을 고백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하는 학생도 있다. 고다와 도오루를 맺어주려는 헛된 깜짝 계획도 있다. 불미스러운 스캔들의 주인공을 색출하기 위한 은밀한 탐색 작업도 동반되는 등 그들의 대화와 고민은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선상에 놓여있는 만큼 다채로우면서도 위태롭기도 하다.

 

“굳이 잡음을 차단하고 얼른 계단을 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아프리만큼 알지만 말이야. 물론 너의 그런 점, 나는 존경하기도 해.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P.155-156)

 

부모들은 자녀에게 흔히 이렇게 말한다.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학업에 집중하라고. 이성 친구와 몰입하고픈 취미는 나중에 대학 가서 해도 충분하다고. 학생들은 온갖 관심과 욕구를 억누르는 게 권장되고 당연시되는 풍토와 습관에 함몰된다. 그들에게 고등학생 시절은 훗날 어떤 의미와 기억으로 떠오를까. 학교, 학원, 과외, 독서실로 날마다 쳇바퀴 도는 맹목적인 나날이 아닐까. 한국이 아닌 일본의 학생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시노부가 보기 드물게 진지한 어조로 도오루에게 해주는 말은 어른다워 오히려 어색하게 들린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 내지 증오라고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건 무관심이다. 사랑이든 증오든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애초에 관심이 없다면 그건 더 이상 어떠한 관계 설정도 불가능하다. 고다와 도오루의 표면적 무시와 외면이 친구들의 눈에 두드러진 건 그래서였으리라. 차라리 덤덤한 동급생 관계였다면 모를까. 그것은 두 사람의 내면에 서로를 향한 끌림이 있어서다. 유전자의 힘이라고 해도 좋을.

 

결국 불평을 쏟아놓자, 시노부가 보기 드물게 진지해졌다.

“이봐, 그건 아냐. 순서가 바뀌었어. 너희들이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P.151)

 

고교생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기에 결말은 비교적 긍정으로 나아간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다리를 다쳐 낙오한 도오루와 그를 돌보는 시노부. 때마침 지나치다가 그들을 발견하는 고다와 미와코. 서로를 향한 연대와 응원이 필요한 때 도오루와 고다는 비로소 제대로 된 대화를 처음 주고받는다. 막상 아무것도 아닌 것을, 두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잘못은 어른이 한 게 아닌가, 게다가 그들은 한 아버지라는 불가변한 공통점을 지닌다.

 

앞으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긴 세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버린 지금부터, 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 이제는 도망칠 수 없다. 평생 끊을 수 없는 앞으로의 관계야말로 진짜 세계인 것이다.

그것이 결코 감미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은 예감하고 있다. (P.349-350)

 

소설의 초점은 응당 주인공인 고다와 도오루, 그리고 그들의 절친인 미와코와 시노부에 맞춰져 있다. 작가는 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학우들을 등장시켜 작품의 폭과 깊이를 더한다. 안나와 동생 준야, 고다의 학급친구이자 보행제 전반을 동행하는 치아키와 리카의 소탈함, 엉뚱함이 매력인 고이치로와 도오루에게 깜짝 고백하는 우치보리 등. 이들은 단지 주변인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동년배 청소년들의 생활과 생각의 단면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꿀벌과 천둥>에서도 경험했지만 온다 리쿠의 작품은 최고 미덕은 문장과 서사가 주는 힘 자체다. 작가는 화려한 수식구와 정교하게 세공한 문장에 천착하지 않는다. 평범하지만 꼭 적합한 문장이 필요한 때와 곳에 퍼즐 조각을 맞추듯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독자는 낮과 밤을 지나면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되풀이하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작품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쪽에 이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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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제16회 남대문교회 파이프오르간 연주회 - 오르가니스트 강한미

일시 : 2026년 5월 22일(금) 19:30

장소 : 남대문교회 대예배실

연주 : 강한미 (오르간)

프로그램

  - 바흐, 오르간 작품(환상곡 G장조) BWV 572

  - 비도르, 안단테 소스테누토 (오르간 교향곡 9번 Op.70 "고딕" 중)

  - 로제-뒤카스, 전원곡

  - 메시앙, 천국을 소망하는 영혼의 고요한 알렐루야

  - 맥밀란, 아카데미 행진

  - 뒤뤼플레,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여' 주제에 의한 전주곡, 아다지오와 코랄 변주곡 Op.4


* 세줄평

남대문교회는 언덕 위에 있어 접근성이 불편하지만 대예배실 공간은 훌륭하며 오르간의 자태도 뛰어나다. 여지껏 들었던 오르간 연주 중 음향 밸런스가 가장 뛰어나다. 개인적으로 비도르와 로제-뒤카스의 곡이 평온과 위안 그 자체로 마음에 다가온다. 메시앙도 괜찮았다. 바흐와 뒤뤼플레의 작품은 더 이해가 필요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연주에 마음이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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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남에셀 오르간 독주회 - 파리의 교회들

일시 : 2026년 5월 19일(화) 19:30

장소 : 새문안교회 대예배실

연주 : 남에셀 (오르간)

프로그램

  - 유진 지구, 토카타

  - 쿠프랭, 베네딕투스

  - 보엘리, 환상곡과 푸가

  - 프랑크, 코랄 2번

  - 쥬앙 알랭, 리타니

  - 장 기유, 토카타 Op.9

  - 생상스, 전주곡 B단조

  - 뒤뤼플레, 알랭 이름에 의한 푸가

  - 메시앙, 기쁨의 폭발

  - 비도르, 안단테 소스테누토 (오르간 교향곡 9번 Op.70 "고딕" 중)

  - 비에른, 피날레 (오르간 교향곡 6번 Op.59 중)


* 세줄평

엄청 큰 규모의 대예배실 전체를 울리는 거대한 오르간 음향을 체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강력하고 위압적인 사운드의 오르간보다는 포용하고 충만하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까닭에 쿠프랭, 프랑크, 생상스, 비도르의 곡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장 기유의 토카타는 오르간의 연주 기능성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독특한 경험이다. 

앵콜연주가 끝나고 퇴장하는데 연주자가 다시 나와서 두번째 앵콜곡을 연주한다. 맨 뒷자리에 다시 주저앉아 음악을 듣는데 확연히 달라진 음향에 놀랐다. 기존의 직접 음향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음향, 다음부터 오르간 공연은 뒷자리에서 감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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