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위로다 - 명화에서 찾은 삶의 가치, 그리고 살아갈 용기
이소영 지음 / 홍익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과 같은 그림 감상 안내서를 몇 권 읽었다. 저자에 한하면 <모지스 할머니>를 읽었기에 저자가 이 책에서 지향하는 바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을 통한 인생론, 좀 거창하다면 그림으로 보는 삶의 이야기 정도라고 하겠다. 그래서 저자는 스스로를 아트 메신저라고 정의한다.

 

명화를 보는 것은 나의 사고의 한계를 확장시키고, 내가 몰랐던 나의 과거를 끌어다 주며 때로는 나의 미래를 발견하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삶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다잡게 해준다. (P.9, 프롤로그)

 

그림은 까막눈이다. 실기 재주는 처음부터 형편없으며, 안목도 얕아서 작품의 진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전시회를 가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며, 학창 시절의 교양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준이다. 저자는 위축되지 말라고 조언한다. 명화의 기준은 전적으로 내게 달렸다고 한다. 내가 보고 좋은 그림이 곧 내게는 명화라는 것이다.

 

진정한 명화는 내게 유독 착 달라붙는 그림, 그리고 사람들이 설명해주거나 책에서 명화라고 하지 않아도 이유 없이 좋은 그림, 그런 그림들이다. (P.87-88)

 

그림 감상은 순전히 기호이자 선호의 문제다. 구상화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추상화를 굳이 들이밀 필요가 없다. 고전과 낭만 시기 그림을 좋아하는 이에게 현대 회화를 무리해서 강요하는 건 마땅치 않다. 그래도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것도 모른 채 바라봐도 좋은 그림이 있으며, 알면 알수록 더욱 좋아지는 그림도 있는 법. 나는 후자를 위해서 이 책을 손에 든다.

 

먼저 아는 인물부터 언급하면, 고흐와 모지스 할머니가 반갑다. 르네 마그리트는 생소한데, ‘빛의 제국은 눈에 익다.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본 기억이 있다. 프리다 칼로도 역시 들어봤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녀의 불행한 삶과 결혼 생활이 더 기억에 남아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화려한 세기말적 그림이 유명한데, 아터제 호수를 배경으로 한 그림은 전혀 다른 화풍이어서 뜻밖인 동시에 마음에 다가온다. 남은 화가와 그림은 나로서는 미지의 영역에 가깝다. 저자의 해설과 안내에 따라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우뚱하며 유심히 그림을 쳐다볼 뿐이다. 마치 책에 실린 작은 사진에서 뭔가 대단한 숨은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처럼.

 

예술 분야에서는 타고난 천재도 많지만, 재능 못지않은 꾸준한 노력으로 일가를 이룬 인물도 많다고 한다. 평생을 꾸준한 습관으로 창의력을 키워 온 르네 마그리트가 인상적이다. 작가 이상과 화가 구본웅의 우정이 빚어낸 자화상, 가족애를 자주 그린 이스트먼 존슨, 우아하고 기품 있는 스타일의 마리 로랑생이 우선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모든 화가가 처음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건 아니며, 몬드리안도 칸딘스키도 피카소도 그렇다고 하면서 방황하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과 프리다 칼로의 삶을 통해 참다운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자신의 단점을 예술로 승화시킨 툴루즈 로트레크. 어려운 상황을 꿈과 열정으로 극복한 강익중, 수많은 덧칠로 그림을 빛나게 하는 에드워드 호넬. 이들의 이야기는 예술가가 아닌 인간으로서 화가를 바라보게 해주면서 동시에 우리네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안겨준다. 내게는 항상 고흐와 연계되어 떠올리는 화가인 세잔이 입체파와 추상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현대미술의 선구 격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흔히 갖기 쉬운 선입견과 편향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독자가 그림에서 사람과 삶을 찾아보고, 그림의 의미를 통해 인생을 살펴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무미건조한 교훈서가 되지 않으려면 저자의 인간적 면모도 함께 녹여낼 필요가 있다.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저자의 학창 시절, 그림 실력보다 그림을 보는 걸 더 좋아했던 자신의 취향과 소절, 남자 친구와 남편 이야기, 회사 생활과 미술교육에 뛰어들었던 경험, 모지스 할머니 같은 자신의 어머니 등등. 이 책 속에 저자 이소영의 개인사가 상당 부분 들어있기에 책장을 덮으면 저자가 마치 가족 또는 친구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다.

 

미술관에 가보는 것도 문득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개방 중인 국공립 미술관이 여럿 있지 않은가. 더 흥미가 생긴다면 세계적인 거장이나 미술관의 특별전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책장과 화면을 통해 보는 그림과 실제 회화는 분명 차이가 날 것이다. 어디 서양화뿐이겠는가. 한국화, 동양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면 내게도 미술적 취향과 안목이 자라나는 날이 있겠지. 그림을 보면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마음의 위로와 삶의 나침반을 삼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참고로 내가 읽은 책은 구판이다. 2021년에 저자는 개정판을 냈다. 몇 편의 글이 추가되어 분량이 조금 늘어났고, 글의 배치가 다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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