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비행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8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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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남방 우편기>보다 훨씬 읽기 편하다. 무엇보다 소설의 서사 축이 확연히 파악된다. 배경은 남아메리카대륙,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하는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발 우편기. 제재는 우편배달 시간 단축을 위한 위험한 야간 비행. 그리고 세 주요 인물, 그들의 개성이 매우 두드러지며 나름의 강렬한 맛을 담고 있다. 본부장 리비에르, 감독관 로비노, 그리고 조종사 파비앵.

 

오늘날 야간 비행은 일상적이기에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조종사인데, 레이더도 없고 최첨단 항법 장치도 구비하지 못한 채 불완전한 계기와 기체에 의지한 채 육안을 통해서만 야간 비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현실적인 원인 못지않게 밤이 주는 심리적 두려움도 한몫 차지한다.

 

그럼에도 야간 비행을 감행하는 까닭은 경제적 관점이다. 야간에도 운항할 수 있어야 경쟁 교통수단에 대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다는 측면에서 이들을 모험가, 탐험가, 개척자 내지 선구자라고 일컬을 수 있다. 위험과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에서 결코 등 돌리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니므로. 앙드레 지드의 서문이 붙은 것은 그가 이 점에 매료되어서다. 다만 그의 말대로 이것이 역설적 진리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나는 특히 저자가 어떤 역설적 진리를 명확히 해준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 인간의 행복은 자유가 아닌 의무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내게 있어 이는 심리적으로 상당한 중요성을 띠는 진리이다. (P.6)

 

위기 상황에서 털끝만치의 흔들림도 없이 평정심을 유지한 채 개인적 고려 없이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보통 사람은 아니다. 리비에르 본부장이 그러하다. 그는 성공적인 야간 비행이라는 목표를 위한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다. 작중에서 그는 확고부동한 신념은 반복적으로 표출되며 이를 통해 독자는 그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혼란스럽다. 목표와 행동에 중점을 두는 관점에서 그는 비할 바 없는 영웅이다. 내면과 관계를 중시한다면 그는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인물이다.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리비에르는 이렇게 생각했다. ‘규칙이란 종교의식과 비슷하다. 일견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사람을 단련시켜준다.’ 자신이 공정해보이든 부당해보이든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P.47)

 

내가 잘한 짓인지는 모르겠다. 인간의 삶이 지닌 가치도, 정의와 고통의 그 가치도 나는 알지 못한다. 한 사람의 기쁨이라는 게 사실 얼마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P.91)

 

파비앵이 몰던 우편기의 실종으로 리비에르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음에도 당당하게 두 발로 버텨내는 그의 모습은 일종의 비장미마저 풍긴다. 아프고 안타깝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감내할 수밖에 없는 작은 희생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작가의 입장도 동일하다. 옮긴이도 같은 의견이다. 미워할 수 없는 리비에르.

 

리비에르는 완강한 시선으로 직원들을 굽어보며 그 사이를 지나 천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리비에르는 위대했다. 그는 승리라는 무거운 짐을 이고 가는 승리자였다. (P.185)

 

작중에서 리비에르와 대척점에 있는 유형이 로비노다. 그는 상사만큼 확고한 신념을 지니지 못한다. 획일적 업무와 관계의 단조로움에 지친 그는 보다 인간적 측면에 목말라한다. 업무상으로 그는 상사 리비에르를 존경하지만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여부는 별개다. 조종사 펠르랭과 인간적 교분을 나누기 위한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는 장면은 딱하기조차 하다. 파타고니아발 우편기의 실종으로 실의에 빠졌을 상사를 위로하기 위하여 다가간 그의 행동은 분명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리비에르만큼 유능하지 못할지언정 그가 인간으로서는 한층 따뜻한 인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리비에르를 찬미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다.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고, 인간을 도구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근대적 사고방식을 우리가 긍정적으로 포장할 필요는 없다. 리비에르 자신도 윤리적으로 정당성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는 그의 행동을 말이다. 사소한 실수를 엄중 처벌하고, 고참 정비공을 트집 잡아 해고 처분을 내리며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양태는 X 이론에 기반한 전형적 오류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사랑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범위 내로 한정된다.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 또는 왜곡한다. 범위를 벗어난다면, 그건 바로 악이다. 무찔러야 할 적이다. 파비앵 아내의 가련한 목소리조차도.

 

나는 이 사람들을 모두 사랑한다. 내가 싸우는 대상은 이들이 아니다. 나는 다만 이들 배후에 있는 악과 싸우는 것이다.’ (P.91)

 

이 작품에서 기실 주목받아야 할 존재는 조종사 파비앵이다. 제한된 정보와 수행해야 하는 의무감을 지닌 채 그는 야간 비행에 나선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의 아내를 남겨두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그는 목숨을 담보삼아 담담히 나선다. 자신의 행동이 대의를 구현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폭풍에 휘말린 채 가망 없는 투쟁을 전개하면서도 그는 나약하지 않고 굳은 의지로 최대한 버틴다. 작가가 그의 최후 모습을 굳이 묘사하려고 하지 않는 선택에 공감한다. 영웅의 최후는 존중받아야 하므로.

 

그는 아직 더 싸울 힘이 있었고, 자신의 운을 시험해볼 수 있었다. 비운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깨닫는 그 순간,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P.145)

 

이 작품의 수용과 해석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존의 행동주의적 관점을 고수한다면 우리는 20세기의 자본주의적, 기계론적 인간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셈이다. 작가의 의도가 진정으로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이를 오독한 것인지. 개인적으로 후자라고 생각하고 싶다. 다만 그게 아니라면 나의 오독을 기꺼이 감수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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