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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 우편기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9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12월
평점 :
생텍쥐페리를 읽기 시작한다. 그는 비행기 조종사였고, 삶의 마지막도 비행 도중 행방불명이었다. 이처럼 생텍쥐페리와 비행은 불가분의 사이였기에, 그의 여러 문학작품이 비행과 조종사를 제재로 삼고 있음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남방 우편기>, <야간 비행>, <전시 조종사>처럼. 지금이야 해외여행이 일상화되었기에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낯설고 생소한 체험이 아니지만, 백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생텍쥐페리의 비행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주인공 인물의 심리 상태가 지금과는 현저하게 다르리라는 점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를 현대에 비긴다면, 우리가 우주 항로를 개척하는 우주인을 상상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리라. 아니면 조그만 경비행기를 홀로 조종하고 하늘을 나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까울 수도. 어쨌든 우리는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의 기대와 흥분 반, 두려움 반의 심경으로 생텍쥐페리의 조종사를 바라볼 때 비로소 이들 작품의 의미가 생생해진다.
항로도 안정화되어 있지 못하고, 기체도 장비도 불완전하며 프랑스 툴루즈에서 서아프리카까지 수일에 걸쳐 자그마한 우편 수송기를 홀로 모는 조종사가 높은 하늘에서 갖게 되는 고독감과 불안함, 피로감과 두려움을 독자는 이해해야 한다. 까딱하면 기체 결함과 날씨 영향으로 추락하여 사고당하기 다반사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비행사들의 삶의 감각과 태도가 지상에서의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여기서 각 기착지마다 주둔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독한 일상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가까운 곳이라고 해봐야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다른 지역과는 얼굴이 아닌 오로지 무전을 통해서만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 긴급하게 착륙하였던 프랑스군 초소의 늙은 중사가 베르니스를 사랑하고 추억한 것은 더욱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는 저들의 고상한 버릇이나 별명으로써 저들을 알고 있었으나, 저들과 우리 사이에는 유인 행성 사이에서와 같은 두터운 침묵이 가로 놓여 있었다. (P.9)
이 소설은 남방 우편기의 여정을 베이스로 삼는다. 소설의 첫 단락은 툴루즈를 출발하였음을 알리며, 마지막 단락은 서부 사하라에서 실종된 우편기의 추락 잔해를 확인하였으며, 우편물을 무사히 회수하였음을 보고한다. 우편기를 몰던 조종사 베르니스가 작품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베르니스의 유년 시절부터 최근에 실패한 연애사에 이르기까지를 친구의 입으로 들려주는데, 두 사람이 함께했던 산발적인 정보가 대다수가 되며, 그나마도 주느비에브와의 추억이 주를 차지한다.
주느비에브는 안타까운 여성이다. 독립적 인격으로 존중받기를 원한 그녀지만 당대 사회는 그녀를 전통적인 규범으로 장식적 존재로만 바라본다. 남편의 권위주의적 강제와, 아이의 상실로 충격받은 그녀는 일상의 일탈을 갈구하며, 베르니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작중에서 두 연인의 여정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대신, 점점 더 짙은 슬픔과 우울함을 향해 빠져든다. 두 사람의 결합은 인정할 수 없다는 하늘의 단호한 의지의 반영인 듯이 자동차, 추위, 호텔, 그리고 베르니스의 휑한 집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인물만큼이나 독자의 마음도 아프게 한다.
그녀의 모든 과거가 무너지고 있다. 오랜 정성을 들여 꾸며놓은 이 거실부터 시작해서, 사람이 들여놓은 것도 장사치가 들여놓은 것도 아닌 시간의 때와 함께 저곳에 놓여 있던 가구들까지, 그녀의 모든 과거가 무너지고 있었다. 이 가구들은 거실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을 채우고 있었다. (P.95)
베르니스와 주느비에브는 본성상 어울릴 수 없는 관계임을 두 당사자는 몰랐지만, 화자인 친구는 이를 알아차린 듯하다. 그들은 하늘의 사람 대 땅의 사람이다. 부유함을 갈구하지 않지만, 주느비에브의 삶은 자신의 시간과 손때가 묻은 사람과 사물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녀는 지상에서의 삶에 충실하다. 비현실을 일상으로 간주하고, 유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그녀는 납득하지 못한다. 결국 이들의 여정은 삶의 종국에 이르지 못하고 일상의 찰나적 일탈에 그치고 만다.
문득 그녀의 얼굴이 새로워 보였다. 이런 얼굴을 언제 본 적이 있던가?
그렇다. 그건 여행객의 얼굴이었다. 잠시 자신의 삶에서 벗어난 여행객의 얼굴이었다. (P.127)
작가는 이미 비행사의 삶이 정착할 수 없는 노마드와 유사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지상의 삶과 무관한 베르니스. 그가 주느비에브를 잊지 못해 훗날 다시 찾아간 행동은 유일하게 지상의 끈을 맺으려는 무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의 간극은 너무나 멀다. 그는 그녀에게서, 또는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어떤 반전의 계기를 찾으려고 했지만 헛된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가슴속에 품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이 모습에 싫증이 난 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와의 거리는 이제 넘어설 수 없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P.201)
사랑에 끝끝내 실패한 베르니스가 지상에서의 삶에 미련을 가질 이유는 굳이 찾기 어렵다. 그의 사고가 악천후의 탓인지 또는 자발적 선택의 결과인지 작가는 명시하지 않는다. 굉장히 모호하면서 장중한 문장으로 여운을 남기고 있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서 생텍쥐페리는 지상 위를 훌쩍 날아가는 비행사의 실제 모습과 그들의 자유로운 동시에 불안정한 삶과 생각을 최초로 문학적으로 구현하였고, 그것은 당대인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작가는 고도 상공에서의 조종사를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길을 떠나면 누구나 시인과 철학자가 된다는 말처럼, 극단적인 환경에서의 홀로 된 개인은 누구나 내면과 대화하기 마련이다.
한편 현대 사회의 비인간화를 씁쓸하게 재확인하는 대목도 찾을 수 있다. 비행사의 목숨보다도 우편물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점, 최대한 빠른 전송을 위해 비행사들이 목숨을 걸고 무리한 일정을 감내하는 장면이라든지, 무엇보다 무사히 우편물을 수거하였다는 마지막 문장의 끝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