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5년 8월 27일(수) 19:30

장소 : 삼익아트홀

연주 : 이진현 (피아노)

프로그램

  - 쇼팽, 연습곡 Op.10

  -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S.178


* 세줄평

평소 쇼팽의 연습곡은 전곡 듣기는 지루하여 선호하지 않았는데, 실연으로 듣는 곡은 전혀 다르다. 물론 연주자의 열정과 파워가 큰 작용을 하였다. 이후 임윤찬의 음반을 들으니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였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리스트의 소나타는 좋아하는 곡이지만 이처럼 압도적인 스케일의 곡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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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비룡소 클래식 14
생 텍쥐페리 글 그림, 박성창 옮김 / 비룡소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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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처음 읽는다. 너무나 유명한 동화이지만 오히려 꺼리는 마음과, 내용을 얼추 알고 있는데 굳이 하는 마음이 반반이었다. 생텍쥐페리의 주요 소설들을 순서대로 섭렵하게 된 계기도 <어린 왕자>를 단순히 동화가 아닌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이 책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들려준 가르침은 낯설지 않다. 작가가 꾸준하게 자기 작품에서 설파하였던 의견과 동일하다. 사람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거기에 참여해야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뭐야?”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쉽게 잊혀진 어떤 것인데,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관계를 만든다고?” (P.89)

 

어린 왕자도, 장미꽃도 관계를 만드는 법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친구가 되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이임에도 헤어지는 길을 택하게 된다. 이는 비단 친구 사이뿐만 아니라 이성 간의 사랑에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P.90)임을 깨닫고 소중하게 여길 때 참된 사랑이 자리 잡게 된다. 어린 왕자가 깜짝 놀랐듯이 지구상에 장미꽃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중에 정말로 내게 소중한 장미꽃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내게 다른 무엇과도 구별할 수 있는 의미를 지닌 꽃이어서다.

 

사람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랄수록 동심, 즉 순수한 마음을 잃게 된다. 어린 왕자가 소행성을 떠나 여러 별을 여행하다가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결국 무엇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지를 알지 못하게 된 속화된 어른들의 압축판이다. 헛된 권력, 허영심, 숫자에 매몰되고, 술을 마시는 자신이 부끄러워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술꾼처럼 중요한 게 무엇인지 놓친 오늘날의 인간 군상이다.

 

잘 가. , 내 비밀을 말해 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P.96)

 

화자가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속이 안 보이는 보아 뱀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상자 속 조그만 양을 어린 왕자에게 그려줄 수 있어서다. 여우에게서 직접적 교훈을 얻는 건 어린 왕자이지만, 화자 역시 어린 왕자를 통해 같은 깨달음을 받게 된다. 그것은 화자에게서 독자에게로 이어진다.

 

어린 왕자는 비로소 사랑할 줄 알게 되었고, 장미꽃을 귀중한 친구로 길들이기 위한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다.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에 대하여 회피하지 않는 책임감, 이것이 뒷받침되어야 존재 간 관계는 진실하고 두터워진다. 관계, 친구, 사랑은 항상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 아픔과 슬픔과 인내심으로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굳건히 이겨내야 비로소 관계는 단단해진다.

 

연약한 장미꽃은 언제 병들고 스러지거나 꺾여버릴지 모른다. 시간은 영원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빨리 소행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려 지구에 왔지만, 느긋하게 돌아갈 수 없기에 어린 왕자는 힘들지만 빠른 길을 선택한다.

 

동화의 마지막 대목은 의외로 쓸쓸하다. 어린 왕자가 뱀에 물려 죽는 장면은 아무리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지만, 어쨌든 비극적이다. 물론 보통의 존재가 아니기에 어린 왕자는 고향 소행성으로 무사히 돌아가 하늘에서 웃으며 반짝이겠지만 말이다. 이 동화를 요즘은 아이들이 많이 읽도록 권장하는데, 솔직히 아이들이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와 메시지를 속속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작가는 도리어 이렇게 반박하겠지만.

 

어른들이란 이렇다. 하지만 어른들을 나무라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너그럽게 대해 주어야 한다.

물론, 인생을 이해할 줄 아는 우리들은 숫자 같은 건 신경쓰지 않는다.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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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으로 한강의 <작별>이 선정되었다. 이 책은 수상작을 포함하여 후보작으로 검토되었던 총 7편의 단편소설을 담고 있다. 작품들 각각이 독자적 미학과 재미를 안겨주고 있어 흥미로운 독서가 가능하였다. <작별>은 이미 다른 곳에서 감상을 기록하였으므로 여기서는 나머지 작품의 소감만 언급하고자 한다. 수록 작가 중 이승우와 정이현은 수년 전 작품집- <식물들의 사생활>, <생의 이면>, <그곳이 어디든>(이승우), <달콤한 나의 도시>(정이현) -을 읽은 기억이 있어 반갑다. 나머지 작가는 초면이다.

 

언뜻 겉보기에 두드러져 보이는 유사성은 외지인 혐오 인식이다. 강화길, 김혜진, 이승우의 작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강화길)은 시골 동네 속 동남아 혼혈, 도시 사람을 향한 편치 않은 감정을 나타낸다. <동네 사람>(김혜진)은 보수적인 동네 속 젊은 여성들의 외양과 행위가 이질적임을 보여준다. <소돔의 하룻밤>(이승우)에서 나그네로 분한 천사는 물론, 롯 자신도 소돔성에서 타자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누구나 유사하고, 익숙하고 친숙한 것이 아닌 존재와 현상에 대해 본능적 거부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생소한 것에 대한 잠재적 두려움과 위협을 인식하기 때문일 수 있고, 그것이 풍기는 불편함 자체를 거북하게 여겨서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적대적이고 공격적 반응으로 이어지게 마련인데, 소돔성이 명시적이고 극단적인 사례라면 <동네 사람>은 은근한 왕따와 사회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양태이다. <>은 가장 내재적이고 은폐적인 경우다.

 

<언니>(정이현)도 소외와 배제의 의미- 인희 언니는 모교 출신이 아니다 -를 담고 있지만, 이 작품은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권력이라는 다른 유형의 폭력을 강조한다. 약자의 치열한 노력은 인정받지 못하고, 힘겨운 저항조차도 성과 없이 묻혀버린다. 여기서 인희 언니와 그 엄마가 애용하는 벙커는 이중적 해석이 가능하다. 상처의 위로와 치유 공간인 동시에 도피와 퇴행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사실에 가까운가는 전적으로 인물의 선택에 달린다.

 

그러고 있으면, 이러려고 내가 살아왔구나, 살아가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어. 이 방에서 이렇게 숨을 쉬려고.” (P.201)

 

<>은 단합되고 화목한 시골 마을의 얇은 표면 아래 여러 갈등이 내재하고 증폭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미자네와 이장, 화자의 시어머니 간, 대진과 용현, 그리고 화자의 딸 민아 간에는 서로 간 우의를 가장한 미움이 옅게 배어 있다. 이런 요인들로 마을의 일상은 잠재적 불안으로 가득하고, 사람들 간 관계는 미세한 균열로 계속 생긴다. 독자는 민아의 행방불명이 사실인지 화자의 착각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화자가 현상의 핵심을 비로소 깨달았음을 알게 될 뿐이다.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을 해코지하고 방해하는 년”(P.62)인 악귀 손이 타자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칭할 수도 있음을 말이다.

 

나는 양손에 얼굴을 천천히 묻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그 냄새를 맡았다. 이제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마땅한 일이었다. (P.87, <>)

 

마을, 동네는 사람들의 친밀한 공동체를 말한다. 이 안에서 우리는 적대적 외부의 위협 없이 안심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단지 공간적 이웃이라고 해서 같은 마을, 동네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토박이들에게 있어 새 이주민은 남인 동시에 공동체의 순수성을 깨뜨리는 이질적 존재다. 그네들이 공동체에 동화하려는 노력과 열의를 재빨리 보여주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동네 사람>의 두 아가씨처럼. 자신들은 한적한 동네에서 조용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낯선 존재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말투와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모두 시선과 소문의 대상이며 평판을 좌우한다. 공동체는 더 이상 보호 체제가 아니라 감시 체제가 된다. 동네에서 화자 일행이 숨거나 피할 곳은 없다. 융화되거나 떠나지 않는 이상은. 둘 다 불가능하다면...

 

숨을 크게 들이켜고 내쉬어도 화끈거리는 열기가 가시지 않는다. 목덜미를 타고 뜨거운 기운이 치솟는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또렷해진다. 지금껏 수없이 오간 이 길에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오싹함이다. (P.137)

 

<소돔의 하룻밤>은 성경 속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재해석이다. 작가는 매 단락 인물의 선택과 행동의 함의를 심리적, 사회적으로 해부한다. 그 해석은 낯설지 않지만 참신하며 무엇보다 지적으로 흥미롭다. 작가의 지적인 글쓰기가 빛을 발한다.

 

<희박한 마음>(권여선)은 모호하고 은밀하며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두 인물인 데런과 디엔의 관계도 남녀 부부 또는 연인인 듯하다가 뒤에 가야 모두 여자이며, 나이대도 노년임을 간접적으로 비춘다. 아파트의 계량기 고장으로 인한 층간 소음을 계기로 데런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디엔과의 삶을 회상한다. 노년에 청년 시절을 회상하는 거야 흔하지만, 여기서는 두 사람이 차례로 꾼 꿈 이야기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가 평탄하지 못한 비밀을 담고 있음을 암시한다. 소설을 마지막까지 모호함을 유지한다. 독자는 여전히 두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정지돈의 단편은 독특하게 읽혔는데, 부기를 보고 비로소 일반적 성격의 작품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태순의 회고담 형식을 빌어서 일본인 양코씨와 만남, 오사카 엑스포 안내원으로 참가했던 경험 등을 술회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한국 근대사를 개인적 시각에서 설명 내지 정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1970년을 전후하여 빠르게 선진화, 미래화를 지향하는 세태 속에서 무조건적 예찬하는 현상과 더불어 양코씨와 같이 소수의 삐딱한 부정적 인물들이 어지럽게 스쳐 지나간다. 결혼 후 이민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다는 태순의 발언은 시니컬하다.

 

저는 미래란 말을 이해하는데 평생을 다 쓴 것 같은데 지금도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미래가 반복된다면 그것을 미래라고 할 수 있나요 라고 말했다. (P.223)

 

표제 <Light from Anywhere(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오사카 엑스포 당시 낙선된 테마를 택하였다고 하는데, 당선된 테마의 선언적 상투성보다 훨씬 예술적, 영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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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조종사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22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이림니키 그림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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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을 위해 인간의 적에 맞서, 그리고 나 자신과도 맞서 싸울 것이다. (P.297)

 

이 작품은 생텍쥐페리가 1939년과 1940년 정찰 비행단 소속으로 활동하였던 체험을 바탕으로 썼다. 아라스 지구 정찰 비행에 나서 귀환에 요행히 성공한 임무가 작품 얼개에 해당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작가인 화자가 비행기 조종사로서 창공에서 품는 다양한 상념들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장르를 과연 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지 애매하다. 에세이 또는 수기에 차라리 가깝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가는 이 무렵, 다른 모든 이들에게 한 가지 인상을 주는 감정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불합리하다는 것이었다. 우리 주위에서 모든 것이 부서진다. 모든 것이 무너진다. 사방이 온통 그러한 상황이라 죽음조차도 불합리하게 보인다. (P.10-12)

 

작중에서 우선 두드러지는 점은 반전 관념이다. 화자는 전쟁의 무의미성을 토로한다. 여기에는 여러 배경이 있을 텐데 먼저 프랑스의 패전이다. 나치 독일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개와 안타까움이 전재 자체의 비인간성과 맞물려 있다. 자신이 맡고 있는 비행 업무의 터무니없음도 한몫한다. 상식적으로 불필요하고 무모한 비행을 지시하는 지휘부에 대한 불만을 화자는 가감 없이 독자에게 토로한다.

 

전쟁은 속성상 잔인하고 엄혹하다. 전쟁은 가능하면 회피하고, 불가피하다면 최소의 희생으로, 신속한 종료를 거두어야 한다. 그것이 위정자의 책무다. 살인, 방화, 파괴, 죽음, 희생, 비탄 등으로 가득한 상황은 인간을 인간 이하의 지위로 타락시킨다.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는 철저히, 그리고 신속하게 굴복당하였다. 화자는 이렇게 자조한다.

 

프랑스는 자신의 역할을 했다. 프랑스가 맡은 역할은 무너져주는 것이었다. [......] 공격이 들어오면 총알받이로 내세울 사람이 필요하다. (P.165)

 

화자는 프랑스의 패전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비행기 조종사로서 평소의 생각에, 전시 조종사로서의 경험을 결합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프랑스에 무엇이 결여되었고, 부족한가를. 여기서 그는 구분한다, 개인과 인간을. 프랑스 대혁명과 계몽주의로 대변하는 합리주의를 화자는 여기서 인본주의로 부르고 있다. 기존 인본주의의 가장 큰 흠결은 고립된 개인주의다.

 

개별성에 보편성이 우위를 점하듯 개인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위해 나는 싸울 것이다.

나는 보편성에 대한 숭배가 개별적인 풍요로움을 촉진시켜 주고 유기적으로 연결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하나의 질서를 구축하고, 그 질서는 삶의 질서가 된다. (P.295)

 

개인과 인간의 차이는 개인 간 연결, 관계의 유무다. 고립된 개체를 넘어 우리로, 공동체를 결성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생텍쥐페리의 작품들 속에서 중요한 개념인 관계가 여기서 좀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인간은 관계로 매듭지어진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에게 있어서 오직 중요한 것은 관계뿐이다. (P.204)

 

개인이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까. 그저 희망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므로. 여기서 화자는 말이 아닌 행동을 강조한다. 개별 차원의 행동과 관계 속에서 행동은 완전히 다르다. 후자는 내가 그 역할과 의무, 책임을 인식해야 하고 참여를 통해 비로소 행동으로 전환된다. 개체적 자아를 포기해야 하기에 그것은 희생이기도 하다. 즉 관계, 의무, 책임, 참여, 행동, 희생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일련의 맥락 속에 존재한다. 이것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태가 바로 공동체다.

 

내가 만약 참여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존재하려면 참여해야 한다. (P.222)

 

우리의 공동체는 이미 민감해져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에 합류하기 위해 이를 표현하는 일이다. 이는 의식과 언어의 노력이다. (P.254)

 

화자가 강조한 새로운 인본주의와 공동체 개념은 프랑스의 패전이라는 쓰라린 체험에서 퍼 올린 진실이다. 기존의 프랑스는 바로 이 미덕이 부족하였기에 과거의 고립적 인본주의에 안주하였기에 패망을 맛보게 되었다. 혹자는 화자가 제시한 이 개념이 오히려 전체주의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 때문에 작가는 한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는 작가의 관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인간이 부재한 공동체를 표방한 게 전체주의다.

 

인간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 내가 속한 문화의 요체도, 내가 속한 공동체의 열쇠도, 그리고 내가 깨달은 승리의 원칙도 모두 인간이다. (P.269-270)

 

화자는 인간에게 바탕을 둔 공동체를 찬미하였다. 바로 인간을 통해 인간 평등, 인간 존중, 형제애, 자비, 책임, 희생의 사상이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화자는 제26장의 내용 전체를 이의 선언과 설명에 할애하고 있을 정도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작품은 재미없다. 관념과 사색의 비중이 크고 핵심적인 내용을 형성하기에 작가의 이전 작품과는 독서의 궤를 달리해야 한다. 비행기 조종사 임무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남방 우편기>, <야간 비행>와 유사성을 갖는다. 소설로서 반전 의식이 표출되고, 서사적 구조보다 사색이 주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대지>에 오히려 가깝다. 다만 전자는 서사와 사색이 비교적 균형을 이루는 반면 여기서는 사색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 작품의 평가를 함부로 내리기 어려운데, 그 유명한 <어린 왕자>의 기본 사상이 전작들과 아울러 특히 이 작품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어서다. 단순한 아동서 차원을 넘어 깊이 있는 독해를 하고자 한다면 결코 이 작품을 건너뛸 수 없다는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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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8월 18일(월) 19:30

장소 : 금호아트홀 연세

연주 : 현준희 (바이올린), 한지은 (피아노)

프로그램

  - 드보르작, 낭만적 소품 Op.75

  - 파야, 스페인 민요 모음곡

  - 슈만, 3개의 로망스 OP.94 중 제2곡

  -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장조 Op.100


* 세줄평

드보르작과 파야의 작품은 생소한 곡이다. 전자는 우아하고 감성적이며 선율미가 돋보인다. 후자는 민속음악적 요소가 강하게 풍겨오는 재밌는 곡이다. 약음기를 끼고 하는 연주가 이채롭다. 브람스의 곡은 근래 자주 듣지 않아서 긴가민가 했는데, 역시나 좋은 음악이다. 공연 내내 연주자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다. 음악회 제호마냥 인생의 화양연화를 즐기듯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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