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 - 양자 역학부터 양자 컴퓨터 까지 처음 만나는 세계 시리즈 1
채은미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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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1930년대 양자 역학 개념과 이론이 본격적으로 정립된 이래 여러 논란과 도전이 잇달았다. 20세기 후반부터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를 입증하는 실험이 가능해짐에 따라 지금은 대세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들어 국가 간, 기관 간 양자 컴퓨팅 경쟁이 치열하다. 컴퓨터는 알겠지만 양자가 붙은 컴퓨팅은 무엇이 다른지 그토록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는지, 기존의 슈퍼컴퓨터와는 다른 것인지 궁금과 의문을 품었다.

 

이 책은 바로 독자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획의 결과다. 전반부 1부는 양자 역학을, 후반부 2부는 양자컴퓨터를 각각 다루고 있다. 후기를 보면 평가가 엇갈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표제로 인한 혼동으로 생각된다. 표제만 보면 초심자를 위한 양자 역학 소개서 내지 입문서로 기대하였는데, 다루는 내용의 깊이와 방향이 기대와는 다를 수 있어서다. 물론 부제에서는 언급하였지만, 차라리 표제에 양자 컴퓨터까지 추가하였으면 더 나았을 거라는 개인적 생각이다.

 

1부는 양자 역학의 개념과 발전사를 소개하는데, 제한된 분량에 최대한 담으려고 애쓰다 보니 상세한 풀이와 설명보다는 약간 요약형에 가깝다. 혹자는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개인적으로는 흥미진진하게 탐독할 수 있었다. 파동-입자 이중성과 불확정성 원리 같은.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은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양자 역학의 핵심 개념이며, 양자 컴퓨터의 기본 원리에 해당한다.

 

고전 역학은 거시 세계에, 양자 역학은 미시 세계에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는데, 저자는 미시와 거시 세계 모두 양자 역학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점이 신선하였다. 양자 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반론이 실험을 통해 오히려 양자 역학의 결정적 승리로 확인되었다는 점은 최신 과학적 결과의 산물일 것이다. LED, 레이저, GPS 등 양자 역학의 기술을 활용한 제품의 예시는 현대사회가 양자역학과 얼마나 깊게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게 한다.

 

2부가 이 책의 핵심이다. 1부는 2부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기초에 해당한다. 도대체 양자 컴퓨터가 왜 이렇게 이슈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상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컴퓨터의 비트 개념이 양자 컴퓨터의 큐비트이며, 큐비트의 개수가 많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력한 연산 능력을 가지는데, 그것이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의 속성 때문이라는 점 등.

 

얽힘과 중첩이라는 양자 역학의 특성을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 컴퓨터는 고전 컴퓨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연산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P.120)

 

슈퍼컴으로 수백 년에서 수만 년 걸릴 계산을 수 시간 내 처리할 수 있다면 강력한 능력을 바탕으로 기존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기술적 도전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 차원을 넘어, 산업과 사회 전반, 나아가 국가와 문명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 될 수 있기에 그토록 맹렬한 선점 질주에 나서는 것이다.

 

이후부터는 양자컴퓨터의 다소간 기술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을 다루는데, 굳이 입문서에 이 정도까지 필요할까 싶지만 최신 과학기술 동향을 따라잡으려면 알아서 나쁠 것은 없으리라. 먼저 범용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대표적인 3가지 방식인 회로 기반, 단열, 측정 기반 양자 컴퓨팅을 순차적으로 소개하며, 이의 원리와 한계도 함께 언급한다. 이어 특수 목적 양자 컴퓨터도 차례로 다룬다. 양자 컴퓨터는 태생적으로 다양한 오류 가능성을 내포하기에 오류 보정 기술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워낙 막대한 연산 결과를 내보이기에 사소한 오류조차도 결과값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여러 양자 오류 정정 기술이 개발되는 까닭도 오류 최소화 중요성에 대한 증거라고 하겠다.

 

오늘날 실제 양자컴퓨터는 어떤 유형이 있을까? 초전도 큐비트 양자 컴퓨터, 중성 원자 양자 컴퓨터, 이온 트랩 양자 컴퓨터가 현재 각각의 장점과 한계를 지니면서 경쟁하고 있지만, 초전도 큐비트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한다. 차세대 도전자로 반도체 양자점, 위상 큐비트, 분자 큐비트 양자 컴퓨터도 충실히 소개한다.

 

독자가 이러한 세부적인 기술과 경향을 모두 숙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춘추전국시대처럼 난무하는 여러 방식과 기술은 차츰 정리되게 마련이다. 컴퓨터의 기술적 지식이 없어도 잘 사용할 수 있듯이 우리는 좋은 사용자 역할에 필요한 지식만 갖추면 된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인류 문명이 대전환을 맞이하였듯이, 양자 컴퓨터의 본격화는 못지않은 대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 문명은 철저하게 정보통신 과학기술 기반이다. 근래 들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잇달아 발생하는데, 디지털 서비스의 핵심은 보안이다. 양자 컴퓨터는 기존의 보안 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에 보안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양자 컴퓨터는 자연계의 복잡한 현상을 인간이 원하는 대로 예측하고 설계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디지털 실험실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험실의 문은 과학자뿐 아니라 인류 모두가 미래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열려 있겠지요. (P.253)

 

과학자답게 양자 컴퓨터의 미래를 기술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애석하게도 평범한 독자인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4차 산업혁명, 로봇, AI의 출현과 급격한 발전으로 유용성과 편의성의 증대 못지않게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모든 과학기술은 양지와 음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양자 컴퓨터의 발전은 다양한 분야와 층위에서 분명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다만 혁신의 결과인 새로운 미래가 밝을지 어두울지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문제점은 여전하다.

 

양자 역학의 최신 학문적 성과와 양자 컴퓨팅의 발전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에 좋은 책이다. 워낙 난해한 개념을 평이하게 서술하려다 보니 표와 도판에도 불구하고 쉽지만은 않지만 저자의 설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1부의 비중을 키워서 더 충실한 설명을 추가할 수 있었다면 입문자가 접근하기 한층 쉬웠을 텐데 하는 한 가닥 아쉬움을 제외하면, 무엇보다 양자 컴퓨터의 다양한 현상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서 유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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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2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35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이림니키 그림 / 현대문화센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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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으면서 몇 개 장이 누락된 걸 알게 되었다. 어차피 이 어렵고 방대한 작품을 번역하면서 일부를 실수로 빼먹지는 않았을 텐데. 의아해하던 찰나에 2권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글을 통해 비로소 연유를 알게 되었다.

 

글에 따르면 번역 저본 자체가 원본의 80%에 해당하는 갈리마르 축소판이라고 한다. 완전판을 구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절판되었고, 프랑스 현지에서도 축소판만 유통된다고. 무슨 까닭이 있으니 출판사에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완역본이 아니라고 번역자와 출판사를 탓할 수는 없다. 범우판 염기용 번역본이 1968년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고 하니 완역본으로 추정된다. 최근에 나온 페리버튼판 김지현 번역본도 완역본 같은데 확인할 수 없다.

 

2권은 112장에서 219장까지를 담고 있다. 내용은 새롭다기보다 1권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생각을 담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주요 소설을 보면 임무 수행을 위해 목숨을 무릅쓰는 용기와 희생에 대한 찬사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일컬어 행동주의라고 일컫는 까닭이다. 인간은 누구나 생명을 중시하고 목숨을 아까워한다. 그럼에도 대의를 위해 나약함을 버리고 한발 한발 위험을 향해 나갈 때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 앞에서 반복하였듯 사회와 국가의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고귀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삶의 참다운 목적이 이루어진다. 그런 관점에서만 개인의 희생은 역설적이지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삶과 죽음, 희생에 대한 논의가 이것이다.

 

나는 희생의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 희생이란 그대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가는 게 아니다. 반대로 그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게 바로 희생이다. (P.7, 112)

 

따라서 죽음의 위험을 받아들인다는 건 곧 삶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위험을 사랑한다는 건 곧 삶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P.213, 190)

 

현상과 이성, 사물과 표면만을 의식하고 중시하는 눈에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매듭이 보이지 않는다. 화자가 작중에서 논리학자, 역사학자, 비평가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사시 예언자의 강변을 단호히 거부하며, 진정한 기하학자와 정원사의 대화를 길게 소개하며 찬탄하는 까닭이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다. 그들을 완벽한 이성의 잣대로 재단하면 벗어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애정과 사랑으로 보듬어 영원한 가치를 향해 열의를 갖고 자라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것. 인간 개체를 하나의 씨앗으로 비유할 때, 씨앗 한 알은 거대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싹트고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은 씨앗을 키워내는 것은 결국 사랑이 아니겠는가.

 

먼저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어 개별 요소들이 전체를 이루고 있고 이들이 어떻게 조합을 이루는지 생각해 볼 겁니다. (P.274, 206)

 

중요한 건 오직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그러나 그 개별 요소가 모여 전체의 하나를 이루고 있는 덫으로써 제가 잡아들이고자하는 목표물, 즉 사람 그리고 다름 아닌 사람의 자질을 손에 넣는 것입니다. (P.314, 213)

 

화자는 베르베르의 왕이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을 외면과 내면이 조화를 갖추어 신에 이르는 영원의 도상에 오르기를 갈구한다. 참다운 지도자란 이처럼 백성을 무력으로 지배하고 경제적으로 착취하여 일개인의 탐욕을 충족하는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화자의 부왕과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수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여기에 기쁨과 의의를 찾는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제국의 매듭이요, 그대에게 기도 한 편을 지어주었느니, 사물에 대한 취향에 있어 나는 종석(宗石)이 되는 존재요, 그대를 엮어주는 존재다. (P.39, 126)

 

사람을 고귀한 사랑과 가치 있는 지식과 열렬한 기쁨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존재로 만들고 싶은 나 (P.82, 142)

 

제법 긴 마지막 219장을 마무리하면서 새삼 <성채>야말로 생텍쥐페리의 필생의 대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소설을 통해 보여준 여러 사고를 잠언, 우화, 에세이, 철학의 형태로 여기서 확대하고 발전시키는 모습을 확연히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여타 작품도 그러하지만 특히나 이 작품은 한번 읽었다고 해서 제대로 음미하였다는 만족감은 섣부르다. 매 장마다 풍부한 논의와 비유, 함의를 담고 있어 반복 독서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완역본에 대한 궁금증과 이 책 번역의 온전성에 대한 비교를 다시금 해소하고 싶다는.

 

마지막으로 2권의 편집 오류를 언급한다. 126장이 124장과 125장보다 선행하며, 서로 다른 내용의 128장이 두 개다. 따라서 이후 장 번호의 정확성을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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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1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34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이림니키 그림 / 현대문화센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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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생텍쥐페리의 이 책을 읽다가 중도에 덮고 <내 마음의 성채>라는 편역본을 읽었다. 그래도 원본에 미련이 남아 다시금 도전한다. 원전은 총 21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은 1장에서 108장까지 수록하고 있다. 대체로 순서를 따르지만 중간에 몇몇 빠진 장이 보인다.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하다.

 

이 작품을 여전히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크게 봐서 우화와 잠언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별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작중 화자는 베르베르의 왕으로 아버지에게서 나라를 이어받아 백성을 다스리고 있다. 내용은 화자의 생각, 기도, 왕국 내 인물들과의 대화 등으로 전개된다. 외적으로는 국왕으로서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한 통치 철학을 표방한다. 내적으로는 왕국 백성들이 절대자에게 이를 수 있도록 올바른 내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종교철학에 가깝다.

 

편역서를 읽은 덕택인지 이전보다는 독서가 비교적 수월하다. 이번에도 독서에 실패하면 완전히 덮을 생각마저 품고 있었는데. 거칠게 말하면 작가 또는 화자가 주장하는 바는 단순하다. 사람은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조직과 사회의 고차원적 목적을 위해 열정을 품고 헌신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이 삶의 진정한 목적이고 신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며, 영혼을 고양하는 방안이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우리는 삶이란 게 서서히 자신을 헌신하여 무언가를 얻어내는 교감속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P.39, 5)

 

만일 돌 하나하나가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사원 또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각각의 돌이 제자리에서 사원을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때 비로소 돌들이 만들어낸 침묵이 의미를 갖게 되며, 그곳에서 기도가 이뤄지는 법이다. (P.111, 15)

 

받음으로써 살아가지 말고 내어줌으로써 살아가라. 그것만이 그대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이다. 주는 것을 가볍게 여기란 소리가 아니다. 네 스스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P.221, 60)

 

한 편의 논설 또는 논문이라면, 서론과 본론, 결론의 형태로 화자의 주장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겠지만, 화자는 그렇지 않다.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수레바퀴가 돌 듯이 반복한다. 언뜻 무척 지겹고 재미없을 것 같지만, 표현과 대상, 형식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되풀이하기에 오히려 화자의 메시지를 한층 강화하는 효과를 얻는다. 화자는 자신의 주장을 공고히 하는 예시로 사원과 배를 자주 언급한다. 화자가 전체를 중시한다고 해서 전체주의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통일을 이룬다는 건 개별적 다양성을 엮어주는 것이지 부질없는 질서 하나를 세워보겠다고 각각의 다양성을 말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P.295, 88)

 

내가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걸 엮어주는 신의 매듭이 되는 전체와 소통하고 내 앞에 들이닥친 벽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P.338, 108)

 

<성채>는 생텍쥐페리의 완결작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의 원고를 출판사가 취합하고 편집하여 내놓은 작품이다. 현재의 <성채> 구성과 내용이 저자의 애초 의도와 부합한다고 확언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방대한 분량도 저자 자신이 직접 정리하였다면 빼거나 줄이고 합치는 과정을 통해서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면서 각 장의 내용을 무리하게 연계시키려고 하기보다 자체로서 완결성을 지닌 짧은 에세이로 읽어 나가면 오히려 이해에 낫다는 생각이다. 짧고 간단한 장도 있지만 제법 깊숙한 사상을 다루면서 나름 서사를 갖춘 긴 장도 있다. 모든 장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무리할 필요도 없다. 몇 개의 장을 삭제한 까닭도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지에 굳건하게 서 있는 튼튼한 성채처럼, 인간의 현실적 삶이 확고한 안전과 번영을 누리는 동시에 내면도 온갖 유혹과 위협에 흔들리지 말고 이상에 이르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 2차 세계대전에 종군하면서 생텍쥐페리가 보고 듣고 겪었던 일체는 인간성에 반하는 것이었다. 무너진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어느 이념과 가치를 따라야 순수한 본성으로 회귀하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사유가 깃들어 있다.

 

큰 맥락에서 내용 이해에 어려움이 적지만, 군데군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단락 또는 문장도 나타난다. 이것이 번역의 문제인지 원전 자체의 난삽함인지 섣불리 판단하기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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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바흐 성탄 오라토리오

일시 : 2025년 12월 23일(화) 19:30

장소 :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연주

  - 지휘 : 최호영 요한 신부

  - 연주 : 돔 앙상블

  - 합창 : 주교좌 명동대성당 가톨릭합창단

  - 독창 : 신정원 (소프라노), 장정권 (카운터테너), 이영화 (테너), 송기창 (베이스)

프로그램

  -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BWV 248

          Part Ⅰ (9곡)

          Part Ⅱ (14곡)


* 세줄평

음반으로만 듣던 성탄 오라토리오를 실연으로, 그것도 성당에서, 무척 기대하였다. 전곡인줄 착각하여 현장에서 다소 실망했던 점, 성당 내부구조가 전형적인 양식과는 달라서 의아했던 점은 제쳐둔다. 기악의 음량이 다소 커서 합주 시 독창이 묻히는 느낌을 제외하면 연주와 성악 모두 생동감이 있었고, 프로그램북을 들여다보며 공연을 감상하니 오라토리오 내용 이해가 용이하였다. 역시나 트럼펫과 팀파니가 주도하는 1부가 밝고 극적이어서 감상자 입장에서는 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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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위로다 - 명화에서 찾은 삶의 가치, 그리고 살아갈 용기
이소영 지음 / 홍익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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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같은 그림 감상 안내서를 몇 권 읽었다. 저자에 한하면 <모지스 할머니>를 읽었기에 저자가 이 책에서 지향하는 바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을 통한 인생론, 좀 거창하다면 그림으로 보는 삶의 이야기 정도라고 하겠다. 그래서 저자는 스스로를 아트 메신저라고 정의한다.

 

명화를 보는 것은 나의 사고의 한계를 확장시키고, 내가 몰랐던 나의 과거를 끌어다 주며 때로는 나의 미래를 발견하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삶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다잡게 해준다. (P.9, 프롤로그)

 

그림은 까막눈이다. 실기 재주는 처음부터 형편없으며, 안목도 얕아서 작품의 진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전시회를 가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며, 학창 시절의 교양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준이다. 저자는 위축되지 말라고 조언한다. 명화의 기준은 전적으로 내게 달렸다고 한다. 내가 보고 좋은 그림이 곧 내게는 명화라는 것이다.

 

진정한 명화는 내게 유독 착 달라붙는 그림, 그리고 사람들이 설명해주거나 책에서 명화라고 하지 않아도 이유 없이 좋은 그림, 그런 그림들이다. (P.87-88)

 

그림 감상은 순전히 기호이자 선호의 문제다. 구상화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추상화를 굳이 들이밀 필요가 없다. 고전과 낭만 시기 그림을 좋아하는 이에게 현대 회화를 무리해서 강요하는 건 마땅치 않다. 그래도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것도 모른 채 바라봐도 좋은 그림이 있으며, 알면 알수록 더욱 좋아지는 그림도 있는 법. 나는 후자를 위해서 이 책을 손에 든다.

 

먼저 아는 인물부터 언급하면, 고흐와 모지스 할머니가 반갑다. 르네 마그리트는 생소한데, ‘빛의 제국은 눈에 익다.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본 기억이 있다. 프리다 칼로도 역시 들어봤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녀의 불행한 삶과 결혼 생활이 더 기억에 남아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화려한 세기말적 그림이 유명한데, 아터제 호수를 배경으로 한 그림은 전혀 다른 화풍이어서 뜻밖인 동시에 마음에 다가온다. 남은 화가와 그림은 나로서는 미지의 영역에 가깝다. 저자의 해설과 안내에 따라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우뚱하며 유심히 그림을 쳐다볼 뿐이다. 마치 책에 실린 작은 사진에서 뭔가 대단한 숨은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처럼.

 

예술 분야에서는 타고난 천재도 많지만, 재능 못지않은 꾸준한 노력으로 일가를 이룬 인물도 많다고 한다. 평생을 꾸준한 습관으로 창의력을 키워 온 르네 마그리트가 인상적이다. 작가 이상과 화가 구본웅의 우정이 빚어낸 자화상, 가족애를 자주 그린 이스트먼 존슨, 우아하고 기품 있는 스타일의 마리 로랑생이 우선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모든 화가가 처음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건 아니며, 몬드리안도 칸딘스키도 피카소도 그렇다고 하면서 방황하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과 프리다 칼로의 삶을 통해 참다운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자신의 단점을 예술로 승화시킨 툴루즈 로트레크. 어려운 상황을 꿈과 열정으로 극복한 강익중, 수많은 덧칠로 그림을 빛나게 하는 에드워드 호넬. 이들의 이야기는 예술가가 아닌 인간으로서 화가를 바라보게 해주면서 동시에 우리네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안겨준다. 내게는 항상 고흐와 연계되어 떠올리는 화가인 세잔이 입체파와 추상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현대미술의 선구 격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흔히 갖기 쉬운 선입견과 편향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독자가 그림에서 사람과 삶을 찾아보고, 그림의 의미를 통해 인생을 살펴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무미건조한 교훈서가 되지 않으려면 저자의 인간적 면모도 함께 녹여낼 필요가 있다.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저자의 학창 시절, 그림 실력보다 그림을 보는 걸 더 좋아했던 자신의 취향과 소절, 남자 친구와 남편 이야기, 회사 생활과 미술교육에 뛰어들었던 경험, 모지스 할머니 같은 자신의 어머니 등등. 이 책 속에 저자 이소영의 개인사가 상당 부분 들어있기에 책장을 덮으면 저자가 마치 가족 또는 친구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다.

 

미술관에 가보는 것도 문득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개방 중인 국공립 미술관이 여럿 있지 않은가. 더 흥미가 생긴다면 세계적인 거장이나 미술관의 특별전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책장과 화면을 통해 보는 그림과 실제 회화는 분명 차이가 날 것이다. 어디 서양화뿐이겠는가. 한국화, 동양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면 내게도 미술적 취향과 안목이 자라나는 날이 있겠지. 그림을 보면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마음의 위로와 삶의 나침반을 삼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참고로 내가 읽은 책은 구판이다. 2021년에 저자는 개정판을 냈다. 몇 편의 글이 추가되어 분량이 조금 늘어났고, 글의 배치가 다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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