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 노벨라33 세계 중편소설 전집 2
메리 셸리 지음, 정미현 옮김 / 다빈치 노벨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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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가 이 작품을 집필한 해는 1820년이고, 아버지 고드윈에게 보낸 건 1821년이니 그의 나이 23, 24세 무렵이다. 아버지는 출간을 거부했고, 백 년 넘게 묻혀 있다가 1959년이 되어서야 출간이 이루어졌다.

 

마틸다가 남긴 수기 형식으로 작성된 작품의 서사는 외형상 단순하다. 아내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마틸다의 아버지는 출산 직후 사망한 아내를 못 잊어 가출한다. 마틸다는 외톨이가 되어 냉담한 고모와 시골에서 16세가 될 때까지 고독하고 적막하게 자란다. 다시 돌아온 아버지와 재회의 기쁨을 한껏 누리는 마틸다, 딸에게서 죽은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고 솟구치는 감정에 번민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달라진 태도에 원인을 알고자 다그치는 마틸다와 그가 듣게 된 진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아버지의 가출과 이어진 자살. 이중의 정신적 충격으로 오지에서 홀로 은둔의 삶을 꾸려가다 결국 병으로 죽게 되는 마틸다.

 

메리는 무슨 까닭으로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작중에서 마틸다의 아버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마틸다 또한 사회적, 윤리적 금기를 저촉한 게 두려워 고립을 선택하고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친구 우드빌의 따스한 조언도 그녀를 절망에서 끌어내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하였다. 당시 잉글랜드의 사회 윤리적 기준으로서는 그들의 죽음은 불가피하고 정당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메리가 단지 윤리적으로 부적절한 사랑에 대한 도덕적 단죄를 위해 이 작품을, 그것도 자신의 처지와 흡사한 배경의,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험을 무릅쓴다면, 혹시 메리와 고드윈 사이의 감정이, 마틸다와 그의 아버지와 동일 선상에 놓여있는 게 아니었을까. 다만 전자는 후자와 달리 이성적 틀을 허물지 않고 마틸다의 아버지가 원하였듯이 시간이 해결해 준 지나간 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작품 외면과 내면의 이야기는 전혀 상반된다.

 

그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고 단조롭던 모습에서 기쁨과 환희로 가득한 눈부신 풍경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내가 느끼는 행복은 내가 장담했던 기대치보다 훨씬 컸다. (P.32)

 

딸이 아버지에게 끌리는 감정을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할 때, 대개의 아버지는 딸에게서 제2의 아내를 찾고자 한다. 너무나 사랑하던 아내가 갑자기 죽었고, 훗날 거의 성인에 다다른 딸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발견할 때 격렬한 감수성을 지닌 마틸다의 아버지는 딸을 이성으로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성을 통해 거부하려는 내적인 고뇌와 번민과 투쟁이 벌어진다. 마틸다는 아버지와 재회하기 전에는 철저한 고독자의 처지였다. 이제 세상의 모든 사랑을 한꺼번에 쏟아부을 수 있는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깊이와 강도는 독자가 섣불리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교육받고 똑똑한 마틸다지만, 자신의 추궁으로 아버지를 상실하자 죄책감과 한편으로는 되돌릴 길 없는 그리움에 자신을 가두고 만다.

 

내 심장은 죽음의 상처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었다. 겉보기로는 평온한 가운데에도 절망과 우울이 찾아올 때가 많았다. 무엇으로도 쫓아버리거나 극복할 수 없는 어둠이 드리웠다. 삶이 혐오스러웠다. 아름다운 것에 무심해졌다. (P.107)

 

마틸다는 끝내 죽음을 소망하는 단계에 이른다. 우드빌의 부드러운 위로와 친절한 격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죽음에서 오히려 기쁨과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것은 이미 죽은 아버지와 저승에서 재회하여 못다 한 사랑을 완성하려는 바람이 아니겠는가. 마틸다의 글 속에서 죽은 어머니와 만나고 싶다는 문장은 찾을 수 없다.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세상 전부였던 것이다.

 

수의가 나의 웨딩드레스 아니겠는가. 그것만이 아버지와 내가 영원히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어 다시는 헤어지지 않게 될 때 우리를 결합시켜줄 것이다. (P.160)

 

이 중편소설을 읽고 나면 고드윈이 출간을 거부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 마틸다와 작가 메리는 너무나 비슷하다. 작중 화자인 마틸다처럼 작가 메리도 탄생 직후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리고 아버지 슬하에서 홀로 자랐다. 게다가 소설은 아버지가 딸을 사랑한다는 비도덕적인 근친상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독자는 소설에서 작가의 삶을 비교하고 유추하기 마련이다. 고드윈으로서는 그런 불쾌한 시선을 견딜 수 없었으리라.

 

마틸다의 짙은 회한과 상념 속에 드리워진 어둡고 고통스러움이 독서를 어렵게 한다.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한 번에 쭉쭉 읽어 나가지 못하고 조금 읽다가 책장을 덮고 한참 후에 다시금 책을 펴 들기를 반복하였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젊은 여성작가가 <프랑켄슈타인>과 더불어 이러한 소설을 썼다는 게 자못 대단함과 동시에 어쩌면 그 나이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지극히 도전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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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5016334



전시회명 : 알폰스 무하 : 빛과 꿈

기간 : 2025.11.8-2026.3.4

장소 : 더현대 서울 ALT.1


관람일자 : 2026년 1월 23일(금)


* 관람평

충동적으로 관람한 전시다. 알폰스 무하를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체코의 국보 11점을 포함하여 총 143점을 선보인다고 한다. 상업 포스터와 상품 디자인 등을 예술적으로 발전시켜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낸 점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높은 장벽을 세우지 않고 더불어 호흡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훌륭하다. <지스몽다>에서 시작하여 <사계>, <꽃>, <예술> 시리즈가 흥미로운 가운데 <백합의 성모>가 가슴 속을 휘젓는다. <슬라비아>를 비롯한 몇 편의 민속적 작품은 <슬라브 서사시> 연작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유발한다. 언젠가 프라하에 가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촛불을 응시하는 여성>과 <희망의 빛>은 예언적이다.

이번 전시는 사진촬영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인파로 북적거리지 않아 여유롭게 찬찬히 작품과 설명을 관람할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알폰스 무하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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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ejongpac.or.kr/portal/performance/performance/performTicket.do?menuNo=200558&performIdx=36656#none



전시회명 :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기간 : 2025.11.5. - 2026.2.22.

장소 :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관람일자 : 2025년 12월 26일(금)


* 세줄평

100주년을 맞이하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국내 최초 전시회다. 안내에 따르면 60명의 거장과 65점의 걸작이 소개된다고 한다. 공연명과 같이 르네상스 시기에서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다. 그나마 이름이라도 아는 화가는 엘 그레코, 루벤스, 고야, 쿠르베, 로트렉, 드가, 모네, 로랑생, 모딜리아니 등이 전부다. 

개인사로 마음이 심란한 가운데 기록도, 촬영도 하지 않았기에 기억에만 의존한다면,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이 인물묘사의 특이함으로 인상을 남겼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희생양 그림은 음반 표지에서 봤기에 반갑고 신가하였다. 벨로토의 베네치아 풍경, 모딜리아니와 로랑생 작품도 흥미롭게 보았다. 전시회의 표지그림으로 사용된 호아킨 소로야와 부그로의 그림은 그림 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수년 만의 미술전 관람인데 앞으로도 종종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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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187회 아트엠콘서트 - 문태국 첼로 리사이틀

일시 : 2026년 2월 12일(목) 19:30

장소 : 신영체임버홀

연주 : 문태국 (첼로), 박영성 (피아노)

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프로그램

  - 프로코피에프, 첼로 소나타 C장조 Op.119

  - 카발레프스키, 첼로 소나타 B-flat장조 Op.71


* 세줄평

오늘의 연주곡목은 모두 한번이라도 들어본 기억이 없으니 모두 마이너곡이라고 하겠지만, 막상 연주를 듣고난 소회는 오히려 메이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유난히 묵직한 첼로의 사운드로 깊은 정감과 짙은 비감을 흘뿌리니 연주자의 말대로 아직 현실은 물론 인생의 겨울이 지나지 않았음을 새삼 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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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에크베르트 - 독일대표단편문학선 세계단편문학선집 1
루이제 린저 외 지음, 이관우 옮김 / 써네스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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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품>

노벨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칠레의 지진/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금발의 에크베르트/ 루트비히 티크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 클레멘스 브렌타노

임멘 호/테오도르 슈토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르투어 슈니츨러

선로지기 틸/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변신 / 프란츠 카프카

/ 볼프강 보르헤르트

붉은 고양이 / 루이제 린저

 

독일 근현대의 대표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대학생 교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시대별 문학사조별로 대표적인 명작을 선정하였다고 한다. 대충 수록 작품 표제나 훑어봐도 명작들이 나열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편의 작품 중에서 <칠레의 지진><임멘 호>는 앞서 읽은 적이 있어 반가웠다. 클라이스트는 섣부른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자못 비정할 정도로 직진하는 그의 문장은 인간과 종교, 나아가 인간성의 아이러니 자체에 깊은 질문을 던진다. 슈토름의 단편은 청소년 작품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지나가 버린 청춘의 아련한 추억은 누구나 갖고 있기 마련이다. 헤엄쳐도 호수 중심의 수련에 다가갈 수 없듯이 우리는 과거를 추억해야지 얽매여서는 안 된다. 라인하르트도, 엘리자베트도 모두 알고 있듯이 말이다.

 

<노벨레>는 괴테의 최후기작으로 표제 자체가 노벨레. 중세의 옛날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과 구성인데, 영주 부인의 평화로운 자연 예찬은 마을의 화재로 깨어지고, 예기치 않은 호랑이와 사자의 탈출로 일순간 분위기는 급변한다. 서커스단 아이와 아버지의 노래와 피리 연주는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는데 사자의 순종을 비현실로 절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대에서 음악은 자연의 질서를 반영한 예술로서 우주의 본질에 가깝기에 사자가 공명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자가 패배자처럼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의 힘이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사자는 패배자가 아닌 길들여진 자, 스스로의 평화로운 의지에 모든 것을 내맡긴 자처럼 보였다. (P.37)

 

<금발의 에크베르트> 역시 중세풍의 민담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인데, 진주나 보석이 들어 있는 알을 낳는 새의 존재가 한층 설화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금발의 에크베르트라고 해서 여주인공으로 생각하였는데, 그가 기사임을 알게 되었고, 내용은 기사 아내 베르타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전개된다. 친구 발터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후 부부는 자신들의 비밀이 드러날까 두려움에 빠진다. 베르타가 새를 죽인 행동, 에크베르트가 발터에게 총알을 날리고 후고를 의심하게 된 행동 모두 일종의 원죄와 선택의 잘못으로 귀결된다. 베르타가 영혼 속 싸움에서 유혹을 극복하였다면 결말은 더 행복한 방향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것은 제 영혼 속의 기이한 싸움이었으며, 제 마음속에 있는 두 개의 적대적인 정신의 싸움과 같은 것이었지요. 한 순간에는 평온한 고요함이 무척 멋지게 여겨지다가 다시 온갖 놀랄 만한 다채로움이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념이 저를 매혹시켰지요. (P.68)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도 또한 중세 배경의 민담이자 동화에 가깝다. 중편에 가까운 분량에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 구성을 지녀서 작가가 치밀하게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낭만주의 작품답게 두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데,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명예다. 착한 카스페를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까닭은 인륜과 윤리의 충돌에서 비롯됨이다. 어여쁜 안네를의 죽음은 처녀로서 자기 아이를 죽인 죄의 대가인데, 귀족의 유혹에 빠져 명예를 놓친 까닭이다. 손자와 대녀의 명예를 되살리고 헌신하는 노파와 그 이야기를 듣고 사방으로 애쓰는 화자, 비록 안네를의 목숨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에게 명예로운 무덤을 허락받는 데 성공하였다. 얽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명예 회복에 성공하였으니 비극적이지만 비극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인가.

 

순서를 바꿔 <><붉은 고양이>를 먼저 보겠다. 둘 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를 배경으로, 물자 부족으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당대 독일 사회를 그리고 있다. 전자는 콩트에 해당하는 매우 짧은 작품인데, 배급된 빵의 양이 적어 배고픔에 한밤중 몰래 빵을 먹는 늙은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이 애절하다. 후자는 굶주림에 여위어가는 가족과 포동포동하게 살이 찌는 고양이의 대조, 이에 분노하는 화자의 고양이 학대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부족한 음식이나마 고양이에게 나누어주고픈 가족들의 마음도, 그런 가족을 보면서 화가 나고 고양이에게 미움과 증오를 품게 되는 화자의 마음 모두 어쩔 수 없다. 이는 시시비비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생과 사의 생존의 사안이므로.

 

나는 고양이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내 동생들은 굶주리는데, 너는 살이 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그런 모습을 더 이상 가만히 볼 수 없어.” (P.299)

 

20세기 전반기의 작가와 작품 세 편이 하이라이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선로지기 틸>, <변신>, 각각 인상주의, 자연주의, 표현주의 사조에 해당한다고 옮긴이는 설명한다. 슈니츨러는 겉으로 드러난 인간의 외면과 행동이 아니라, 내면과 무의식에 중점을 두는 작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를 보면, 남자는 유부녀와 불륜의 내연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은 폭풍우 치는 저녁에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도시 외곽으로 마차를 몰아 둘 만의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마차 전복으로 남자는 죽고, 여자는 본능적으로 도망친다. 자신의 정체가 대중에게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게 그녀에게 가장 중요하다. 그녀를 비정하다고 욕하지 말자. 누구나 같은 순간에는 동일한 무조건적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므로. 위험의 순간에 인간은 철저히 개인주의자 나아가 이기주의자가 된다. 그녀가 마차 주변에 남아 서성거린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죽은 남자가 되살아나지 않을 텐데, 그녀는 가족, 명예, 경제적 안정 등 모든 것을 잃게 될 뿐이다. 여기서 입에 발린 사랑의 가치는 현저히 위축되고 만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그녀는 마주보이는 벽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데, 그것은 잔인하게 미소 짓고 있으며,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 본연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고 전율한다. (P.186)

 

<선로지기 틸>은 잔인한 소설이다. 자연주의 사조 자체가 지향하는 인생의 비극적 단면을 철저하게 헤집고 있다. 남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진 틸과 첫 번째 부인의 관계가 정신적, 영혼의 측면에서 틸의 삶을 지탱하고 있었음을 독자는 그녀의 죽음 이후에 비로소 알게 된다. 틸의 서두른 재혼은 전적으로 아들 토비아스를 위한 것인데, 두 번째 부인의 세속적, 물질적 속성은 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꾹 참고 외면하는 틸이 안타까운 동시에 계모에게 학대받는 아들의 모습을 목격하는 틸의 비통함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진 절망감마저 자아낸다. 틸에게 결별을 고하는 첫 번째 부인의 환영, 그리고 아들의 철길 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그는 생존의 이유를 상실한다.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틸이 못된 사람이 아님을 이미 독자는 알고 있다. 두 번째 부인이 악독하지만 일방적으로 매도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첫 번째 부인의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 부인과 재혼, 계모와 전처의 자식 등 온갖 비극적 요소가 충분히 한데 모였다. 비극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다만 그 정도만이 궁금하였을 뿐.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자 자신이 징그러운 벌레로 변해있는 것을 알았다. (P.227)

 

문학사상 가장 강렬하고 충격적인 시작 문장의 대표격이 아닐까. 카프카의 <변신>이다. 오늘날은 워낙 공상과 환상 문학이 유행하고 있기에 이 정도 설정은 평범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시간을 거슬러 백 년 전의 시도다. 카프카는 파격적 개시에 이어 아무렇지 않게 벌레가 된 잠자의 사고와 행동을 풀어나간다. 몸은 서서히 벌레로 퇴화하지만 생각은 여전히 인간인 잠자. 그는 가족의 생계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안타깝고 부끄럽게 여긴다. 가족들은 타인에게 그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긴다. 그를 드러내봤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기에. 생계를 위해 하숙을 하고, 여동생은 물론 은퇴한 아버지마저 직업전선에 뛰어들지만 벌레 잠자의 존재는 그들에게 점점 무거운 짐으로 자리한다. 잠자에게 서서히 비우호적이고 적대적으로 되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특히 그나마 친절했던 여동생의. 여기서 오빠는 괴물로 지위가 완전히 전락한다.

 

엄마 아빠! 더 이상은 안 되겠어요. 두 분은 아마 절 모르시겠지만 저는 잘 알아요. 저는 이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우리는 저것을 없애버려야만 해요. 우리는 저것을 돌보고 참고 견뎌내는 등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해왔다고 믿어요. 그러니 아무도 우리를 비난하지 못할 거예요.” (P.279)

 

독자는 비난할 수 없다. 잠자도 자신의 소멸이 필요불가결함을 인정한다. 누구를 위해?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굶주림과 쇠약함으로 인해 벌레 잠자는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슬퍼해야 할까? 아니다. 마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막힌 하수도가 뻥 뚫린 듯이 가족은 홀가분함을 느낀다. 새로운 삶의 전망을 꿈꾼다.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이 작품이 실존주의의 선구로 일컬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한켠에 벌레와도 같은 구석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것을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기대하지 못하기에 철저하게 숨기려고 애쓴다.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건 지극히 피상적이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이에 있어서도. 작가는 이처럼 무거운 진실을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독자에게 툭 던져놓는다. 마치 알아서 판단하라는 듯이.

 

전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딸이 가장 먼저 일어나 싱싱한 젊은 몸을 쭉 폈는데, 그 모습은 부부에게 그들의 새로운 꿈과 멋진 계획이 실현된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듯했다.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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