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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ㅣ 비룡소 클래식 14
생 텍쥐페리 글 그림, 박성창 옮김 / 비룡소 / 2005년 1월
평점 :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처음 읽는다. 너무나 유명한 동화이지만 오히려 꺼리는 마음과, 내용을 얼추 알고 있는데 굳이 하는 마음이 반반이었다. 생텍쥐페리의 주요 소설들을 순서대로 섭렵하게 된 계기도 <어린 왕자>를 단순히 동화가 아닌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이 책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들려준 가르침은 낯설지 않다. 작가가 꾸준하게 자기 작품에서 설파하였던 의견과 동일하다. 사람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거기에 참여해야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뭐야?”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쉽게 잊혀진 어떤 것인데,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관계를 만든다고?” (P.89)
어린 왕자도, 장미꽃도 관계를 만드는 법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친구가 되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이임에도 헤어지는 길을 택하게 된다. 이는 비단 친구 사이뿐만 아니라 이성 간의 사랑에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P.90)임을 깨닫고 소중하게 여길 때 참된 사랑이 자리 잡게 된다. 어린 왕자가 깜짝 놀랐듯이 지구상에 장미꽃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중에 정말로 내게 소중한 장미꽃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내게 다른 무엇과도 구별할 수 있는 의미를 지닌 꽃이어서다.
사람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랄수록 동심, 즉 순수한 마음을 잃게 된다. 어린 왕자가 소행성을 떠나 여러 별을 여행하다가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결국 무엇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지를 알지 못하게 된 속화된 어른들의 압축판이다. 헛된 권력, 허영심, 숫자에 매몰되고, 술을 마시는 자신이 부끄러워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술꾼처럼 중요한 게 무엇인지 놓친 오늘날의 인간 군상이다.
“잘 가. 참, 내 비밀을 말해 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P.96)
화자가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속이 안 보이는 보아 뱀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상자 속 조그만 양을 어린 왕자에게 그려줄 수 있어서다. 여우에게서 직접적 교훈을 얻는 건 어린 왕자이지만, 화자 역시 어린 왕자를 통해 같은 깨달음을 받게 된다. 그것은 화자에게서 독자에게로 이어진다.
어린 왕자는 비로소 사랑할 줄 알게 되었고, 장미꽃을 귀중한 친구로 길들이기 위한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다.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에 대하여 회피하지 않는 책임감, 이것이 뒷받침되어야 존재 간 관계는 진실하고 두터워진다. 관계, 친구, 사랑은 항상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 아픔과 슬픔과 인내심으로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굳건히 이겨내야 비로소 관계는 단단해진다.
연약한 장미꽃은 언제 병들고 스러지거나 꺾여버릴지 모른다. 시간은 영원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빨리 소행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려 지구에 왔지만, 느긋하게 돌아갈 수 없기에 어린 왕자는 힘들지만 빠른 길을 선택한다.
동화의 마지막 대목은 의외로 쓸쓸하다. 어린 왕자가 뱀에 물려 죽는 장면은 아무리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지만, 어쨌든 비극적이다. 물론 보통의 존재가 아니기에 어린 왕자는 고향 소행성으로 무사히 돌아가 하늘에서 웃으며 반짝이겠지만 말이다. 이 동화를 요즘은 아이들이 많이 읽도록 권장하는데, 솔직히 아이들이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와 메시지를 속속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작가는 도리어 이렇게 반박하겠지만.
어른들이란 이렇다. 하지만 어른들을 나무라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너그럽게 대해 주어야 한다.
물론, 인생을 이해할 줄 아는 우리들은 숫자 같은 건 신경쓰지 않는다. (P.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