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채 2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35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이림니키 그림 / 현대문화센터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권을 읽으면서 몇 개 장이 누락된 걸 알게 되었다. 어차피 이 어렵고 방대한 작품을 번역하면서 일부를 실수로 빼먹지는 않았을 텐데. 의아해하던 찰나에 2권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글을 통해 비로소 연유를 알게 되었다.

 

글에 따르면 번역 저본 자체가 원본의 80%에 해당하는 갈리마르 축소판이라고 한다. 완전판을 구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절판되었고, 프랑스 현지에서도 축소판만 유통된다고. 무슨 까닭이 있으니 출판사에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완역본이 아니라고 번역자와 출판사를 탓할 수는 없다. 범우판 염기용 번역본이 1968년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고 하니 완역본으로 추정된다. 최근에 나온 페리버튼판 김지현 번역본도 완역본 같은데 확인할 수 없다.

 

2권은 112장에서 219장까지를 담고 있다. 내용은 새롭다기보다 1권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생각을 담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주요 소설을 보면 임무 수행을 위해 목숨을 무릅쓰는 용기와 희생에 대한 찬사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일컬어 행동주의라고 일컫는 까닭이다. 인간은 누구나 생명을 중시하고 목숨을 아까워한다. 그럼에도 대의를 위해 나약함을 버리고 한발 한발 위험을 향해 나갈 때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 앞에서 반복하였듯 사회와 국가의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고귀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삶의 참다운 목적이 이루어진다. 그런 관점에서만 개인의 희생은 역설적이지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삶과 죽음, 희생에 대한 논의가 이것이다.

 

나는 희생의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 희생이란 그대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가는 게 아니다. 반대로 그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게 바로 희생이다. (P.7, 112)

 

따라서 죽음의 위험을 받아들인다는 건 곧 삶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위험을 사랑한다는 건 곧 삶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P.213, 190)

 

현상과 이성, 사물과 표면만을 의식하고 중시하는 눈에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매듭이 보이지 않는다. 화자가 작중에서 논리학자, 역사학자, 비평가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사시 예언자의 강변을 단호히 거부하며, 진정한 기하학자와 정원사의 대화를 길게 소개하며 찬탄하는 까닭이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다. 그들을 완벽한 이성의 잣대로 재단하면 벗어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애정과 사랑으로 보듬어 영원한 가치를 향해 열의를 갖고 자라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것. 인간 개체를 하나의 씨앗으로 비유할 때, 씨앗 한 알은 거대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싹트고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은 씨앗을 키워내는 것은 결국 사랑이 아니겠는가.

 

먼저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어 개별 요소들이 전체를 이루고 있고 이들이 어떻게 조합을 이루는지 생각해 볼 겁니다. (P.274, 206)

 

중요한 건 오직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그러나 그 개별 요소가 모여 전체의 하나를 이루고 있는 덫으로써 제가 잡아들이고자하는 목표물, 즉 사람 그리고 다름 아닌 사람의 자질을 손에 넣는 것입니다. (P.314, 213)

 

화자는 베르베르의 왕이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을 외면과 내면이 조화를 갖추어 신에 이르는 영원의 도상에 오르기를 갈구한다. 참다운 지도자란 이처럼 백성을 무력으로 지배하고 경제적으로 착취하여 일개인의 탐욕을 충족하는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화자의 부왕과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수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여기에 기쁨과 의의를 찾는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제국의 매듭이요, 그대에게 기도 한 편을 지어주었느니, 사물에 대한 취향에 있어 나는 종석(宗石)이 되는 존재요, 그대를 엮어주는 존재다. (P.39, 126)

 

사람을 고귀한 사랑과 가치 있는 지식과 열렬한 기쁨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존재로 만들고 싶은 나 (P.82, 142)

 

제법 긴 마지막 219장을 마무리하면서 새삼 <성채>야말로 생텍쥐페리의 필생의 대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소설을 통해 보여준 여러 사고를 잠언, 우화, 에세이, 철학의 형태로 여기서 확대하고 발전시키는 모습을 확연히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여타 작품도 그러하지만 특히나 이 작품은 한번 읽었다고 해서 제대로 음미하였다는 만족감은 섣부르다. 매 장마다 풍부한 논의와 비유, 함의를 담고 있어 반복 독서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완역본에 대한 궁금증과 이 책 번역의 온전성에 대한 비교를 다시금 해소하고 싶다는.

 

마지막으로 2권의 편집 오류를 언급한다. 126장이 124장과 125장보다 선행하며, 서로 다른 내용의 128장이 두 개다. 따라서 이후 장 번호의 정확성을 확신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